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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리/초기문집

초기문집 // 안식일의 의의가 드러남 (중요한 안식일 총회들)개척자들이발행하는 일을 시작함

by 동심초(남양주) 2022. 3. 14.

 안식일의 의의가 드러남 (중요한 안식일 총회들)개척자들이발행하는 일을 시작함 

 크리스마스로즈 

 

 

   안식일의 의의가 드러남   

제임스와 엘렌 화잇은 베이츠의 소책자에 제세된 성경적 증거들만을 가지고 그들의 입장을 취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제 칠일 안식일을 지키고 가르친 지 7개월 후인 1847년 4월 첫 안식일에, 주님께서는 메인주 톱 샴에서 안식일의 중요성이 강조된 한 계시를 화잇 여사에게 주셨다. 그녀는 하늘 성소 내의 법궤에 들어 있는 율법의 돌비들과 넷째 계명을 둘러싼 빛의 후광도 보았다. 이 이상에 대한 설명에 위해서는 64쪽~67쪽을 보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이전에 취한 입장이 확증되었다. 그 이상은 또한 안식일 준수에 대한 신자들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계시에서 화잇 자매는 때의 종말까지 데려가져서, 안식일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배도한 권세를 섬길 것인지 결정하는 위대한 시험하는 진리라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안식일과 관련하여 이상 가운데서 아무것도 보기 전에 안식일 문제에 관한 진리를 믿었다. 내가 안식일 지키는 일을 시작한 지 여러 달이 지나서야 셋째 천사의 기별 내에서 그 중요성과 위치가 무엇인지 내게 보였다"(E. G. G. 화잇 편지 2,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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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안식일 총회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다수의 그들의 추종자들과 함께 이 새로 발견한 진리들을 가르치는 일을 선도했던, 안식일을 준수하는 여러 목사가 그들을 따르는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다섯 번에 걸친 안식일 총회에 왔다. 금식과 기도의 기간들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했다. 안식일 진리의 사도인 조셉 베이츠는 안식일의 구속력 있는 주장들을 옹호하는 일을 선도했다. 이 중 몇 총회에 참석했던 하이럼 에드슨과 그의 동료들은 성소에 관한 빛을 강력하게 제세했다. 예언을 면밀하게 연구하던 학도인 제임스 화잇은 예수께서 다시 오시기 전 발생해야 하는 사건들에 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모임들에서 제 칠 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오늘날 견지하는 주요 교리들이 함께 모여졌다. 이 경험을 회고하면서 엘렌 화잇은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 신자들 중 많은 사람이 얼마나 견고한 토대 위에 우리의 신앙이 세워졌는지 알고 있지 못하다. 나의 남편, 조셉 베이츠 목사, 아버지 피얼스, 하이럼 에드슨 목사 및 그 외 초기 지도자들은 통찰력이 예민하고 이 인격이 고상하며 진실한 인물들로서 그들은 1844년의 시련기를 겪은 후에 마치 숨은 보화를 찾듯이 진리를 탐구하였다. 나는 그들과 접촉하였으며 우리는 함께 연구하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때때로 밤늦게까지 남아 있을 때가 있었고, 어떤 때는 밤을 꼬박 새우면서 빛을 받기 위해 기도하며 말씀을 연구하였다. 이 형제들은 모이고 또 모여서 함께 성경을 연구하였으며 진리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 위하여, 능력 있게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거듭거듭 기도하며 연구하였다. 그들이 '우리는 이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게 될 연구 지점에 이르렀을 때 주님의 영께서 나에게 임하셨으며 나는 계시를 받게 되었고 우리가 연구하여 오던 성경적에 대한 뚜렷한 설명을 나에게 주셨고 이에 따라서 우리가 일해야 할 방법과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교훈의 말씀을 주셨다. 이처럼 빛을 주심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명과 제사 직분에 관한 성경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르 도우셨다. 그때로부터 우리가 하늘 도성에 들어가게 될 때까지 이르는 일련의 진리를 나에게 밝혀 주셨으며 또한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교훈을 전해 주었다. 이 모든 기간 동안에 나는 우리 형제들이 추리하는 논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정신은 어두웠으며 우리가 연구하고 있던 성경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바로 이 점이 내 생애의 가장 큰 슬픔 중의 하나였다. 우리 신앙의 모든 중요한 요점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나의 정신 상태는 언제나 어두운 가운데 있었다. 형제들은 계시가 없이는 내가 어린 사실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저들은 내가 받은 계시들을 하늘이 직접적으로 주신 빛으로 받아들였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06~207). 그와 같이,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회의 교리적 토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실한 연구를 통해서 놓였으며, 개척자들이 전진하지 못할 때, 그들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그 연구를 계속할 길을 열어 준 빛이 엘렌 화잇에게 주어졌다. 그 이상들은 또한 바른 결론들에 하나님의 승인의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와 같이 예언적 선물은 오류의 교정자와 진리의 확증자로서 역할을 했다(복음 교역자,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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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척자들이 발행하는 일을 시작함    

 

1848년 개최된 안식일 총회 중 다섯 번째 총회 직후에 매사추세츠주 도체스터(보스턴 인근)의 오티스 니콜스의 가정에서 또 다른 집회가 열렸다. 이 형제들은 주님께서 그들의 길을 비추도록 하신 그 빛을 전파할 그들의 책임에 관하여 연구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이 연구하고 있을 때, 엘렌 화잇은 이상 가운데로 이끌려 갔으며, 이 계시에서 그녀는 형재들이 이 빛을 발행할 의무에 대하여 보게 되었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그 일을 자세히 말한다. "이상에서 깨어난 후 나는 남편에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에게 전할 기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작은 간행물을 인쇄하여 백성에게 보내야 합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인쇄할 수 있는 재정을 당신에게 보내 줄 것이므로 그 일은 처음부터 성공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미미한 시작이 온 세상을 뒤덮을 빛의 흐름처럼 발전될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엘렌 G. 화잇 자서전, 125). 

여기에 행동을 개시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제임스 화잇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해서는 별로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하나님의 명령이었기에, 그는 믿음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렇게 하여 그의 75센트짜리 성경과 양쪽 겉장이 찢겨 나간 성구 사전과 함께 제임스 화잇은 작은 종이에 인쇄될 안식일 진리와 기타 그의 관련된 주제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그는 인쇄 발주에 대해서 그를 기꺼이 신뢰하고 있었던 코네티컷주 미들타운의 한 인쇄업자에게 원고를 갖다 주었다. 활자들이 식자되었고, 교열이 이루어졌으며, 일천 부가 인쇄되었다.  제임스 화잇은 그것을 미들타운 인쇄소로부터 그와 엘렌의 임시 피난처인 벨든의 가정으로 수송했다. 그 인쇄물은 크기가 가로세로 6인치와 9인치였으며, 8쪽짜리 책자였다. 그것은 <현대 진리>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그 날짜는 1849년 7월이었다. 그 작은 종이 무더기가 마루에 쌓여 있었다. 형제자매들은 그것들을 둘러싼 다음 그것이 우송될 때 이 적은 책자에 복을 주시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탄원했다. 그러고 나서 그 종이를 접고 포장하여 주소를 기록했다. 그런 다음 제임스 화잇은 8마일 떨어진 미들타운 우체국으로 가져갔다. 그같이 하여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회의 출판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네 호가 우송되었으며, 그 인쇄물을 우체국으로 가져가기 전에 그 각 호를 놓고 기도를 드렸다. 곧 그 인쇄물을 읽고서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한 사람들의 편지들이 답지했다. 그 편지들 중 어떤 것에는 돈이 동봉되어 있었으며, 제임스 화잇은 만기일이 다가온 9월에 네 호 값으로 64.50 달러를 인쇄업자에게 지불할 수 있었다.

 

   < 리뷰 앤드 헤럴드> 지를 시작함    

 

제임스 엘렌 화잇은 이곳저곳으로 여행하면서, 여기서 몇 달, 저기서 몇 달씩 머무르며 인쇄물 몇 호를 발행할 준비를 했다. 마침내 11호와 마지막 호가 1850년 11월, 메인주 파리스에서 발간되었다. 화잇 여사는 <현대 진리>에 몇 개의 기사를 투고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초기문집> 68~88쪽의 첫 부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1월호에 파리스에서 한 총회가 열렸는데, 한 형제가 성장 일로에 있는 출판 사업을 연구하였다. 그들은 그 인쇄물을 확대하기로 결정하고 그 이름을 <리뷰 앤드 헤럴드(재림 회고와 안식일 전령)>로 바꾸었다. 그것은 몇 달 동안은 메인주 파리스에서, 그다음에는 뉴욕주 사라토가 스프링스에서 발간되었다. 그것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교단 잡지로서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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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 사업이 성장함   


사라토가 스프링스에서 사는 동안, 1851년 8월에 제임스 화잇은 <엘렌 G. 화잇의 그리스도인 경험의 개요와 계시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화잇 여사의 첫 번째 책을 인쇄할 준비를 했다. 그 책은 본서의 43~124쪽에 실려 있다. 64쪽인 이 책은 그저 작은 팸플릿에 불과했다. 1852년 봄, 화잇 부부는 뉴욕주 로체스터로 이사했으며 거기서 그들이 직접 인쇄를 할 수 있는 인쇄소를 마련했다. 그 형제들은 인쇄기를 구매할 수 있는 자금을 위한 호소에 힘을 모았으며, 그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600달러가 모금되었다. 우리의 잡지들이 안식일을 준수하는 인쇄소에서 발행될 수 있다니 초기 신자들이 얼마나 기뻤을까! 3년여 동안 그들은 로체스에서 살면서 거기서 기별을 출간했다. <리뷰 앤드 헤럴드>지와 1852년에 제임스 화잇이 시작한 <청년 교사>지 외에 그들은 또한 이따금 소책자들을 발간했다. 화잇 여사의 두 번째 팸플릿인 <엘렌 G. 화잇의 그리스도인 경험과 계시들의 중보>가 1854년 로체스에서 발행되었다. 이것은 지금 <초기 문집> 125~173쪽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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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틀크릭이 출판의 중심지가 됨   


1855년 11월, 제임스와 엘렌 화잇과 그들의 조력자들은 미시간주 배틀크릭으로 이사했다. 그 출판소와 기타 인쇄 장비들은 그들 소유의 출판소를 설립할 자금을 마련했던 여러 안식일 준수자가 건립한 건물 내에 배치되었다. 그들의 사업이 저 작은 도시에서 발전하자, 배틀크릭은 자연스럽게 제 칠 일 안 식 일 예수 재리 교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제임스 화잇이 출판 사업을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가 <초기 문집>의 배경을 연구할 때 초기 안식일 준수 재림교인들은 처음에는 안식일 진리를 가지고 대재림 각성 때 그들의 이전 형제였던 자들에게만 접근하려는 부담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즉 첫 번째와 두 번째 천사의 기별 때 그들과 함께하였던 자들에게만, 따라서 1844년 이후 약 7년 동안 그들의 활동은 대체로 아직 셋째 천사의 기별에 관한 입장을 취하지 않은 재림 신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상황들을 익히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처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홈페이지 : htt://www.sijosa.com

 

www.hanwans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