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문집 2 증보(增補) // 교회의 난제들*
교회의 난제들*
중국 토이요구
교회의 난제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에게 : 오류가 너무도 신속히 퍼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업을 수행하는 일에 때에 있어야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깨닫도록 힘써야 한다. 캄캄함이 세상을 가릴 것이며 칠흑 같은 어두움이 사람들을 덮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것이 기만과 오류의 두터운 어둠에 덮여 있으므로, 우리는 어리석음을 떨쳐 버리고 예수님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신령한 빛과 영광에 이끌릴 수 있는 하나님과 가까이 사는 것이 온당한 일이다. 어두움이 짙어 가고 오류가 증가할수록 우리는 진리에 대한 보다 철저한 지식을 가져야 하고 성경을 가지고 우리의 입장을 고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105 우리는 진리를 통하여 성화되고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해야 하며, 우리의 거룩한 공언에 일치되게 삶으로써 주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더욱더 비춰 주실 수 있도록 그리고 그분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고 그분의 능력으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경계하지 않는 순간마다 우리는 원수의 공격에 시달리기 쉬우며 어두움의 권세에 정복당할 위험이 매우 크다. 사탄은 그 의 천사들에게 조금도 방심하지 말고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뒤집어엎고,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불순종과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어둠으로 에워싸서 그들이 정신 차리지 못하게 하고, 그들이 사랑하노라고 하는 그 사업에 욕을 끼칠 행로를 걷게 하고, 교회에 슬픔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한다. 이렇게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경계를 소홀이 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어두워지며, 하늘의 빛은 서서히 사라져 간다. 그들은 얽매이게 하는 자신들의 죄를 발견할 수 없다. 이때 사탄은 그들 주위에 그물을 짜며, 그렇게 하여 그들은 그의 올가미에 걸리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다. 우리는 지혜를 얻고 인도하심을 받기 위하여 그분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분의 영광과 교회와 유익과 우리 자신의 구원을 염두에 두고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죄들을 정복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승리를 얻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홀로 서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을 일찍 배울수록 더 좋다. 각 사람은 자신이 어디서 넘어지는지를 발견한 다음, 그의 죄들이 자신을 정복하지 못하게 하고 그것에 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신실하게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교회는 큰 어려움을 면할 수 있게 된다.
106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의 집을 떠나 일할 때 하나님의 기별자들은, 여러 해 동안 진리 안에 있었지만 자신들의 고삐를 불필요하게 느슨하게 하여 자신에 대해 경계하기를 그치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생각하기로는 자신을 유혹하도록 그 원수를 유혹하는 여전히 연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시간을 많이 쓴다. 그들의 대수롭지 않은 시험과 어려움에 빠질 때면 주의 종들은 그들을 방문하도록 그 원수의 유혹하는 연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시간을 많이 소비한다. 그들은 몇 시간이고 심지어 몇 날이고 붙들려 있으며, 자기들의 경우가 하나님의 종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까 염려한 나머지 각기 그들의 사소한 어려움과 시련을 가능한 한 심각하게 보이고 확대시켜서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그 종들의 영혼은 근심하고 상처를 입는다. 이러한 사소한 시련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하나님의 종들의 도움을 위존 하는 대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깨어져서 하며, 그 시련이 제거될 때까지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별자들을 일터로 부르신 목적의 전부는 그들의 명령에 따라와서 자신들을 그들의 팔로 안는 것이며, 그들의 사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신들의 분별없는 행동들과 그 원수에게 굴복하여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고집 센, 흠잡는 정신을 품음으로써 자초한 그들의 시시한 시련들과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때에 주린 양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생명의 떡이 없어서 죽어 가고 있다. 진리를 알고 그 가운데 세움을 입었으나 진리에 순종하지 않은, 즉 순종했더라면 이런 시련들 중 많은 것을 면했을 사람들이 기별자들을 붙들고 있으며,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터로 부르신 바로 그 목적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하나님의 종들은 교회 안의 이런 문제들로 말미암아 근심하고 용기가 꺾인다. 그때 우리는 그들의 짐에 깃털 하나의 무게만큼도 더 얹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오히려 용기를 주는 말과 믿음의 기도로써 그들을 도와야 한다.
107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이 많은 도움을 달라고 그들에게 요구하는 대신 스스로를 살피고 다른 이들을 돕는 데 힘쓴다면, 그들이 얼마나 더 자유롭겠는가! 사실상 하나님의 종들은 진리가 아직 전해지지 않은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때 그들의 형제들의 쓸데없는 시련들로 말미암아 유발된 상처 입은 마음을 가지고 간다. 이 모든 것 외에도, 그들은 반대자들의 불신과 편견에 부딪혀야 하며, 사람들에 의해 짓밟힐 수고 있다. 만일 그분의 종들이 자유로운 정신으로 진리를 그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전할 수 있도록 실망과 시련으로부터 해방된다면, 그 심령들에 얼마나 쉽게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얼마나 더 많은 영광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게 되겠는가. 하나님의 종들의 수고를 그토록 많이 요구하고 그들 자신이 해결해야 할 시련들로 그들에게 짐을 지운 죄를 범해 온 사람들은 자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쓰인 모든 시간과 자금에 대해서, 그렇게 함으로써 원수를 흡족하게 해 주었던 것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회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형제들을 도와주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결코 그들의 시련이나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가 전체 모임에 짐을 지우거나 몇몇 기별자들이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올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 대신 그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되고, 그들의 시련들을 방해거리가 되지 않도록 치워 놓고, 일꾼들이 올 때 그들을 약하게 하는 대신 그들의 손을 붙들어 줄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교회의 소망*
근래에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겸손한 추종자들을 찾기 위하여 주위를 살펴보았을 때 내 마음은 심히 괴로웠다.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을 기다린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 순응해 가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인정보다 주위 사람들의 갈채를 훨씬 더 열렬히 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갓 떠나온 명목상의 교회들처럼 냉랭하고 형식적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기별의 말씀이 그들의 형편을 완벽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계 3:14~20을 보라.) 그들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고 그저 "미지근"하다. 그들이 "신실하고 참된 증인"의 권고를 듣고 열심을 내어 회개하고, "불로 연단한 금"과 "흰옷"과 "안약"을 얻지 않는다면 그분은 그들을 통하여 내치실 것이다. 한때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며 크게 기뻐서 외치던 사람들 중 많은 무리가 지금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믿는다고 하여 그들을 조롱하고 그들에 대하여 편견을 일으키고 그들의 영향력을 파괴시키려고 온갖 형태의 거짓을 퍼뜨리던 교회들과 세상과 같은 땅을 밟고 서 있는 때가 이르러 왔다. 지금 누구든지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한다면,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을 체험케 하실 것이며, 그분의 사랑을 마음에 풍성하게 부어 주심으로써 갈망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실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그분을 찬양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면, 주님의 속히 오심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이 사람들은 그들을 자주 기만당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최면술에 걸렸거나 어떤 악한 영에 사로잡혔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는 사람 중 다수가 세상처럼 입고 말하고 행동하며,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리스도인이라는 그들의 공언뿐이다.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공언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천국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사물들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그들은 마땅히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벧후 3:11~12).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그러나 재림 신도라는 이름을 지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어떻게 그분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가를 배우기보다는 몸을 치장하고 세상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게 되는 방법을 더 많이 연구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109 만일 우리의 모본이신 사랑스런 예수께서 초림 때처럼 그들과 그리고 일반 적으로 신앙을 공언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신다면 어떻게 될까?그분은 구유에서 탄생하셨다. 그분은 생애와 사업을 끝까지 따르라. 그분은 간고를 겪으셨고 질고를 아는 분이셨다. 이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이는 곳도 없이 통으로 짠 소박한 겉옷을 입으시고 머리 둘 곳도 없으셨던, 초라하고 비천한 구주를 뵈올 낯이 없을 것이다. 그분의 흠 없는 자아 부정의 생애는 그들을 정죄할 것이다. 그분은 거룩한 엄숙성은 그들을 헛된 웃음과 경박함에 대한 고통스러운 제어 장치가 될 것이다. 그분의 거짓 없는 대화는 그들의 세속적이고 탐욕적인 담화를 억제시킬 것이며, 그분이 꾸밈없는 예리한 진리의 말씀은 그들의 진정한 성품을 드러내 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온유한 모본, 사랑스러운 예수를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해 버리기를 원할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구실 삼아 그분을 잡으려 시도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외치는 일에 선봉을 설 사람이 될 것이다. 겸비하게(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좇아가 보자. 그때 "제자의 온 무리가 …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눌 19:37:~46).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이 제자들을 잠잠케 하고자 했던 바리새인들처럼 주제넘을 것이며, 그들은 거의 틀림없이 "광신이다! 최면술이다! "라고 고함을 지를 것이다. 그들의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길 위에 까는 제자들은 그들은 사치스럽고 허황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냉담하거나 무감각하지 않은 백성,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한 백성을 이 땅에서 소유하실 것이다. 그분은 일단의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선택하신 사람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110 예수께서 오신다. 그러나 초림 때처럼 베들레헴의 아기로서가 아니라, 제자들이 큰 소리로 "호산나"를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했던 때처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것처럼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리고 지구로 오는 예수님을 호위할 거룩한 천사들의 수행단과 함께 오신다. 모든 천사가 다 떠나서 하늘은 텅 반 곳이 될 것인 한편, 기다리는 성도들은 마치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 그분을 바라보던 갈릴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늘로부터 오시는 그분을 고대하며 하늘을 쳐다볼 것이다. 그때에는 오직 거룩한 자들과 겸손의 모본이신 그분을 온전히 좇아 온 자들만이 그분을 바라보면서 희열에 넘쳐 "보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저를 기다렸으니 저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라고 외칠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될 것이며 그 나팔 소리에 티끌 가운데서 잠자던 성도들은 깨어 일어나 영원히 죽지 않음을 옷 입고, "승리로다 사망과 음부에 대한 승리로다"라고 외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변화된 성도들은 천사들과 함께 끌어 올리워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며, 다시는 그들의 사랑의 대상이신 분과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전망,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소망 그리고 그분 자신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신 이와 같은 구원을 우리 앞에 두고도 우리가 잠잠할 것인가? 우리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제자들이 그랬던 것만큼도 하나님을 큰 소리로 찬양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의 전망이 그들의 것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지 않은가? 우리가 이런 소망, 불멸의 입을 큰 소망 그리고 영광으로 충만한 소망을 갖고 있는데 누가 감히 큰 소리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금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으며, 더 많은 것을 갈망한다. 내 전 존재가 하나님을 좇아 부르짖는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해질 때까지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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