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리/바울의 생애

바울의 생애 // 26. 로마에 체류함

동심초(남양주) 2022. 4. 9. 05:17

 26. 로마에 체류함 

          제주도에서 

 

 

 로마에 체류함 

로마법에 의하면 그를 고소한 사람들이 직접 출석해서 그에 대한 고소 내용을 설명하기까지는 공판이 열릴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은 아직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로마에 오지 않았고, 또한 그들이 그 먼 여행을 출발했는지 조차 로마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공판은 무기한으로 연기될 입장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법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고발자가 자기의 고소를 연기하려고 해서, 고소당한 사람이 오랫동안 감옥에 있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혹은 세력 있는 사람이 변덕을 부려서 재판이 연기되는 경우도 있었다. 부패한 재판관이 죄수를 구류한 채 몇 년을 보내기도 했는데, 바로 벨릭스가 바울에게 한 것처럼 대중의 편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든지 혹은 뇌물을 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랬다. 재판관은 상부의 명령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으면서도, 이런 식으로 어느 정도 상부에 제재(制裁)를 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황제에 대해서는 이런 제재를 가할 수가 없었다. 그의 권위는 사실상 무제한적이어서 그는 자주 법의 집행을 지연시키거나 이를 방해하기 위해 변덕을 부리거나 악을 행사하거나 게으름을 피우곤 하였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바울에 대한 고소를 제기하는 데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계책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번에도 또다시 패배하는 수치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 루시아, 벨릭스,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까지 모두 그의 무죄를 선언했었다. 그의 원수들은 황제의 마음을 사서,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 여지가 있을 때에만 성공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계획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시간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지체하는 것은 그들의 뜻에 맞는 일이었다. 이렇게 지체하는 일이 하나님의 섭리로 복음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바울은 아무런 활동도 못하도록 제재를 받지 않았다.


바울은 그를 책임진 사람들의 호의로 넓은 집에 거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친구들을 만나고, 또한 날마다 진리를 들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할 수 있었다. 이렇게 2년 동안 바울은 그의 사업을 계속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행 28:31) 쳤다. 또한 그의 노력은 단지 복음을 설교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여전히 그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을 위협하는 위험들이 깊이 깨달은 사도는 그의 개인적 교훈을 담아 편지를 보내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었다. 그는 또한 공식적인 대표자들을 보내서 그가 세운 교회들과 아직 방문하지 못한 지역들에서 일하도록 했다. 이 사자(使者)들은 충성스러운 봉사로 그를 도왔다.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교회들에 관한 상태와 위험에 대한 보고를 받고 지속적으로 감독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표면상으로는 활동적인 사업에서 차단된 것처럼 보였으나, 바울은 이전 차럼 교회들 사이를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었던 때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더욱 지속적인 감화를 끼쳤다. 주님의 죄수로서 그는 믿음의 형제들의 애정을 더욱 굳게 붙잡을 수 있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속박되어 있으면서 기록한 그의 말은 그가 직접 그들과 함께 있었을 때보다 그들에게 더욱 주의와 경의를 끼쳤다. 그들을 처음에 사랑하는 스승이 죄수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슬픔으로 가득했었다. 그리고 바울이 그들을 떠나기까지 신자들은 그가 그들을 위해진 짐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들은 지혜와 재치와 불굴의 정력이 사도보다 못하다고 하여 책임과 짐을 지는 일에 크게 핑계를 댔으나 이제 그들은 무경험 상태에서 그들이 피했던 교훈을 배우게 되었으며, 바울이 친히 베푼 봉사를 귀하게 여기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의 경고와 권면과 교훈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감금당해 있는 바울의 용기와 신앙에 대하여 알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의 사업에 있어서 더욱 큰 성실과 열심을 나타낼 수 있는 자극을 받았다. 바울을 도와준 사람들 중에는 그의 이전 동지들과 동역자들이 많이 있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에서와 가이사랴에서 투옥된 2년 동안과 로마로 가는 위험한 항해에까지 그와 동반했던 "사랑받은 의원 누가"가 여전히 그와 함께 있었다. 디모데도 역시 그를 위로하기 위하여 수종을 들었다. 두기고는 그의 편지 배달부였는데, 그들이 함께 방문했던 여러 교회에 그의 기별을 전했다. 데마와 마가도 역시 그와 함께 있었다. 마가는 한때 그와 동반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바울에게 거절당했는데, 이유는 그의 도움이 한참 필요할 때 그가 사도를 떠나 집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바울과 동행하면서 그의 생애가 끊임없이 고생과 걱정, 자기부정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쉬운 길을 가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이것이 사도로 하여금 그를 신뢰할 수 없다는 하게 했고, 그런 결정이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유쾌하지 못한 불화의 원인이 되었다. 마가는 모든 사람이 배워야 할 교훈, 즉 하나님의 요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싸움에는 무장 해제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크신 모본 되신 분에 대한 더욱 가깝고도 완전한 견해를 갖게 되었고, 그의 손에서 잃어버리고 멸망해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하신 고난의 흔적을 보게 되었다. 마가는 자원하여 주님의 열성과 자기부정의 모본을 따랐고, 영혼을 주님과 하늘의 축복으로 인도하게 되었다. 이제 죄수 바울의 운명에 동참하면서 마가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무한한 이익이며, 그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신 영혼을 잃는 것은 영원한 손실이라는 것을 이전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마가는 이제 사도의 현명하고 사랑하는 조력자로서 끝까지 충성을 다했다. 데마는 사도의 충성스러운 조력자였다. 그러나 이때로부터 몇 년 후 디모데에게 보내는 같은 편지에서 마가의 충실에 대해 언급하면서 바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딤후 4:10)렸다. 세속적 이익을 얻기 위해 데마는 높고도 고상한 모든 생각을 팔아 버렸다. 그 교환은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지혜롭지 못했는가! 세상의 부나 명예만을 가진 데마는 진실로 가난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랑스럽게도 많은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고통을 당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상속자요 당신의 아들과 유업을 함께 누릴 이로 간주되어 하늘에서 영원한 부를 얻을 것이다. 그들이 비록 땅에서는 머리 둘 곳이 없을지라도, 그들이 사랑한 구주께서 그들을 위해서 맨션을 준비하실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들의 교만과 무지 때문에 낮은 것이 강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우리가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발 앞에서 자기부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천국으로 옮겨가지 못할 만큼 뿌리 깊이 박힌 세속적인 희망을 탐 내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신앙을 공언하는 형제들 가운데서 안일을 사랑하고 세속적 이익을 갈망하는 시험을 참아 내는 일에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경험을 지금도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들이 함께 나누고 있다. 이 시대에도 중대한 진리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도덕적 책임감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길에 놓인 의무가 당황스럽게 보이고 골칫거리처럼 보일 때 그들은 힘이 적게 드는 길, 손해를 적게 받는 길, 위험 부담이 적은 길을 선택한다.


그들은 이기적 마음으로 책임감을 회피하며 신실한 사역자들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자신들을 하나님으로 분리시키며 이로 인해 그들이 받을 수 있었던 상을 박탈당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심을 갖고 열심히 공평하게 일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동역자로 삼아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자신의 피를 대가로 제공하셨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주기로 약속하셨다. 그분은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이 지불하신 값어치와 제공된 무한한 보상에 어느 정도 상응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신다. 로마에서 바울의 수고로 온 오네시모가 있었다. 그는 골로새 교인으로 빌레몬이라는 그리스도인에게 속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것을 훔쳐 가지고 로마로 왔다. 방탕하고 줏대 없는 이 이방 노예가 복음의 진리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전에 에베소에서 바울을 보고 그의 말을 들었는데, 지금 하나님의 섭리로 로마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바울은 친절한 마음으로 이 불쌍한 도망자의 빈곤과 고통을 덜어 주려고 했고, 그의 어두워진 마음에 진리의 빛을 비추려고 노력했다. 오네시모는 한때 경멸했던 생명의 말씀을 전심으로 듣고 그리스도의 신앙에 귀의했다. 그는 이제 그의 주인에게 저지른 죄를 고백하고 기쁜 마음으로 사도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오네시모는 그의 경건과 겸손, 성실 그리고 사도를 위로하기 위한 그의 적지 않은 친절과 염려, 복음 사업을 추진하려는 그의 열심 때문에 바울의 총애를 받았다. 바울은 그에게서 선교 사업에 유용한 조력자가 될 특성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를 로마에 있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빌레몬의 전적인 동의 없이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체 없이 그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고, 그가 훔친 돈을 바울 자신이 책임지기로 약속했다. 소아시아에 있는 여러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을 보내기 위해 두기고를 파송하려 했을 때 바울은 오네시모를 두기고와 함께 보내면서 그를 보호하도록 했다. 이처럼 잘못을 범한 주인에게 다시 돌아가는 일은 이 종에게는 가혹한 일이었으나, 그는 진실로 회개했기 때문에 마땅히 가야 할 길이라 여기고 위축되지 않았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삼았고, 이 편지 가운데 바울은 그의 평소의 재치와 친절을 가지고 회개한 종의 문제를 호소했고, 그에 관한 소원을 간절히 표했다. 이 편지는 친구요 동역자인 빌레몬에 대한 다음과 같은 사랑이 넘치는 인사로 시작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주 예수 외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몬 1:3~6). 사도는 그가 소유한 모든 선한 목적과 품성의 특성은 그리스도의 은혜에 힘입은 것이며, 이것만이 그를 사악한 자들과 죄 많은 자들에게서 구별하게 했다는 사실을 빌레몬에게 상기시켰다. 동일한 은혜는 저열한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와 복음 사업의 유용한 사역자로 만들 수 있었다. 비록 바울은 권위를 가지고 빌레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의무를 수행하라고 강요할 수도 있었으나 그를 향한 사랑 때문에 명령하지 않고 간구하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니라"(몬 1:9~11). 그는 오네시모를 자기의 친자식처럼 받아들여 달라고 간청했다. 오네시모를 그가 갇혀 있는 동안 자기 곁에 두고 빌레몬이 했을 일을 그가 맡아서 하도록 그를 곁에 두고 싶다고 소원을 말했다.


그러나 빌레몬이 그를 자발적으로 석방해 주지 않는 한, 그의 수종을 받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네시모가 비록 부적당한 방법으로 일시 그의 주인을 떠났으나 그로 인해 회개하고, 이제 다시 돌아가 용서를 받고 이런 사랑을 받아 이제 후로 항상 사도 곁에서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몬 1:16)로 있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범죄가가 형벌의 수치를 면하고, 그가 상실했던 특권을 다시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네시모의 빚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자원하여 제의했다. 사도는 당시의 주인들이 노예들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대하는지를 알았고, 또한 빌레몬이 그의 종의 행위에 대해 대단히 격앙되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처럼 가장 깊고 가장 부드러운 감정이 일어나도록 접근했다. 오네시모의 회심으로 그를 믿음의 형제가 되게 했다. 따라서 그에게 어떤 벌을 가한다면, 바울은 그것을 마치 자신에게 벌을 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여기겠다는 것이다. 회개한 죄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얼마나 적절한 예증인가! 그의 주인의 소유를 횡령한 종은 손해를 배상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여러 해 동안의 봉사를 도둑질한 죄인은 그 빚을 청산할 방법이 없다. 예수께서 죄인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셔서 내가 그 빚을 갚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죄인을 살려 주소서. 제가 그를 대신하여 고통을 당하리이다. "오네시모의 빚을 책임질 것을 제안한 후 바울은 부드럽게 빌레몬에게 그 자신이 사도에게 얼마나 큰 빚을 졌는지를 상기시켰기 때문에, 빌레몬 자신도 사도에게 빚을 졌다. 그다음에 바울은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열렬한 호소로써 마치 그가 그의 아량으로 성도들을 유쾌하게 한 것처럼 사도에게도 이 기쁨의 이유를 이루어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열렬한 호소로써 마치 그가 그의 아량을 성도들을 유쾌하게 한 것처럼 사도에게도 이 기쁨을 이유를 이루어 주어서 사도의 마음을 기쁘게 해 달라고 빌레몬에게 간청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몬 1:21). 빌레몬에게 보낸 바울의 이 편지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해 복음의 영향을 설명하는 실례로서 높은 가치가 있다. 노예 소유는 온 로마 제국 안에서 성행하던 제도였고, 바울이 수고하던 교회들의 대부분에서도 주인들과 노예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노예들이 때로 자유민보다 그 수효가 크게 만은 도시들에서는 그들을 복종시키는 데 두려울 만큼 가혹한 법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부요한 로마인은 여러 계층, 여러 민족의 온갖 재주를 가진 노예들을 수백 명씩 소유하고 있었다. 이 불쌍한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어떤 형벌이라고 그들에게 가할 수 있었으며, 만일 노예들 중 한 사람이 보복이나 자기 방어로 감히 그의 소유주를 대적하여 손을 든다면, 그의 전 가족은 무참하게 몰살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사소한 과오나 사고, 부주의도 흔히 무자비한 벌을 받았다. 좀 더 인간적인 주인들도 있었으나, 색욕과 정욕과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방종에 빠진 부자와 귀족들의 대다수는 노예들을 멋대로 학대하며 참혹한 희생자로 삼았다. 모든 제도는 극단적으로 비열한 경향을 띠고 있었다. 사회의 기성 질서를 독단적으로, 또는 갑자기 되짚어 엎는 것은 사도의 사업이 아니었다. 그가 만일 그런 시도를 했더라면, 그것은 복음의 성공을 방해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는 바오 노예 제도의 기초를 공격하는 원칙들, 만일 시행된다면 제도 전체를 분명히 무너뜨릴 원칙들을 가르쳤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고후 3:17)고 사도는 선언했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한다. 회개한 노예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되었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과 복음의 특권에 있어서 그의 주인과 형제로서 유업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 사랑과 대접을 받아 마땅했다. 반면에 종들은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되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엡 6:6)여야 했다. 그리스도교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 왕과 백성의 관계, 복음 전도자와 죄의 부담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위안을 찾은 가장 타락한 죄인과의 관계를 강하게 하나로 결속시킨다. 그들은 모두 동일한 피로 씻겨, 동일한 성령의 깨우치심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다.


저   자 : 엘렌G. 화잇

출   판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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