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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리/산상보훈

산상보훈 4장 // 봉사의 참 동기 (1)

by 동심초(남양주) 2022. 2. 16.

 봉사의 참 동기 (1) 

 앵두꽃 

 

 

 봉사의 참 동기 (1) 

 79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마태복음 6장 1절).

 

산 위에서 하신 말씀은 그분께서 생애를 통해 말없이 가르쳐 오셨으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교훈을 말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도 그들이 가장 좋게 생각하는 것을 얻는 데 그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자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하고 의아해했다. 그들의 정신과 동기와 방법은 예수님과 반대였다. 그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율법을 존중했지만 실제적인 목적은 자신의 영광이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아를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범하는 자임을 그들에게 나타내시고자 하셨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중히 여기던 원칙들은 각 시대 사람들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바리새인의 정신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 정신이다. 따라서 구주께서 당신 자신의 정신과 방법이 랍비들의 그것들과 상이함을 나타내셨을 때, 그분의 교훈은 각 시대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리스도 당시,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덕행의 보상으로 간주해 온 세상을 간주해 온 세상의 명예와  번영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세인의 주목을 끌고 거룩하다는 명성을 얻기 위하여 사람들 앞에서 자선 행위를 자랑했다.


 80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봉사를 인정치 않으신다는 것과 또 그들이 받게 될 상은 그처럼 추구했던 사람들의 아첨과 칭찬뿐일 것이라는 사실을 단언하시면서 그들의 외식을 책망하셨다. 그분께서는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께서는, 친절한 행동은 항상 비밀로 지켜져야 된다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편지를 쓰면서, 마게도니아 교인들의 관대한 자아 희생의 정신을 숨기지 않은 것은 물론,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역사하신 은혜를 이야기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정신으로 물들게 하였다. 그는 또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너희 열심히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고린도후서 9장 2절)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자선이 사람들에게 칭찬과 명예를 얻기 위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분의 생각을 분명히 밝혀 준다. 진정으로 경건하면 자랑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칭찬과 아첨의 말을 듣기 원하고 그것들을 달콤한 음식으로 먹는 자들은 이름만의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들의 선행을 통하여 영광을 그들 자신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일하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신 분에게 돌려야 한다. 모든 선한 일은 성령을 통하여 성취되며, 성령은 받는 자가 아닌 주신 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부어진다. 그리스도의 빛이 심령 속에서 빛나게 되면, 입술이 하나님께 돌리는 찬송과 감사로 채워질 것이다. 그대의 기도, 의무 수행, 자선, 극기가 생각과 대화의 주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81  그리스도께서 찬양을 받으시고, 자신은 숨겨질 것이다. 오로지 스리스도만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진실한 마음으로 주되 선한 행실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생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과 사랑으로 해야 한다. 목적의 진실, 곧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친절은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동기이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영혼을 오빌의 순금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신다. 우리는 보상이 아닌 봉사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정신으로 나타내는 친절에는 필히 그 보상이 있을 것이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 하나님 자신이 다른 모든 상급을 포함하는 위대한 상급이 되시는 것은 사실이나, 영혼은 품성 면에서 그분과 동화될 때만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으로 인해 즐거워할 수 있다. 동류의 봉사를 위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때, 비로소 그분은 당신을 우리에게 주신다. 누구든지 마음과 생애에 하나님의 축복이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내면 자신도 반드시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된다. 산과 들은 산 속의 개울이 바다로 흘러가도록 길을 제공하지만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이 없다. 오히려, 주는 것으로 인해 몇 백 배 보답을 받는다. 노래를 부르며 흘러가는 시냇물이 신록과 수확이라는 선물을 남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슭의 풀을 봐도 다른 곳보다 더 푸르고, 나무들도 더 싱싱하고, 꽃들도 더 탐스럽다. 대지가 여름의 폭염으로 바싹 말라 갈색으로 변할 때에도, 강줄기는 하나의 파란 선을 이룬다. 이리하여 산의 보화가 바다로 흘러가도록 가삼을 열어준 들판은 생기와 아름다움, 곧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으로 흘러 보내는 통로로 자신을 제공한 사람이면 누구나 받게 되는 그분의 은혜의 보상을 증거하 것들로 옷 입게 된다.


 82  이것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받는 축복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면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이사야 58장 7~11절). 자선 사압은 이중으로 축복을 받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더 큰 축복을 받는다.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는 이기심과 반대되는 품성의 특성 곧 생애를 깨끗하게 하고, 고상하게 하고, 풍성하게 해줄 특성을 계발시켜 준다. 은밀한 중에 행한 친절한 행동은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고, 이들을 모든 관대한 생각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마음에 더욱 가까이 가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꽃에서 풍겨 나는 향기처럼 생애 속에서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작은 친절, 곧 사랑과 자아 희생의 작은 행동은 생애의 축복과 행복을 나누어 가지는 일에 작지 않은 부분을 이룬다. 타인의 유익과 행복을 위한 극기가 비록 이 땅에서는 비천하고 칭찬 받지 못할 일로 취급될지 모르나 하늘에서는, 부요하였으나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영광의 왕이신 그분과 우리가 하나 된 것을 나타내는 표로 인정받게 된다는 사실을 결국 알게 될 것이다.


 83  친절한 행동은 은밀한 중에 행해질 수 있으나, 그렇게 한 사람의 품성에 나타나는 결과는 숨겨질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성의와 관심을 가지고 일한다면, 마음이 하나님과 밀접히 상통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그 거룩한 접촉에 대한 응답으로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조화되게 하실 것이다. 맡겨진 재능을 지혜롭게 활용한 자들에게 더 많은 재능을 허락하시는 분께서는 사랑하는 분을 믿는 백성들이 그분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행한 봉사를 즐겨 인정하신다. 선한 사업에서 그들의 재능을 활용함으로 그리스도인 품성의 계발과 완성을 위하여 노력해 온 사람들은 장차 올 세상에서 그들이 뿌린 씨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시작된 사업은 영원히 계속될 더욱 거룩하고 고상한 생애에서 그 극치를 이룰 것이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마태복은 6장 5절).

 

바리새인들은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 두었다. 그래서 종종 일어나는 일로, 정한 시간에 밖에 있게 될 때 거리, 시장, 혹은 바쁘게 다니는 사람들 사이 등 어디든지,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큰 소리로 그들의 형식적인 기도를 외웠다. 예수께서는 단순히 자기 영광을 위해 드리던 이런 예배를 심하게 책망하셨다.


 84  그러나 공중 기도를 무시하신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신 스스로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고 대중 앞에서 기도 하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개인 기도를 공중 앞에서 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우리의 기도는 은밀한 중에 드려짐으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외에 그 어떤 귀에도 들려선 안된다. 이런 간구의 내용이 호기심이 많은 귀에 들어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라." 은밀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장소를 갖도록 하라. 예수께서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위한 은밀한 장소를 가지고 계셨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때 때로, 비록 훌륭한 곳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홀로 지낼 수 있는 장소로 물러갈 필요가 있다.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께 기도하라. "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신뢰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 그 어떤 사람도 중보자로 나설 필요가 없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 수 있다. 하나님과의 눈 외에는 그 어떤 사람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귀 외에는 그 어떤 사람의 귀에도 들리지 않는 은밀한 기도의 장소에서, 우리는 가장 깊이 감추어진 우리의 욕망과 소원을 무한히 자비하신 아버지께 쏟아 놓을 수 있다. 그리하면 인간의 필요의 부르짖음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음성이 영혼의 고요와 침묵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향해 말씀하실 것이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야곱 보서 5장 11절). 그분께서는 지칠 줄 모르는 사랑으로 완고한 자들의 자복을 들으시고 그들의 참회를 받아 주시고자 기다리신다. 그분은 마치 어머니가 귀여운 아기에게서 엄마를 알아보고 웃는 미소를 기다리듯이 우리에게서 감사함에 대한 어떤 표시를 기다리신다. 그분은 우리를 향한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부드러운지 우리가 깨닫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시련을 당신의 동정으로, 우리의 슬픔을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의 상처를 당신의 치유로, 우리의 연약함을 당신의 능력으로, 우리의 공허를 당신의 충만으로 가지고 나오도록 우리를 초청하신다.


 85  그분께 나온 사람은 아무도 실망을 맛보지 않았다.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시편 34편 5절). 은밀한 중에 하나님을 찾고 그들의 필요를 주께 아뢰고 도움을 구하는 자들은 그 간구를 허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매일의 친구로 삼을 때 보이지 않는 세계의 능력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느끼며, 또 예수님을 쳐다봄으로써 그분의 형상으로 동화될 것이다. 위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변화된다. 품성이 천국에 합당할 만큼 부드럽고 세련되고 고상해진다. 우리 주님과 나누는 교제 외 친교의 분명한 결과로, 경건과 순결과 열성이 증가될 것이다. 지능이 기도를 통하여 계발될 것이다. 우리는 신령한 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것은 근면과 영성의 생애로 실증된다. 매일 열렬한 기도로 도움과 지지와 능력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향하는 사람은 고상한 포부, 진리와 의무에 대한 분명한 이해, 행동의 고상한 목적, 그리고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심령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의 연결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우리는 사람들과 나누는 교제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빛과 평화와 평온을 그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얻어진 힘, 다시 말해 마음을 사려 깊고 조심성 있는 마음으로 훈련시키는 꾸준한 노력과 연합된 힘은 사람을 매일의 의무를 준비시키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마음을 평안하게 지켜 준다.

 

 86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입에 말씀을 주셔서 당신을 위해 이야기하게 하시는 것은 물론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게 까지 하실 것이다. 그분은 천사들의 노래에서 한 곡을 뽑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실 것이다. 생활 하나하나에서 마음속에 거하시는 구주의 빛과 사랑이 나타나게 될 갓이다. 외부의 어려움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생애를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증언 부언하지 말라"(마태복음 6장 7절).

 

이방인들은 그들의 기도 속에 죄를 속하는 공효(功效)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기도를 오래 하면 할수록 더 커지는 줄 생각했다. 만일, 그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거룩해질 수 있다면, 스스로 즐거워할 수 있는 무엇, 곧 자랑할 어떤 근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기도의 사상은 거짓 종교의 모든 제도의 기초를 이루는, 자력(自力)에 의한 속죄의 원리에서 생긴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기도에 있어서 이 이교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까지 퍼져 있다. 마음에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틀에 박히고 습관적인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이방인의 "증언 부언"과 똑같은 성격을 가진다. 기도가 죄를 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에는 아무런 효능과 공효가 없다. 우리가 멋대로 내뱉는 화려한 말은 모두 합해도 거룩한 소원 한 가지만 못하다. 가장 유창한 기도라 할지라도 마음의 진정한 뜻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면 무이 간 말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상 친구에게 당연히 받을 것으로 믿고 은혜를 구할 때와 같이 진정한 마음으로 영혼의 단순한 소원을 아뢰며 드리는 기도, 이것은 믿음의 기도이다.


 8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격식을 차린 찬양을 원치 않으신다. 그러나 상하고 억눌린 마음이, 죄가 많고 더없이 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부르짖는 무언의 절규는 무한히 자비하신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발견하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마태복음 6장 16절).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하는 금식은 형식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음식을 거절하고 베옷을 입고 머리에 재를 뿌리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며 금식하는 사람은 결코 겉으로 과시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금식의 목적은 심령의 죄 때문에 육체를 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죄의 무서운 특성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그분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한 그분의 명령은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요엘 2장 13절)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도의 유업을 사거나 공효를 미칠 것으로 알고 고행을 하거나 우쭐해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요한복음 6장 28절)라는 질문을 받으시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한복음 6장 29절)고 대답하셨다. 회개는 자신에게서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할 때, 선한 업적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88  예수께서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마태복음 6장 17, 18절)고 말씀하셨다. 하 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즐거움으로 해야지 슬픔과 우울한 기분으로 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에는 우울한 것이 없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슬픈 표정이을 지으며 주님 안에서 실망당한 것과 같은 인상을 주게 되면, 이것은 곧 주님의  품성을 잘못 나타내고 그분의 원수의 입에 구실을 붙여 주는 것이 된다. 말로는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로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나, 우울하고 슬픈 표정을 지음으로써 그들은 고아(孤兒)의 모습을 세상에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봉사를 사실 그대로 매력 있게 나타내기를 바라신다. 극기와, 마음의 은밀한 고통을 자비하신 구주께 내어 놓도록 하자. 짐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그대를 먼저 사랑하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즐겁게 갈 길을 가도록 하라. 사람들은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은밀히 진행되는 일을 끝까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의 결과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이 "갚으실" 실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마태복음 6장 19절).

 

땅에 쌓아 둔 보물은 오래가지 못한다. 도둑이 구멍을 뚫어 훔쳐 가고, 좀이 먹고 동록이 쏠기도 한다. 화재와 폭풍우가 소유를 쓸어가 네 버리기도 한다.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땅에 쌓아 둔 보물이 마음을 빼앗아 하늘의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유대인 시대에는 사람들의 정열이 주로 돈을 사랑하는 쪽으로 쏠렸다. 속된 마음이 하나님과 믿음이 차지할 자리를 빼앗았다.


 89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재물을 향한 탐욕은 너무도 매혹적이며 황홀케 하는 영향을 생애에 미치기 때문에, 고결함을 왜곡시키고 인간성을 부패케 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마침내 사람들을 멸망에 빠뜨리고 만다. 사단을 섬기면 근심과 번민과 피곤한 수고로 가득 찬다. 또, 사람이 세상에 쌓아 두려고 애쓰는 재물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예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 지도 못 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교훈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것이다. 하늘의 보물을 획득하는 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이들만이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다. 하늘에 쌓아 둔 보물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 어떤 화재나 홍수도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없고, 그 어떤 도둑도 그것을 빼앗아 갈 수 없고, 좀이나 동록이 그것을 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재산보다 더욱 귀중하게 여기시는 이 보물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에베소서 1장 18절)함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의 보배, 곧 그분의 귀중하고 특별한 보물로 불리어진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 같"(스가랴 9장 16절)다.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케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이사야 13장 12절). 모든 영광의 발원지인 위대한 중심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순결하고 완전한 상태에 있는 당신의 백성을 당신의 고난과 겸비와 사랑의 대가로, 또 당신의 영광의 보충으로 바라보신다.

 

 원저자 : 엘렌 G. 화잇 

 발행처 : 시 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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