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지 말고 행하라(1)
주름꽃
얼룩제비꽃
비판하지 말고 행하라(1)
123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복음 7장 1절)
자기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고자 노력할 때,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죄에 대한 방벽으로 인간적인 부당한 요구
조건들을 쌓아 올리게 된다.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규칙들과 규정들을 만들고 거기에 억지로 따르려고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 자기에게로 돌이키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서 사라짐과 아울러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도 소멸된다. 많은 부당한 요구 조건을 가진, 인간이 고안한 제도는 그 주창자로 하여금 상술한 인간의 표준에 미달하는 모든 사람을 비판하게 한다. 이기적이며 편협한 비판의 분위기는 고상하고 관대한 마음을 억누르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중심의 판단과 마음이 좁은 정탐꾼이 되게 한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부류에 속하였다. 그들은 스스로의 약점을 생각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특권에 대해 감사하며 예배에 나와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영적 교만으로 가득 찬 채 나왔으며, 생각하는 것이 그저 "내 자신, 내 기분, 내 지식, 내 방법"뿐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성취한 것들을 기준 삼아 다른 사람들을 비판했다. 그들은 화려한 관복을 입고, 비판하고 정죄하기 위하여 재판석에 앉았다.
124 백성들도 대부분 이와 동일한 정신을 가지고 양심의 영역에까지 끼어들며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문제를 놓고 서로 심판하였다. 예수께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러한 정신과 행동을 두고 하신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뜻이다. 그대의 의견, 의무에 대한 그대의 견해, 성경에 대한 그대의 해석을 다른 사람들에 대한 표준으로 삼지 말고, 그들이 그대의 이상에 도달하지 않을지라도 마음속으로 그들을 정죄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지 말며, 그들의 동기에 관해 추측하지 말고, 그들을 판단하지 말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린도전서 4장 5절). 우리는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스스로 결점이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삼판 할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 유한한 사람들은 오로지 밖으로 드러나 것을 통해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행동의 숨은 동기를 아시고, 부드럽고 자비롭고 대하시는 분만이 각 사람의 사정을 결정하실 수 있으시다."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향함이니라"(로마서 2장 1절).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비판하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 죄가 있음을 공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똑같은 것을 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정죄함으로써,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유죄 선고를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판결이 지당하다고 언명하신다. 그분께서는 자신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판결을 받아들이신다.
"투박한 발은 여전히 수렁을 헤매며
끝없이 꽃을 밟으며 가지만,
손을 거치나 온정을 머금고
친구의 가슴을 파고들어 심금을 울린다.
125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마태복음 7장 3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는 충고라 할지라도, 형제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의 죄의 과중함은 다 나타내지 못한다. 예수께서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타인의 결점을 잘 찾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품성이나 생활에서 결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할 때. 그는 그것을 지적하기 위해 몹시 안달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비 그리스도적인 행동을 통해 꼴 지워지는 품성의 특성은 비판의 대상이 된 결점과 비교할 때 마치 티에 대한 들보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신다. 침소봉대(針小捧大)하는 것은 사랑과 용서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 완전히 굴복하는 회개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의 생애를 통해 구주의 사랑에서 나오는, 마음을 여는 감화를 끼치지 못한다. 이들은 복음의 따뜻하고 친절한 정신을 잘못 나타내며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귀한 영혼들에게 상처를 준다. 우리 구주께서 사용하시는 비유에 의하면 비판적인 정신에 빠져 있는 사람은 그가 비난하는 사람보다 더욱 큰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동일한 죄를 범할 뿐 아니라 거기에 자만과 비평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만이 품성의 유일한 표준이시다. 그러므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표준으로 삼는 자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위치에 놓게 된다. 그 리고 하늘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요한복음 5장 22절) 셨으므로, 사람들의 동기를 비판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의 특권을 다시 찬탈하는 것이다.
126 이처럼 스스로 판관과 비평가의 위치에 서는 자들은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데살로니가후서 2장 4절)는 적그리스도 편에 자신을 두고 있다. 가장 불행한 결과로 이끌어 가는 죄는 바리새 주의의 특성인, 냉랭하고 비판적이고 용서를 모르는 전신을 가지는 것이다. 신앙 경험에 사랑이 없으면 예수님도 거기에 계시지 않으신다. 즉 그분의 임재의 빛이 거기에 없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부지런히 활동하고 그리스도와 무관인 열성을 아무리 낸다 해도, 이 부족을 메울 수는 없다. 타인의 결함을 찾아내는 남다른 지각과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에 빠져 있는 눈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죄를 지어 켕기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먼저 죄를 알아챈다. 이런 사람은 남을 비난함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악을 감추거나 변명하려고 애쓴다. 사람이 악을 알게 된 것은 죄로 말미암아서였다. 최초의 부부는 죄를 범하자마자 서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그 본성이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있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이렇게밖에 될 수 없다. 사람들은 이 비난하는 정신을 가지게 되면 형제의 결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만일, 비교적 온건한 방법으로 그 형제에게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시킬 수 없게 되면, 그들은 강제적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그들의 힘이 미치는 한 사람들을 강요하여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게 할 것이다.
127 이것은 그리스도 당시에 유대인들이 한 일이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상실했을 때 언제나 해 온 것이다. 교회는 자체에 사랑의 능력이 없음을 알았을 때 교리를 강조하고 교령(敎令)을 집행하기 위하여 강력한 국가의 권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여기에 지금까지 제정된 모든 종교적 법령의 비밀과 아벨의 시대부터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핍박의 비밀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당신께로 이끄신다. 그분께서 사용하시는 유일한 강제 수단은 사랑의 강권이다. 교회가 세속적 권세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능력, 곧 거룩한 사랑으로 강권하는 능력이 부족한 증거이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의 각 교인에게 있으며 치유가 이루어져야 할 곳도 바로 여기이다. 예수께서는 비난하는 자들에게,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고, 비난하는 정신을 버리고, 죄를 자백하고 버리라고 명령하신다. 왜냐하면 "못된 나무가 없"(누가복음 6장 43절) 기 때문이다. 그대가 빠져 있는 이 비난하는 정신은 악한 열매이며, 그 나무가 나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대 자신을 독선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심령의 변화이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나무라는 위치에 서기 전에 먼저 이 경험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대개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마태복음 12장 34절)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생애에 위기가 닥쳐 그대가 조언이나 권면을 주고자 할 때, 그대의 말은 선을 위한 감회를 끼치되 평소에 그대 자신의 모본과 정신이 그대를 위해 확보해 놓은 정도만큼만 끼치게 될 것이다.
128 그대는 선을 행하기 전에 먼저 선하게 되어야 한다. 그대 자신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겸허하게 순수하고 부드러워지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킬 감화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대에게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생애 하는 것이 마치 장미 덩굴이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포도나무가 자색 포도송이를 맺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대 안에서 "영광의 소망"이 되시면,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살피며 그들의 잘못을 폭로하는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다. 비난하고 정죄하는 대신에, 도와주고 축복하고 구원하는 것이 그대의 목적이 될 것이다. 잘못한 사람들을 취급할 때,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라디아서 6장 1절)는 말씀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 역시 여러 번 잘못을 범했다는 것과 한번 바른 길에서 떠나게 되면 다시 그 길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상기할 것이다. 형제를 더욱 어두운 곳으로 밀어 넣지 않고 대신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그의 위험을 알려 주게 될 것이다. 갈바리의 십자가를 자주 쳐다보는 사람은 자기의 죄 때문에 구주께서 그곳에 달리셨음을 생각하고 그의 죄악의 정도를 다른 사람들의 것과 비교해서 헤아려 보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위하여 재판석에 앉지 않을 것이다. 갈바리의 십자가의 그늘 아래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비판이나 자만의 정신이 있을 수 없다. 잘못을 범한 형제를 구원하기 위하여 체면은 물론 생명이라도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그대는 눈에서 들보를 빼고 형제를 도와줄 준비를 갖추게 된다. 그제야 형제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를 감동시킬 수 있다.
129 어떤 사람도 책망과 비난 때문에 그릇된 처지에서 돌이킨 적은 없다. 도리어,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떠나고, 마음을 걸어 잠근 채 회개하지 아니하였다. 유순한 정신과 친절하고 마음을 끄는 행동이 실수한 사람을 구원하며 허다 한 죄를 가려 줄 수 있다. 그대의 품성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대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변화시키는 능력을 주게 될 것이다. 매일 그리스도께서 그대 안에 나타나시게 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대를 통해 당신의 말씀이 가진 창조의 능력, 곧 우리 주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다른 영혼들을 재창조해 줄, 온유하고 설득력 있으면서도 강력한 감화력을 나타내실 것이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마태복음 7장 6절).
예수께서는 여기서 죄의 종 된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부패하고 부도덕한 것에 빠짐으로써, 그들은 성품이 너무 타락하여 악에 집착하고 그것을 버리고자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복음을 다만 논쟁과 조롱거리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아무리 죄에 빠져 있을지라도 하늘의 귀중한 진리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지나쳐 버리지 않으셨다. 세리와 창기에게 그분의 말씀은 새 생애의 시작이 되었다. 주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낸 막달라 마리아는 구주의 무덤에 맨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사람이었으며, 그분께서 부활하신 아침에 제일 먼저 인사를 건넨 사람이었다.
130 복음의 가장 확실한 원수 중 하나였던 다소 사람 사울은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종 바울이 되었다. 증오와 경멸의 모습 뒤에는 물론, 심지어 범죄와 타락의 이면에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아 구주의 왕관의 보석처럼 빛날 영혼이 숨겨져 있을 수가 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장 7절).
주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대해 불신과 오해와 오역의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세 번에 걸쳐 약속을 주신다. 그분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하나님을, 모든 것은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라고 부언하신다. 주께서는 그대가 그분의 자비를 갈망하고, 그분의 권고를 바라며, 그분의 사랑을 열망하는 것 외에는 아무 조건도 붙이지 않으신다."구하라, " 구한다고 하는 것은 필요를 깨닫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믿음으로 구하면 그대는 얻을 것이다. 주께서 당신의 말씀을 보증하셨으므로, 그 말씀은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다. 만일,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간다면, 주께서 약속하신 것을 구하는 일을 주제넘은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와 같은 완전한 품성을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축복을 구할 때, 주께서는 그대가 반드시 이행될 약속을 따라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증해 주신다. 그대가 스스로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고 깨닫는 자체가 그분의 자비와 동정을 구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131 그대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조건은 거룩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께 그대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고 모든 죄에서 순결하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든지 간구할 수 있는 것은 그분과 그분의 구원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크고 부족한 상태 곧 우리의 속절없는 처지이다."구하라." 하나님의 축복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구하라.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기 22장 21절). 구하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찾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대가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성령께서 이끌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끄심에 순복 하라. 그리스도께서는 유혹받고 실수하고 믿음 없는 자들을 위하여 탄원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당신과 교제할 수 있는 위치까지 높이시기 위해 애쓰고 계신다."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역대상 28장 9절)."문을 두드리라." 우리는 특별한 초청에 의하여 하나님께 영접해 드리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예수님을 따른 최초의 제자들은 그분과 길가에서 몇 마디 나누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랍비여 어디 계시 오니까." 하고 물은 뒤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요한복음 1장 38, 39절)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과 더없이 밀접한 친교와 교제를 나눌 수 있다."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시편 91편 1절).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는 사람들로 하여금 확실한 보증을 가지고 자비의 문을 두드리고 기다리면서, 주여,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주장하게 하라.
132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모인 무리들을 보시고, 그 큰 무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필요와, 즐겨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예증으로, 그분께서는 그들 앞에, 육신의 부모에게 떡을 달라고 요구하는 배고픈 자녀의 비유를 제시하신다. 그분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부모가 자녀에 대해 본능적으로 가지는 따뜻한 애정에 호소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그 누구도, 배가 고파서 떡을 달라고 하는 아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자녀를 소홀히 취급하며 자녀에게 기대를 가지게 하여 안타깝게 만들어 결국 실망하게 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자녀에게 훌륭하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주기로 약속해 놓고 돌을 주겠는가? 어느 누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의 호소에 응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함으로써 그분을 욕되게 할 것인가? 너희가 인간이며 또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누가복음 11장 13절). 하나님의 대리자이신 성령이야말로 모든 선물 가운데서 가장 큰 선물이다. 각양 "좋은 것"이 이 선물 안에 포함되어 있다. 창조주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보다 더 위대하고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 없다. 우리가 고통 중에서 주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하고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해 달라고 탄원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시도를 결코 물리치지 않으실 것이다. 부모는 배고픈 자녀를 외면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필요해서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의 간구를 결코 거절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얼마나 놀라운 자비로써 당신의 사랑을 표시해 오셨는가!
133 다음 기별은 하늘 아버지의 심중에서 나온 것으로서, 암흑의 날에 그분께서 저들을 돌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이사야 49장 14~16절).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모든 약속은 우리에게 기도할 주제를 제공해 주고,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을 우리의 보증으로 제시해 준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축복이 어떤 것이든지, 예수님을 통하여 구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바로 그것을 주께 아뢸 수 있다. 우리는 현재의 형편을 이야기하면서 생명의 양식과 그리스도의 의의 옷은 물론 현세의 떡과 의복까지 구할 수 있다. 그대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대에게 이 모든 것이 필요함을 아시고, 그것들에 관하여 그분께 구하도록 그대를 초청하신다. 모든 은총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며 당신의 후한 선물로써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고 나아갈 때, 그대는 그분과의 관계를 자녀로서 선하심을 신뢰할 뿐 아니라 그분의 사랑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일에든지 그분의 뜻에 순복 한다. 그대는 그분의 사업을 하기 위해 자신을 바친다. 예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요한복음 16장 24절)라는 약속을 주신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는 명령을 받은 자들이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의 선물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저장되어 있다.
134 구주의 피라는 고귀한 희생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귀중한 선물, 마음의 가장 큰 소원을 만족시켜 줄 선물, 영원토록 계속될 선물을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 그대로 그분 앞에서 간구하라. 그리하면 그대는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증해 주신 후, 예수께서는 인간의 모든 교제 관계를 망라한 광범위한 원리로써,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받아야 할 것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들의 걱정은,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권세와 존경과 봉사를 받기 위해 애쓰는 데서 생겼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받을지 염려하지 말고 얼마나 줄 수 있을지 염려하라고 가르치신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의무의 기준을 우리에 대한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찾는다. 다른 사람들과 교제할 때는 그들의 처지에 서도록 하라. 그들의 감정과, 그들의 슬픔에 들어가라.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라. 그리고 그들과 처지가 바뀌었을 때 그들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라.
135 이것이 성실의 진정한 법칙이다. 이것은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장 39절)는 율법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선지자들의 교훈의 요지이다. 이것은 하늘의 원칙이므로 하늘의 거룩한 교제에 합당한 모든 사람에게서 계발될 것이다. 황금률은 진정한 친절의 원칙이며 예수님의 생애와 성품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아! 얼마나 부드럽고 아름다운 빛이 우리 구주의 생애에서 비쳐 나왔던가! 그분의 임재에서 흘러나온 향기는 또 어떤가! 이와 동일한 정신이 그분의 자녀들 가운데서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자들을 거룩한 분위기로 둘러싸일 것이다. 그들의 순결한 흰 옷은 여호와의 동산에서 풍기는 향기가 될 것이다. 그들의 얼굴은 주님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을 반사하고, 피곤하여 비틀거리는 발을 위하여 길을 밝혀 줄 것이다. 무엇이 완전한 품성을 이루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동정과 친절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은혜의 감화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감정을 세련되고 순결하게 하며, 하늘에서 난 우아함과 바르게 처신하는 분별력을 줄 것이다. 그러나 황금률에는 한층 더 깊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의 청지기가 된 사람은 모두 무지와 암흑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그 은혜를 나누어 주되 그들과 처지가 바뀌었을 때 자신에게 나누어 주기를 그들에게 바라는 만큼 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사도 바울은 "헬라 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로마서 1장 14절)고 말하였다. 그대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또 이 세상에서 형편없고 타락한 사람보다도 더 그분의 풍성하신 은혜를 입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대는 그 영혼에게 이 선물들을 나누어줄 빚을 지고 있다.
원저자 : 엘렌 G. 화잇
발행처 : 시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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