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에베소에서의 바울
제주도에서
에베소에서의 바울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전도하고 있는 동안 바울은 에베소로 돌아가겠다고 한 그의 약속을 지켰다. 바울은 짧은 기간 동안 예루살렘 방문을 마치고, 그의 초기의 활동 무대였던 안디옥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냈다. 그곳으로부터 소아시아를 거쳐, 자신이 세운 교회들을 방문하고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중심 도시로 대대적인 상업 중심지였다. 항구는 선박으로 꽉 찼고, 거리에는 각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 붐볐다. 그리스도처럼 에베소도 선교 활동을 하기에 바람직한 곳처럼 보였다. 모든 문명국가에 널리 흩어져 유대인은 일반적으로 메시아의 초림에 기다리고 있었다. 침례 요한이 전도하고 있을 때, 연중 절기를 맞이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한 많은 사람은 요한의 설교를 듣기 위하여 요단강 언덕으로 나아갔다. 거기서 그들은 예수를 약속된 메시아라고 선포하는 말을 들었으며,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면서 그 기별을 세상 각처에 전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를 사도들이 일할 길을 준비해 주셨다.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자마자 열두 형제를 방문했는데, 그들은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었고 아볼로처럼 그리스도의 사명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아볼로와 같은 능력은 갖지 못하였으나, 그와 같은 성실과 신앙으로 그들이 얻은 지식을 널리 전파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 제자들은 성령의 사명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성령을 받았는지 바울이 물었을 때 그들은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라고 물었을 때 "요한의 침례"라고 대답했다. 바울이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들은 "요한의 침례"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사도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희망의 기초인 위대한 진리를 제시하게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와 그분의 잔인하고 치욕적인 죽음에 대해 그들에게 설명했다. 어떻게 생명의 주께서 무덤의 장벽을 깨치시고 사망에서 승리하셨는지를 말했다. 그분의 제자들에게 맡기신 구주의 사명을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마 28:18~19)라. 그는 또한 그분의 능력을 통하여 큰 이적과 기사를 이루실 보혜사를 보내시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하여 말하고, 이 약속이 오순절 날 얼마나 영광스럽게 성취되었는지도 설명해 주었다. 깊은 관심과 감사 그리고 경탄과 기쁨을 가지고 그 형제들은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에 대한 놀라운 진리를 붙잡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했을 그들도 역시 성령의 침례를 받아 다른 나라의 방언을 말하고 예언 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에베소의 중요한 지역과 그 부근에서 선교사로서 일하고, 또한 이 중심지로부터 소아시아에 복음을 선포하러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이 사람들이 교역자로서 추수장에 나아갈 수 있는 경험을 얻은 것은 겸손하고 교훈을 받을 만한 정신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모본은 각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가치 있는 교훈을 준다. 거룩한 생활에서 거의 진보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그 까닭은 그들이 너무나 자신만만하여 배우는 자의 자세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피상적 지식으로 만족한다. 그들의 믿음이나 행실을 변화시키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보다 큰 빛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만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열렬히 지혜를 간구한다면, 그들은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지리의 풍요한 밭으로 인도를 받을 것이다. 모세처럼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손길로부터 인도를 받을 것이다. 그는 미천하고 뚜렸하게 나타난 재능이 없을 수도 있으나, 사랑과 신뢰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모든 주신 뜻을 순종하면, 그의 능력은 순결하고 고상하게 도고 활력을 띠게 될 것이며 능력은 증가될 것이다. 그가 거룩한 지혜의 보화를 간직하게 될 때, 그에게는 거룩한 사명이 위임될 것이며, 자신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세상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 단지 종교적 진리에 대한 지적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에도 고대 에베소 사람들처럼 마음에 감동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이 많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이 문제가 더 분명한 주제가 없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이 주제에 머물렀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영적 생애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성령의 작용에 대한 예증으로써 식물계의 성장에 우리의 주의를 환시시키셨다. 뿌리에서 올라오는 포도나무의 수액(樹液)이 가지로 확산되어 성장을 지속시키고, 꽃과 열매가 맺히게 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생명을 주는 성령의 능력과 모든 제자에게 전해져서, 영혼에 스며들어 동기와 애정을 새롭게 하고, 심지어는 가장 깊은 생각에까지도 이르러 거룩한 행위에 귀중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한다. 이 영적 생명의 창시자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생명을 나누어 주고 유지시키는 정확한 방법은 인간의 철학적 능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경건의 신비이다. 그러나 성령의 작용은 항상 기록된 말씀과 일치한다. 천연계에서처럼 영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천연계의 생명은 매 순간 하나님의 능력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요, 우리 가까이에 두신 축복들을 사용하는 것으로써 유지된다. 그와 같이 영적 생명도 하나님의 섭리로 공급된 이 방법들을 사용하는 데 따라서 유지된다. 생명의 떡을 먹고, 구원의 물을 마셔야 한다. 깨어 기도하고 일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의 말씀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교훈에 유의해야 한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엡 4:13) 러야 한다. 이 유대인 회심자들의 경험 가운데는 여전히 우리를 위한 다른 교훈이 들어 있다. 그와 같이 영적 생명도 하나님의 섭리로 공급된 이 방법들을 사용하는 데 따라서 유지된다. 생명의 떡을 먹고, 구원의 물을 마셔야 한다. 깨어 기도하고 일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의 말씀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교훈에 유의해야 한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엡 4:13) 러야 한다. 이 유대인 회심자들의 경험 가운데는 여전히 우리를 위한 다른 교훈이 들어 있다. 그들이 요한의 손에 침례를 받았을 때 중대한 오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더 밝은 빛을 받아 그리스도를 구주로 기쁘게 영접했으며, 이 진보의 단계와 더불어 그들의 의무에 변화가 이르러 왔다. 그들이 더 순전한 신앙을 받게 되었을 때, 그들의 생애에는 그의 상응하는 변화가 있었다. 이 같은 변화의 증거를 보이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인정하는 표로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재 침례를 받았다.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는 많은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더 분명한 이해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할 것이다. 전에는 순결하게 보이고 심지어는 칭송받을 만했던 것들이 이제는 죄악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려고 했을 때 그가 예상했던 대로 그의 양심에 성령의 역사를 느꼈다. "죄는 살아가고 나는 죽었도다"(롬 7:9).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의 양심은 율법의 정죄에 동의했다. 오늘날에도 부지중에 하나님의 율법의 교훈을 범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이해가 밝아지고, 넷째 계명의 요구가 그들의 양심에 가책이 될 때,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죄는 불법이"(요일 3:4)며,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약 2:10)는 것이다. 정직하게 진리를 찾는 사람들은 율법에 대한 무지를 자신의 범죄한 변명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빛은 그가 접촉 가능한 범죄의 변명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명백하며,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성경을 연구하라고 요구하셨다. 하나님의 율법을 거룩하고 공정하며 선한 것으로 존중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회개할 것이다. 그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기를 간청하며, 용서의 약속을 붙잡는다. 이전에 받은 침례가 이제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나님의 율법의 정죄를 받아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한다. 다시 한번 죄에 대한 죽음을 경험하고,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기를 갈망하며, 생명의 새로움으로 다시 일어나 행하게 된다. 이것이 회심한 유대인들에게 침례를 베푼 바울의 경우와 조화된다.
이런 사건이 성령의 의해 기록되어 교회를 위한 교훈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바울은 습관대로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도하는 것으로 에베소에서의 그의 사업을 시작했다. 3개월 동안 계속 거기서 일하면서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행 19:8)였다. 그들이 복음을 거절하는 것을 고집했을 때 사도는 회당에서 전도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수고하는 바울과 함께 일하셨다. 진리를 알려고 정직하게 갈망하는 모든 사람이 수긍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편견과 불신의 지배를 받아 가장 확실한 증거에도 굴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신자들의 신앙이 이 진리의 반대자들과의 계속적인 교제로 위태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한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모아 어떤 저명한 교사인 두란노의 서원(書院)에서 공적인 강론을 계속했다. 바울은 비록 "대적하는 자가 많을지라도" 그의 앞에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고전 16:9)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에베소는 아시아의 도시들 중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일 뿐 아니라 가장 부패한 도시였다. 미신과 관능적 향락이 그 많은 인구를 뒤흔들었다. 사원(寺院)들의 그늘 아래서 각종 범죄자가 피난처를 찾았으며, 가장 저급한 죄악들이 성행했다. 에베소는 여신 다이애나 숭배로 마술로 이름난 중심지였다. 이곳에 다이애나의 거대한 신전이 있었고, 고대인들은 이곳을 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여겼다. 그 거대한 규모와 웅장한 모습은 그 도시 사람들 뿐 아니라 온 나라의 자랑이었다. 왕들과 제후들이 그곳에 엄청난 기부를 했다. 에베소 사람들은 그곳에 영광을 더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했다. 이 전은 보물 창고가 되어서 아시아의 부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전 안에 있는 우상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는데 전통적으로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전해졌다.
그 위에는 신화적 문자와 상징적인 부호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들이 위대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것들이 기적을 이룬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이것들을 기록해 두었는데 그 속에 마력이 있어서, 그것을 소지한 사람들은 도둑이나 질병, 심지어는 죽음으로부터 지켜 준다고 믿었다. 에베소 사람들은 이 상징들의 뜻과 용법을 설명하는 수많은 책을 기록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우상 숭배자들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깜짝 놀랄 방법으로 그를 통해 이루어졌다. 바울이 아무 때나 원하는 대로 기적을 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그의 사업의 전진을 위해서 그리고 그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필요가 있을 때 특별한 능력을 허락하셨다. 마치 모세와 아론이 바로의 궁전에 서 있을 때처럼 사도는 지금 마술사들이 벌이는 기적을 대항하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가 행한 기적은 지금까지 행한 것들과는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믿음으로 만져 병이 낫고 싶어 하는 여인에게 그의 옷을 통해서 교통 하신 것처럼 이번 경우에도 그의 옷은 모든 사람을 치료하는 역할을 해냈다. "심지어 사람들이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 19:12). 이런 기적들도 맹목적으로 미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별 감동이 되지 못했다. 예수께서 고통 당하는 여인의 접촉을 느끼셨을 때 그는 "능력이 내게서 나갔느니라"라고 하셨다. 그래서 성경은 그 이적을 주께서 바울의 손을 이용하여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주 예수의 이름이 높여진 것이며 바울의 이름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도 바울에게서 나타났던 이와 같은 초자연적 능력은 마법사들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와 교통 하는 것을 자랑하던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바울의 기적은 에베소에서 이전에 목격했던 어떤 것보다 훨씬 더 강력했으며, 그들이 요술쟁이의 기술이나 마술사의 마법으로 모방할 수 없는 그런 성격의 것이었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당신의 종을 우상 숭배자들 앞에서까지라도 가장 유력하고 총애 받는 마술사들보다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높이셨다. 그러나 모든 악령을 복종시키고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을 지배할 권능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성호를 멸시하고 모독한 자들에게는 더 큰 수치와 패배를 안겨 주려고 하셨다. 마법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모세의 법으로 금지되었으나, 때때로 배도한 유대인들에 위해 은밀하게 행해졌다. 바울이 에베소를 방문했을 때 그 도시에서 돌아다니며 마술 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바울이 행한 기적들을 보고, 자기들도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그런 일이 이루어졌다고 믿으면서, 그들도 사도가 행한 같은 방법으로 악귀를 쫓아내기로 작정했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그런 시도를 했다. 그들은 귀신 들린 한 사람을 찾아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를 명하노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 하"(행 19:15~16)였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칭한 사람들에게 실패와 수치가 내려졌고, 이 소식은 순식간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 위해서 에베소 전지역에 퍼져 나갔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이름의 신성성에 대한 의심할 여지없는 증거가 나타났고, 구주의 거룩한 사명에 대한 믿음 없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려던 자들은 위험을 당했다. 전에 감추어졌던 사실들이 이제 밝히 드러났다
어떤 형제들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면서도 그들의 미신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어느 정도 마술의 행습에 계속했다. 최근에 일어난 일을 보고 확신이 들어 그들이 마술을 영영 버리겠다고 약속하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에베소의 편지들'이라는 기묘한 내용이 담긴 값비싼 책과 그들의 기술의 비밀을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 버렸다. 책이 다 사르어진 다음에 그들이 치른 희생을 계산해 보았다. 그 책값을 계산한 즉 은 오만이나 되었는데 약 일만 달러가 넘는 돈이었다. 이 사건의 영향은 바울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리 퍼졌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 것은 바로 미신의 요새에서 그리스도교회에 크나큰 승리를 안겨 주었다. 이 소식은 에베소로부터 멀리까지 퍼져서, 그리스도의 사업에 큰 기동력이 되었다. 이런 바울의 사역의 장면들은 바울이 그의 모든 여정을 마치고 난 오랜 수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살아 있었고, 이것이 요인이 되오 많은 사람이 복음으로 회심하게 되었다. 에베소 사람들은 마술책들을 불살라 저희가 한때 좋아했던 것을 이제는 미워한다는 것은 나타냈다. 그들이 특별히 하나님께 범죄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태롭게 한 것은 마술을 의존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그들은 참된 회개와 증거를 나타내 보였다. 이 점치는 주문집(呪文集)들에는 악령들과 교통 하는 법과 형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사탄 숭배의 규칙들 즉, 사탄의 도움을 간구하고 그에게서 정보를 얻는 지침들이었다. 제자들이 이 책들을 보유했더라면 그들은 자신들을 시험에 노출시켰을 것이며, 그것들을 팔았다면 다른 사람들의 길에 시험거리를 놓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흑암의 왕국과의 관계를 단절했으며, 그 권세를 멸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진리는 사람들의 편견과 돈에 대한 사랑을 이기고 승리하게 되었다. 이교의 미신들이 19세기의 문명 앞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실재하는 사건들의 엄연한 증인은 마법이 고대 마법사들의 시대와 똑같이 이 시대에도 많은 기독교 시대의 국가들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 준다. 고대의 마법 제도는 사실상 현대 강신술로 알려진 것과 동일하다. 사탄은 자신을 죽은 친구들의 모습으로 가장해서 나타남으로 무수한 사람의 마음에 접근하고 있다. 성경 말씀은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전 9:5)다고 선언한다. 그들의 생각, 그들의 사랑, 그들의 증오심은 사라지고 없다. 죽은 자는 산 자와 교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탄은 그가 최초로 사용한 간계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하여 이 계략을 사용한다. 오늘날의 점쟁이들과 천리안을 가졌다는 자들은 이교 시대의 마술사와 같이 강신술의 영매들이다. 엔돌과 에베소에서 발한 신비스러운 음성들은 여전히 그들의 거짓말로 사람의 자녀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 비밀스러운 이교의 예배가 우리 시대의 마술사들에 의해 애매함과 경이스러움을 가진 것들과 비밀스러운 접촉이나 집회로 대치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의 성령으로부터 오는 빛을 거절한 수만 명의 사람이 그것들이 나타나는 것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고대의 마술사들을 경멸하면서도, 대기만 자는 자기의 기술을 전혀 다른 형태로 바꾸어서 이루어낸 승리에 대해 웃고 있다. 그의 대리자들은 아직도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전기, 자력(磁力), 소위 말하는 "증후근 치료" 들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자랑하는 자력이라는 것은 사실 직접적으로 사탄의 마력에 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사람들의 몸과 정신에 자기의 주문을 건다. 앓는 사람, 가족을 여윈 사람, 호기심이 강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은 강신술을 통하여 악령과 교통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하려고 모험하는 모든 자는 위험한 위치에 놓여 있다.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간주하는지 밝혀 준다. 고대의 하나님께서는 이교의 신접한 자에게 조언을 구하러 보낸 한 왕에게 다음과 같은 단호한 형벌을 선고하셨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이스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왕하 1:3~4).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눈앞에서 휘장이 걷힐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람들을 기만하여 멸망시키려고 온갖 술책을 다 쓰고 있는 악한 천사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잊어버리도록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곳은 어디서든지 사탄이 그의 매혹시키는 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낭비적이고 비종교적인 쾌락에 빠지는 일을 감행하거나 회의적이고, 신성 모독적이며, 관능적인 모임을 찾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개인적 접촉으로나 아니면 출판물을 통해서 마술과 접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마음은 혼미하게 되고 영혼은 더럽혀진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사도의 다음 권고에 유의하여야 한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11).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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