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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리/바울의 생애

바울의 생애 // 28. 바울의 석방

by 동심초(남양주) 2022. 4. 9.

 28. 바울의 석방  

 보리밭 

 소나무의 일생 

  느티나무 

 

 

  바울의  석방  

 

로마에서의 바울의 수고는 많은 영혼들 회심시키고 신자들을 굳게 하고 격려하는 축복을 받았으나, 자신의 안전뿐 아니라 교회의 번영을 위협하는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로마에 도착하지 바울은 공의롭고 성실한 근위대장의 관할 아래 있게 되었다. 그의 너그러움으로 바울은 비교적 자유스럽게 복음 사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년간의 투옥이 끝나기 전에 이 사람은 어떤 특별한 호의도 기대할 수 없는 악명 높은 관원으로 교체되었다. 사도는 이 육욕과 잔학의 노예가 된 사람으로부터 아무런 호의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이제 바울을 해치려는 그들의 노력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들은 유력한 조력자 하나를 발견했다. 네로의 둘째 부인이었는데 매우 방탕한 여인이었다. 그는 우대인의 개종자로서 그리스도교의 투사를 살해하려는 그들의 계교를 돕기 위해 자기의 권세를 다해 발휘했다. 바울은 그가 상소한 가이사에게 거의 공의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네로는 품행이 매우 천박하고 품성이 매우 비열했으며, 동시에 극악한 잔인성에 있어서는 그 이전의 어떠한 통치자보다도 더욱 가혹했다. 그보다 더 악한 전제 군주에게 나라의 정치가 맡겨진 적이 없었다. 그의 치세의 첫해에 왕위의 법적 상속자인 그의 이복동생을 독살해서 오점을 남겼다. 네로는 차츰차츰 깊은 죄악과 범죄에 빠져 마침내 자기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그 후에는 그의 아내를 죽였다. 그가 자행하지 않은 포악이 없었고, 그가 저지르지 않은 악행이 없었다. 모든 고상한 사람들의 마음에 그는 증오와 멸시만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궁정에서 행해진 불의의 항목들은 너무나 비열하고 너무나 무서워 필설로 묘사할 수가 없었다. 그의 파렴치한 악행은 그의 범죄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에게까지도 증오와 혐오를 일으켰다. 그들은 네로가 다음에 또 어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를 것인지에 관하여 끊임없이 두려워했다. 그러나 네로가 행한 그와 같은 범죄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의 충성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모든 문명 세계의 전제 군주로 인정을 받았다. 더 나아가 그는 거룩한 영광을 받으며 신으로서 예배를 받았다. 인간적인 판단으로 볼 때 이와 같은 재판관 앞에서 바울이 어떤 정죄를 받을지는 분명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가 하나님께 충성하는 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음을 확신했다. 그의 생명은 네로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만일 그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로마의 황제라 해도 그를 죽일 수 없었다. 과거에 그의 보호자이셨던 분께서 여전히 그를 유대인들의 악의와 가이사의 권세에서 보호하실 것이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보호하셨다. 바울이 심문을 받을 때, 그에 대한 고소는 기각되었으며, 네로는 일반의 기대와는 달리 그의 품성과 전혀 모순되게 공의를 존중하여 죄수에게 무죄를 선언하였다. 바울의 속박은 제거되었고 그는 다시 자유인이 되었다. 그의 심문이 오래 지연되었거나 어떠한 사정으로 다음 해까지 로마에 체류했었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그때에 일어난 박해로 살해당했을 것이다. 바울이 투옥되어 있는 동안 관원들의 주목을 끌고 증오를 일으킬 만큼 그리스도교에 회심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게 되었다. 황제는 그의 가족들의 개종으로 대단히 분노하여 얼마 후에는 그리스도교를 무자비한 잔학 행위의 대상으로 삼을 구실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즈음 로마에 무서운 화재가 일어나서 도시의 거의 절반이 소실되었다. 네로 황제가 방화했다는 소문이 퍼졌으나, 그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집을 잃은 사람들과 곤궁한 사람들을 구제하며 크게 관대한 체했다. 그러나 네로가 일부러 방화했다는 비난은 여전했다. 백성들이 여전히 흥분하고 격노해 있었기 때문에 네로는 자신의 혐의를 벗고 그가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한 계층 곧 그리스도인들을 그 도시에서 제거하기 위해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그의 악마적 속임수는 성공을 거뒀다. 수많은 그리스도인 남녀와 어린이들이 매우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어떤 사람들은 들짐승의 가죽을 씌워 개들이 물어 죽였고, 어떤 사람들은 몸에 기름을 바른 채 화형 주에 달려 바티칸의 서커스나 네로의 환락의 정원에서 불을 비추는 횃불이 되었다. 이렇게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은 그들의 죽어 가는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 더할 나위 없는 쾌락을 만끽하였고 계속해서 그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것을 즐겼다. 타락하고 무감각해진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그토록 지독한 편견을 가지고, 이런 끔찍하고도 잔인한 장면이 날마다 반복되는 동안 흥분하고 즐거워했다. 바울은 이 무서운 박해를 피했다. 그가 석방된 후에 곧 로마를 떠났기 때문이다. 이 최후의 자유 기간을 그는 부지런히 교회들을 위해 활동하는 데 사용했다. 바울은 헬라와 동방 교회들 사이에 공고한 연합을 이루고, 신앙을 부패시키려고 기어 들어오는 거짓 교리들에 대비하여 신도들의 마음을 튼튼히 방어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견딘 시련과 근심 때문에 바울의 체력이 점점 쇠약해 갔다. 노환이 찾아왔다. 바울은 이제 마지막 사업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예루살렘과 안디옥에서 그는 유대주의의 편협한 압력으로부터 그리스도교를 방어했다. 그는 이교 국인 루가 오니아에서, 갈라디아의 광신 주의자들과 마케도니아의 식민주의자들, 아덴의 천박한 예술 숭배자들, 고린도의 쾌락을 사랑하는 상인들, 거의 야만적인 달마 디아의 여러 나라, 그레데의 섬들, 노예들과 군인들, 다양한 계급과 지위의 사람들 그리고 로마의 군중들 사이에서 설교했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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