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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사진들/야생화, 농장꽃

울 아부지, 아버지

by 동심초(남양주) 2022. 11. 30.

  울 아부지  

나는 2008년 07월 18일 블로그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 2022년 10월 갑자기 모두 사라져 기막힌 일이 생겼다.

"다음"에서 모두 다운을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때에 너무 바빠서 알지를 못했다. 

나이가 있어서 잘몰라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겨우 다운로드한 것을 이용하여 올려본다.

 

그때에는 처음 시작했기에 무엇을 어떻게 썼는지를 모른다.

모두 다음에서 옮겨 왔으면 좋으련만...

나의 일기를 썼을 텐데 너무 속상하다.

겨우 사진만 백업하여 올려본다.

날자와 글은 어디로 모두 가버리고....

 

생각나는 대로 다시한번 울 아버지에 대한 글을 올려보자

 

울 아부지는 너무 엄한 분이시다.

자녀들한테는 너무 각박하시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엄청 너그러운 분,

99세까지 살아온 분이시며,

장례식날도 더 살으셔야 된다고 모두 말했던 분이시다.

동네에서는 착하고 너그럽고 온정을 쏟아주시고,

도움을 많이 주셨다고 모두 죽음이 아쉽다고 말했다.

 

뭐가?

한 집을 말해 본다면 그 가정은 집도 없이 우리 동네로 피란 나온 집이 있다.

아들만 여섯, 두붑에 자녀들이 여서, 그러면 모두 식구가 8명이다.

우선은 그댁을 우리 사랑방에서 살게 하고, 우리 아버지는

우리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집을 지어주고, 땅을 주어 농사를 짓게 하셨다.

물론 그런 보답으로 우리 농사 때는 우선적으로 그 가정의 식구를 데려다 일을 시켰고,

그렇게 하여 일한 모든 수고의 대가는 곡식과 돈으로 답했다.

그때에 나는 어렸지만 그래도 초교 5학년인가 6학년인가?

남자 친구가 한 반이 되어 우리 집에 오면 같이 일을 많이 했다.

커서 동네에서 타 성을 가진 남자이면 절대로 놀지 못하게 하던 울 아부지는

바로 그 댁의 아들에게는 내가 같이 이야기해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울 아부지는 엄청 엄하시어 절대로 타 성하고는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울 아부지는 동네 친척에게는 울 밭이 많아 먹을 것이 많으니

이런 것 저런 것 모두 따다 주시고, 따가라고 하시며, 온 친척들,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이 너무 좋으셨다.

또한 외부의 장사꾼들이 오면 재워 주고, 먹여주고, 팔아주고,

옛날에는 체장사, 소쿠리 장사, 실장사, 너무 많은 장사꾼들이 걸어서 다녔다.

그들이 잘 곳이 없으면 여기저기서 물어 꼭 울 집만 찾아온다.

그래도 울 아부지는 그런 장사꾼들을 꼭 재워주곤 한다.

 

그런 울 아부지는 자녀들한테는 절대로 용돈도 없고,

여유 돈이 란 것도 없다.

심부름시켰으면 조금의 여유돈을 줘야 하겠지만 버스비까지 꼭 맞춰 주곤 하셨다.

지금도 울 자매들은 아부지의 매서운 눈초리, 그리고 자녀들에게 궁색한 아부지를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도 울 아부지는 왕소나무처럼 단단하고, 가지를 많이 뻗어 좋은 일 많이 하신 것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할 말은 너무 많다. 그때에 글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지만 엄청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99세까지 살아오신 울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때에 글도 한문도 정말 잘 쓰셨다.)

www.hanwans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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