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업/교회증언 1.2.권

교회증언 1권 시대적 배경

동심초(남양주) 2022. 2. 18. 14:00

 시대적 배경 

 메밀밭 

 

 

 시대적 배경 

 5  총 9권으로 간행된 교회증언은 엘렌G,화잇이 쓴 기사와 편지들로 영어 원문 4,738페이지에 달하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주는 교훈과 복리에 관한 내용을 담겨 있다. 1855년 12월, 16페이지짜리 소책자의 출판과 함께, 계속해서 번호가 매겨진 소책자와 출판과 함께, 계속해서 번호가 매겨진 소책자와 서적이 이어졌고 때때로 그런 일련의 권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기별들은 자연히 당시의 드러난 문제들을 취급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 초창기 교회가 직면했던 동일한 문제와 위험, 그리고 같은 상황을 우리도 맞이하고 있다. 제일 먼저 번호가 붙여진 증언들은 기억할 만한 1848년의 "안식일 총회등"이 있은지 불과 7년여 후에 출판되었다.그 때에 새롭게 회복된 안식일과 성소 진리를 받아들인 재림 신자들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단이 주장하는 독특한 교리의 기초를 놓았다.이 몇 년 동안 하나님의 사업은 놀라운 방법으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단지 서너 사람의 전도자가 당시 스스로를 "기별자들"이라 자칭한 자들밖에 없었다. 이들은 모두 노동으로 번 재물을 하나님 사업에 헌금으로 바쳤으며 거기에다 가난한 소수 신자들이 자원하여 바치는헌금에 의존하여 일했다.이런 초창기의 활동은 거의 대부분 뉴잉랜드 주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다.소책자로 된 최초의 증언이 출판된 1855년에는 안식일과 재림기별을 전하는 전도자가 약 20여면 정도 있었으며 신자 수도 100명 미만에서 2,000명을 능히 육박할 만큼 자라났다.


 6  1849년 여름에 화잇 목사가 코네티컷 주 미들타운에서 시작한 출판 사업은 역경 가운데에서도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졌다.그리하여 1855년에는 미시간 주 베틀크릭에 자체 건물을 세우게 되었다.오늘날 교회증언 1권에 있는 첫 14개의 증언은 13년 간의 기간에 해당된다.그러므로 이제 1855년에서 1868년까지의 기간에 주어진 이 기별이 담고 있는 몇 가지의 경험과 발전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진리의 매신저"라는 출판물 때문에 메신저 파로 알려진, 이전 형제들 중 목회직에 있던 몇 사람에 의해 최초의 반역과반대가 시도되었는데, 이는 슬픔과 혼란을 초래하였다.초기 권면은 이 운동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그것이 혼란한 중에 신속히 끝날 것을 예언한다.근거 없는 "성화"의 소망으로 양심적인 사람들을 미혹하려는 광신 운동이 여러 곳에서 나타났는데, 특히 동부 몇 주와 위스콘신에서 그러했다.어떤 경우에는 이런 가르침이 "방언의 선물"을 동반한다고 여겨졌다.그러나 원수의 이 같은 기만에서 하나님의 사업 사업을 구원하는 분명한 교훈이 교회에 주어졌다.세월은 흘렀고 예수의 재림은 분명히 지연 되었다.그리고 1844년의 운동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그 운동에서 깊은 영적 헌신도 경험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오면서 열렬한 첫사랑 또한 잃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동부에서 몰려온 이주민들 중에는 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서부는 열리면서 토지와 가옥에 대한 투기가 일어났다.아울러 세상과 동질화 하는 위험이 널리 퍼지는 것에 대한 가장 열렬한 경고와 호소가 교회에 더욱 큰 헌신을 요구하며 주어졌다.


 7  1856년 후반에는 요한계시록 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의 기별"에 관심이 집중되었다.예전에는 이 권면이, 전진하는 셋째 천사의 빛을 따르지 않은 재림 신자들과, 안식일 진리를 심히 반대하여 다른 교회를 
조직한 신자들에게 심히 반대하여 다른 교회를 조직한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미지근하여 참된 증인의 권고에 유의할 필요가 있는 그들 자신에게 적용 했다.2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신자들은 이 기별에 크게 감동하였다. 이 기별이 그들을 셋째 천사의 큰 외침 가운데로 직접 인도해 주기를 기대했다. 이 운동과 관련된 증언에 나타난 뜨거운 기별은 이런 배경을 알 때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당시는 토론과 논쟁의 시대였다. 우리 목사들 중 많은 사람이 안식일과 그 밖의 다른 진리에 관해 토론하자는 도전을 받았으며, 어떤 사람은 그런  논쟁에서 공세적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이런 일에는 하늘의 권면이 필요했다. 우리의 탁월한 목사 중 한 사람인 "모세스 헐"은 강신술사와 논쟁을 했다. 처음에는 그들이 도전했고, 나중에는 그가 도전했다. 이처럼 앞뒤를 가리지 않는 행동의 결과, 그는 강신술의 미로(迷路)에 빠지고 말았다. 화잇 부인이 당시 여러 해에 걸쳐 그에게 쓴 편지를 모아 출판한 책이 그녀의 "헐 목사에게 쓴 편지"였는데, 만일  당시 헐 목사가 그 권면에 유의했었다면 믿음이 파선되지 않고 구조되었을 것이다. 당시는 교회 조직 절차를 밟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둘째 천사의 기별을 체험한 몇몇 사람은 교회 조직이 "바벨론"의 표가 된다는 염려를 나타냈다.그들이 형제들과 함께 직명하고 토의했던 조직의 문제는 화잇 부인을 통해 교회에 주어진 많은 서신에 나타나 있다.그리고 1860년에는 출판 사업이 조직되었고, 많은 토론과 몇 가지 질문이 거듭된 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란 명칭이 채택되었으며, 이런 활동과 명칭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일치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8  1863년 5월 대총회의 조직으로 교회 질서를 마지막 절차가 취해진 직후, 곧이어 6월에 오세고에서 기념적인 이상이 주어졌다.그 때 화잇 부인은 건강 법칙에 대한 순종과 교인들이 승천하기에 적합한 품성을 이루는 일 사이에 관계에 대한 계시를 포함한 이른바 "건강 개혁"에 관한 원칙을 이상으로 보게 되었다.이것과 밀접히 관련된 것이 의복 개혁이었다.2년 후에는 "우리 자신의 의료원을 가져야 한다."는 권면을 받았고, 그에 따라 건강 개혁원을 세웠으며 동시에 이에 대한 많은 권면이 주어졌다.빛을 순종하므로 이 기관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모습이 되기까지 성장했다.이 교회증언 1권이 주어진 기간 동안 그 기관을 성공으로 이끄는 주요 원칙들이 분명히 드러났다.이 기간 동안 남북전쟁의 문제 또한 있었으므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전시에 정부와의 관계를 규명할 필요에 직면하였다.그리스도인의 품성 형성을 위한 가정의 중요성과 부모의 책임 등이 강조되었고, 특별히 청년들에게 대한 많은 기별이 
강력하게 주어진 것도 1권을 통해서였다. 그 당시의 운동과 밀접히 관련된 특별한 문제들 외에도 교회의 징계와 승천을 위한 준비 등에 관한 일반적 성격의 많은 권면과 권고가 있었다.

그 당시는 남은 교회의 발전에 중요한 시기였고, 증언의 권면들이 크나큰 영향을 미쳤던 시기였다.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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