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날의 진실 // 4. 그러면 일요일 예배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일곱째날의 진실
4. 그러면 일요일 예배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주일 예배의 근거는 성경에 없음 -
주일 예배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는 많은 시도가 있었고, 또 성경절들을 주일 예배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모두 성경의 원 뜻을 벗어난 것들이며 사실상 일요일 예배에 대한 성서적 근거는 없으므로, 그 기원은 역사에서 찾을 수 없다.
(1) 일요일 예배를 시작하는 일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로마의 하드이아누스 황제의 정책
속국들과의 화친 정책-
2세기 초엽에 로마에는 하드리아누스라는 황제가 있었다. 유능한 정치가였고 로마의 많은 속국들과 화친 정책을 펴서 매우 안정된 정치를 하였다. 그 당시 반란이 심하던 유대인들과 회친 조약을 맺고 유대인들의 소원을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 재건 허가를 해 주었다(서기 130년경).
유대인들의 성전 건축 자금 모음 -
유대인들은 성전 재건을 위하여 막대한 자금을거두었다. 얼마 후, 황제는 모든 속국들에게 자신을 신의 아들로 부르도록 하는 황제 숭배를 강요하였고 유대인들은 몹시 반발하였다. 하드리아누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유대인들이 시행하던 할례 의식을 금지시켰다. 전국 유대 랍비들의 격렬한 항의가 있었고 하드리아누스는 분노하여 예루살렘 성전 재건령을 취소하였다.
(2) 로마에 대한 유대반란[주후 132~135년경]
2차 유대 반란의 발단 -
유대인의 할례의식이 금지되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령이 취소되자 서기 132년부터 135년 사이 발코체바를 주동으로 하는 유대인들의 대규모 반란이 있었다. 이미 거두어진 성전 건축 자금이 반란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황제는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당시 로마의 명장 세베리우스와 정예부대 22군단을 파견 하였다. 전쟁과 반란에 능한 유대인들은 로마의 군대를 '엥케리' 라고 하는 험한 골짜기로 유인한 후, 미리 매복해 있던 발란군들이 뛰어나와 로마의 정예 부대를 참패시켰다. 세베리우스 장군은 몹시 존심 상하여 군대를 재정비한 후, 유대인 마을들을 포위하여 초토화시키는 작전으로 유대인의 마을 985개를 전멸시켰으며 약 80만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유대인에 대한 세 가지 금지령 -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다시 세 가지 금지령을 내렸다.
① 토라(모세오경) 사용 금지
② 할례 금지
③ 안식일 에배 금지
그리고 그 세가지 금지령을 어기면 사형으로 다스렸다 이 금지령 때문에 교회 안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 제국 내에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공존하고 있었고, 모두가 다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 반란으로 인한 금지령 속에 포함된 안식일 준수 문제는 기독교인들에게까지 해당되는 칙령이었다.
(3) 기독교인의 문제
기독교인이 유대인 취급을 받았던 이유 -
유대인이 아닌 기독교인들도 안식일 을 지키면 유대인으로 간주하여 박해를 받게 되었는데, 당시 로마 제국의 위정자들은 그리스도교를 순히 유대교의 또 다른 한 분파로만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간주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유대인들이 신봉하는 같은 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점,
둘째, 두 부류가 모두 구약 성경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셋째, 모두가 안식일을 지키고 있다는 점,
교부들의 변증서 -
그래서 당시 교부들은 황제에게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다르게 취급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황제는 이를 거절하였다. 당시 교회를 대표하는 변증 교부들이 황제에게 보내는 서한들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과 다르니 다르게 취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다음은 그러한 변증서의 한 부분이다.
"디오그네투스 폐하께! 페하께서 그리스도인의 종교에 관하여 알아보시기를 원하시며, 또 이 문제에 관하여 정확하고 주의 깊은 조사를 하여 보기를 원하시는 줄 아나이다. 예컨대…그리스도인들은 어찌하여…유대인들의 미신을 따르지 않는지에 대하여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유대인이 경배하는 듯한 그같은 형식으로 섬기지를 않습니다" <윤대화, 주일론, 84, 85>.
황제가 교부들의 변증을 무시함 -
그러나 황제는 이를 무시하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결국, 교부들은 유대인들과의 차별화와 로마의 이교도들과의 동질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유대인과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구약의 하나님 대신 신약의 하나님을 강조하고 이교도와의 동질화를 위해서는 안식일 대신 당시 태양신을 섬기는 이교도들의 예배일인 일요일 예배를 교회에 도입하게 된 것이다.
교회 내부에 분란이 일어남 -
이러한 사회적 배경 때문에 교회 내부에는 분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① 안식일을 계속 지키려는 무리들
②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려는 무리들
③ 두 날을 모두 지키는 무리들
(4) 일요일 예배의 법제화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 -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힘입어 로마의 큰스탄틴 황제는 마침내 321년 3월 7일에 일요일 공식적인 휴일로 선포하게 되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태양을 존경하는 날에 모든 관공리들과 각 도시의 주민과 제조 공장의 종업원들은 휴업하라. 그러나 농촌에서 경작을 종사하는 농민은 자유로이 노동할 수 있다. 이는 씨를 뿌리고 포도를 심는데 불리할까 염려됨이라" (Codex Justinanus, lib.3 tit.12. leg.3, in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an Church, Vol.3. NY:Scribner, 1902, 380).
일요일 휴업령과 결과 -
이 법령은 그리스도교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하는 기점이 되었따. 이 법령을 통해서 콘스탄틴 황제는 제국 내의 2대 종파, 즉 태양신 아폴로(Apollo)를 숭배하는 이교도들과 또 다른 태양이신 그리스도(Kristos)를 숭배하는 그리스도교도들을 일요일(dies solis)로 묶어서 단일 종교로 융합해 보려는 야심적인 종교 정책을 시도했던 것이다. 콘스탄틴은 이 정책의 성공을 위하여 자신이 기만하는 전략상의 개종이었다. 삼성출판사에서 발행한 「대세계의 역사」 3권 211쪽에는 콘스탄틴의 개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까지의 신(神)을 버리고 새로운 신에게 귀의했다는 뜻의 개종은 아니다. 그의 신은 그 전과 동일한 신이었다. 다만 그 전과 동일한 그 신이 그리스도교의 교회에서 예배되고 있는 신이라고 교정된 점만이 옛날과 달랐다. 따라서 콘스탄틴누스의 개종은 참다운 의미에서의 개종은 아니었던 것이다."
(5) 일요일 예배에 대한 교회의 공식 결의
이와 같은 일요일 예배는 비성서적인 배경을 가지고 매우 인위적이면서도 이교적인 방법으로 교회에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되었다.그리고 당시의 가톨릭화 되어가는 종교, 정치, 사회적인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면서 마참내 교회에서도 일요일 예배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몇 차례의 회의가 있었고, 성경의 권위가 아닌 교회의 총회를 통해서 결의를 하게 되었다.
부활정에 관한 결의 -
325년 니케아(Nicaea)에서 열린 종교회의에서 태양의 날 일요일로 부활절로 성수 하도록 결의하였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번 소집된 총회에서 지극히 성스러운 부활절 일자에 관한 문제가 토의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참석자 전원의 연합 일치된 판정으로 잘 해결되었다. 즉 이 부활절은 각처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한 날에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usedius, Vita Constan-tini. Lite of Constantine, bk.Ⅲ, chp. 17. in. Frank H. yost, p.49)
일요일을 성일로 정함 -
364년 라오디게아 총회(Laodicaea)에서 일요일을 거룩한 날로 성별하는 법규를 의결하였다.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준수하도록 결의한 것이며, 이 결의를 따라서 그 동안 드려지던 안식일 예배를 일요일로 대치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일요일 예배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은 성경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 라오디게아 총회에서 의결된 종규 제 29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화하거나 토용일(안식일)에 게을러서는 안 되고 이 날에 일을 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날 (일요일)을 특별히 존중히 여기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나 이 날에 일하지 말것이다. 만일 그들이 유댜인화(안식일 준수)한 사실이 판면되면 그리스도로부터 끊어 질 것이다." ("Charles Joseph Hefele, p. 316. in SDABC., vol. 1. p.784. cf. J. Hardouin A History of the Councils, vol.1, p.784. in Frank H. YOST, P.49)
가톨릭 교리서에서 확인됨 -
이상과 같은 사실은 1910년 1월 25일 교황 피우스 10세로부터 "사도적인 축복"(Apostolic Blessing)을 받은 [회심자를 위한 가톨릭 교리 문답서] 에서 다음과 같이 확인되고 있다.
문 :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 우리는 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 가톨릭 교회가 라오디아게아 종교회의에서 그 존엄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주일 예배의 유입 역사와 태양신
일요일 에배가 교회안에 유입된 역사를 보면 영지주의 신락자들의 작용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그들은, 그리스도교에서 신봉하는 예수는 "의의 태양" (Sol Jnvic ─ tus)이시므로 로마인들의 "불패의 태양" (Sol lnvictus)인 미트라와 동신이명(同神異名)임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리가 교회의 일요일 예배를 합리화 혹은 정당화한 것이다. 이들로부터 소위 일요일 신성론, 영혼불멸설 등이 발생되었고 나중에는 크리스마스 경축제와 마리아 숭배 등 교회로 도입된 것이다.
가장 유명한 교회 역사가 중의 하나인 유세비우스도 고대의 일요일 신성론 신학자들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 또는 "의의 태양" 에 관련시켜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태양의 날" 을 상징학적 의미로 해석하여 일요일 준수를 정당화했다. 그는 그의 저술 <시편 주해> (Commentaria in Psalmos, chap. 92)에서 "이 빛의 날, 곧 첫째 날이요 '참 빛의 날' 에 우리가 6일을 지낸 후 모두 모이는데 이 날을 우리가 성스럽고 영적인 안식일로 축제"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그는, 태양은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바로 태양신 아포롤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하면서 "구주의 날…, 이 명칭은 빛에서부터 파생된 것이며, 또한 그 태양에서부터 파생된 것" 이라고 말한다.
일요일(주일) 예배, 그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 부활 이후 안식일이 폐지되고 부활을 기념하여 지키기 시작했다고 하는 단순 논리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일요일 예배가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아 교회의 예배일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이교들과 로마의 황제들과 이교적 신학자들의 영향, 태양신과 관계, 그리고 엄청난 투쟁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진 비성서적인 제도임을 알아야 한다.
옥스퍼즈 대하교 교회사 교수였던, 스텐리(A. P. Stanley, 1815~1881)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논증하고 있다. "고대 태양신에게 부단한 충성심을 바친 자들이 그들의 종교 의식 자취를 남겨 놓았다. …지극히 거룩하며, 우주적인 이 그리스도교단까지 그 흔적을 남겼다. 고대 우상 숭배자들이 명명한 '태양의 날' (dies solis)이라는 칭호의 존속은, 대개 우상 숭배교와 그리스도교의 절개가 서로 연합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Lecture on the History of the Eastern Church, 1884, p. 184).
(6) 주일 예배를 드리는 개신교회에 대한 가톨릭의 시작
가톨릭의 주장 -
기톨릭교회에서 개신교회를 향하여 직설적으로 증언하는 다음의 내용을 보면, 분명히 주일예배는 비성서적임을 획인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성경만을 따른다면 당신은 토요일[안식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날이야말로 하나님께 거룩히 지켜지도록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비가톨릭 신자들은 1800년간, 일요일을 지킴으로써 성경의 제도가 아닌 가톨릭 교회의 전통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들처럼 토요일[안식일]을 신앙의 유일한 지침으로 주장하고 있는개신교회는 일요일 준수에 대한 아무 보증이 없다" <F.g.Lentz, The Questhon Box(NY:Christian Press Assn.,1900, pp.98, 99) : "The Questhon Box", The Catholic Universe Bulletin, 69(Aug. 14, 1942), it the SDA Bible Student Book, 994>.
주일 예배에 대하여 난처할 수밖에 없는 개신교회 -
사실, 교회 역사를 통해서 일요일 예배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과 같이 보편화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 정확한 배경을 인식하고 있는 교회는 개신교회는 아니라 가톨릭 교회이다. 그러나 가톨릭은 성경보다 교회의 전통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성경의 근거가 없는 일요일 예배에 대하여 교회의 전통을 근거로 매우 떳떳한 입장을 내세운다. 일요일 예배는 분명히 교회의 권위로 변경된 것이지 성서적인 것이 아니다.
천주교회와 개신교회, 그 둘은, 둘이자 하나이다. 개신교회는 천주교회가 제정한 비성서적인 일요일 예배일을 여전히 드리고 있어 천주교회의 권위와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의 예를 들어보자. 이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에 하나이지만 성서에서는 그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다. 성서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이 아니다" <기본스 저, 장면 역, 교부들의 신앙, 108>.
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