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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리/바울의 생애

바울의 생애 // 14. 바울의 시련과 승리

by 동심초(남양주) 2022. 4. 7.

 14. 바울의 시련과 승리 

 제주도에서 

 

 

 바울의 시련과 승리 

에베소는 삼 년 이상이나 바울의 사업의 중심이었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져 번영했으며, 이 도시로부터 복음이 아시아 전역의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다. 사도는 이제 얼마 동안 다른 지방의 선교 여행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회들과 아시아 그리고 고린도에 들어 얼마의 시간을 보낸 후 예루살렘으로 가고, 후에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 이 계획에 따라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보냈으나, 에베소의 사업을 위해서도 여전히 그가 있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오순절 후까지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곧 그의 출발을 재촉하는 한 사건이 일어났다. 매년 5월에 에베소의 여신을 영화롭게 하는 특별한 예식이 거행되었다. 이 예식에는 그 도의 각 지방으로부터 수많은 사람이 운집했다. 이 한 달 동안에 가장 장엄하고 화려한 축제들이 거행되었다. 선택받은 사람들로 대표되는 신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경배의 대상이 되었고, 그들에게 행진과 제물 그리고 신주(神酒)로 영광을 돌렸다. 거대한 극장과 운집한 사람들 속에서 음악 경연과 운동 시합, 짐승과 사람의 격렬한 격투가 벌어졌다. 이 대단한 축제를 진행하도록 선택된 사람들은 아시아의 으뜸가는 도시들에서도 최고위층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또한 대단한 부자들로서 그들의 지위에 대한 영예의 대가로 그 축제 전 과정의 비용을 대야 했다. 전 도시가 찬란한 전시장이었고, 거친 난장판이었다. 거창한 행렬이 신전을 향하여 몰려가고 있었다. 온 하늘은 즐거운 소리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마음껏 즐기고, 취하고, 가장 비열한 방종에 빠져 있었다.


이 축제 시기는 새로 신앙에 입문한 자들에게는 시련의 때가 되었다. 두란노 서원에 모인 신자들의 무리는 축제의 합창에서 불협화음이 되었다. 그들에게 조롱과 비난과 모욕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바울의 전도는 이교 숭배에 현저한 타격을 주었다. 그 결과 거국적 축배에 참석하는 숫자와 예배자들의 영광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그 가르침의 영향은 실제로 회심한 자들의 범위를 넘어서 확대되었다. 공개적으로 새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많은 사람도 이교의 신들에 대한 모든 신뢰심을 잃을 정도로 계몽되었다. 바울이 이 도시에 있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관심을 받아서 그에게 저주가 무더기로 퍼부어졌다. 또한 다른 불만의 원인이 있었다. 이교 국가들에서는 신전과 그들이 좋아하는 예배 대상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작은 감실(龕室-사당 안에 신주를 모셔 두는 장)과 우상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전통이 있었다. 거대한 다이애나 신상을 본떠서 만든 휴대용 신상들이 지중해 해변을 따라 주변의 여러 나라에 통용되고 있었다. 우상이 들어 있는 신전의 모형들도 불티나듯 팔리고 있었다. 이 두 가지가 다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그것들은 행진의 선두에 운반되어 있었고, 여행이나 군대의 원정 때도 사용되었다. 확장성이나 수익성이 뛰어난 사업이었기 때문에 에베소에서 감실이나 우상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은 크게 신장하고 있었다. 이 사업에 재미를 보았던 사람들이 그들의 이익을 감소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연합하여 그 달갑지 않은 변화를 바울의 전도의 탓으로 돌렸다. 은감실의 생산자인 데메드리오는 그의 직공들을 불러 모으고, 바울에 대한 그들의 분을 거칠게 쏟아 냈다. 만일 바울이 그들의 전통적인 예배를 버리고 사람들을 끌어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들의 손실이 어마어마하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며, 자기들의 장사가 위험에 처했다고 따져 들었다.


그리고는 그들이 믿는 미신에 호소했다.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험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행 19:25~28)라고 외쳤다. 이 더메드리오의 연설에 대한 소문은 신속히 퍼졌다. 소란은 굉장했다.전 도시가 동요된 듯했다. "온 성이 요란 하"였다. 곧 거대한 무리가 소집되어 바울을 찾으러 유대인 지역의 아길라의 작업장을 수색했다. 분노의 북받친 그들은 바울을 잡으면 갈가리 찢어 죽일 태세였다. 그러나 바울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형제들은 위험의 통고를 받자 그를 급히 거기서 떠나도록 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충실한 사도를 보호하도록 파송되었다. 그가 순교자의 죽음을 죽을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노의 대상을 발견하지 못한 폭도들은 바울과 같이 다니던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가지고 이들과 함께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둘어갔"다. 바울이 숨은 장소는 그리 멀지 않았고, 그는 곧 사랑하는 형제들의 위험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그는 용기를 냈다.


그는 그의 주를 위한 싸움터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울은 자신의 안전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폭도들에게 말하려고 즉시 연극장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희생을 염려해서 제자들이 말렸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백성들이 찾는 먹이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에게 큰 해가 우려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도의 창백하고 근심 어린 얼굴이 보이게 되면,  이것은 곧 폭도들의 최악의 분노를 유발하여 그의 생명을 구원할 최소한도의 인간적인 가능성마저도 없게 될 것이었다바울은 여전히 군중 앞에서 진리를 옹호하려고 갈망했으나 마침내 연극장에서 온 경고의 기별로 제지당하였다. 치안 판사들 중 가장 존경할 만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이런 위험 속에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시아의 지도자들이 바울의 흠결 없는 품성에 매료된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연극장의 소동은 계속 증가되었다.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행 19:32). 바울과 그의 동료중 얼마가 히브리 혈통이란 사실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비난이 저희들에게 돌려져 그들까지 위험하게 될 것을 알았다. 저희는 바울과 그의 사업에 동조하는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 중에 한 사람을 내세워 백성들 앞에 그 문제를 제시했다. 선택된 대변인은 세공업자의 한 사람인 구리 장색 알렉산더였는데, 그에 대하여 바울은 후에 자기에게 해를 많이 끼친 자라고 언급했다. 알렉산더는 상당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고, 백성들의 분노를 오로지 바울과 그의 동료들에게로 돌리기 위하여 그의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군중은 알렉산더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떠밀어 버리고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 동안이나 하"였다(행 19:34). 마침내 극도의 피로에 지쳐 그들은 소동을 그쳤고 일순간 조용 해졌다. 그때 그 도시의 서기장이 군중의 주목을 끌어 그의 직권에 의해 발언할 기회를 얻었다. 그의 사리 분별과 판단력 덕분에 곧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 성공했다. 그는 백성들을 자신의 입장에서 대했고, 그런 소동을 일으킬 아무런 까닭도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는 그들의 이성에 호소했다. 그들에게 들어온 낯선 사람 하나가 그들의 여신에 대해서 온 세상 사람들의 견해를 통째로 바꿀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수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일이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행 19:35~36). 그들에게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아데미 신전을 모독하지도 않았고, 여신을 모독해서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도 아니하고 호소했다. 그리고 아주 능숙하게 사태를 돌려 데메드리오의 문제를 다시 다루었다.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행 19:38~39). 그는 이런 소동이 정당한 이유 없이 발생해서 에베소 당국에 의해 로마에 보고되면 그 도시가 누리는 지금의 자유도 제한을 당연하게 되고, 다시는 이런 행사를 못하게 되리라는 경고로 그의 연설은 끝냈다. 이 연설로 소란이 가라앉았고 서기장은 그들을 해산시켰다. 데메드리오의 말은 에베소의 소동이 원인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며, 진리를 전파하는 사업에 있어서 바울이 당한 핍박의 원인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의 이 영업"에 위험이 있" 다고 말했다. 데메드리오와 그의 동업자들은 복음의 가르침과 전파로 인해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 위태롭게 된 것을 알았다. 이교의 사제들과 직공들의 수입이 위태롭게 되었다는 이유로 가장 신랄하게 바울을 대적했다. 또한 그들이 받아들이고 연구하면 구원에 대한 지혜를 얻게 되는 새로운 종교를 거절해 버렸다.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긴 노력이 끝났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불리한 것들을 이겨 내는 것이 대해서 흥분을 느꼈다. 바울의 마음은 그의 생명이 보존되었고 에베소에서의 소동으로 그리스도교의 평판이 떨어지지 않은 데 대하여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충만하게 되었다. 서기장과 그 도시에서 명예로운 직분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결정은 바울을 백성들 앞에 불법적인 행위에 대하여 무죄로 인정했다. 이것은 오류와 미신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또 하나의 승리였다. 하나님께서는 훌륭한 한 관원을 일으켜서 당신의 사도를 옹호하게 하시고 소동을 폭도들을 제지하게 하셨다. 바울은 그의 믿음의 자녀들에게 애정 어린 작별을 고했다. 마케도니아로 가면서 거기서부터 드로아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이 여행에 바울은 에베소의 충실한 두 형제 두기고와 드로비모를 데리고 갔다. 그들은 바울이 생애를 마칠 때까지 그의 곁에서 충실한 동역자의 역할을 했다.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수고는 끊임없는 노력과 많은 시련과 깊은 고뇌의 시절이었다. 그는 가가호호를 방문하거나 공개적으로 백성들을 가르쳤으며, 많은 눈물로 그들에게 교훈하고 경고했다. 끊임없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반대를 받았는데, 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대적하여 민중의 감정을 흔들어 놓았다. 여러 번 폭도들의 공격을 받았고, 모욕과 폭행을 당했다.


진리의 원수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사람의 구원을 위한 그의 노력의 효과를 파괴하려 했다. 이와 같이 반대를 대항하여 싸우며 지치지 않는 열성으로 복음 사업을 전진시키고 아직 신앙이 어린 교회의 이익을 보호하는 동안, 바울은 모든 교회를 위한 무거운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는 또한 육체적 부담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없었다. 이곳 고린도에서 그는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직접 자기 손으로 일을 해야 했다. 끝없는 수고와 지속적인 위험 그리고 육체의 질병과 때로는 정신적 좌절 속에 지치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는 굳건하게 그의 사업을 밀고 나갔다. 그가 세운 교회들 중 어떤 교회에서 들려오는 배도의 소식은 그를 매우 슬프게 했다. 그들을 위한 노력이 헛되지나 않을까 염려해야 했다. 그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하여 사용된 방법들을 알았을 때 여러 날 밤을 자지 않고 기도로 지새우며 생각에 골몰했다. 그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그들의 상태에 도움이 요구될 때 그는 교회들에게 권고와 권면과 격려의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들 가운데서 사도는 자신의 시련에 관하여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한 그의 수고와 고통에 대하여 때때로 암시했다. 매 맞고 옥에 갇히고, 추위에 떨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육지와 바다의 위험, 도시에서와 광야에서의 위험,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 이 모든 것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참아 냈다. 바울은 "비방"과 "후욕을 당하"였고, "사방으로 에워쌈을 당하"였고, "답답한 일"과 "핍박을 당하"였고, "사방으로 에워쌈을 당하"였고,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라고,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넘겨졌다. 계속적인 반대의 폭풍우 속에서 원수들은 부르짖고, 동지들은 배반하고, 그런 가운데서 담대한 사도도 거의 낙심할 뻔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는 일에 매진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밟으신 피 묻은 길을 밟고 가는 데 불과했다. 그는 구주의 발아래서 갑옷을 벗을 때까지 싸움에서 물러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사도가 그의 수고를 끝마치고 쉬게 된 지 18세기가 지나갔지만, 그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희생하고 수고한 역사는 교회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이 역사들은 성령에 위해 기록되었으며, 각 시대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이것으로부터 주의 사업에 더 열성을 내고 충성하도록 자극받게 될 것이다. 이 믿음의 영웅이 오늘날 목회자 사회에 편만한 자기 편협과 안일을 사랑하는 정신 위에 얼마나 큰 경종(警鍾)을 울리고 있는가! 삶의 일상적인 문제와 시련에 눌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처지를 너무 힘들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해서는 무엇을 했으며 얼마나 고통을 당했던가? 이 위대한 사도의 기록과 자신의 일을 비교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 그들은 얼마나 마음에 부담을 느꼈던가? 그들은 자기부정이나 희생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탁월한 성품과 그들이 누리는 모든 축복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은혜에 빛을 지고 있다. 자신의 모든 것, 그들의 모든 소유가 그리스도의 피로 산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으로 반대와 핍박을 만날 때 결코 그들의 믿음이 약해 지거나 그들의 용기가 꺾이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도움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원수를 대적하고, 모든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사도에게 지치지 않고 일하게 했던 그 열정이 그들에게도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충성을 따라가는 사람만이 그와 함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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