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3 권 // 교회증언 21호(1872) 뉴욕의 사업
교회증언 21호(1872) 뉴욕의 사업
슬로베니아에서
뉴욕의 사업
48 1871년 12월 10일, 버몬트에 있을 때 나는 뉴욕과 관련된 하늘의 지시를 몇 가지 받았다. 그 주의 사업 근황은 참담할 정도였다. 일꾼은 소수밖에 없었으며, 그들마저도 이 시대를 위한 신성한 진리에 대한 신앙고백이 요구하는 수준만큼 효과적이지 못했다. 말과 교리로는 목회 하지만 철저한 일꾼 노릇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그 주에 있다. 비록 그들이 진리에 관한 이론을 믿고 수년간 설교했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 한 결코 유능한 일꾼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 유익을 끼칠 만한 자격도 갖추지 못한 채 교회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도울 준비를 하기 전에, 주께서 "마시려는 잔"을 마시고 "받으시려는 침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견디고자 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뉴욕의 사업을 성경의 표주까지 끌어올리려면 무아적이고 헌신적인 일꾼이 필요하다. 뉴욕의 목사들은 교화들을 순방하느라 해야 할 의무를 감당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의 사업으로 부르셨다면 그것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새로운 지역으로 나아감으로 스스로를 입증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영혼 구원 사업을 그들에게 맡기셨는지의 여부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49 만일 테일러(Taylor), 손더스(Saundera), 코트렐(Cottrell), 휘트니(Whitney), 형제와 린지(Lindsay) 부부가 새 지역에서 일했더라면,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많이 전진했을 것이다. 대적들의 반대를 만나게 되면 자신의 입장을 지지해 주는 논증을 찾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함으로 그들의 성경 지식이 증진되어 어떤 형태의 반대에도 하나님 안에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똑같은 교회들을 거듭 방문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이들은 당연히 겪어야 할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연약하게 되어 진리를 위해 자원하여 행하며 희생하는 일에 굳세지 못할 것이고, 결국 유능하지 못한 일꾼이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을 명심하고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바치신 대상인 소중한 영혼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이들은 자신의 안일이나 쾌락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 하"(눅 19:10) 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 그분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말씀하셨다. 만일 뉴욕에서 있는 목사들이 교회를 돕기 원한다면, 새 지역으로 가서 영혼들을 진리로 이끌기 위해 수고하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목사가 사업에 대한 열성으로 불타오르고 진리의 능력을 절감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교회가 보게 된다면, 교인들에게 새 생명과 활력이 불어넣어질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감동을 받아 사업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행하게 될 것이다.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자신의 재물을 희생하는 일에 있어서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인 만큼 자원하는 무리는 이 세상에 없다. 만일 목사가 게으름과 무능함과 영성 부족으로 교인들을 완전히 실망시키지 않는다면, 그들은 판단과 양심에 호소하는 어떤 일에든지 대체적으로 호응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열매를 보기 원한다. 그리고 뉴욕의 형제들이 목사들에게 열매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목사들은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50 뉴욕의 목사들은 현재의 상황보다 훨씬 더 전진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열렬한 노력과 강력한 방해를 불러일으키는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했더라면,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반대자들에게 답변하기 위해 기도하게 되었을 것이요, 자신의 재능을 활용함으로 말미암아 능력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수년간 설교해 온 목사들이 뉴욕에 있지만, 일련의 강연을 맡길 만한 이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왜소해진 상태이다. 하나님 안에서 굳건해질 수 있는 길이 되었을 말씀을 연구하고 반대에 대처하는 일에 있어서 정신을 단련시키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형제들을 크게 의지하는 대신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충성된 군병과 같이 하나님과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진영 밖으로" 전진했더라면, 그들은 체험을 얻었을 것이며 지금쯤이면 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로 되는 어떤 곳이든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 만일 뉴욕의 목사들이 스스로 일하기 위해 인근 교회들을 떠나 도중에 멈춰 서지 않았더라면, 교회와 목사 모두 영성과 진리에 대한 지식에서 현제 더욱 크게 발전했을 것이다. 뉴욕의 많은 형제자매들이 건강 개혁을 하기 전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 주에서 진정한 건강 개혁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뉴욕의 형제들에게 빛과 영적 깨달음이 주어졌다. 그러나 깨달은 진리와 영혼에 비친 빛의 진가를 인정하고 소중히 다루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날에 그들에게 불리한 증언이 될 것이다. 진리는 믿고 순종하고자 하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주어졌다. 그들의 정죄는 그들에게 빛이 없는 것이 아니라 빛을 가졌으되 그대로 행치 않았다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스러운 식욕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인간에게 풍부하게 공급하셨다. 그분은 땅의 소출을 통해서 입맛에 좋을 뿐 아니라 인체에 영양을 공급해 주는 풍부하고도 다양한 음식을 인간 앞에 차려 좋으셨다. 이에 관해서 자애로우신 하늘 아버지께서는 "임의로 먹되"(창 2:16)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과일과 채소와 곡식을 신체의 법칙을 어기는 일 없이 즐겁게 맛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많이 가공하지 않고 매우 단순하게 조리한다면, 신체에 영양을 공급하여 육식을 사용하지 않고도 신체의 타고난 활력을 보존시켜 줄 것이다.
51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만들시고,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세상에 축복을 안겨 주고 시 여자께 영광을 반사할 수 있는 속성을 부여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부절제든지 감각 기관을 마비시키고 노신경의 활력을 약화시키기 때에 영원에 속한 사물을 분별하지 못하고 평범한 것과 같은 차원에 놓게 된다. 고귀한 목적을 위해 고안된 정신의 고등 능력은 비열한 정욕의 노예로 전락한다. 만일 신체 습관이 올바르지 못한다면 전신력과 도덕 능력은 강해질 수 없는데, 이는 신체와 도덕 사이에는 강력한 교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깨닫고 형제들에게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이들 가운데 도덕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그릇된 습관에 몰두하고 신체와 도덕의 법칙을 무시함으로 인해 덕성과 경건의 전반적인 표준이 지극히 낮아져 있다. 신체 건강의 표준을 저하시키는 습관들은 정신력과 도덕 능력을 약화시킨다. 부자연스러운 식욕과 정욕에 몰두하는 것은 두뇌 신경에 주도적인 영향을 끼친다. 육욕적 기관이 감화되는 반면에 도덕 능력은 저하된다. 부절제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이유는 고등 능력이 정욕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신체 및 도덕 법칙에 순종하여 단순하게 먹고 입는 문제에 대해 빛을 받았지만 의무를 지적하는 빛으로부터 돌아선 자들은 다른 문제에서도 의무를 회피하게 될 것이다. 만일 천연 십계명을 어기게 될 것이다. 십자가를 감내하고 도덕적 치욕을 싫어하는 것을 명백히 꺼려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원칙 때문에 조소당할 것이다. 세상에 동조하는 모습이 나그네와 행인이라 공언하며 주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살핀다는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뉴욕에서 안식일 준수 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 건강한 신체, 건전한 정신, 성화된 마음보다는 세상의 유행과 정욕에 더 단단히 집착하는 자들이 많다.
52 하나님께서는 뉴욕의 신자들을 시험하고 검증하고 계신다. 그분은 어떤 이들에게 심중에 있는 것을 펼치도록 어느 정도의 번영을 허락하셨다. 교만과 세상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었다. 진리를 사랑하노라 공언하지만 사실상 진리의 원칙은 희생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깨어서 행동해야 한다. 그들의 감화는 다른 이들의 견해와 습관이 형성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감화로 영혼들의 운명이 경정되다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주님은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한 상세하고도 명백한 진리들을 이끌어 정결하게 하신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기를 원한다면 교만과 건강에 해로운 관습, 과시욕과 인정받기 좋아하는 마음은 세상에 내버려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1~14). __ 교회는 체질이 필요하다. 일하는 대열에 서기 전에 철저한 회심은 필수적이다. 이기심, 교만, 시기, 악의, 사악한 추측, 중상, 험담, 잡답이 그 교회의 넘친 나머지 하나님의 영께서 그들과 거의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었다. 하나님을 안다고 공언하는 이들이 형 상태에 머물러 있는 한, 그들의 기도는 그분의 눈에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들은 행실로 자기의 믿음을 뒷받침하지 않으며, 믿노라고 공언하여 진리에 먹칠을 하기보다는 어예 진리를 공언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법한 이들도 있다.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공언하면서도 의의 원수의 종노릇을 한다. 그들의 행실은 하나님과 교통 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뜻에 ㅅ누종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그들은 아이 장난처럼 신앙생활을 하며, 잘 토라지는 아이처럼 행동한다.
53 전 세계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의 거대한 형제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일관된 거룩한 삶을 통해서 세상과 구별되는 이들의 행동을 주관해야 할 정신과 원칙을 분명하게 규정한다. 상호 간의 사랑과 하늘 아버지께 대한 지극한 사랑이 대화와 행함 가운데 예증되어야 한다. 현재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의 상태는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을 일삼는 아이들이 있는 집안과 같다. 늘 배우지만 진리를 아는 데는 결코 이르지 못하는 부류에 속할 위험이 뉴욕의 목사들에게 있다. 그들은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는다. 듣는 자일뿐 행하는 자는 아니다. 이러한 목사들은 사업의 고귀한 특성을 인식시켜 줄 수 있는 진리 안에서의 체험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세상 역사에서 지극히 엄숙하고 중대한 시점에 살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시대의 위기 가운데 있다. 중요하고도 두려운 사건들이 우리 앞에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율법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로부터 그분의 백성을 분리시킨 죄들에 대해 괴로워하고 울며 통회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우리의 형편과 낮은 신분에 대해 깨닫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 형편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크나 큰 경종을 울려야 한다. 하나님 말씀과 기도 가운데로 피해야 하며, 개인적으로 주님을 열렬하게 찾음으로 그분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을 우리의 첫 번째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 교인들은 위탁받은 재능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공언하는 신성한 진리들에 부응하는 고상한 위치에 올라서지 못한다면 책임을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앞길을 비추어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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