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생애 // 31. 바울의 마지막 편지
31. 바울의 마지막 편지
삼천포에서
바울의 마지막 편지
가이사의 재판정에서 그의 감방으로 돌아온 바울은 매우 짧은 집행 유예 기간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울은 그의 원수들이 자기 목숨을 끝장내기까지는 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한동안 진리가 승리하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에게 귀를 기울인 군중들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주를 선포한 것을 그 자체가 승리였다. 바로 그날, 자라나고 강하여질 사업, 네로와 다른 모든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방해하거나 멸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사도의 연설은 많은 친구를 얻는 계기가 되었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그를 찾아와서 그의 축복을 받는 것을 세계의 황제로부터 호의를 받는 것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그때 마지막 시련의 시간을 보냐면서 그의 동정과 우애를 간절히 기다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디모데였고, 그에게 에베소 교회를 돌보도록 팩임을 맡겼었다. 사도가 마지막으로 로마를 방문하기 위해서 떠날 때 그를 그곳에 남겨 두었다. 바울과 디모데는 매우 깊고도 강한 애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젊은 일꾼과 사도의 사랑의 관계는 바울이 수고한 결과로 디모데가 회심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끈끈한 관계는 그들이 함께 선교사 생활을 하면서 나눈 희망과 고난을 통해 더욱 강화되어 결국은 마치 한 사람처럼 되었다. 두 사람의 연령차와 성격의 차이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오히려 더욱 열렬하고 거룩하게 했다. 열성적이고 열렬하며 불굴의 정신을 가진 바울은 온화하고 유연하며 좀 수줍어하는 디모데의 성격에서 휴식과 위로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시련을 거친 동료의 충실한 뒷바라지와 부드러운 사랑은 사도의 생애에서 여러 번 어두운 시간들을 밝게 비춰 주었다.
마치 루터와 멜란히톤처럼, 아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에게 하듯, 그것이 바로 젊은 디모데가 시련을 당하고 있는 외로운 바울에게 한 모든 것이었다. 날마다 어두운 감방에 앉아서 폭군 네로의 말 한마디나 고개 한번 끄떡이는 것에 따라서 그의 생명이 희생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를 생각하고 그를 부르러 보냈다. 디모데사 소아시아에서 로마에 도착하기까지는 매우 순조로운 환경 아래서도 여러 달이 걸릴 참이었다. 바울은 자기의 생명이 하루하루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디모데가 너무 늦게 도착하거나 또는 그가 당하게 될 위험이 두려워 망설이는 탓에 그를 볼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바울은 매우 큰 책임이 위임된 이 청년을 위해 꼭 전해 주어야 할 중요한 권고와 교훈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지체 없이 오라고 호소하는 한편, 그때까지 목숨이 부지되지 않을지 몰라 다른 사람에게 그의 유언을 받아쓰도록 했다. 마음에 그의 복음의 아들과 그가 돌보는 교회에 대한 사랑의 염려로 충만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거룩한 임무를 성실히 행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노력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말씀은 이 세상 끝 날까지 모든 목사에게 같은 능력으로 적용되는 사항이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러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 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1~2). 디모데와 같이 매우 열렬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주어진 이 엄숙한 명령은 복음을 저하는 목사의 사업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능력이 넘치는 증언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소환하고, 그에게 사람의 말이나 관습이 아닌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한다. 바울은 그에게 무리들 앞에서나, 사담(私談)하는 자리에서나, 길가에서나, 화롯가에서나, 친구들에게나, 원수들에게나, 안전할 때나, 고난과 위험, 비난과 손실을 당할 때를 막론하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하나님을 증거 할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고 명령했다. 디모데는 육체적으로 허약한 것 때문에 고통을 받아 왔는데 부드럽고 동정적인 사도로서 이 문제 때문에 결코 업무를 등한히 하지 않도록 할 필요를 느꼈다. 디모데의 온순하고 양보하기 쉬운 기질 때문에 그의 사업에 있어서 매우 긴요한 부분을 피하려고 하지나 않을까 염려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죄악을 책망하는 일에 충실하고, 악을 범한 사람들을 날카롭게 책망하라고 권고하였다. 오직 디모데는 이 일을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해야 했다. 말씀의 진리로 그의 책망을 설명해 주면서도, 그리스도의 인재와 사랑을 보여 주어야 했다. 죄를 미워하고 책망하면서 동시에 죄인에 대한 동정과 친절을 절을 나타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음과 생애를 거룩하게 하려는 우리 자신들의 노력이 열렬하면 할수록 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더욱 예민해질 것이며, 정도로부터 어떤 이탈에 대해서도 더욱더 단호한 반대 입장을 지닐 것이다. 우리는 악을 행하는 사람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잘못을 고치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해 그를 격려해야 하지만 죄가 지극히 사악하다는 것도 잊지 않도록 주지시켜야 한다. 과오를 범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인내와 사랑을 나타낼 필요가 있지만, 또한 그의 과오에 대하여 지나친 관용을 보이게 되면 그가 책망받을 행위를 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책망을 쓸데없고 부당한 것으로 거절하게 될 위험이 있다.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이 때때로 잘못한 사람들에 대해 너무 너그럽게 해서 그들의 죄악을 묵인하거나, 심지어 그런 죄악에 참여 하도록 방임하기까지 하여 큰 해를 입히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죄하신 것을 간과하고 가볍게 보게 된다. 그런 일이 생기게 되면 이제는 그들의 눈이 멀게 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책망하라고 하신 것을 오히려 칭찬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런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길은 경건에 인내를 더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그의 품성과 율법을 높이고, 언제나 마음 가운데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 하는 것만이 그분이 죄를 대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그의 품성의 거룩함에 대한 감각을 계발하는 것이다. 경건은 형제 우애로 인도하지만, 한 가지가 부족하게 되면 다른 것도 부족하게 된다.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사람들에게 보인 죄악적인 관용으로 영적 지각이 무디어진 사람이 머지않아 이제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들을 거칠고 가혹하게 대해서 더 큰 죄를 범할 것이다. 인간적 지혜를 뽐내며 성령의 감화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혐오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칠 능력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요구에 등을 돌리는 일이 자주 있게 될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사도가 여기서 언급하는 사람들은 공공연한 불신자들이 아니라, 기호를 그들의 안내자로 삼는 자들, 그렇게 해서 자아의 노예가 되고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딤전 6:9) 졌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거나 그들의 열락(悅樂)을 사랑하는 행위를 정죄하지 않는 그런 설교만 듣고 싶어 한다.
그들은 충실한 그리스도의 종들의 기탄없는 말에 성을 내고, 그들을 칭찬하고 아첨하는 교사들을 선택한다. 이런 교사들은 자신을 위해서 인기를 쌓아 가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목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사람들의 견해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진리로부터 그들의 귀를 돌린다. 주께서 말씀 가운데 그들에게 말씀하셨지만, 그 목소리에 구리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유는 그들의 행위를 책망하시기 때문이다. 당신의 거룩한 열 가지 개념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한 율법을 주셨는데, 그리스도께서 이 율법이 세상 끝 날까지 일점 일획이라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이 율법은 지금도 여전히 신자들에게 생명의 법칙이며, 죄인들에게는 정죄의 율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율법을 크게 하시고 존귀케 하려고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율법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넓은 토대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에 대한 순종을 인간의 모든 의무를 다 포함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애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모본을 보이셨다. 산상 수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율법의 요구가 어떻게 외적인 행위를 넘어 마음이 생각과 의도까지를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셨다. 우리가 순종하면 율법은 사람들에게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부정하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딛 2:12) 게 한다. 그러나 모든 의의 원수는 세상을 사로잡고 남녀들을 율법에 불순종하게 했다. 바울이 예견한 바와 같이 많은 사람이 마음을 살피는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한 진리에 등을 돌리고, 그들이 원하는 허탄한 이야기를 제시하는 교사들을 택했다.
이런 교사들은 하나님의 넷째 계명을 그들의 발아래 짓밟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날 대신 하나님께서 쉬시지도 않았고 쉬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날을 존귀하게 여긴다. 주일 중 첫째 날은 전적으로 "죄악의 사람"인 교황에 의해 구별된 날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구별하셨고 그 가운데 그의 축복을 두신 날 대신에 가톨릭과 개신교에 의해 함께 준수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세계의 창조주는 모욕을 당하시고, 사탄은 그의 계교의 성공을 보고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멸시가 증가되는 것과 더불어 신앙에 대한 혐오가 증가하고, 교만과 쾌락에 대한 사랑과 부모에 대한 불순종과 자아 방종에 증가된다. 그렇게 해서 시정할 수 있을까 근심스럽게 묻고 있다. 그 해답은 "말씀을 전하라"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바울의 권고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에서만 유일하게 안전한 행동 원칙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의 사본이요, 하나님의 지혜의 표현이다. 성경은 사람에게 인생의 큰 문제들을 깨우쳐 주고, 그 교훈에 유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결코 오류가 없는 안내자가 되어 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노력을 쏟아 생애를 허송하지 않도록 지켜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알리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변개하려 하거나 그의 입술에서 나온 말씀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짓이다.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분이 말씀하셨다면, 그 말씀을 사람이 의심하거나 이렇게 나 저렇게 조정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하심 말씀에 솔직하고 진지하며 일치되게 행동하는 것뿐이다. 순종은 양심뿐만 아니라 이성의 최고의 명령이다. 다른 목소리를 듣고 다른 안내를 따라가고 선택한 사람은 꾸며낸 이야기를 따라가고, 이런 것들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날에 영원한 손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당부를 계속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5). 바울은 그의 인생의 길을 거의 마쳐 가고 있었다. 사탄과 그의 대리자들이 여러 방법으로 그들을 명백한 복음에서 떠나게 하려고 사용하는 허탄한 이야기들과 이단으로부터 디모데에게 하나님을 위한 사업에 전적으로 헌신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세속적 추구와 그런 것에 연루되는 일을 피하고, 그가 충성스럽기 때문에 그에게 닥쳐올 반대와 비난과 박해를 즐거운 마음으로 견디고, 그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모든 방법을 다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여 "직무를 다해" 완전한 증거를 보이라고 권고했다. 바울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을 한 번도 부끄러워한 적이 없었다. 그는 의심스러운 자리에 서 본 적이 없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정의와 의의 편에 섰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그가 가르친 진리를 실천했으며, 사람들에 대한 그의 능력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적이 바라보는 가운데서도 그 진리를 보존하는 일에 주눅 들지 않았다. 그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 그의 책임에 대한 깊고도 지속적인 인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공의와 자비와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는 가운데 활동했다. 그는 성공의 유일한 보증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만 매달렸다. 구주에 대한 사랑은 자아와의 투쟁에서 그리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악과의 투쟁에서, 그의 평생의 사업에서 나타났다. 세상의 냉랭함과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신 그분의 명령만이 그를 붙들어 준 전능하고도 결코 꺼지지 않는 동기였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울처럼 자신을 유용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그분을 위한 봉사에 있어서 열심과 정열로 감동된 사람들이다.
계발되고, 순화되고, 성화되고, 자아를 희생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곧 시련과 책임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어디서나 할 일을 만나면 짐을 높이 지고 갈 사람이어야 하고, 용감한 사람, 진실한 사람,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자리 잡은 사람,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자리 잡은 사람, 그들의 입술에 거룩한 숯불이 닿아서 지어낸 이야기를 전하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말씀을 전파할" 사람이다. 이런 교역자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업이 쇠약해지고 치명적인 오류들이 치명적인 독약처럼 인류의 도덕을 타락시키고 희망을 시들게 한다. 충성스럽고 수고에 지친 기수들이 진리를 위해 그들의 생명을 바쳐 죽어 가고 있는 이때, 누가 나와서 그들을 대신할 것인가? 우리 청년들은 그들의 조상들의 손에서 거룩한 임무를 받아들일 것인가? 그들은 충성스러운 이들의 죽음으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가? 청년들을 노리고 있는 이기심과 야망의 자극 속에서도 사도의 명령을 받아들이고 의무의 부르심에 응답할 것인가? 바울은 여러 사람에게 보내는 개인적 기별들로 그의 편지를 끝맺고 다시 반복하여 디모데가 모든 방법을 다해 서둘러 올 것과 가능하면 겨울 이전에 그에게 빨리 올 것을 간절히 요청했다. 바울은 그의 친구들 중 어떤 이들의 배반과 필요에 따라 다른 이들이 곁에 없어서 일어난 그의 외로움에 대하여 말하고, 에베소 교회가 그의 수고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디모데가 선뜻 떠나오지 못할까 해서 그가 이미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두기고를 에베소 에 파견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리고 감동적인 요청을 덧붙인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 4:13). 그가 두 번째 체포당했을 때, 너무 급하게 붙잡혀 끌려가느라고 서두르는 바람에 그의 "몇 권의 책과 가죽 종이에 쓴 것" 그리고 심지어 겉옷마저도 가져올 수 없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에 습기 찬 감방에서 추위에 떨어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다른 옷을 살 돈이 없었고, 그의 마지막이 예상치 못한 때 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교화에 부담 주는 것이 두려워 자기 때문에 어떤 지출이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미 지나간 시련이 광경과 그의 형제들의 배반 그리고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혜에 대하여 말하고, 충성스러운 동역자들에 대해 안부를 전하고,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디모데를 비록 목자들이 죽을지라도 여전히 당신의 양 떼를 돌보실 목자장의 보호를 의탁하면서 그의 편지를 끝마쳤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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