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5 권 // 교회증언 31호 (1882) 호 소 ②
교회증언 31호 (1882) 호 소 ②
호 소 ②
227 하나님은 마음과 생애가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죄를 범하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호의를 보이지 않으실 것이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 3:10). 의의 사업을 등한히 하면서 목사를 칭찬하고 추켜세우는 자들은, 그들이 목사에게 돌아온 것이지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 아니하는 분명한 증거를 보여 준다. 우리는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고 묻는 바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통하여 그대들이 들은 것은 성령의 음성이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소리였는가? 맺힌 열매가 나무의 성격을 증거 할 것이다. 외형적 형식이 우리를 정결케 할 수 없다. 가장 성자다운 사람이 집례 한 의식도 성령의 침례를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음에 역사하셔야 한다. 거듭나게 하는 그 능력을 경험하지 않은 모든 사람은 알곡 가운데 있는 쭉정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철저하게 정하게 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장차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말 3:18)를 분별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은 하나님께로서 난 모든 사람들 안에서 드러날 것이다. 투쟁과 싸움은성령으로 지배하는 자들 사이에서는 생길 수 없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사 52:11). 교회는 그 목사가 견지하는 표준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회개한 목사와 회개한 백성이 필요하다. 마치 그들이 회개하애 할 자인 것처럼 영혼들을 돌보는 목사들은 양 떼들을 평강과 거룩함의 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이 사업에서의 그들의 성공은, 그들이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나는 성장에 비례할 것이다 교사들의 영혼과 육체와 정신이 거룩해질 때 그들은 그와 같은 성화의 중요성을 백성들에게 감명 깊이 새겨 줄 수 있다.
228 무심한 방법으로 신앙적 문제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진정한 심령의 갈급성과 산 믿음 없이 영적 축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별로 효력이 없다. 그리스도의 주변으로 가까이 밀려간 방황하는 군중은 그 접촉에서 생명의 능력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불쌍하고 고통받는 여인이 큰 필요를 느끼고 손을 뻗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그는 치료의 능력을 느꼈다. 그의 접촉은 믿음의 접촉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접촉을 아시고, 마지막 때까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교훈을 거기서 주시고자 작정하셨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당신에게서 나간 줄 아시고 무리를 돌아보시면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을 그런 질문에 놀라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라고 대답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한 여인을 주목하셨다. 그 여인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에게는 큰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제넘은 일을 했던가? 그에게 이루어진 것을 알고 그는 떨면서 나아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다 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부드럽게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 5:30, 31, 34)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무관심한 접촉과 믿음의 접촉이 구별되었다. 하나님을 믿는 산 믿음의 활용이 없는 기도와 설교는 허지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접촉은 우리에게 하늘의 능력과 지혜의 보고를 열어 준다. 그리하여 진흙으로 된 기구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혜의 이적들을 이루신다. 이러한 살아 있는 믿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크게 필요하다. 우리는 예수님이 진실로 우리의 소유임을 알아야 하고, 그분의 정신이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고 세련되게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의 종들이 온유와 사랑과 함께 진정한 믿음을 가진다면, 그들이 어떤 사업을 이루겠는가! 어떤 열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타나겠는가!
229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육신적 방심에서 그대들을 깨우기 위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대들의 위험을 보았다. 교회 안에는 신자들과 불신자들이 공존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에서 이 두 계층을 나타내신다. 그분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권면하신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살 수 없음이라"(요 15:4, 5). 가장(假裝)된 연합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이룬 진정한 연결과는 크게 다르다. 진리를 믿는다는 공언은 사람들을 교회에 속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이 산 포도나무와 생명적 연결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는다. 참 제자와,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분을 믿는 믿음이 없는 자들은 구별하는 하나님의 척도가 주어져 있다. 한 무리는 열매를 맺고 있지만 다른 무리는 열매가 없다. 한쪽은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하나님의 칼에 자주 전정을 당하지만 다른 쪽은 마른 가지들로서 머지않아 산 포도나무에서 잘려 나가게 되어 있다. 나는 우리 백성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산 증언을 간직하고 교회가 불신의 요소들로부터 순결하게 보존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 15:4)라고 한 말씀에서 밝혀진 것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더 밀접하고 더 친밀한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가? 가지의 섬유질은 포도나무의 섬유질과 거의 동일하다. 줄기에서 가지로 전달되는 생명의 교류와 힘과 결실은 방해받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 뿌리는 가지를 통하여 그 영양분을 보낸가. 그와 같은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참 신자의 관계이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그분에게서 영양분을 흡수한다. 이 영적 관계는 개인적 믿음을 활용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믿음은 우리 편에서 최고의 우선권, 완전한 의존, 완전한 헌신을 나타내어야 한다. 우리의 의지는 완전히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되고, 감정과 욕망과 흥미와 명예는 그리스도의 왕국의 번영과 그분의 사업의 영광과 동일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끊임없이 은혜를 받고, 그분께서는 우리에게서 감사를 받으셔야 한다.
230 이와 같은 연결과 교통의 친밀함이 이루어질 때,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께 놓이고, 그분의 의는 우리에게 입혀지게 된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위하여 죄를 담당하셨다.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아들 안에서 영접을 받는다. 누구든지 말이나 행동으로 믿는 자를 해치는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을 하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제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사람은 주구든지 그리스도께 드린 것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게 대한 당신의 관계를 나타내는 아름다운 상징을 두신 것은 그분께서 바야흐로 제자들을 떠나가고자 하신 때였다. 그분은 볼 수 있는 당신의 임재가 없어진 후에 그들이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그분 자신과의 밀접한 연합을 그들 앞에 제시하고 계셨다. 그것을 그들의 마음에 새겨 주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그 가장 두드러지고 적합한 상징으로서 포도나무를 그들에게 제시하셨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포도나무를 식물들 중 가장 고상한 것으로, 또한 강하고 탁월하고 결실이 풍부한 모든 것의 한 상징으로 간주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대들이 그처럼 높이 평가하는 포도나무는 하나의 상징이다. 나는 실체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한 민족으로서 그대들은 포도나무를 높이 평가한다. 그대들은 죄인들로서 나를 세상의 모든 것보다 높이 평가해야 한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분리되면 살 수 없다. 그대들도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 수 없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처럼 이 교훈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반역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켰다. 그 분리는 넓고 무섭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다시 그분 자신과 연결시켜 주기 위하여 대비책을 마련하셨다. 악의 세력은 인간의 본성과 너무도 동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으면 아무도 승리할 수 없다. 이 연합을 통하여 우리는 도덕적 · 영적 힘을 얻는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게 되면 의의 열매, 사람들에게 영광과 축복이 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231 아버지는 포도나무를 손질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능숙하게 자비롭게 열매 맺는 모든 가지를 전정하신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고난과 비난에 동참하는 자들이 이후에는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분은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아니하"(히 2:11) 신다. 그분의 천사들이 그들을 섬긴다. 그분의 두 번째 나타나심도 인자로서 나타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의 영광 중에서까지도 그분은 단신 자신을 인간과 동일시하실 것이다. 그분과 연합한 자들에게 그분께서는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5, 16+)라고 언명하신다. 아,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는가! 우리는 이런 축복을 얻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기 위하여 가장 열렬한 노력을 할 것인가? 우리는 의에 의하여 우리의 지를, 주님께로 돌아옴으로 우리의 범죄를 깨뜨려 버릴 것인가? 회의론과 불신이 널리 보급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질문하셨다. 우리는 적극적인 산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믿음의 항구성(恒久性)은 우리의 연합의 조건이다. 산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이룬 연합은 지속적이다. 모든 다른 연합은 파멸되고야 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무한한 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는 그리스도를 모든 것 가운데 첫째요 마지막이요 최선의 것으로 택한다. 그러나 이 연합은 우리에게 무언인가를 치르게 한다. 그것은 교만한 자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철저한 의존의 연합이다. 이 연합을 이루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의 필요를 느껴야 한다. 그들은 마음의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시켜야 한다. 외적 장애와 내적 장애로 더불어 싸우는 투쟁이 있을 것이다. 애착의 과업은 물론이요 괴로운 분리의 과업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려면 교만, 이기심, 허영, 세속적인 것 ― 모든 형태의 죄 ― 을 이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생애는 그처럼 변덕스럽고 그처럼 가변적인 이유는 이 간직된 우상들로부터 먼저 그들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고 그들 스스로를 그리스도께 결합시키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232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진 후에는 오직 열렬한 기도와 불굴의 노력을 통해서만 그것이 유지될 수 있다. 우리는 자아를 저항하고, 자아를 부인하고, 자아를 정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용기와 믿음과 경계로써 우리는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러나 하나의 가지는 다른 가지에 의하여 지탱될 수 없다. 포도나무와 산 연결을 통하여 영양분이 섭취하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완전히 의존할 필요를 느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내 안에 거하라"라는 명령의 의미이다.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사는 삶은 사람들의 뜻을 따르기 위함이 아니고, 윌 주님의 우너수들을 기쁘게 하기 위함도 아니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신 분을 섬기고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애정이 세상과 그 쾌락과 그 방탕에서 분리되지 않고 이 연합에 동의하는 것만으로는 불순종하는 일에 마음을 담대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슬프게도 믿음과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 우리의 노력은 우리가 사는 위기의 때를 위하여 너무 약하다. 우리를 두르고 있는 교만과 방종, 불경과 죄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할 수 있는 대로 신앙 생애에 불리한 모든 교제를 피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는 자는 별로 없다. 환경을 택할 때에 그들의 영적 번영을 먼저 생각하는 자는 별로 없다. 부모들은 시골에서보다 생계를 유지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가족과 함께 도시로 모여든다. 자녀들은 학교에 있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므로 거리의 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나쁜 친구들에게서 부도덕과 방탕의 습관을 배운다. 부모들은 이 모든 것을 본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을 고쳐 주는 데는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탄이 자녀들을 완전히 지배할 때까지 그들이 있는 곳에 머물게 된다. 그대들에게 맡겨진 귀중한 영혼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모든 세속적 유익을 희생하는 것이 더 낫다. 그들은 유혹의 맹렬한 공격을 받을 것이므로 그것들을 대항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대들 자신과 그대들의 가족을 하나님께 가장 거리낌 없고, 솔직하고, 진심으로 헌신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영향력을 끊어 버리고, 모든 습관을 깨뜨리고 모든 유대를 발라 버리는 것이 그대들의 의무이다.
233 사람들이 몰려 있는 도시 대신에 할 수 있는 대로 그대들의 자녀들이 유혹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어떤 한적한 환경을 찾아서 거기서 그들을 유용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고 교육시켜라. 선지자 에스겔은 소돔을 범죄와 멸망으로 이끈 원인들을 이와 같이 열거한다.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운명을 피하고자 하는 모든 자들은 그 악한 도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그 길을 피해야 한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그대 자신과 그대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요구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기적인 관심에 몰두되고, 세속적인 보화에 마음이 끌린 채 거짓된 안전 속에 편히 쉬고 있다. 그대들은 악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위험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대들이 각성하여 회개와 겸손으로 여호와께 돌아가지 않으면 그대들은 기만당하고 미혹당하여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이다. 거듭거듭 하늘에서 온 음성은 그대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 음성에 순종하겠는가? 그대들은 불로 연단한 금과 흰 옷과 안약을 구하라는 참된 증인의 권면을 유의할 것인가? 금은 믿음과 사랑이며, 흰 옷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리고 안약은 그대들로 하여금 사탄의 간계를 깨달아 그것들에 피하게 해 주고, 죄를 찾아내어 그것을 증오하게 하고,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순종하게 해 주는 영적 식별력이다. 세상의 치명적인 혼수상태는 그대들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대들이 사탄에 의하여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죄가 더 이상 불쾌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미구에 지상에 쏟아지려 하고 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창 19:17)라는 말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한 경고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다른 음성도 들린다. "흥분하지 말라. 특별히 놀랄 이유는 없다." 하늘은 범죄 한 자에게 신속한 멸망이 바야흐로 임한다고 선포하고 있는데, 시온에서 안락하게 있는 자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라고 부르짖는다. 젊은이들, 경박한 자들,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 경고를 쓸데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조롱하면서 돌아선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그 문제에 있어서 대체로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두 평한하게 잠을 잔다. 옛 세상이 멸망될 때와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소멸될 때도 그러했다. 그들의 멸망 전야(前夜)에 그 평원의 도시들은 쾌락을 떠들썩했다. 롯은 그의 공포와 경고 때문에 조소를 받았다.
234 그러나 불꽃 가운데서 멸망당한 것을 그 조롱자들이었다. 바로 그 밤에 자비의 문은 악한 자들, 곧 부주의한 소돔의 거민들에게 영원히 닫혔다. 영혼들의 운명을 손에 쥐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항상 조롱을 받지만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반드시 희롱당하지만은 않으실 것이다. 이미 그분의 심판은 땅에 임하고 있다, 사납고 무서운 폭풍은 지나가면서 파멸과 죽음을 남긴다. 삼켜 버리는 불은 사람이 없는 숲과 인구가 조밀한 도시를 쓸어 버린다, 폭풍과 파선은 바다를 여행하는 자들을 기다린다. 사고와 재난은 육지를 여행하는 모든 자들을 위협한다. 태풍, 지진, 전쟁과 기근은 신속히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음은 굳어진다. 그들은 경고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몰려오는 폭풍을 피할 수 있는 유일의 피난처로 도망하지 못할 것이다. 날카로운 눈을 접근하는 위험을 보고 경고의 음성을 높이도록 시온의 상벽 위에 배치된 많은 사람들은 잠들어 있다. 이 위기의 시간에 가장 활동적이고 방심하지 않아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이 그들의 의무를 등한히 하고 영혼들이 피를 흘리게 하고 있다. 나의 형제들이여, 악한 불신의 마음을 경계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제한 조항에 있어서 분명하고 철저하다. 그것은 그대들의 이기적 방종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거기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분의 영의 증언들은 성경을 주목하도록 호소하고, 그대들의 품성의 결점들을 지적하고 그대들의 죄를 책망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 증언들에 유의하지 않는다. 그대들의 육신적이여 안락을 좋아하는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그대들은 그 증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에 대하여 의심하기 시작한다. 만일 그대들이 그 교훈에 순종하려고 한다면 그대들은 그 증언들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불신이 그 증언들의 진실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것들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면 그것들은 설 것이다. 과거 36년 동안 교회 안에 존재해 온 이 증언들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이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도구가 아니고, 이 경고와 책망을 그대들에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235 우리 구주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 가운데 특별히 우리에게 적용되는 권고의 말씀들이 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깨어라, 기도하라, 일하라―이것이 진실한 믿음의 생애이다. "항상 기도하"(눅 21:36)라. 즉 언제나 기도의 정신으로 지내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주님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될 것이다. 파수꾼들은 백성들의 상태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대들이 교만과 시기와 의심과 다른 죄들을 향하여 문을 열어 주는 한 투쟁과 증오와 온갖 악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 예수님께서는 그대들의 손님으로 들어오게 해 달라고 요청하신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분께 들어오시라는 말을 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분은 구약과 신약에서 다 같이 우리에게 말씀해 오셨다. 그분은 당신의 영과 당신의 섭리를 통하여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기 계신다. 그분의 교훈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진실하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만드시고자 의도된 교훈이다. 예수님은 인류에게 완전하고 철저한 모본을 남기시기 위하여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은 모든 목적과 감정과 사상에 있어서 진실 즉 마음과 영혼과 생애에 있어서 진실하신 당신 자신과 같게 우리를 꼴찌 우시겠다고 제안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이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순결해지고 고상해지고 성별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신앙은 세속적 원칙들과 결코 조화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정직은 모든 기만과 가장과 반대된다. 심령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사람, 구주의 모습을 가장 완전하게 반사하는 자는 지상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진실하고, 가장 고상하고,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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