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데살로니가에 보내는 편지
제주도에서
데살로니가에 보내는 편지
바울이 고린도에서 말씀과 복음을 전하고,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로부터 도착했다. 이 신실한 동역 자를 만나는 기쁨은 사도에게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열성과 용기를 주었다. 그 반대는 사도의 사업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었다. 사도 자신도 고린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렇게 인정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너라"(고전 2:3)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고후 7:6) 그의 친구들을 보내 그를 위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사업의 동역 자들은 서로 간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끈으로 밀접히 연결되도록 계획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만날 때 서로에게 큰 기쁨과 용기를 줄 수 있다. 바울은 이전의 일터를 방문하고, 데살로니가에 교회에 새우는 일을 확적하도록 디모데를 보냈다. 디모데의 보고는 바울에게 격려가 되고, 바울의 원기를 회복하게 했다. 그래서 그의 사랑하는 형들에게 편지를 쓰는 동기가 되었다. 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지는 우리에게도 보내진 것이다.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아들인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이끌렸다. 그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모욕과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바울이 이 사람들과 서신을 주고받은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최근에 믿음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회심 이후에 죽은 자들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오류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목격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믿는 자들이 한 사람씩 차례로 죽음의 세력 아래 떨어질 때,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서 구름을 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바람직한 사건을 바라보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오실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 주는 것이어서, 칭찬받을 일이라는 환상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따라서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 위대한 사건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예언의 은사를 무시하며 다른 모든 은사를 그것보다 높이기도 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인사와 함께 그들에게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원했다. 그들 가운데서 수고했던 일을 회상하며, 그들이 우상으로부터 돌이켜 말씀을 받아들이던 일을 언급하며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9~10)고 기록했다. 나아가 그들 중에서 일한 잣니과 동역 자들을 언급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반대와 폭력, 낙심 가운데서 담대했던 것을 생각나게 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살전 2:4). 그리고 그는 데살로니가 형제들에게 죽은 자들의 참된 상태에 대해 알려 주려고 애를 썼다. 그는 죽은 사람은 잠자는 자, 곧 의식이 없는 상태에 있는 자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위로하라"(살전 4:13~14, 16~18).
죽은 의인들이 친구들이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나 의인의 부활
너머 불멸의 미래에 대한 기쁨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슬퍼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이교의 우상 숭배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로 돌아선 사람들에게 편지했다. 죽은 상태에 대한 이교의 막연한 사상은 다소간 새로운 믿음의 내용과 혼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가르침을 통해 죽음으로부터 부활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은 사람들은 크게 위로를 받았다.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거룩하고 행복의 영생의 몸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기쁜 소망은 이전의 이교에서 죽은 자의 상태에 대한 사상과 크게 대조를 이루었다. 그들은 내세는 없으며, 그들이 땅에서 잃어버린 사랑하는 죽은 자들을 행복하게 만날 일은 없다고 이전에 믿었다. 그들이 바울의 편지를 받은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 당시에 친구들 사이에 기록된 편지를 받는 일은 대단히 드문 사건이었다. 교회에서 편지를 열어 읽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대단한 기쁨이었다. 죽은 자의 상태를 설명한 그 말씀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었겠는가! 바울은 그 편제이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살아남은 자들이 결코 그리스도 안에 죽은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이 자는 자들에게 울리겠고, 살아 있는 자들에게 불멸의 생명을 주시기 전에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할 것이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이 보증이 데살로니가의 어린 교회에게 가져다준 소망과 기쁨을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의 복음의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믿고 소중히 여겼으며, 그들의 마음은 고귀한 진리의 빛을 가져다준 그에 대한 사랑으로 기울여졌다.
그가 전에도 이런 일들을 말했었지만, 그때는 이것을 새롭고 이상스러운 교리를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중요한 문제들도 그들의 마음에 생생한 감동을 주지 못했던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갈급했기 때문에 바울의 편지는 새로운 소망과 활력을 주었으며, 죽음을 통해 생명과 불멸을 밝혀 주신 그분께 대해 확고한 신앙과 깊은 사랑을 심어 주었다. 죽은 자의 무덤을 둘러싸고 있던 흑암은 사라졌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이 믿는 친구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불멸의 생명을 느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 새로운 광채가 그리스도인 신앙을 영광스럽게 했으며, 그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서 새로운 영광을 보았다. 바울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라고 기록했다. 많은 사람이 이 성경 절을 자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올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는 생도들을 그들의 무덤에서 불러내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데려 가시리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뿐 아니라, 어느 곳에 있든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얼마나 소중한 위안이며 영광스러운 희망인가!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일하는 동안 시대의 징조에 관한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 인자가 하늘 구름 가운데 나타나시기 전에 어떠한 사건들이 일어날 것인가를 알려 주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 상세히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그는 자신의 이전 가르침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그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1~3). 그리스도께서 재림에 관해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신 증거들에 대해 눈을 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애써 모든 불안을 잊으려고 노력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도 종말의 징조들을 신속하게 성취되고 있으며, 세상은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나타나실 그때를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진리의 빛을 받고, 그 빛이 그들의 길을 비취고 있는 사람들은 이 위대한 사건이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오리라는 암흑에 갇혀 있지는 않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을 징조들을 무시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가르친다. 그는 이런 태만의 죄를 범하는 사람들을 밤의 아들이요, 흑암의 자녀라고 부른다. 그는 경성 하며 주의 깊게 지켜보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은 말로 격려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 낮의 아들이라 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4~6). 이 점에 재한 가도의 가르침이 오늘날 교회에 특별히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이 위대한 성취에 매우 가까운 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깨어 근신해야 할 것이다. 근신하며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일하는 그리스도인이다. 열심히 삶을 순결하게 하며,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이다. 구주께 대한 사랑이 증가될 때에는 또한 동료들에 대한 사랑도 증가한다. 그들은 저희 주님이 당하신 것처럼 혹독한 시련을 당하지만, 그분처럼 땅에 있는 가증한 일들 때문에 슬픔과 통분을 느낀다.
그들은 슬픔과 고통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마의 평화를 깨트리지 않는다. 잘 견디기만 한다면, 그 시련이 그들을 세련되게 하고 순결하게 할 것이며, 그리스도와 더욱 밀접히 교제하게 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참여하는 자들은 또한 그분의 위로에 동참하는 자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그분의 영광을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될 것이다. 바울은 교회에 대한 의 훈계를 계속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2~13). 데살로니가 신자들은 광신적인 생각과 교리를 가지고 그들을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크게 괴로워해야 했다. 교회는 정당하게 조직되었으며, 목사들과 집사들로 일할 직원들이 임명되었다. 그러나 완고하고 성급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권위 있는 직분을 맡은 사람들에게 복종하기를 거절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것을 보고 바울은 교회에서 권위 있는 직분을 맡도록 선택된 이들에게 마땅히 돌려야 할 존경과 복종에 대하여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보내는 첫 편지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 가르치면서, 교회에 보낸 이전의 가르침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도 어떤 데살로니가 형제들은 그 내용을 곡해했다. 그들은 바울 자신이 살아서 구주의 재림을 목격할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믿음은 그들의 열심과 흥분을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전에 책임과 의무를 등한히 했던 사람들은 이제 더욱 완고하게 그들의 그릇된 견해를 고집하게 되었다. 바울은 두 번째 편지에서 그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를 시정하고, 그들 앞에 자신의 진정한 입장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다시 그들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실성을 확신하며, 그들의 강한 믿음과 서로를 위해 그리고 주님의 사업을 위해 나타낸 그들의 풍성한 사랑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는 다른 교회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의 원수들로부터 오는 박해와 환난을 용감하게 견디는 끈기 있고, 인내심 있는 신앙의 모본을 보였다고 소개했다는 것을 전했다. 그들의 마음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든 근심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소망으로 향하게 했다.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살후 1:7).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예언 가운데 미리 이야기 한 종교계의 중대한 일이 일어나야 할 것을 알려 주었다.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2, 3). 선지자 다니엘이 매우 분명하게 묘사한 교황권이 아직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여 투쟁을 벌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권세가 그 가공할 만한 신성 모독적인 사업을 수행하기까지는 교회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일이 헛수고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가르쳤다는 주장을 부정했다. 그의 형제들 중에 의무를 등한히 하거나, 모든 일을 그만두고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들을 책망한다. 임박한 구원에 대해 불타는 기대 후에는 일상생활과 그들이 당해야 할 반대들이 곱으로 무섭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믿음 위에 굳게 서라고 당부한다. 그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되고 있는데, 곧 저희가 진리에 굳게 서서 그들이 받은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사도는 그들에게 선을 행하는 데 싫증을 내지 말라고 부탁하고,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해 지치지 않는 열심을 가지고 수고하는 한편, 현실적인 일에도 근면했던 자신의 모본을 가리켰다. 그는 태만하고 목적 없이 흥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책망하고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라고 지시했다. 그는 또한 교회에서 하나님의 종들이 중 교훈을 고집스럽게 무시하는 자들과는 교제를 끊으라고 명령했다. 그는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라고 덧붙였다. 바울은 이 편지 역시 생애의 수고와 시련 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의 평화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의 위로와 지지가 되기를 바라는 기도로 결론을 맺었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구입처 : (02) 329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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