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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업/교회증언 1.2.권

교회증언 2 권 // 20호 (1871) 사교 집회

by 동심초(남양주) 2022. 3. 3.

  20호 (1871) 사교 집회 

 귀네미배추밭 

 

 

 사교 집회  

 577  최근에 나는, 내가 매우 존경하는 한 형제로부터 어떻게 모임을 진행할 것인가를 묻는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계속하여 기도한 후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진 다음 다시 여러 사람들이 기도해야 할 것인가를 물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내가 받은 빛을 통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경배하기 위하여 모일 때, 여럿의 긴 기도를 들으며 상당히 오랜 시간 머리를 숙이고 있음으로써 이런 모임을 지루하고 피곤하게 생각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건강이 좋지 않은 자들이 이러한 부담을 받으면 극히 피곤해지거나 기진하게 된다. 오랫동안 구부리고 있음으로 몸이 피곤하게 되는데, 더욱 나쁜 것은 계속되는 기도로 인하여 마음이 너무 피곤하게 되어 영적인 원기 회복을 경험하지 못하게 됨으로 차라리 모임을 갖지 않음과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심신이 피곤하게 되어 영적 힘을 얻지 못했다.

 

 578   총회나 기도를 위한 모임은 지루하게 되지 말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모두가 정한 시간을 지켜야 하고, 반 시간 혹은 십오 분씩 늦는 자들이 있더라도 기다리지 말 것이다. 참석자가 적건 많건 집회는 가능하면 정각에 시작하여야 한다. 형식과 딱딱함을 버리고 모두가 의무를 제때에 이행해야 한다. 일반 집회의 경우 기도는 십 분을 초과하지 말아야 한다. 자세를 바꾸고 찬미나 권면을 통하여 단조로움을 해소한 후 누군가가 기도할 의무를 느낀다면 그들로 기도하게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짧게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느껴야 한다. 온 세상을 돌아다니지 말고 그대가 원하는 것만을 주님께 말하라. 개인 기도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길게, 좋아하는 대로 솔직하게 기도할 특권을 가진다.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친척들과 친구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다. 골방은 그들의 모든 사사로운 어려움, 시련, 시험들을 고할 장소이다. 그러나 주님을 경배하기 위한 일반적 모임은 마음의 사적인 일을 공개하는 장소가 아니다. 함께 모이는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고함으로써 하나님을 가르치고 그분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인가? 우리는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교환함으로 피차간에 덕을 세우고, 또한 서로의 희망과 포부를 앎으로 힘과 빛과 및 용기를 모으기 위하여 모인다. 그리고 믿음 가운데서 드려지는 우리의 열렬하고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힘의 근원으로부터 원기의 회복과 활력을 받는다. 이러한 모임은 가장 귀한 시간이 되어야 하며, 영적 사물에 의욕을 가진 모든 살마에게 흥미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개인 기도를 통하여 그들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가져가지 않고 그것을 기도회를 위하여 간직해 두었다가 거기서 며칠 간의 기도를 하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총회나 기도회의 방해자라는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을 것이다.

 

 579   그들은 빛을 발하지 못하며 아무에게도 덕을 세우지 못한다. 그들의 냉랭하고 고정된 기도와 길고 퇴보적인 간증은 그늘만 드리운다. 그들의 기도나 간증이 끝나면 모두가 기뻐하며, 그들의 기도와 훈계가 모임에 가져온 냉기와 어둠을 떨쳐 버리는 것의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받은 빛에 의하면, 우리의 집회는 영적이고 친목적이어야 하며 너무 길지 않아야 한다. 침묵, 교만, 허영, 그리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집에 두고 와야 한다. 사소한 불화나 편견은 이러한 집회에 가지고 오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빛을 가져옴으로써 원기가 회복되고 활력을 어기 위하여 모이는 형제자매들의 마음속에는 연합한 가정에서처럼 단순함, 온유, 신뢰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 하늘의 교사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모두가 다 동일한 경험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신앙 생애의 소유자들이 함께 모여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의 경험을 나눈다. 향상하는 그리스도인 생애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생생한 경험,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을 가져야 하며, 또 가지게 될 것이다. 산 경험은 매일의 시련, 투쟁과 시험 및 강한 노력과 승리, 그리고 예수님을 통하여 얻는 큰 화평과 기쁨으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경험들의 단순한 관계는 거룩한 생애에 있어서 남을 전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빛과 힘과 지식을 준다. 하나님께 대한 경배는 거룩한 하늘 사물에 애정을 가진 자들에게 흥미롭고도 교훈적이어야 한다. 하늘의 교사이신 예수님은 인류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생애의 순결과 거룩함으로 모든 인생의 갈 길을 비추어 하늘로 가는 길을 밝혀 주심으로써 인류에게 유익을 주시고자 하늘로부터 그들이 거하는 지구로 오셨다. 세상의 구속주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하고 단순하게 하고자 노력하셨다.

 

 580   그분은 대가 강연을 위한 장소로 노천을 택하셨다. 그분을 따르던 무리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도 없었지만, 그분이 당신의 교훈을 주시기 위하여 수풀이나 해변을 찾으신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곳에서 그분이 전망 좋은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비천한 인생들이 익히 아는 사물들과 장면을 사용하여 그들에게 알려 주신 중요한 진리들을 설명해 주셨다. 그분은 당신의 교훈을 천연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작품들과 연결시키셨다. 근심 걱정 없이 노래를 부르는 새들, 아름답게 자라나는 골짜기의 꽃들, 호수 한가운데 순결하게 떠 있는 수련, 키가 큰 나무들, 황폐한 땅,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 여영한 언덕들, 졸졸 흐르는 시냇물, 하늘을 물들이며 아름답게 꾸며 주는 낙조, 그분은 신령한 진리로 청중들을 감화시키는 데 이런 모든 것들을 사용하셨다. 그분은 하늘과 땅에 있는 하나님께서 그 손가락으로 만드신 작품들을, 청중의 마음에 새겨 주시기를 원하시는 생명의 말씀과 연결시키셨다. 그것은 그들이 자연계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바라볼 때 그들의 기억 속에 당신의 교훈을 새롭게 해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당신의 가르침을 흥미 있게 하고자 애쓰셨다. 그분은 지치고 굶주린 무리들이 영적 유익을 얻지 못할 것을 아시고 그들의 육체적 필요를 잊지 않으셨다. 한 번은 당신의 입술에서 발하여지는 생명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든 오천의 군중들을 먹이시는 이적을 행하셨다. 예수께서는 귀한 진리를 청중들에게 전하실 때에 당신의 주변 환경을 고려하셨다. 그 풍경은 눈길을 끌 만하며, 미를 사랑하는 자들의 마음에 찬탄을 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창조 사업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칭송하고, 천연계를 통하여 그들의 마음을 천연계의 하나님께로 향하게 함으로 당신의 거룩한 교훈과 결속시킬 수 있으셨다.

 

 581   그리하여 경치, 나무, 새, 골짜기의 꽃들, 언덕, 호수, 그리고 아름다운 하늘이 청중들의 마음속에서는 그릿도의 승천 이후에도 그들이 그러한 사물들을 볼 때 기억 속에 구별된 거룩한 진리와 연결되었다. 백성들은 가르치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기도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지 않으셨다. 그분은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에게 길고 지루한 의식과 기도를 강요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셨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의 기도는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 외에 더 이상 표현하지 않는 짧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인식시키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세속적 · 영적인 축복을 간구하며 그것에 대한 감사를 표명하는 그들의 기도의 길이와 내용을 제시하신다. 이 모 본적인 기도는 얼마나 함축적인가! 그것은 실제적인 모든 필요를 망라하고 있다. 일반적인 기도는 1~2분으로 충분하다. 기도가 성령에 의하여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성령 안에서 간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열망하는 영혼은 하나님을 따라 고민하며 신음하게 된다. 그 영혼은 야곱이 한 것처럼 씨름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특별히 나타나지 않으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메마르고 설교를 하는 듯한 태도로 기도를 드린다. 이것은 인간에게 하는 기도이지 하나님께 하는 기도가 아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며 그들이 하는 것이 무엇임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582  왜냐하면 그들은 마치 우주의 창조주께서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된 일반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특별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기도의 형식을 빌어서 주님께 강의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든 기도는 소리 나는 구리요 울리는 꽹과리이다. 그것들은 하늘에서 중요하게 여김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러한 기도를 듣도록 강요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으로 인하여 지루해진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분은 하늘 아버지께서 당신의 요청을 아뢰기 위하여 한적한 수풀이나 산을 찾으셨다. 하루의 일과나 수고가 끝나고 피곤한 자들이 휴식을 찾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그 시간을 기도에 바치셨다. 우리는 기도를 억제하고자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도와 경성함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성령과 깨달음으로 기도하는 일은 더욱 적다. 열렬하고 효과적인 기도는 항상 적절한 기도이며 결코 지루해지지 않는다. 그러한 기도는 헌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흥미를 끌며 원기를 회복시킨다. 사람들이 은밀한 기도를 등한히 하는데,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길고 지루하고 퇴보적인 기도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하여 한 주일 동안 게을리 항 의무에 대하여 언급하며, 그들의 소홀함을 보상하고 가책을 느끼는 양심을 지전 시키기를 바라면서 기도를 되풀이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호의를 받기 원하여 기도한다. 그들은 흔히 이러한 기도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그들과 같이 영적인 흑암의 낮은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결과를 낳는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경성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올바로 인식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에 있어서 더욱 현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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