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에 보낸 두 번째 편지
제주도에서
고린도에 보낸 두 번째 편지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에 가서 언제나 그 앞에 놓여 있는 목표, 곧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알려 주려고 했다. 지난번 여행에서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 환상 중에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이리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간절한 요청을 듣고, 유럽에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었다. 그래서 드로아에서의 체류 기간이 단축되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를 위한 문이 열렸고, 교회를 세웠던 데 매우 신속히 발전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는 디도에게 고린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드로아에서 자기와 합류하자고 했었는데, 그가 오는 길에 고린도 교회로부터 몇 가지 소식을 가져올까 하고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주일이 지났지만 디도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지내야 했다. 바울은 이 경험에 관하여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고후 2:13)였다고 기록했다. 그래서 드로아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빌립보에서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만났다. 이 교회가 바로 믿음과 행실로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사랑을 증명한 곳이었다. 형제들은 주의 사자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았다. 바울은 빌립보에 보낸 편지에서 그들을 철저히 회심시켰다. 이 교회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동안 그토록 그들의 자선을 사양했는데도, 사도를 지원하기 위해서 기부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던 곳이다. 원수들에게 그가 돈을 보고 설교한다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비용은 자신이 감당하려고 단단히 결심했었다. 그러나 빌립보 교인들이 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기들의 경비로 그를 도우려는 뜻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가 데살로니가에 있는 동안 두 번씩이나 그들이 회심한 직후에 그에게 선물을 스스로 채워가며 일하고 있었는데도, 그들은 다시 부조를 보냈다.
또한 그가 로마의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그를 위로하기 위해 친절하게 돌봐 주었던 충실한 빌립보 형제들의 사랑이 증명되었다. 빌립보 교회가 부요했던 것은 아니다. 바울이 이 형제들에게 "그들은 온갖 어려운 시련과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오히려 넘치는 기쁨으로 헌금을 많이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이 힘껏 헌금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에 겹도록 헌금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돕는 일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우리에게 여러 차례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먼저 자신들을 주님께 바치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에게도 헌신했습니다."(고후 8:2~5)라고 기록했다. 이번 여행에서 바울은 한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서 구제금을 모으는 일이었다. 그는 고린도 교회와 갈라디아에서 매주 연금하는 제도를 세웠으며,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디도와 만나서 이 자비의 물품을 전달하는 일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사도는 유대인 형제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려고 열망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이방인 회심자들의 손에 잡히는 사랑과 동정의 표현에 의해 그들에 대한 유대인 신자들의 좋지 않은 감정이 많이 완화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빌립보 교인들은 매우 가난한데도 불구하고, 사도의 일에 기꺼이 협조하여 예루살렘의 가난한 교인들을 위해 그들의 풍성한 기부를 받아 달라고 간청했다. 사도의 청렴함과 판단력에 절대적인 신임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선물을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빌립보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자기들의 소유를 악착같이 붙잡는 대신에 선한 일에 쓰기 위해서 자기들에게 맡겨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는 그리스도의 말씀의 진리를 실천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은 어디에서나 하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들의 가난에도 불구하고, 더 어려운 다른 교회를 돕기로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분당(分黨)이 없는 너그러움이 오늘날의 교회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끊임없이 가져야 한다. 자비심은 온 우주의 기초이다. 그분은 다함이 없는 선과 사랑이시다. 사람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은 파멸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신 일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위해서 그의 목숨을 주셨다. 그는 하늘 궁중의 군주이시지만 기꺼이 그의 부요와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부요하고 행복하게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은 가난하고 비천하게 되셨다. 복음의 계시는 거룩한 진리를 받아들인 모든 사람이 위대한 모본을 따라 선을 행하고, 인류에게 축복이 되고, 자기 부정과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준다. 인색의 죄는 특별히 성경에서 비난을 받는 것이다. 세속주의는 참된 그리스도인 원칙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인정을 베푸는 노력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나무에 당연히 여는 열매이다. 바울의 마음에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생각이 큰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빌립보에 있는 동안 그는 두 번째 편지를 그들에게 보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기의 영혼에 무거운 부담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가 당한 마음의 의기소침이 그의 몸에 큰 영향을 끼쳐 건강이 좋지 않았고, 활동적으로 사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에 안정이 없었다.
그러나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자, 몸의 질병을 이기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가 가르치고 있는 질병의 고통이 그의 큰 사업에 많은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반복해서 주께 자신을 회생시켜 달라고 구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지점에서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여기셔서 거룩한 은혜가 그에게 족하다는 확신만 주셨다.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부담은 그가 마케도니아에 도착할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디도를 만났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갔을 때에도 우리 몸이 편치 않았지만, 가는 곳마다 어려움을 당해 밖으로는 다툼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낙심한 사람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디도를 보내 우리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고후 7:5~6). 충실한 사자의 기별은 사도에게 큰 힘이 되었다. 디도는 사도에게 고린도에 있는 교회의 대부분이 사도의 명령에 복종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비난을 가져왔던 죄들을 깊이 회개하는 증거를 보여 주었다고 확신시켰다. 그들은 즉각 죄에 빠졌던 사람들에게서 떠나서 부패한 길을 버리고 의롭게 되기를 원했다. 또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호소에 너그럽게 응답했다. 고린도 교회에 대한 이 두 번째 편지에서 그들 중에 일어난 선한 사업 때문에 그의 마음에 가졌던 즐거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내가 편지로 여러분을 마음 아프게 했다 하더라고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고후 7:8). 그의 말이 멸시를 받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고민하며, 사도는 때때로 그가 그처럼 단호하고 혹독하게 편지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는 계속하여 "잠시나마 그 편지가 여러분을 근심하게 한 것을 알고 후회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기뻐합니다"(고후 7:9)라고 하였다. 거룩한 은혜로 마음에 일어난 회개는 죄를 고백하게 하고 죄를 떠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사도가 주장했던 내용이 고린도 교회에서 실현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이 근심은 여러분에게 간절함과 자신에 대한 해명과 정의의 분노와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그리워함과 열심과 죄지은 사람을 처벌할 마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여러분은 그 모든 일에서 자신의 깨끗함을 보여 주었습니다"(고후 7:11). 그러나 아직도 고린도인들 중 얼마는 교회를 정결케 하려는 바울의 모든 노력을 고집스럽게 거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노선에 아무도 속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매우 강경하게 나왔는데, 대담하게 바울을 비난했고, 그가 돈을 받고 일한다고 고발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을 돌보는 데는 뭔가 다른 속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자비로운 목적으로 형제들이 바친 물건들에 손을 대서 개인적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는가 하면 그의 사도직 주장에 도전했는데, 그가 세운 교회들에 지원을 요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반대자들의 고소가 분란을 일으켰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아무 근거가 없었다. 이런 대책 없는 사람들을 오늘날도 만날 수 있다. 진리를 믿는다고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의 사업의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의 몸과 조화를 이루기를 거절하고, 그들의 일에 대한 부담이 형제들의 성격에 상처를 주어, 애매한 의심을 일으키게 해서 그것을 또 은밀히 퍼뜨린다. 그들의 철면피한 거짓 수작에 많은 정직한 사람들이 속아 넘어간다.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그 교회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표현한다.
즉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비난을 참았기 때문에, 앞으로 아무 위로도 받지 못한 채, 고난과 시련에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의 대부분은 원칙에 충실했으며, 확고한 성실성을 가졌고, 그들의 복음의 아버지의 슬픔과 걱정을 나눠 가졌으며, 그리스도인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의 죄를 크게 통탄스럽게 여겼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시아에서 당하는 그의 문제를 알려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우리가 …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에베소의 야수들과 싸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말은 그의 목숨을 위협했던 광신적인 폭동을 일컫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성난 야수였다. 그가 당한 위험과 구원을 회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는 에베소에서 그의 생명의 유용성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마지막에 믿음을 위해 죽겠다고 자신에게 했던 약속이 이제 이루어질 시간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사 기적적인 방법으로 구원해 주셔서 그의 수고가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사도는 교회들에 대한 부담 때문에 겪는 그의 고통을 표현한다. 어떤 때는 그 부담이 너무 커서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외부의 위험과 내면의 두려움이 그의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 거짓 교사들은 형제들을 충동해서 대적하게 했고, 그가 세운 교회들에서 그의 감화를 없애 버리려고 거짓 고소를 했다. 그러나 그런 핍박과 실망 가운데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위로로 기뻐할 수 있었다. 그의 믿음에 불충실했거나 정직하지 못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의 일을 해내면서 자신의 타고난 웅변이나 인간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단순함과 순결함으로 오직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 일한 것이 그에게 기쁨이었다. 그에게는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있었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그를 지탱해 주었다. 가장하지도 않았고, 영예를 얻기 위해서 일하지도 않았고, 지혜를 자랑하려 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지혜와 오류와 미신의 암흑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했으며, 가장 거룩한 믿음으로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영혼들을 하나님 앞에 계산해야 할 사람들로 살폈다. 형제들의 반대나 거짓 또는 편견 그리고 원수들의 핍박 때문에 그의 목적을 바꾸지 않았다. 그가 방문한 세상 어느 곳에서라도 환영받지 못하면서도 사랑이나 수고를 군소리 없이 항상 베풀었다. 솔직하고 성실하게 그리스도를 전했고, 고린도 교회가 그를 비난하지 않고도 유지될 수 있었다. 그가 마게도니아로 가기 전에 그들을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그들을 방문하려는 자기 뜻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으며, 만일 그때 갔더라면 영혼을 위험에 빠뜨릴 뻔한 일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베소를 떠나 즉각 그들을 방문했더라면, 자기들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들을 책망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를 거절했을 것이며, 그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악한 일꾼들 위에 재앙을 내렸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여정이 적합하지 않을 것을 아시고 그의 종을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였다. 그는 첫 편지에서 그들의 가는 길이 악하다는 것을 드러내 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회개했고, 아직도 음탕한 행위로 교회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람들에게 조치를 취했다. 그가 원래 그들을 방문하려 했던 계획을 바꾼 것은 하나님의 권고에 따른 것이며, 만일 그가 갔더라면 그것은 훈계의 막대기가 아니라 그저 얌전한 정신으로 사랑하고 인정한다는 표가 되었을 것이다.
그때 직접 가는 것보다도 편지를 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고린도를 직접 방문하기 전에 그들 가운데 성행하고 있는 악을 버리라고 타일렀다. 그들에 대한 그의 동정심이 증명된 것은 그들의 죄의 문제에 대한 바울의 권고에 따라 그들이 회개했다는 증거를 보여 주었고, 사랑과 친절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데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회개한 죄인을 향하여 어떻게든 행동을 취할 자유가 있었다. 그들이 회개한 죄인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행동하는 것으로 그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교회가 보여 준 지혜에 대해 신뢰를 나타냈고, 한때 그들의 악한 행위로 사업에 지장을 주었으나, 이제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들을 다시 우정으로 받아들인 일을 칭찬해 주었다. 교회에 있던 바울의 반대자들은 그가 약속해 좋고도 고린도를 방문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일관성이 없고 허풍만 떨면서 자기 편한 대로, 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계획을 바꾸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사도는 고린도 형제들에게 그런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그들의 부당함을 설명해 줄 것이라는 입장을 엄숙하게 밝혔다. 그의 계획 변경의 목적은 어느 모로 보나 그의 교훈이 불확실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었다. 하나님이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것처럼, 바울의 설교도 불확실하거나 모순된 것이 없었다. 그가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선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나니 그 후에 다시는 아니라고 말한 적이 없으며, 다른 말로 하면 그가 한 번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운 것은 일점이라도 최소한 일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의 증거는 똑바르고, 한결같으며, 그의 생애와 조화를 이루고, 시범적이었다. 그와 동역자들은 가르침이나 교리를 이랬다 저랬다 한 적이 없었다. 그들의 과정은 일관되고 흔들림이 없었다. 언제나 청중들에게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관습이나 의식에 있어서도 바울은 그들이 처한 모든 경우를 지혜롭게 대처했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압박을 느껴 진리로부터 돌아서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믿음에 있어서 참으로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지도했다. 사도는 그들의 복음에 대한 믿음이 교사들의 지혜나 말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인간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들이 이교로부터 회심한 것이 바울이나 다른 사람에게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회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받으시고 당신의 자녀로 만드셨다. 그의 성령과 은혜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통해 그들의 마음에 당신의 거룩한 인을 치셨다. 그러나 그들 중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고, 그가 가르친 순결한 교훈을 오염시킨 자들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을 오염시키는 일을 방지하고, 하나님께서 믿음의 원수들을 불쾌하게 여기시는 것을 보고 경고를 받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책망할 필요가 있었다. 형제들에게 그들의 유익을 위해 심히 걱정했다는 것과 디도가 와서 건강의 회생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려 준 후에, 사도는 찬양과 승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오"(고후 2:14~16). 바울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은 귀로에 포로의 행렬을 데리고 함께 오는 그 시대의 풍속을 마음으로 그리고 있다. 이런 경우에 향불 드는 사람이 임명되었다. 군대가 의기양양하게 고국으로 행진할 때 향기로운 냄새는 승리의 상징이었지만, 죽임을 당하기로 정해진 포로들에게는 죽음의 향기가 되어 저희가 처형당할 때가 가까움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그들을 사로잡은 자들에게 은총을 입어, 그들의 생명이 구원받게 된 포로들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어 석방될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바울은 과거에 열렬한 복음의 반대자였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온 빛에 굴복하여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었다. 그는 이제 향불을 든 자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그의 원수들을 이기신 상징이 되었다. 바울은 이제 희망과 믿음으로 충만했다. 그는 사탄이 하나님의 사업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찬양과 감사가 그의 마음에서 향기로운 기름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그는 예수의 이름과 구원을 향기로운 냄새처럼 퍼뜨리기로 결심했다. 그와 그의 동역자들은 그리스도와 진리의 원수를 이기고 승리를 기념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열심과 용기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냄새 좋은 향을 온 세계에 유포하기 위해서 그들의 직분을 수행해 나아갈 것이다. 그 기별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되겠고, 불신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될 것이다. 바울은 사업이 스스로가 압도될 만큼 방대하다는 것을 깨닫고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오"라고 부르짖었다. 누가 관연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하늘의 기별이나 그 기별자를 멸시하지 못할 그런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신자들에게 복음 전도의 엄숙한 책임에 대한 감명을 주려고 하였다. 순결하고 언행이 일치된 생애로써 말씀을 전파하는 데 충실한 것만이 목사들의 노력을 하나님께 가납되게 할 수 있으며, 영혼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 사업의 위대함을 깨닫고 번민하는 오늘날의 목사들도 사도처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오"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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