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소식
지치고 힘든 현대인을 위한
생명의 기별이 담긴
아름다운 소식
3분 동안 버텨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2011년 1월 18일
강원도 횡성의 축산 농가
구제역에 걸린 어미 소를 안락사시키기 위해
수의사가 근육이완제 석시콜린을 주입하는 순간
갓 태어난 송아지가 어미의 젖을 보채기 시작했다.
어미 소는 약의 반응이 나타나는
10초에서 1분 사이 숨을 거두게 마련이지만
젖을 물린 어미 소는 다리를 부르르 떨며
3분을 버텨 냈고, 송아지가 젖을 다 빨고 나자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미 소가 이미 숨을 거둔지도 모르고
주위를 맴돌던 송아지도 결국
채 가시지 않은 제 어미의 체온을 느끼며
차가운 땅속에 묻히고 말았다.
살아서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두 눈 꿈뻑이며 성큼성큼 달려와 머리를 비벼 대던
어미 소는 영하 20도의 지상보다 땅속이 더 따뜻했기 때문일까,
더 이상 워낭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텅 빈 축사에서
새끼를 부르는 어미 소의 울음소리만
잠 못 이루는 주인의 꿈속에서 밤을 새운다.
"어미소의 모정" 김남권 시인 (강원일보) 독자의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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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한국인이여!
"돈과 행복은 관계가 없다."라고 생각한다.(그렇다. 단위%)
47.0(덴마크) 29.0(핀란드) 20.0(호주) 18.2(미국) 7.2(한국)
"한국인이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중 65.9%가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라고 대답했다.
가장 행복한 것 같은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한국인의 49.3%가 세계 2위 부자인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을 꼽으므로 행복의 조건으로 정신적 평화보다는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보고서는 한마디로 한국인들을 "물욕으로 인한 피로감." "주변국 위협" "정치인의 부정부패" 등에 지쳐 있다고 결론짓는다. 한국에 대해 세계는 "기적"이라는 말을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기적의 경제성장" '처참한 전쟁 후 기적적 부상', "한강의 기적",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전후 250배나 늘어났고, 세계 경제 13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놀라운 소득 증가세에 비해 삶의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밑바닥이다. 왜 이런 물질적 성공과는 반대로 정신적 실패라는 '한국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일까?
불쌍한 자연아!
어찌 신음하는 이들이 사람뿐이겠는가? 지난겨울 지독한 한파보다는 더 극렬한 구제역으로 우리는 한바탕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한민국을 휩쓴 구제역 여파로 지난 2월 2일까지 살처분, 매몰된 가축이 300만 마리를 넘어섰다. 혹자는 전염성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동물들의 운명을 통해 경쟁과 성취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속절없이 물질 속으로 매몰되어 가고 있는 인간들의 운명을 보는 것 같아 두렵다고 실토했다. 분명 사람만이 불행한 것이 아니다. 총체적인 불행과 고통이 온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토양과 대기 그리고 수질에 깊숙이 침투한 심각한 오염 수준에 위해 미래학자들에 의해 이미 지구 종말의 주범으로 지목된 지 오래이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신음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로마서 8장 22절)
쉼도 없고 족함도 없는...
왜 한국인은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음에도 최하위권의 행복 지수를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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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전문가들은 행복한 사회를 꿈꾸며 쏟아붓고 있는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생산 지향적 경쟁과 성취욕을 그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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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자들의 경고에도 파라다이스를 건설하려는 인간의 밤낮 없는 생산 지향적 경쟁은 오히려 환경 재앙을 야기했고 그 결과 인간과 자연의 공멸이라는 위험을 가증시켰다. 독주나 마약처럼 현대 과학 문명은 인간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으나 이제는 우리의 삶을 우울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벌써 잊혀 가고 잇는 체르노 벨 핵발전소 사건은 다시 한번 인류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물리적인 힘을 키워 놓았는가 하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마치 불을 질러 놓고 그것을 어떻게 꺼야 할지를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이 오늘날 인류는 자신들이 일깨워 놓은 힘을 제어할 수 없어 쩔쩔매고 있다. 왜 한국인이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음에도 여러 조사에서 행복도가 최하위권일까? 고려 대학교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한국인의 물질에 대한 집착이 미국인의 3배, 일본인의 2배에 달한다고 있다."며 "한국인은 빠른 경제 성장을 일구기 위해 친구 및 가족과 멀어졌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와 심리적 만족에서 오는 행복을 희생했다." 고 말한다. 한국인은 스스로 물질 숭배의 희생양이 되어 가고 있다.
물질의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라
그렇다면 처방은 무엇인가? 어떻게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고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 12명의 저명한 해외 자문단은 한국인이 행복을 되찾기 위한 처방으로 행복을 증진시키는 일에 한정된 시간을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시간을 가급적 늘리고, 비관적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의식적으로 제거하고, 달성할 수 없는 목표는 빨리 포기하는 등 행복한 습관을 통해 행복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1960년대 급속한 산업화를 시작한 이래 한국인은 정말 숨 가쁘게 살아왔다. 초과 근무를 마다하지 않고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지 못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마침내 GDP 2만 달러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이 1만 5000달러에 도달하면 '수확 체감'이 발생하며 돈은 행복감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미국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가 지난 20년 동안 발표한 '행복지수'를 분석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물질과 돈에만 집착하는 한국인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특별히 "나는 불행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음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돈에 목을 매는 인간의 심리가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것
과 흡사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더 큰 만족감을 위해서는 더욱더 많은 물질을 필요로 하게 된다. GDP 2만 달러를 돌파한 한국 국민은 이제 끊임없이 물질을 향해 달리는, 이 '쉼도 없고 족함도 없는 물질의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들게 된다. 선진국들은 주 5일 근무로 인해 일주일에 이틀씩 쉬고 있고, 우리나라도 점차 그렇게 가고 있는데 이 땅의 환경은 물론이고, 정치, 도덕, 사회, 종교적 상황은 왜 점점 더 악화되어 가는 것일까?
"세상만사 말로 다 할 수 없이 피곤하니, 눈을 보고 또 보아도 만족하지 않고,♥
공간에서 시간으로
유대 랍비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은 현대인들을 지치도록 몰아세우는 극한 현실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기계 문명은 인간이 공간을 정복했음을 보여준다. 이 승리는 실존의 본질적인 요소인 시간을 희생함으로써 얻어질 때가 많다. 기계 문명에서, 우리는 공간을 얻기 위해 시간을 소비한다. 그러나 더 많이 소유한다고 해서 더 크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공간 세계에서 얻는 힘은 시간의 경계선에 이르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조금 철학적인 이야기 같지만 한마디로 사람들의 생존과 관심이 너무 공간 위주로 되어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명과 역사가 물체와 물질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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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와 함께 시간을
원하는데 부모들은 그들에게 무엇인가 좋은 것을 사 주고
좋은 공간을 제공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 부모들은
일해야 하고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의 아버지가 자녀들
하나하나와 일대일의 관계로 보내는 시간은 하루당 37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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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초! 생각해 보라, 이러한 태만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겠는가? 분노의 유산, 즉 상처받은 아이와 그렇게 성장한 상처뿐인 성인을 양산하고 최악의 경우 마침내 우리는 문제로 가득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작은 실금 하나가 나중에는 그랜드캐니언처럼 거대한 협곡으로 벌어지는 형국이다. 왜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으며 세계가 고통 중에 신음하는가? 그것은 공간과 물체를 소유하려는 인간의 병적인 탐욕 때문이다.
바로인 간이 건설한 공간의 나라는
소유의 나라이고 독점의 나라이다. 내가 앉은 의자라는 공간에는
남이 함께 앉을 수 없듯이 나눔과 공유와 공존이 불가능한 나라이다.
반면에 시간이 나라는 나눔의 아나이다,
공존과 공생의 나라이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시간의 나라이다.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당신은 이해하겠는가? 우리는 여러분의 관심을 공간과 물질보다는 새로운 개념인 시간으로 돌려보자는 것이다. 생산과 성취밖에 모르는 공간과 물질 중심의 역사가 불행과 비관 주위를 낳았다면 공유와 공생의 속성이 있는 시간 중심의 삶은 행복과 진정한 기쁨을 안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앞에 공간과 물체가 얼마나 무가치하고 무력한 지 기억하라. 시간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나 버리고 만다. 나의 시간이 끝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끝나 가는 시간 앞에, 내 공간에 쌓아둔 금과 은과 옷 그리고 권력과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제 나를 가두고 있는 공간의 문을 박차고 시간의 나라로 들어오라, 성취하려는 욕망과 지지 않으려는 경쟁과 미래를 창조하려는 노력을 멈추고 안식의 시간 속으로 들어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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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육천 년간 전수된 하나님의 처방
앞서 언급한 공간과 시간의 대조를 당신이 잘 이해한다면 이제 하나님의 처방인 특별한 시간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공교롭게도 삶의 고통을 해결하고 욕망의 성취를 위해 인간들이 찾아가는 종교는 대체로 공간의 종교이다. 무슨 말인가? 모든 종교마다 사람들이 숭배하는 대상이 있다. 그들은 성지에 입 맞추고 그들의 귀는 성인의 말 한마디에 옥죄어 있고, 그들의 무릎을 성상과 우상 앞에 꿇고 있으며 그들을 몸을 성수에 담그고 있다. 그러나 성경 창세기에서 거룩하다고 선포된 첫 번째 것은 언덕이나 사원이나 혹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 바로 시간의 한 토막 곧"제 칠일"이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창 2장 3절 )다. 비록 창조가 하늘과 땅과 바다, 이 땅의 동물들 등 공간적인 모든 것을 다루었지만, 하나님께서 맨 처음으로 축복하시고 거룩하다고 선언하신 것은 공간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이다. '안식일'이라고 불리는 이 '제 칠일'은 거룩하고 복된 시간으로 규정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스스로 "나의 안식일"(출애굽기 31장 13절, 레위기 19장 3절, 레위기 26장 2절)이라고 명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종교는 공간의 종교와 대조괴는 시간의 종교이다. 예컨대 하나님은 십계명의 둘째 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디 말고...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출애굽기 20장 4절~5절)고 지시하심으로 당신은 공간 속의 어떤 형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분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셨다.
그뿐 아니라 십계명 중 넷째 계명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애굽기 20장 8절)고 명하심으로 제 칠일 안식일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자에게 임재 하사는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제 칠 일이라는 시간을 거룩하게 하신 것일까? 사실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시간이 무의미하다. 그런데 창세기 2장 1~3절에 언급한 대로 제 칠 일을 구별하시고 그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실 뿐 아니라 심지어 그날에 하나님 자신도 쉬셨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일곱째 되는 날에 복을 주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입니다"(창세기 2장 3절)
이는 전적으로 자신이 창조한 인간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 그 증거가 있다. 신명기 5장 12~14절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 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하나님은 당시에 타인의 명령과 착취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아무런 수단이나 권리가 없던 종들과 말 못 하는 짐승에게까지 쉼을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이같이 안식일의 쉼 속에 민물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완전한 조화를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관심을 나타내어 주는 것이다. 둘째는 안식일을 십계명에 못 박아 두심으로 지친 인간과 혹사당하는 가축에게 까지 쉼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여기서 특별히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은 이런 말씀이 중심에 제 칠일 안식일이라는 시간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간과 자연의 안식과 행복을
마련하신 안전장치로 지금도 유효한 본질적인
처방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토록 생각하시는 이유는 당 한 가지이다. 비록 죄로 인해 타락하였으나 여전히 사람은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창세기 1장 26절) 창조된 자요 모든 짐승과 자연도 그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하나남의 안식일은 역사를 통하여 소홀히 취급되고 무시되었다. 심지어 안식일 제도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오늘날에 인류에게는 더 이상 걸맞지 않은 폐지된 종교 전통이라고 곡해하고 있다. 이 같은 풍조는 급기야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도 우연히 발생된 뿌리 없는 존재로 전략시키고 말았다. 물질의 압제로 많은 생명이 노예화되고 있는 바로 이때에 인간을 물질주의의 멍에로부터 해방시켜 하나님의 평안과 안식을 경험토록 해 주는 기능을 지닌 안식일이 이제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종교 저술가 화이트는 "만약 안식일이 보편적으로 지켜졌던들 세상에는 우상숭배자도, 무 실론 자도, 이교도도 없었을 것이다, "라고 피력하고 있다. 안식일은 무시되고 곡해될 수는 있으나 파괴될 수는 없다. 제 칠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분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손으로 만드신 창조물이라는 사실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 세계를 돌보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찬란한 공간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인간의 권유와 전통이 그 어느 때보다도 판을 치고 있는 지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애굽기 20장 8절)는 기쁜 소식을 더욱 큰 소리로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었습니다.
창조주 되신 하나님보다 지음 받은 피조물을 더 예배하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분입니다, 아멘"(로마서 1장 25절)
쉼 없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기쁜 소식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1) 이 세상은 지금 창조주 하나님을 잊어버림으로 물질 숭배에 빠져 있고 ,
(2) 하나님 대신 물질적 우상을 숭배한 결과로 인간과 세계가 함께 불행하게 되었으며,
(3)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처방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제 칠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것이다.
신학자 찬 트리가 "개인의 가정, 교회, 사회의 영원한 축복을 위해 고안된 방법들 중 안식일보다 더 완벽한 것은 생각조차 할수 없다."라고 한 말에 혹시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성취하기 위해 달려온 내가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 지금 서 있다는 사실만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시간이 끝나고 있다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끝나 가는 시간 앞에, 내 공간에 쌓아 둔 금과 은과 권력과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제 나를 가두고 있는 공간의 문을 박차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 예수께로 나아오라,
성취하려는 욕망과 지지 않으려는 경쟁과
미래를 창조하려는 노력을 멈추고 안식의 시간 속으로 들어오라.
당신에게 쉼과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그분이 당신을 정중히 초청하고 계신다.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친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마태복음 11장 28절) 행복을 나누는 이웃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삼패동 교회로 전화 주시면 신앙의 길을 안내해 드립니다. 담당자 : 031-577-1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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