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넘어 희망으로 ⑤ // 심판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린도후서 5장 10절). 그 마지막 심판은 우리보다 더 면밀하게 우리를 보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선과 악 사이에 대쟁투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주를 통제하기 위한 우주를 넘어 전체 은하계가 이 싸움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사탄이 하나님에게서 선포한 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전 우주적인 투쟁에 관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선과 악의 오랜 논쟁의 마지막 초점을 맞춥니다. 반역의 천사 루시퍼는 하나님의 공의와 지혜에 도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다스리시는 방식이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둘러싼 이 갈등의 중심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마지막 심판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요한계시록 14장 6, 7절). 특히 영원한 복음에 비추어 보면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온 우주가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모든 피조물이 이 심판의 시간을 통해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셨다는 것을 알 게 될 것입니다. 나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마지막 심판에 대한 세 가지 사실을 여러분과 함께 보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사실 :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드러냅니다. 그 심판은 그의 사랑과 율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구원의 은혜와 구원하시는 능력을 말해 줍니다. 그것은 모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세계와 주목하고 있는 우주를 드러낼 것입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그분의 모든 준비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심판은 선악간의 대쟁투에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해결책입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으며 부당하다"는 사탄의 참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심판대 앞에 나타날 때에, 예수님께서 온 우주 앞에서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이 사람을 구하려고 무슨 일을 더 해야 하는가?" 우주의 조물주 앞에, 모든 것이 정확하고 세밀하게 기록된 책들이 펼쳐질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실 일은 어 이상 없었다는 것이 영원히 드러날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 타락한 지구를 구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구원받기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부하는 우리의 선택 때문일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의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 조사에서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는 갈보리에서 하신 일이 충분했고, 그분의 십자가가 충분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전 우주가 황홀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요한계시록 15장 3절).
두 번째 시실 :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그리스도의 왕좌를 영원히 옹립할 것입니다. 역사를 통틀어 하나님은 그의 심판이 이루어지기 훨씬 전에 죄악이 계속되도록 허용하셨습니다. 비록 그분이 선택의 자유를 갖도록 우리를 창조하셨지만, 그분은 여전히 우리의 주권자이십니다.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그분께서 가지신 모든 계획을 결코 대체할 수 없습니다, 죄오 반역은 그 자체로 유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는 그의 저서 <진정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성경의 심판에 거만하게 서 있는 것을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겸손하게 그 심판대에 앉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마음을 미리 정해놓고 말씀에 다가가게 되면, 자신의 생각의 반향만 듣고, 하나님의 부르심은 결코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의 미래를 어지럽히고, 우리의 목적을 저해하고, 우리의 사상과 행동 패턴을 버리도록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거의 죄 많던 사람들에게 모두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하고, 그분의 사랑을 버리고 그분의 은혜에 등 돌렸을 때,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바벨론, 메대 -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는 모두 그들의 불의의 잔을 채웠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시간에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하여 심판이 임했습니다. 구약성경에 대한 어떤 훌륭한 주석에서 나는 이러한 논평을 찾았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정확하게 열국과 계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회개하도록 부르시며 당신에세 정하신 액소에 도달하게 될 때 당신에게 분노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때는 계산이 끝나고 하나님의 참으심도 그친다. 자비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하여 호소하지 아니한다."(선지자와 왕, 364). 이 마지막 기별이 온 땅, 모든 백성에게 빠르게 전파되면, 약속은 지켜질 것입니다. "불의를 행하고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세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요한계시록 22장 11, 12절).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이며, 악의 모든 세력은 영원히 멸망할 것입니다.
세 번째 사실 :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의를 드러내며, 사탄의 악한 권세를 향한 하나님의 승리를 드러냅니다.
그 심판의 판결에 대한 멋진 묘사가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부 처음에 …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니 하시더라, " "이리로 올라오세요. 그리고 이후에 일어나야 할 것들을 보여 주리겠습니다"(요한계시록 4장 1절). 예수님께서는 하늘 성소의 문을 통하여 선악 간의 대쟁투를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초청하고 계십니다.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해 보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우리의 귀를 하늘을 향하여 귀 기울이면 무슨 소리가 들립니까? 어떤 장면이 하늘의 주인의 관심을 사로잡습니까? 우리는 천국을 배경으로 한 보좌를 보게 됩니다(2절). 하나님은 우주의 정당한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후에 앉으시기 때문입니다. 그 장면은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셔서 하늘 대관식을 하시는 모습입니다. 하늘 보좌 주변의 무지개는 하나님의 정의와 자비를 드러냅니다. 즉 그분의 사랑과 율법입니다.
보좌를 둘러싼 24명의 장로가 있습니다. 보좌 주위에 모여 있는 이 장로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그리스도가 부활할 때에 함께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간 사람들입니다(마태복음 17장 52절: 에베소서 4장 7절). 그것은 복음입니다. 이 땅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보좌애 둘러앉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겪는 것과 같은 유혹에 맞닥뜨렸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당하는 것과 같은 인생의 도전을 경험했고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대에는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그들은 사탄의 악한 유혹을 이겨 냈습니다. 그들은 죄를 덮고 씻어 내는 그리스도의 의를 나타내는 "흰 예복"을 입게 됩니다. 그리소 나서 요한의 눈은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네 생물에게 초점을 맞춥니다.(요한계시록 4장 6, 7절). 이스라엘은 사자, 송아지, 사람의 얼굴, 날아다니는 독수리 이렇게 내 개의 깃발 아래 광야에서 행군하였습니다. 이 깃발들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보호와 영원한 인도의 표시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로 표상된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찬란한 영광을 떠나 사람이 되어 제물인 송아지의 역할을 받아들이셨지만, 아버지의 보좌를 상징하는 독수리같이 부활했습니다. 우주의 보좌에 대한 요한의 환상을 통해 우리는 영원하신 아버지의 손에 들려 두루마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특별한 두루마기는 양쪽에 쓰여 있습니다. 천사가 앞으로 나서며 큰 목소리 이렇게 외칩니다.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요한계시록 5장 2절). 바로 이 두루마리에 인류 전체의 운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백 수천, 아니 수십억이 넘는 인류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차대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인류를 대신해서 설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두루마리에는 분명히 모든 인류의 영원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만인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친 하나님의 어린양이 심판의 두루마리에는 열차, 천국은 모두 환희의 찬양을 돌립니다. 그들은 영원한 어린양의 새 노랴를 부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9, 10절).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는 심판의 날에 우리의 편에 서실 것입니다. 온 우주가 우리를 분의 것으로 선언하기 전까지 그분은 우리의 곁에 서 계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십니다. 십자가에서 못 자국 난 손과 창에 찔린 자국이면 충분합니다. 갈보리의 십자 가면 충분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대면할 때 화신을 가지고 심판대에 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