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리/바울의 생애

바울의 생애 // 12. 고린도의 아볼로

동심초(남양주) 2022. 4. 7. 22:26

 12. 고린도의 아볼로 

 제주도에서 

 

 

 고린도의 아볼로 

고린도를 떠난 후, 바울의 다음 활동 무대는 에베소였다. 바울은 다가오는 절기에 참석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이었으므로 에베소에서의 체류는 물론 짧았다. 그는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변론했으며, 그들은 매우 좋은 인상을 받고 그들 가운데서 계속해서 활동해 주기를 바울에게 간청했다.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할 계획 때문에 그때는 체류할 수 없었으나 돌아오면 그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를 수행하여 에베소에 왔으며, 바울은 그가 착수한 선한 사업을 수행하도록 그들을 그곳에 남겨 놓았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온 것은 이때였다. 그는 최고의 헬라 교육을 받았고, 학자요 웅변가였다. 아볼로는 침례 요한의 전도를 듣고 회개의 침례를 받았으며, 선지자의 사업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산 증인이 되었다. 아볼로는 예언서들의 철저한 학도였으며, 유능한 성경 해석자였고, 그가 받은 빛의 한도 내에서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한 사람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의 말을 듣고 그의 가르침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들은 그가 아직 그리스도의 사명에 대한 지식, 즉 그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그분이 세상에 없는 동안 그의 백성들과 함께하도록 보내신 위로자 성령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갖지 못했다. 결국 아볼로는 아굴라 부부에게 가서 이 유식한 웅변가가 그들에게서 감사가 넘치는 놀라움과 기쁨으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그는 성경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고, 가장 유능한 그리스도교 신앙 옹호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아볼로가 이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더욱 익숙해지자 고린도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에 에베소에 있는 형제들이 고린도에 편지를 해서 그를 그리스도의 교회와 완전히 일치하는 교사로 받아들이라고 부탁했다. 


그는 결국 고린도로 가서 바울이 전한 진리를 거절했던 바로 그 유대인들을 위해서 일했다. 그는 집집을 방문하며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예언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증거 하고, 그가 바로 바울이 전한 예수이시며, 그들이 기다리는 다른 메시아는 없다고 증거 했다. 그렇게 해서 바울은 진리의 씨를 심었고, 이제 아볼로는 거기에 물을 주었다. 아볼로가 바울의 선교를 도왔다는 것은 바로 그들을 위해서 일했던 위대한 사도의 과거의 사업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성격을 규명한 셈이 되었다. 복음 전도에 있어서 아볼로가 거둔 성공을 보고 어떤 신도들은 그의 수고를 바울의 수고보다 더 높이 평가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사업의 발전을 위해서 바울과 조화되게 일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는 일은 복음 사업의 발전에 크게 방해가 되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는 의도적으로 복음을 단순하게 제시했다. 아덴에서 수고한 결과가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지식과 웅변으로 청중들에게 전달했던 것을 고린도에서는 전혀 다른 방법을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평이하고 단순한 지니를 세상의 지혜로 치장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세상을 향한 그의 사명 만을 신중하게 제시했다. 아볼로의 웅변적인 담화와 거기서 드러나는 그의 학식은 그의 청중들에게 의도적으로 단순하고 아무런 치장 없는 바울의 설교와 크게 대조를 이루었다. 많은 사람이 아볼로의 지도를 따르겠다고 선언하는 한편,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일을 더 좋아했다. 사탄이 고린도 교회 안에 이런 사상의 차이를 이용하여 이 그리스도의 일꾼들을 비교하는 입장을 취하도록 유혹했다. 어떤 사람은 아볼로를 자기들의 지도자로 삼고, 어떤 사람은 바울을, 또 다른 사람은 베드로를 지지했다.


이렇게 되면 바울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서, 바깥세상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도 투쟁과 시련이 올 것을 알게 되었다. 당파 투쟁은 유대 교화시키는 교사들로부터도 발생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도 반드시 할례 문제에 있어서 의식법을 순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아직도 유대인들은 본래 아브라함의 고귀한 특권을 받은 자손들인데,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약속을 물려받을 권리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중간 지대에 서서 그리스도인들에 붙은 나쁜 평판을 성공적으로 제거해서 더 많은 유대인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었다. 그들은 바울의 입장과는 달리 바울의 예를 들어 이방인들을 할례도 받지 않고 교회에 들이는 것은 유대인들이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고, 이방인만 더 많이 들어오게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정받은 종들이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로 들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이 온 세상에 전해지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오직 히브리인들의 구세주이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리스도 교회의 특권을 누리도록 허락한다면 우선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 문제가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이 난 후인데도 많은 사람이 아직도 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반대를 더 이상 밀어붙이지는 않고 있었다. 그 경우에 총회는 유대교로부터 개종한 사람들이 원한다면 모세의 율법에 나타난 의식을 따르도록 결의를 했었다. 그러나 이방인 중에서 회심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지킬 의무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반대하는 계급은 여기에 문재점이 있는데, 이 의식법을 따르는 사람과 따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확실한 구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후자가 전자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리 있다는 입장이었다. 바울은 분노가 치밀었다. 그의 목소리가 엄한 책망으로 높아졌다.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갈 5:2). 할례 없이는 그리스도교가 무가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열을 가다듬어 바울을 대적하고 나섰다. 그래서 그가 세웠거나 방문한 모든 교회에서 그들과 마주쳐야 했다. 예루살렘과 안디옥, 갈라디아, 고린도, 에베소 그리고 로마교회가 그랬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대해 전하라는 위대한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유대 교회를 주장하는 무리들은 바울을 배교자 취급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세상 사이를 구별하는 벽을 세워 두셨는데, 그것을 허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바울이 조직한 모든 교회를 방문하면서 분파를 만들고 있었다. 결과는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입장을 들고 그들은 바울에 대한 거짓 정보를 퍼뜨리면서, 그의 단점을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바울은 이 열정적이고 사악한 반대자들의 뒤를 따라서 그 교회들을 방문했다. 그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과 심지어 그의 사업을 경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의식법에 대한 이런 불일치와 그리스도의 교훈을 가르치는 다른 일꾼들 사이에 장단점이 바울의 사업에 적지 않은 고민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냐"(고전 1:10~13).

 

그는 또한 그들 가운데서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아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오"(고전 3:1~3). 또한 그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을 영적 생활에 경험이 많고 경건의 신비를 아는 사람들에 대한 것처럼 가르치지 못했다. 그들은 세속적 지식에 아무리 현명하였을지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고린도의 회심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보를 가르치는 것이 바울의 사업이었다. 바울 은 씨를 심어야 했고, 다른 사람은 그것에 물을 주어야 했다.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감당할 수 있을 적절한 때에 영적 빛과 진리를 전해야 했다. 바울이 그들에게 왔을 때 그들은 구원도 도에 대해 아무런 경험적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진리를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가르쳐야 했다. 그들의 육적인 마음이 하나님의 신성한 계시를 분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거룩한 능력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낯선 사람들이었다. 바울은 그들의 마음에 임하는 능력의 역사에 대해서 무식한 자를 가르치듯 그들에게 말했다. 그들의 마음이 육적인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이 구원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분별할 수 있다. 사도는 그의 청중들 가운데 인간의 이론을 믿고 교만한 신자들과 성경에 계시된 영적이며, 불멸하는 생명의 실체와는 모순되는 이론을 맹목적으로 자연의 책에서 발견하려고 모색하는 자들, 거짓 신학의 제도를 해설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비평주의 자들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해석을 논박하려고 할 것이며, 회의론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조롱하고 조소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그가 가르치기를 원하는 위대한 진리를 매우 주의 깊이 소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된 기독교는 발전적인 종교다. 빛과 축복을 언제나 주기 때문에 일단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더 많은 빛과 축복이 임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진 비추는 힘이나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 자체만으로도 육적인 마음을 영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바울은 방탕한 자들을 직접 책망하거나 그들의 죄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흉악했는지를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사업은 매우 지혜로운 교사처럼 그들 앞에 생애의 참 목적을 제시했으며, 저희가 받아들인다면 세속과 죄에서 그들을 마음에 감명을 주려고 노력했다. 하늘의 사물에 대한 지식이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영적 감각도 거기에 발을 맞추어야 한다. 그럴 때 마음은 그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배우며, 받아들이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고귀한 보석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얻어야 할 실제적인 경건과 성화를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암흑을 꿰뚫어 그들의 부도덕한 행습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불쾌한 것인지 깨닫게 되기를 갈망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르친 그의 교훈의 요지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이었다. 그는 그들의 가장 진지한 연구와 최고의 기쁨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놀라운 구원의 진리라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려고 했다.


철학자가 구원의 빛을 외면하는 것은 그가 자랑하는 학설을 부끄럽게 하기 때문이며, 세속적인 사람이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것은 그를 세속적 우상들에게서 분리시켜 그가 원하지도 않는 거룩한 생활로 끌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게 되거나, 신앙의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게 되기 전에 그리스도의 품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구속받은 자들의 과학과 노래가 될 학문의 연구는 이 세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십자가의 빛을 통해서만 인간 영혼의 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순화시키는 감화는 인간의 타고난 성질을 변화시킨다. 육체에 속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늘을 갈망하지 않을 것인데 그들이 타고난 성화되지 못한 마음은 순결하고 거룩한 곳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비록 그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마음에 맞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타락한 인간이 하늘에 들어가 순결하고 거룩한 천사들과 교제하기에 적합하게 되기 전에 타고난 마음을 지배하는 성벽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정복되어야 한다. 인간이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소생할 때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며, 그의 이해력은 성화된다. 그는 다함이 없는 기쁨과 지식의 샘에서 마실 것이며, 생명의 빛이신 분이 항상 그와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빛이 그의 길을 비출 것이다. 바울은 자신과 그의 동역자들이 진리를 가르치도록 하나님의 임명을 받은 자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무도 동일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들은 똑같이 하나님을 의지해서 사업을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고린도 형제들에 마음에 감명시키려고 노력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 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 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4~7). 하나님의 종이라는 깨달음은 목사들에게 영감을 주어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활력과 근면함을 줄 것이며, 오직 한마음으로 그의 주인의 영광만을 바라보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신들 각자에게 각각 할 일을 주셨다. 재능은 각각 다르나 모든 일꾼은 성령의 성화되게 하시는 감화를 받아 조화를 이루어 화합되어야 한다. 그들은 단지 거룩한 은혜와 능력의 도구들일 뿐이다. 바울은 말한다."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이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8~9).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죄인들을 그곳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에 가까이 나아가야만 한다. 그의 사업은 반드시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어야 하며,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일을 신중하게 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룩한 진리를 훼손하며 구원하는 능력을 방해하게 된다. 교회 안에서 어떤 마음에 드는 목사에게 매우 강한 애착심을 나타내서 다른 교사의 수고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오직 그들에게서만 이익을 보려는 것보다 더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성화시키지 못하게 하는 증거는 없다.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도움을 주시돼 언제나 그들이 선택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되는 것을 주시는데, 이는 사람들이 근시안적이어서 무엇이 그들에게 가장 유익한지를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목사가 그리스도교의 요구대로 교회를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자격을 모두 소유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각각 다른 이들에게는 없는 어떤 자질들을 가진 다른 목사들을 종종 그들에게 보내신다. 교회는 이런 그리스도의 종들을 주님을 영접하듯이 감사한 마음으로 영접해야 한다. 교회는 각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을 통하여 가능한 한 모든 유익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이 전해주는 진리들을 겸손에서 우러나는 온유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감사하되 어떠한 목사도 우상화되어서는 안 된다. 사도 시대에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릇된 길을 따라 그분의 사신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을 거절하기도 했다. 그들은 인간 교사를 따르지 않고 복음의 목사들의 도움 없이, 직접 그리스도에게서 배웠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독자적인 정신을 가지고 교회의 음성에 복종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만이 자기들의 지도자라고 주장하면서 그를 베드로와 비교하여 베드로에게 불쾌감을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볼로가 바울보다 연설에 있어서나, 웅변 능력에 있어서 훨씬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베드로가 그들의 지도자인데, 이는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그가 그분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때에 바울은 신자들을 박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분파주의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재난이 된다. 바울과 아볼로는 완전히 일치했다.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에 일어난 분쟁 때문에 실망하고 슬퍼했으며 자신에게 나타낸 편애를 이용하지도, 격려하지도 않고 급히 싸움 마당에서 떠났다. 후에 바울이 아볼로에게 고린도를 다시 방문하도록 간청했을 때 아볼로는 거절했으며, 그 교회가 보다 나은 영적 상태에 도달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기까지도 그곳에서 다시 일하지 않았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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