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리/실물교훈

실물교훈 25장 // 달란트(1)

동심초(남양주) 2022. 2. 17. 21:44

 달란트(1) 

 대관령에서 

 

 

 달란트(1) 

 325   그리스도께서는 감람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신 일이 있었다. 그분은 당신의 재림의 때가 가까웠음을 보여 줄 징조를 말씀해 주시고 당신의 제자들에게 깨어 준비하라고 명하셨다. 그는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다시 반복하여 경고하셨다. 다음으로 그는 그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 주셨는데 그것은 무료하게 기다리는 일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일하면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훈을 달란트의 비유로써 가르쳐 주셨다. 그분은 "천국"은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라고 말씀하셨다.


 326  이 비유 가운데서 다른 지방으로 가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이 비유를 말씀하시던 때는 바로 조금 후에 그분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가시려던 때였다. 여기에 "종들", 혹은 노예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대표한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값으로 산 것이"(고전 6:20) 로되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벧전 1:18, 19) 산 것이니 이는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5). 모든 사람은 다 이 무한한 값으로 산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모든 보물을 이 세상에 부어 주심으로써,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하늘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각 사람의 의지와 애정과 지능과 심령을 다 사셨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다 주님의 소유이다. 모든 사람은 그분을 위해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저희가 이 요구에 어떻게 응했느냐에 따라 큰 심판날에 그것에 대해 회계(會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를 모든 사람이 다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유 가운데 그리스도의 종으로 나타난 자들은 저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하라는 초청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봉사를 위하여 구속함을 받았다. 우리 주께서는 인생의 참된 목적은 봉사에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스도 자신이 일꾼이셨으며 그분을 따른 모든 사람에게 봉사의 법칙, 곧 하나님과 저들의 동포에게 대한 봉사의 법칙을 주셨다.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저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고상한 생애의 개념을 세상에 보여 주셨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생애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결된다. 봉사의 법칙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고리가 되는 동시에 우리 동포들과 연결시키는 고리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자기 소유" 곧 당신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것들을 맡겨 주신다. 그분은 "각각 사무를 맡기"신다.

 

 성령의 선물들 

 327  각 사람은 하늘의 영원한 경륜 속에서 각자가 차지할 자리를 갖고 있다. 각 사람은 영혼 구원 사업 사업을 위하여 그리스도와 협력해서 일해야 한다. 하늘 집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음이 확실한 것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할 특별한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도 확실하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게 위탁하신 달란트는 특별히 성령이 나누어 주시는 선물과 축복을 나타낸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을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을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8~11).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선물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종들 각자에게 어떤류의 성령의 선물을 주시기로 약속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작별하실 때에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말씀하셨다. 그는 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눅 24:49)라고 말씀하셨으나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야 비로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제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위하여 믿음과 기도로서 저희 자신을 완전히 굴복시켰을 때에 비로소 성령의 부어 주심을 받았다. 그때에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하늘의 선물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위탁되었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 4:8).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엡 4:7),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11). 이 모든 선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우리의 것이 되었지만 실지로 그것을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들이는 데에 달려 있다.


 328  성령의 약속이 느껴져야 할 만큼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고 있다. 이 약속이 마땅히 성취되어야 할 만큼 성취되지 않고 있다. 복음 사업이 그처럼 무력한 이유는 성령의 임재가 없기 때문이다. 학식과 달란트와 웅변과 선천적 또는 후천적 재능을 다 가졌다 해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한 사람의 마음도 감동시킬 수 없고 단 한명의 죄인도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없다. 이와 반면에 만일 저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성령의 선물을 갖게 된다면 아무리 가련하고 무식한 제자일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울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이 우주에서 최고의 감화를 끼치는 통로가 되게 하실 것이다.


 다른 달란트들 

특별한 성령의 선물만이 비유에 나오는 달란트라고 할 수 없다. 이 달란트는 선천적이고, 후천적인 것에 관계없이 또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관계없이 이 모든 선물과 재능을 다 포함한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소유와 우리 자신을 아울러 그분에게 바치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바친 것을 순결하게 하시고 고상하게 하셔서 그것으로 동료 인간들을 축복하고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데 쓰도록 우리에게 다시 돌려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나누어 주셨다. 달란트는 아무렇게나 나누어 주시는 것이 아니다. 다섯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받게 된다. 두 달란트만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달란트를 받게 된다. 한 달란트만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는다. 아무도 저희가 더 큰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각 사람에게 달란트를 나누어 주신 분은 그것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각자가 그 맡은 달란트를 잘 활용할 때 모든 사람들로부터 똑같은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사용해야 하고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고후 8:12) 신다.


 달란트의 사용 

 329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했다. 달란트는 아무리 적을지라도 사용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크게 관계되는 문제는 내가 얼마나 많이 받느냐가 아니고, 내가 받은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온갖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동포들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의무이다.

 

 330  재능과 유용성이 날마다 자라나지 않는 자는 인생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할 때 주님의 일꾼으로서 우리가  가능한 한 최고의 표준에 달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을 이루기 위하여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각 기능을 최대한 완전하게 계발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루어야 할 큰 사업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은 현세에서 가장 신실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에게 오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유업으로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대리자들을 택하시고 그들로 날마다 같지 않은 환경에 처하게 하심으로 당신의 경륜을 이루고자 하신다. 그분의 경륜을 이루고자 하는 일념으로 그분은 당신의 대리자들을 택하시되 그들이 완전하기 때문에 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구분과 합함으로 완전함을 얻게 하기 위하여 택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표준을 높이 세우기로 결심한 자들만을 받으실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대리자들에게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우신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완전하기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결코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 악으로 기울여는 우리의 성벽에 맞추기 위하여 의의 표준을 낮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품성의 불안전함이 죄가 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품성의 모든 의로운 특성들이 하나님 안에서 전체적으로 완전하고 조화를 이루게 되어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이 특성을 가질 특권이 있다.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신체의 각 기관(器管)과 마음의 자질을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된 교육은 육체적. 지적. 도덕적. 능력을 우리의 모든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 교육은 거룩한 봉사를 하기 위하여 육체와 영혼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영생에 이르게 하는 교육이다.


 331  주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모든 방면으로 능률과 재능이 자라나기를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봉사를 받으시기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신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어떻게 일해야 하고 어떤 정신으로 일하여야 할 것에 대한 모본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사업을 가장 잘 추진하고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두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요 3:16)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에게 최대의 사랑과 충성을 바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품성을 얻는 일이 없다는 보증을 주지 않으셨다. 고상하고 모든 면으로로 원만한 품성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상한 품성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를 통하여 개인이 노력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재능과 정신력을 주시지만 품성 형성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품성은 자아로 더불어 맹렬하게 싸움으로써 형성된다. 타고난 성벽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거듭거듭 면밀하게 비판해야 하고 단 하나의 좋지 않은 성벽도 고쳐지지 않은 채 남아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도 "나는 품성의 결점을 고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게 하라. 만일 그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대는 분명히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대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그대가 하려고 하지 아니하면 할 수 없게 된다. 진짜 어려움은 성화 되지 못한 타락한 마음에서, 생기며 하나님의 지배에 복종하기를 즐겨하지 않는 데서 생긴다. 하나님께서는 큰일을 할 수 있는 자질을 주신 많은 사람들이 아주 조금밖에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저희가 적게 노력하기 때문이다. 허다한 사람들이 확실한 생애의 목적도 없이 달하여야 할 표준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적절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대는 절대로 그대 자신이 세운 표준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표준을 높이 세우고 비록 고생이 되더라도 한 계단 한 계단씩 극기와 희생으로 그 진보의 사다리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도록 하라.


 332  아무것도 그 일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 운명이라는 것이 아무리 사람을 운신할 수 없을 만큼 단단히 붙잡아 맨다 할지라도 그것을 타개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경은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굳은 결심을 일으킨다. 하나의 장벽을 깨뜨릴 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더욱 큰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단호한 결심을 가지고 옳은 방향으로 매진하라. 그리하면 역경이 그대의 방해자가 되는 대신에 오히려 돕는 자가 될 것이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품성의 아름다움을 닦기 위하여 대망(大望)을 품으라. 그대가 품성을 닦는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에녹이 비록 부패된 시대에 살고 있었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처럼 그대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에녹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어떤 시험도 그를 타락시키지 못했던 저 신실한 정치가 다니엘과 같이 굳게 서라. 그대의 죄를 없이하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그대를 사랑하신 그분을 실망시키지 말라. 그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기억하라. 비록 지금까지 실수했다 할지라도 그대가 그 실수를 하나의 경고로 삼을 것 같으면 그대는 패배를 승리로 바꾸게 되어 그대의 원수로 실망하게 하고 그대의 구주를 높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꼴 지워진 품성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내세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재물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라 사는 자들은 모든 신령한  학식을 하늘 집으로 가져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늘 가서도 우리는 계속 진보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세에서 우리의 품성을 계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하늘 천사들은 단호한 믿음을 가지고 그들의 행실에까지 완전함을 나타낼 그러한 품성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협력할 것이다. 이 일에 힘쓰고 있는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오른편에 서서 너를 돕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333  사람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이 협력할 때에 그것은 전능한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의 힘을 의지하여 이룰 수 있다. 그가 명하는 모든 것은 다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지능  

하나님께서는 지능을 훈련시키기를 요구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종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많은 재능과 더욱 명석한 식별력을 갖도록 계획하셨다. 그분은 유능하고 전통한 일꾼이 되기에는 너무 무관심하고 게으른 자들을 불쾌히 여기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명령은 온 마음을 다하여 우리의 창조주를 알고 그분을 사랑하기 위하여 우리의 지능을 초고도로 계발해야 할 책임을 우리에게 부과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을 것 같으면, 우리의 지능이 철저하게 계발되면 될수록 그것을 더욱 효과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게 될 것이다. 교육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께 헌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누고자 갈망하는 자들은 주께서 그를 당신의 사업에 사용하실 수 있고 또 사용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와 같은 헌신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 원만한 교육을 받았을 것 같으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훨씬 더 큰일을 할 수 있다. 저희는 그들보다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주께서는 우리가 배우는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교육을 받게 될지 알 수 없다. 오직 우리의 천부께서만 사람을 어떠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아신다. 우리 앞에 놓여 있다.


 334  우리는 필요한 경우에 가장 높은 이 세상 권세자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으로 그분의 말씀의 진리를 증거 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훈련시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지적(知的) 자격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교육이 필요한 청년들은 교육을 받고자 하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그 일을 착수해야 한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자진하여 그것을 개척하라. 닥치는 기회가 아무리 적을지라도 그것을 붙잡도록 하라. 절약하라. 그대의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또는 오락을 위하여 재정을 허비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원하시는 만큼 쓸모 있고 유능한 일꾼이 되기를 결심하라. 그대가 손을 대는 그 일은 어떤 일이든지 간에 철두철미하게 하고 신실하게 하라. 지력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온갖 이점과 특전을 이용하라. 서적의 연구를 유용(有用)한 노동과 연결시키고 성실한 노력과 깨어 기도함으로써 위로부터 오는 지식을 얻도록 하라. 그렇게 함으로 그대의 그대는 원만한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대의 품성이 점점 자라날 것이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킬 수 있는 감화력을 갖게 되어 그대는 그들을 의와 거룩한 길로 인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와 특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자기 수양에 있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교육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참된 교육은 대학에서 줄 수 있는 교육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물론 과학을 연구하는 일도 등한히 해서는 안 될 것이나 하나님과의 산 연결을 맺음으로 얻을 수 있는 보다 더 고상한 교육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성경을 그들의 교과서로 삼고 크신 교사와 교통 하도록 하라. 신령한 진리를 탐구할 때 만나게 될 어려운 문제들과 씨름하도록 마음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라. 저희 동료 인간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지식을 갈망하는 자들을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함으로 그들의 지력은 열심 있는 활동을 하도록 깨우쳐질 것이다. 그리하여 재능은 넓어지고 계발될 것이며, 정신은 능력을 얻고 유용하게 될 것이다.

 

  언 어  

 335  나님의 일꾼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 이 같은 수양이 웅변이나 그의 가장 훌륭한 재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잘 훈련하면, 자제력이 없는 가장 고상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가장 유능한 재간을 가진 사람들이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더 고상한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의 재능은 부지런히 수련해야 할 달란트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께 받은 우리의 모든 달란트 가운데 언어의 달란트보다 더 큰 축복이 되는 것은 없다. 우리는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각성시키기도 하고, 설득시키기도 한다. 언어로써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올릴 수 있으며, 언어로 다른 사람들에게 구주의 사랑을 이야기해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선을 위하여 가장 효과적인 것이 되도록 언어를 수련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지성인들과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음성을 수련해서 올바로 사용하는 일을 등한히  하는 경향이 많다. 다른 사람이 얼른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너무 작게 또는 너무 빨리 말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떤 이들은 둔탁하고 불분명한 소리를 낸다. 또 어떤 이들은 듣는 사람이 짜증스러운 만큼 너무 높고 날카롭게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말하는 자들도 있다. 성경절이나 찬미가나 보고서 등을 공중 앞에서 낭독할 때에 어떤 때는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낭독함으로 인하여 그 집회가 힘이 없어지고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폐단은 고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고쳐야 한다. 이 점에 대한 성경의 지시가 있다. 에스라 시대에 백성들 앞에서 성경을 낭독한 레위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느 8:8)였다.


 336  누구나 다 부지런히 노력함으로 남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낭독하고 똑똑하고 거침이 없는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하고 깊은 인상을 줄 수 있게 하는 재간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의 우리의 유용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을 알려 주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결함이 없이 말할 수 있도록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듣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소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자들이 무뚝뚝한 자가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세상에 전해지는 하늘의 축복을 사람들이 경하게 여기거나 그 가치를 저하시키기를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완전한 모본이 되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기관을 잘 훈련해서 완전한 일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것은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하는 봉사에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모든 목사와 교사들은 저희가 영생에 관계되는 기별을 전하는 자의 말하는 방법 이하에 따라서 그 기별을 받아들이게 도 되고 거절하게도 될 것이다. 그런즉 말할 때에는 듣는 자로 하여금 그 말이 잘 이해되고 마음에 감화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은 천천히, 대목에서는 온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 언어를 바르게 수령해서 사용하는 일은 그리스도인 활동의 모든 분야와 관계가 있다. 그것은 가정생활에는 물론 피차 하는 교제에도 관계가 있다. 우리는 말할 때에 쾌활하게 말하고, 순결하고 정확하게 말할 뿐 아니라 친절하고 예절 있게 말하도록 습관을 길러야 한다. 부드럽고 친절한 말은 사람의 심령에 내리는 이슬이나 가랑비와 같다. 성경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시 45:2),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사 50:4)하심이라고 하였다. 또 주께서 우리에게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골 4:6) 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엡 4:29)기 위함이다.


 337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고쳐 주고자 할 때는 특별히 우리의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 말들은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될 수 있고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남을 책망하고 충고할 때 날카롭고 가혹한 말을 할 뿐 아니라 상한 심령을 고치는 데 합당치 못한 말을 한다. 이러한 서투른 말을 함으로 상대방의 정신을 격분시키고 흔히는 상대방에게 반감을 갖도록 한다. 진리의 원칙을 옹호하려는 자들은 하늘로부터 사랑의 기름을 받을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를 물론 하고 책망은 사랑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말은 상대방을 감화시킬 것이며 화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힘과 능력을 주신다. 이 일은 그가 하시는 일이다. 한마디의 말이라도 경솔히 하지 말라. 험담과 경솔한 이야기와 참을성 없는 원망과 불순한 암시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입술에서 흘러나와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엡 4:29)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에 더러운 말이라는 것은 더러운 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성한 원칙과 배치되고 순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신앙과 배치되는 모든 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더러운 말은 암시적으로 말하는 불순한 말과 은근한 비평을 암시하는 말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불순한 말이 즉시로 배격되지 않으면 그것이 큰 죄를 범하도록 이끈다. 더러운 말을 억제해야 할 의무가 모든 가정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지워져 있다. 어리석은 말은 함부로 하는 무리들과 함께 있을 때에 할 수 있는 대로 화제를 바꾸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좋지 않은 말은 슬쩍 흘려버리고 유익을 주는 방편으로 화제를 전환시키도록 해야 한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언어 습관을 가르쳐 주는 것이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수양에 가장 좋은 학교는 가정생활이다.


 338  자녀들은 매우 어릴 때부터 저희 부모와 서로 간에 존경하고 사랑하는 말을 하도록 배워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온순하고, 참되고, 순결한 말만이 저희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도록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 자신이 날마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어 모본으로서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말"(딛 2:8)을 하도록 가르쳐 줄 수 있다. 이것이 부모들의 의무 중에 가장 크고 중요한 책임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들은 우리의 말이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피차에 도움이 되고 권장이 될만한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의 경험 가운데 있는 귀중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에 대하여, 또한 구주의 비할 데 없는 사랑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 우리의 말은 찬송과 감사의 말이 되어야 한다. 만일 그 정신과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으면 그것이 우리의 대화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영적 생애에 있어서 믿음을 나누는 일이 어려운 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사상, 고상한 포부, 진리에 대한 명백한 이해, 사욕이 없는 목적, 경건과 성결에 대한 갈망 등이 우리의 말속에 열매를 맺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어떠한 것임을 드러낼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말 가운데 나타나시게 되어 그 말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에게 그분에 대하여 말해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회당에 계실 때나, 길을 가실 때나, 언덕에서 조금 떨어진 배에 타셨을 때나, 바리새인의 잔치와 세리가 준비한 식탁에 앉으셨을 때를 막론하고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람들에게 더욱 고상한 생애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하셨다. 그분은 만물과 일상 생애의 사건을 진리의 말씀과 연결시켜서 말씀하셨다. 청중의 마음은 그분에게 이끌리었으니 이는 그가 병자를 고치시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시고, 아이들을 그의 팔에 안고 복을 빌어 주신 연고이다. 그분의 입을 열어 말씀하실 때에 청중들은 그분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말씀 하나하나가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었다. 우리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339  우리는 어디 있든지 다른 사람에게 구주에 대하여 이야기해 줄 기회를 엿보아야 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를 것 같으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환영했던 것처럼 우리를 환영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만 사람에 뛰어난"(아 5:10) 자이고, "그 전체가 사랑스"(아 5:16)러운 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 조급하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지혜로써 말해야 한다. 이 일은 우리가 우리의 말의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사업이다. 그런 재능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죄 사하는 구주로 소개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감화력  

그리스도의 생애는 계속 넓어지는 무제한의 감화력, 즉 당신을 하나님과 온 인류에게 연결시키는 감화력을 가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에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없게 하는 감화력을 주셨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동료 인간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대가족의 일원이 되어 있으므로 상호 간에 의무를 지고 있다. 아무도 사람들을 떠나 홀로 살 수 없다. 이는 각 사람의 행복이 각각 다른 사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힘쓰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사람은 각각 자신의 분위기 곧 생명력을 주는 믿음과 용기와 소망으로 가득 차고 달콤한 사상의 향기가 넘치는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거나 아니면 이와 반대로 불만과 이기심으로 침울하고 우울하고 쓸쓸한 분위기에 둘러싸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품고 있는 죄로 인하여 몹시 오염된 유독한 분위기에 둘러싸일 수도 있다. 우리를 두르고 있는 분위기로 말미암아 우리와 접촉하는 자들이 은연중에 그 영향을 받게 된다.


 340  이러한 감화에 대해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책임을 진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의복과, 품행과, 심지어는 안색까지도 각각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게 끼친 감화가 선악 간에 사람이 판단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렇게 전달된 충동은 반드시 수확하게 될 씨앗이 된다. 이 충동은 우리가 그 범위를 알 수 없는 인간사(人間事)의 긴 사슬의 하나의 고리가 된다. 만일 우리가 모본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선한 원칙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 같으면 우리는 그들에게 선을 행할 능력을 주는 것과 같다. 이 능력을 받은 사람이 그 같은 감화를 다른 사람에게 끼치게 되고, 또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끼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무의식 중에 주는 감화로 인하여 여러 천만인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조약돌을 호수 가운데 던지면 하나의 파문(波紋)이 생기고, 이어서 다른 파문들이 생기게 되어, 그 파문이 증가됨에 따라 파문이 그리는 원형(圓形)은 점점 넓어져서 마침내는 그 호수의 가장자리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의 감화도 역시 그러하다. 우리의 감화력은 우리가 알고 조종할 수 있는 이상으로 멀리 퍼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거나 저주가 되기도 한다. 품성은 힘이다. 참되고 이기심 없고 경건한 생애가 나타내는 무언의 증거는 소멸할 수 없는 감화력을 발산한다. 우리의 생애 가운데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냄으로써 우리는 영혼 구원 사업에서 그리스도와 협력하게 된다. 우리의 생애 가운데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냄으로써만 우리는 그리스도와 협력할 수 있다. 우리의 감화가  넓으면 넓을수록 더욱 많은 선을 행할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그들의 생애에 율법의 원칙을 실천할 때 곧 저희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저희의 이웃 사람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을 증거 할 때 교회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화력은 이에 못지않은 악에 대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영혼을 잃게 하는 것은 더욱 두려운 일이다. 우리의 감화력이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341  그리스도와 함께 모아 들인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분으로 부터 흩어 버리고 있다. 이 때문에 교회가 매우 연약하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남을 비평하고 비난한다. 그들은 의심과 질투와 불만을 표시하므로 결국은 자기 자신을 사단의 도구가 되게 한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대적 마귀는 그들을 통해서 자기의 목적을 이루고 있다. 나쁜 인상이 나타나고 그늘이 드리우고 사단의 화살이 과녁을 적중한다. 그리하여 불신임과 불신과 철저한 무신론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박히게 된다. 동시에 사단을 위해 일한 자들은 저희가 만든 회의론자(懷疑論者)들과 책망과 권면에 대해 마음을 완고하게 갖는 자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저희를 그런 사람들과 비교해서 덕이 있고 의롭다고 우쭐댄다. 그들은 그들의 품성이 이처럼 비참하게 파괴된 것은 그들의 재갈 물리지 아니한 혀와 반역적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의 감화 때문에 이들이 시험에 빠져 타락하게 되었다.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의 경박, 이기적인 방종과 부질없는 냉담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의 길에서 떠나게 한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저희가 끼친 결과를 보기를 두려워할 자들이 많이 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우리는 이 천품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선한 감화를 끼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루나 한 시간이나 한 순간의 일도 일측 할 수 없으므로 단 하루도 우리의 길을 천부께 맡기지 않고는 그 날을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리를 지키도록 배치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천사의 보호에 맡긴다면 위험할 때마다 저희가 우리의 오른편에 서서 도와줄 것이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좋지 않은 감화를 끼칠 위험이 있을 때에 천사들은 우리의 옆에서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도록 지혜를 주고, 적절한 말을 하게 하며, 우리의 동작을 다스려 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감화가 비록 소리도 없고 의식되지 않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와 천국으로 이끄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시 간 

 342  우리의 시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매 순간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엄숙한 의무가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 가운데 그분이 시간에 대해서처럼 엄격하게 따지실 것은 없다. 시간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매분초의 시간을 귀히 여기셨으므로 우리도 시간을 그와 같이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인생은 헛되이 보내기에는 너무나 짧다. 우리가 영생을 위하여 준비할 은혜의 기간은 불과 며칠밖에 없다. 우리는 낭비할 시간도 없고, 이기적 오락을 위하여 쓸 시간도 없고, 죄에 방종할 여가도 없다. 내세 즉 영생을 위하여 품성을 개발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조사 심판을 위하여 준비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사람은 겨우 생을 시작하자마자 죽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생을 얻는 데 대한 참된 지식을 얻지 못한다면 간단없는 세상의 수고는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모든 시간을 근무하는 날처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하늘 집과 불멸의 생명을 위하여 자기를 적합한 자가 되도록 준비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잘된 일이다. 우리는 시간을 아끼라는 권면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일단 낭비된 시간은 전혀 회복할 수 없다. 우리는 단 일초도 회복할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남아 있는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과 하나님의 크신 구속 사업에 그분과 동역자가 되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성품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왕족의 일원이 되고, 하늘 임금의 자녀가 된다. 그는 천사들의 친구가 되기에 합당하게 된다.


 343  지금은 동료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일할 때이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사업을 위해 금전만 바치면 그것으로써 저희가 해야 할 본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저희는 주를 위하여 개인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이용하지 않고 헛되이 지내버린다. 그러나 건강하고 힘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활발하게 봉사하는 것은 저희의 특권이요 의무이다. 모든 사람들이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금전을 바치는 것만으로는 이 일을 대신할 수 없다. 일분일초에는 영원한 결과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언제 부름을 받든 지 봉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비상 대기병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도움이 요구되는 사람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지만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지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사람에게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눅 12:20)라고 말씀하실는지 알 수 없다. 우리의 태만으로 인하여 그 사람이 주를 만날 준비를 갖추지 못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큰 심판 날에 우리가 하나님께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우리가 일시적이고 세속적인 사물 곧 영원한 사물과 비교할 때에 하나의 작은 원자에 불과한 일들을 위하여 근심하고 걱정하는 일에 온 정신을 쏟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엄숙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사 현세의 일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이 일을 부지런히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 못지않게 참된 신앙의 일부를 이룬다. 성경은 게으름을 시인하지 않았다. 게으름은 세상을 괴롭히는 초대의 저주이다. 참으로 거듭난 남녀라면 모두 부지런히 일하는 자가 될 것이다. 지식과 지능을 습득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성공 여부는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애 달려 있다. 지능을 계발하는 데 있어서 빈곤이나 신분의 비천이나 역경으로 인하여 지장을 받을 필요는 없다.


 344  일분일초라도 소중히 여겨라. 쓸모없는 이야기로 허비하는 시간, 아침에 침상에서 공연히 써버리는 시간, 전차나 기차로 여행하는 시간,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시간, 식사를 기다리는 시간과 같은 이런 부스러기 시간을 잘 붙잡아 독서와 연구와 숙고하는 일에 쓴다면 얼마나 큰 일을 성취하게 될까! 확고한 목적과 불요불굴의 근면함과 주의 깊은 시간의 절약이 지식과 지능을 습득하게 해서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어떠한 영향력 있고 유용한 지위라도 차지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해 줄 것이다. 질서 있고 철저하고 민첩하게 하는 습관을 배양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의무이다. 일을 더디고 서툴게 하는 것은 그 일이 어떠한 성격의 일이든지 간에 핑계의 조건이 될 수 없다. 항상 일을 하고 있는 데도 그 일이 끝나지 않는 것은 그 일에 마음과 정성을 쏟지 않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데 남보다 더디고 서툰 사람은 반드시 그 결점을 고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가장 좋은 결과를 얻도록 시간을 효과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머리를 쓸 필요가 있다. 기지(機智)와 방법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열 사람은 집안일을 늘 하고 있는 데 그것은 할 일이 그렇게 많아서가 아니라 시간을 절약할 계획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느릿느릿하고 우물거리기 때문에 아주 적은 일을 크게 만든다. 그러나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 같은 우물거리는 습관을 고칠 수 있다. 일할 때는 먼저 분명한 목표를 세우도록 하라. 어떤 일정한 일을 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요구되는지를 먼저 결정하고 그 결정한 시간 안으로 그 일을 마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의지력을 작용시키면 손도 민첩하게 움직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바로잡고자 하는 결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의 옳지 못한 습관이 그대로 굳어 버릴 수 있는 반면에, 저희의 능력을 잘 계발시킴으로 가장 고상한 봉사를 할 수 있는 재능을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저희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어떤 곳, 어떤 장소에 있게 될 것이며 그들의 실력은 사람들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345  많은 유년과 청년들이 가정에서 책임을 나눠짐으로써 부모에 대한 효성을 표시할 수 있는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해 버린다. 청년들은 다른 사람이 져야 할 많은 책임들을 저희의 튼튼한 어깨에 질 수 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어려서부터 매우 황동적이었다. 그분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살지 않았다. 그분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오히려 당신의 부친 요셉과 같이 목수 일을 하셨다. 그분의 직업은 의미가 있는 직업이었다. 그분은 품성을 건설하는 분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그분이 하시는 일은 모두 완전했다. 그분은 당신의 거룩한 능력으로 품성을 변화시키는 일에 완전하셨던 것처럼 세속적인 일에도 완전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셨다. 부모들은 저희 자녀들에게 시간의 가치와 시간을 옳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자녀들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위하여 선교사가 될 수 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죄를 범할 수는 없다. 그렇게 둔다면 자녀들은 쉽게 게으름뱅이가 되고 나아가서는 무능하게 되어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저희가 장차 자라서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직업에 종사하게 될 때에도 그들은 자기 일을 게으르고 느리게 될 것이요, 그러면서도 저희들은 신실하게 일했을 때에 받게 될 보수를 기대한다. 이런 종류의 일꾼들과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꾼들 사이에는 하늘과 땅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세상일에 나태하고 부주의한 습관을 가진 사람은 그 습관들이 저희 신앙 생애에 재현되어 그것들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하여 능률적인 봉사를 하기에 적합지 못한 자가 되게 할 것이다. 부지런히 노력했더라면 세상에 축복이 되었을 많은 사람들이 게으름으로 인하여 파멸되었다. 그들은 하는 일이 없고 분명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만 가지 시험을 초래한다. 악한 친구들과 못된 습관이 그들의 심령과 정신을 부패시켜 그 결과로 그들은 이 세상에서 파멸될 뿐 아니라 내세를 위한 생명까지도 잃어버리게 된다.

 

원저자 : 엘렌 G. 화잇

발행처 : 시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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