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의 참 동기 (2)
목련
유채
동자꽃
봉사의 참 동기 (2)
90 우리는 위대한 구속 사업에 그분과 연합하고 그분의 죽음과 고난으로 얻은 부를 그분과 함께 나누도록 허락받고 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2장 19, 20절)고 편지하였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노력하여 얻으라고 하신 보물이다. 품성은 생애의 위대한 수확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사람의 마음속에 하늘을 향해 가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언행, 곧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의 형성에 이바지하는 모든 노력은 하늘에 보물을 쌓고 있는 것이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유익을 얻는다. 복음을 전하는 데 금전과 시간을 바치는 사람은 그 사업과 또 그 사업을 통하여 접촉하게 될 영혼들을 위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기도하게 된다. 애정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향하면서, 그는 그들에게 최대의 선을 행하기 위하여 더욱 하나님께 헌신하게 된다. 그리하여 세상의 재물이 소멸될 마지막 날,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둔 사람은 그의 생애에서 얻은 것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만일, 지금껏 그리스도의 말씀에 유의해 왔다면, 우리는 크고 흰 보좌 주위에 모일 때 우리의 활동으로 구원받은 영혼들을 보는 것은 물론, 저들의 면류관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놓고 세세 무궁토록 그분을 찬양하는 큰 무리가 우리의 노력의 결과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구원하고 구원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식으로 하여 안식의 항구에 들어오게 된 사람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91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한 자는 구속 주의 영광에 참예하는 구속받은 이 사람들을 얼마나 큰 기쁨으로 바라보겠는가!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신실했던 자들에게 하늘은 얼마나 귀중한 것이 될 것인가!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로새서 3장 1절).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태복음 6장 22절).
오직 하나의 목적, 곧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은 우리 구주의 말씀에 의하여 제시된 조건이다. 이 목적에 더욱 신실하고 굳게 서서 진리를 식별하며 어떤 희생이 닥치더라도 그것에 순종하도록 하자. 그리하면 분명히 신령한 깨우침을 받게 될 것이다. 진정한 경건은 죄악과의 모든 타협이 끝난 후에 시작된다. 그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을 것이다."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을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립보서 3장 13, 14, 8절) 자 함이라.
92 그러나 자아를 사랑함으로 눈이 흐려지면 흑암만이 있게 된다."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유대인을 완고한 불신에 둘러싸이게 함으로써,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분의 품성과 사명을 분별할 수 없게 한 것은 이 무서운 흑암이었다. 마음이 요동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없을 때, 시험에 굴복하는 일이 시작된다. 주께 자신을 완전히 바치려고 마음먹지 않으면 암흑 가운데 머물게 된다. 자신의 일부를 남겨두는 것은 사단이 들어와 우리를 유혹하여 타락시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는 것이나 같다. 그는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하여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만 하면 죄에 대한 방어벽이 없어진다는 것을 안다. 죄악의 욕망이 우세한 것은 영혼이 기만당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러한 욕망의 온갖 방종은 하나님께 대한 반감을 강화시킨다. 사단이 택한 길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악의 그림자에 둘러싸이고 발걸음이 더 캄캄한 데로 끌려가며, 마음이 더욱 어두워진다. 천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 세계에도 동일한 법칙이 행해진다. 흑암 가운데 거하는 자는 결국 시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한밤의 흑암보다 더욱 짙은 흑암에 갇히게 된다. 그리하여 가장 밝은 대낮도 그에게는 아무런 빛을 가져다줄 수 없다. 그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요한일서 2장 11절). 죄인은, 끝까지 악을 간직하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를 멸시함으로써, 선을 좋아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찾는 욕망과 하늘의 빛을 받을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비의 초청은 여전히 사랑으로 충만하고, 빛은 그의 영혼에 처음 비치던 당시와 마찬가지로 밝게 빛난다. 그러나 음성은 귀머거리가 된 귀에 떨어지고, 빛은 어두워진 눈을 비출 뿐이다.
93 어느 영혼이든지 구원의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로 하여금 방종케 하여 버림받은 자가 되도록 하지 않으신다."사람은 하나님에게로 돌아설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돌아서지 않으신다."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의 기회와 특권이 소용없을 때까지, 자비의 호소와 경고와 보증을 가지고 우리를 쫓아오신다. 책임은 죄인에게 있다. 그는 오늘 하나님의 영을 거절함으로써 빛이 더 큰 능력으로 비칠 다음번에도 이를 거절할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거절의 단계를 하나씩 지나게 되어, 마침내 빛이 그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하나님의 성령에 조금도 반응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네게 있는 빛"까지 어둡게 되어 버린다. 우리가 아는 진리도 완전히 왜곡되어, 영혼의 흑암이 더 심해진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마태복음 6장 24절).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않을 것이라거나 섬기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대한 관심과 재물에 대한 관심은 서로 일치되거나 상통하지 않는다. 세속적인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참고 극기하고 더 이상 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바로 그 선을 넘어 들어가 이기적인 성향을 마음껏 충족시킨다. 따라서 그 선을 중앙으로 하여 한쪽에는 유행에 앞장서고, 경박한 일에 빠지고, 금지된 오락을 마음대로 즐기고, 방종에 빠지는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선 저쪽으로 갈 수 없다.
94 어떤 사람도 중립적 위치에 설 수 없다.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고 의의 원수도 섬기지 않는 중간 계층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인간 대리자들 안에 거하셔서 그들의 재능을 통해 일하시고 그들의 힘을 통해 활동하셔야 한다. 그들은 의지를 그분의 뜻에 굴복시키고 그분의 영과 더불어 활동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 사는 것은 더 이상 그들이 아니요 그들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세력의 지배를 받고, 완전히 상이한 성경의 제안을 하는 다른 음성을 듣게 된다. 반만인 봉사를 하게 될 때, 인간 대리자는 흑암의 군대의 훌륭한 동맹자로서 원수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사단과 동맹하여 그의 편을 들게 되면, 이것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원수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들은 신성한 책임을 저버리게 된다. 그들이 사단과 참된 군사 사이에서 사슬 노릇을 하게 됨으로써, 원수는 이들 대리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군사들의 마음을 빼앗는 활동을 계속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악의 보루는 버림받은 죄인이나 타락한 부랑자의 부정한 생애가 아니라 밖으로는 덕망 있고 존경할 만하고 고상해 보이나 실제로는 죄를 품고 악이 깊숙이 침투해 있는 생애이다. 큰 유혹을 받고 이를 이기고자 은밀하게 투쟁하면서 절벽의 가장자리에서 떨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것이 죄를 짓게 하는 가장 강력한 미끼 중의 하나가 된다. 생명과 진리와 명예라는 숭고한 개념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하나라도 고의적으로 범한다면, 그것은 그분의 고상한 선물을 범죄의 유혹 물로 잘못 상요하는 것이다. 재주와 재능과 동정은 물론, 관대하고 친절한 행동까지도 사단의 미끼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멸망의 절벽으로 유혹하여 이생과 장차 올 생애를 파멸로 이끌게 할 수도 있다.
95 "이 세상이니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한일서 2장 15, 16절).
"염려하지 말라"(마태복음 6장 25절).
생명을 주신 분께서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몸을 창조하신 분은 의복의 필요성에 대하여 무관심하지 않으시다. 그렇다면 이제 더욱 큰 선물을 주셨으니 그 선물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것 또한 주시지 않겠는가? 예수께서는 아무런 근심이 없이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새들을 당신의 말씀을 듣고 있는 청중들에게 가리키시며, 그들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안"을 지라도 크신 아버지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분께서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물으신다.
"참새 한 마리도 예수님 몰래 떨어지는 일이 없고,
그분 몰래 아무도 머리 숙여 기도할 수 없다.
우리와 함께 어느 곳에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흘러내리는 괴로운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을 다 주시하신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을
결코, 결코,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96 언덕과 들판이 꽃으로 아름답게 덮여 있었다. 아침 이슬을 맞아 생기를 머금은 꽃들은 가리키시며, 예수께서는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보라"라고 말씀하셨다. 초목과 꽃의 아름다운 모양과 우아한 빛깔은 사람의 기술로 모사(模寫) 될 수 있지만, 어느 붓이 꽃 한 송이, 풀잎 하나까지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단 말인가? 길가에 있는 꽃 하나하나도 하늘의 별세계를 움직이는 바로 그 능력 덕택에 존재한다. 모든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심장의 맥박이 고동 한다. 들의 꽃들은 그분의 손에 의하여 지금껏 세상의 그 어떤 임금이 입은 것보다 더욱 아름다운 옷으로 입혀진다. 그러므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 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새를 보라"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꽃은 지으시고 참새에게 노래를 주신 분이시다. 천연계의 아름다운 속에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학자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백합화의 꽃잎 위에 그대를 위한 기별을 불신과 이기심과 해로운 근심을 버릴 때만 읽을 수 있는 말로 기록하신다. 아버지의 마음에 흘러넘치는 사랑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분께서 생애의 여정을 밝고 즐겁게 해 주는 노래하는 새들과 피어나는 꽃들을 주시겠는가? 생존에 필요한 것만 생각하면 꽃들과 새들이 없어도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단지 생존에 필요한 것만 공급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대를 향한 당신의 애틋한 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 땅과 공중과 하늘을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셨다.
97 모든 피조물의 아름다움은 그분의 영광의 빛을 반사하는 것일 뿐이다. 그분께서 그대의 행복과 기쁨을 위하여 천연계 위에다 이처럼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신 것을 안다면 그분께서 온갖 필요와 축복을 그대에게 주실 것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햇빛을 향하여 꽃잎을 펼치는 꽃들도 모두 별을 움직이는 바로 그 법칙에 순종한다. 그러니, 그 생명이 얼마나 단순하고 아름답고 신선한 것이겠는가! 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하신다. 꽃을 그처럼 아름답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으로 옷 입기를 더없이 바라신다. 예수께서는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다시 말해 그 식물이 어떻게 차갑고 어두운 땅이나 강바닥의 진흙에서 피어올라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향기를 풍기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신다. 누가 백합화의 거친 갈색 구근(球根)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안에 감춰진 하나님의 생명이 그분의 부르심을 받고 비와 햇빛 속에서 피어날 때, 사람들은 그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은, 비와 햇빛처럼 만인에게 무상의 축복이 되는 그분의 은혜의 봉사 사업에 헌신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피어날 것이다. 꽃을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바로 이 말씀이 그대의 마음속에 성령의 은혜가 충만케 할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사랑의 법이다. 그분께서는 그대가 이 세상에 있게 된 것은 단지 자신을 위해서만 탐구하고, 땅을 파고 집을 짓고, 수고하고 길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밝고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삶으로써, 사랑의 봉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생애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목적도 있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그대를 아름다움으로 두르셨다.
98 아버지와 어머니들이여, 자녀들로 하여금 꽃에서 교훈을 얻게 하라. 그들을 정원과 들과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로 데리고 가서, 천연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기별을 읽도록 가르쳐 주라. 하나님을 새와 꽃과 나무와 관련지어 생각하게 하라. 자녀들로 하여금 온갖 즐겁고 아름다운 것에서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을 보게 하라. 스스로 즐거운 신앙생활을 하여 그들도 신앙을 가지게 하라. 친절의 법이 입술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자녀들에게 그들의 본성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으로 변화되어 그분의 품성과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애가 꽃처럼 매력을 풍기는 아름다운 것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가르치라. 그들이 아름다운 꽃을 따 모을 때, 꽃을 만드신 분은 꽃보다 더욱 아름다운 분이심을 가르쳐 주라. 그렇게 하면 그들의 마음의 덩굴손이 그분을 감고 올라가게 될 것이다."온전히 사랑스러우신" 분이 그들에게 매일의 동반자와 절친한 친구가 되실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애가 그분의 순결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33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계속 조바심을 하며 이 세상 왕국에 대한 모종의 선언이 있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께서 하늘의 보화들을 소개하시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먼저 우리가 그분과 연합하면 세상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세상의 것들을 가장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이방인족들처럼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생활하였다고 지적하신다.
99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누가복음 12장 30절)."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33절). 나는 너희에게 사랑과 의와 평화의 나라를 알려 주기 위해 왔노라. 마음을 열고 이 나라를 받아들이며, 이 나라를 위한 봉사에 최대의 관심을 쏟으라. 비록 이 나라가 영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현실 생애를 위한 너희의 필요가 돌봄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중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께서 너희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니라. 예수께서는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살게 놓아두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가 모든 일에 당신을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최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우리는, 품성과 생애를 통하여 그분의 의를 나타내는 데 방해가 되는 사업에 종사하지 말며, 그런 작업을 구하지 말며, 오락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해서 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항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만사를 아버지의 뜻에 맡김으로써 모든 세밀한 점에서까지 생애를 고상하게 하셨다. 그분의 모본을 따른다면, 이 땅의 생애에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리라"는 그분의 보증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가난과 부, 질병과 건강, 우둔과 지혜, 이 모든 것들은 그분의 은혜의 허락을 통하여 제공된다.
100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연약한 영혼이라도 당신께 도움을 청하러 올라오면 영원한 팔로 감싸 주신다. 산에서 나는 보석들은 없어질 것이나,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그분과 함께 거할 것이다."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일서 2장 17절). 하나님의 성은 황금 문을 열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실패와 고난 중에서 인도하심과 지혜 그리고 위로와 소망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운 자를 맞아들일 것이다.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이사야 54장 10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태복음 6장 34절).
만일, 하나님의 사업이 종사하기 위해 자신을 그분께 바친 상태라면, 내일을 위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대를 종으로 삼으신 그분께서는 처음과 끝을 다 아신다. 미래의 사건들이 비록 그대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능하신 그분의 눈에는 환히 다 보인다.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의 손으로 처리하고 성공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지혜를 의지할 때는, 하나님께서 맡기지 않으신 짐을 지며 그분의 도움 없이 그것을 나르려고 애쓰게 된다. 하나님께 속한 책임을 우리가 짐으로써 사실상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는 것이다.
101 우리가 걱정하고 위험과 실패를 예측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우리에게 분명히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자 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을 때는 장래를 위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사랑하는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삼켜지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내일 일을 오늘 질 때, 그리스도께서는 도움을 약속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린도후서 12장 9절)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것처럼, 그분의 은혜는 그날의 필요를 위해 매일 주어진다. 순례 생활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아침마다 그날에 필요한 양만큼 하늘의 떡을 공급받을 수 있다. 우리에게 속한 것은 한 날 뿐이며, 이 날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 한 날 동안, 우리는 성실한 봉사를 통해 우리의 모든 목적과 계획을 그리스도의 손에 의탁하며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겨야 한다. 그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돌봐 주시기 때문이다."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예레미야 29장 11절)."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이사야 30장 15절). 매일 주님을 찾는 가운데 회개하고, 하나님 안에서 영적 선택을 자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며, 그분의 영광스러운 초청에 기쁜 마음으로 응하여 그리스도의 멍에 곧 순종과 봉사의 멍에를 멘다면, 모든 불평이 없어지고, 모든 어려움이 제거되며, 현재 직면하고 있는 모든 복잡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원저자 : 엘렌 G. 화잇
발행처 : 시 조사
'●역사 교리 > 산상보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상보훈 6장 // 비판하지 말고 행하라(1) (0) | 2022.02.16 |
---|---|
산상보훈 5장 // 주기도문 (0) | 2022.02.16 |
산상보훈 4장 // 봉사의 참 동기 (1) (0) | 2022.02.16 |
산상보훈 3장 // 율법의 신성성 ② (0) | 2022.02.16 |
산상보훈 3장 // 율법의 신성성 ① (0) | 2022.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