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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리/바울의 생애

바울의 생애 // 19. 장로들과의 만남

by 동심초(남양주) 2022. 4. 8.

 19, 장로들과의 만남 

 제주도에서 

 

 

 19, 장로들과의 만남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행 21:17~18). 누가는 사도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이방인들이 그를 영접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바울이 비록 어디에서나 편견과 시기, 질투를 만났지만, 한편으로 그가 가져온 소식을 받아들였고, 그리스도와 진리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린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친절한 인사를 받아 격려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와 그의 사업에 대한 예루살렘 교회의 태도에 대해서 걱정이 되었다. 내일 있을 장로들과의 모이에서 그들의 진정한 감정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바울은 그들과 온전히 연합되기를 바랐다. 그가 이방인들에게 의식법으로 준수할 의무를 제시하지 않고, 복음을 전한 일에 대해 잘못 조성된 편견과 불신을 힘이 닿는 데까지 없애려고 애를 썼었다. 그런 그의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심지어는 그가 가지고 온 후한 연금마저도 유대인 형제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바울은 지금 만나려는 사람들이 매우 완고하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들은 만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큰 시련을 아예 피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대로 피해 보려고 노력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목적은 단지 그들 사이에 있는 편견과 오해를 제거하고, 그의 사업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없애려는 것이었다. 바울이 도착한 다음 날, 교회의 장로들이 그들의 지도자인 야고보와 함께 그와 이방 교회들의 기별자로 온 동반자들을 영접하기 위해서 모였다. 바울의 첫 행동은 그에게 위탁된 선물을 전하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위탁된 일을 수행하는 데, 어떤 의혹도 없게 하기 위해서 매우 조심했다. 그래서 각 교회로부터 모금과 함께 대표자들을 선정하여 그와 동행하게 했다. 이제 이 형제들이 한 사람씩 야고보 앞에 나와 이방인 교회들이 비록 매우 가난한 가운데서도 야고보 앞에 나와 이방인 교회들이 비록 매우 가난한 가운데서도 너그럽게 기부한 것을 내놓았다. 이것이 이 새로운 제자들이 모 교회에 대한 사람과 동정 그리고 예루살렘 형제들과 조화되고 싶은 소원이 깃든 만질 수 있는 증표였다. 또한 이것은 바울이 몇 년 전 총회 앞에서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호소하면서 내놓았던 그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한 증거이기도 했다. 이 연금을 모으기 위하여 사도와 그의 동역자들은 많은 신간과 애타는 생각과 끈질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유대인 장로들의 기대보다 훨씬 많은 금액은 따뜻한 말로 감사를 표현해 줄 것을 기대할 만했다. 그러나 바울이 보기에는 이 연금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마땅히 반가워야 할 만큼 그렇게 흔쾌하지 않은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그의 마음에 오직 발견한 수 있는 위로는 그의 의무가 그의 회심자들의 마음에 너그러움과 사랑의 정신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뿐이었다. 선물을 전달한 다음, 바울은 형제들에게 그가 일한 방법과 그 결과에 대한 보고를 했다. 그는 전에도 같은 장소, 같은 도시에서 같은 모임 앞에 선 적이 있었다. 그가 몇 년 전에 사도들 회의와 같은 청중들 앞에서 그의 회심과 이방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보고한 적이 있었다. 주의 영께서 그가 하는 말에 함께하셨으며, 그런 결과 의회가 그들의 편견을 버리고 사도의 입장에 동조할 것을 표했으며, 그런 결과를 교회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같은 싸움을 다시 싸우고, 그 편견을 다시 한번 만나야 했다.

 

바울은 이제 그가 4년 전, 그들을 떠나서 일한 내용을 전달하면서?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행 21:19)했다. 그가 이교의 중심지인 에베소에서 큰 교회를 이룬 일을 보고하자, 귀담아듣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지만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갈라디아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유대화를 시도하는 교사들이 그의 가르침을 왜곡시키고, 그의 회심자들을 오도(誤導)하려고 시도했던 일을 빼놓을 수가 없었다. 그린도에서의 사업을 설명하면서도 그곳 교회에 혼란과 투쟁을 일으켰던 사람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매우 부드럽게 예의를 갖추어 설명하면서도, 필요 없이 형제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 설명했다. 그리고 특별히 그들이 화합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그의 수고가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영께서 형제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그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셨다. 복음이 발전에 대한 소식과 하나님의 능력이 사도들의 사업에 역사하셨다는 증거가 바울에 대한 그들의 감정을 부드럽게 하고, 그들을 잘 설득해서 바울에 대한 편견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기적에 대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바울의 연설이 끝날 무렵, 형제들은 함께 어울려 찬양을 돌리고 아멘 하였다.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그의 사업을 인정하고 목소리를 합하여 칭송했다. 그러나 이런 눈에 띄는 조화 뒤에 편견과 불만은 여전히 깔려 있었다. 교회 중 몇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제 폐기된 옛날의 관습과 의식을 기독교와 연관시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자기들의 의견에 따라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 바울이 이런 의견에 따라 일한다면, 그의 사업을 인정하고 유지시켜 줄 것이지만,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를 버릴 게 분명했다. 교회의 장로들은 사도의 원수들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들이 사도의 입을 통해 이룩한 일을 듣고 나서는 다른 일을 꾸며 냈다. 그의 일하는 방법에 대해 시비할 수 없게 되자, 이것은 하늘의 인을 받은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교회들로부터 그가 모금한 너그러운 자금이 바로 진리의 능력을 증거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유대인의 관습과 전통에 갇혀 있었다는 것과 유대인과 이방인의 중간 벽을 유지하려는 그들의 노력 때문에 복음 사업이 크게 방해를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때야말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일하셨으며, 그의 원수들의 보고를 듣고 질투와 편견을 일으키는 과오를 범했다는 것을 모든 지도적 위치에 있는 형제들이 솔직히 자복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그러나 그들은 피해를 입은 사람을 공정하게 취급하려고 연합하는 대신에, 기존의 편견에 대하여 바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아직도 그들이 품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권고를 했다. 그들은 불만을 품은 사람들에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그를 옹호하기 위해서 굳게 서지는 않고, 오히려 오해의 모든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자기들 생각에 옳다고 생각되는 방법을 따르도록 권고하면서, 타협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바울의 증언에 대해 이렇게 반응했다.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제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은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도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행 21:20~25).

 

형제들은 바울이 자기들이 제시한 방법을 따르므로, 그에 관해 거짓으로 보고된 사항에 대해서 단호한 반박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야고보는 이방인 회심자들에 대한 전번 총회의 결정(행 15장)과 의문의 율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그에게 밝혀 주었다. 그러나 지금 준 그들의 충고는 성령의 인정을 받았던 지난번 결정과 모순되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이런 교훈을 주시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마음이 소심한 결과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의문의 율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스스로 유대인들의 증오를 불러일으켜 핍박을 당할 것이다. 산헤드린은 복음의 발전을 방해하려고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단체는 사도들, 특히 바울을 추적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사업을 방해하려고 사람들을 택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산헤드린 앞에서 율법의 파괴자로 정죄받다면, 유대 신앙의 배교자가 되어 즉각적이고도 엄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넷째 계명인 안식일을 범했다고 그렇게 자주 주장하는 것에 대해 결정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리스도나 스데반, 혹은 자신들의 믿음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범한다는 죄가 씌워질 수 있었다면,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더 이상 그들에 대한 허위 증거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율법을 범하는 경우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운명은 원수의 세력에 맡겨진 것이다. 중요성이 덜한 관습과 의식에 대해서도, 이토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존경을 표했는데, 십계명의 넷째 계명을 범하고도 가혹한 벌을 받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자들은 여전히 의문의 율법을 존중하고 있었으며 동포의 신임을 얻어 그들이 편견을 제거하고, 그들은 세계의 구속주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려는 의도에서, 너무도 현명하지 못한 양보를 하고 말았다.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가장 큰 이유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교회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계속해서 편견을 품는 한, 그의 감화를 소멸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만일 그가 어떤 합리적인 양보를 해서 그들을 진리로 인도할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복음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요구한 만큼 양보하도록 하나님의 재가를 받지 못했다. 이와 같은 양보는 그의 가르침과도 조화되지 않고, 그의 품성의 굳건한 고결함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에게 충고한 사람들이라 해서 허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 중 몇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들이 직접 성령의 영향 아래 있지 않을 때는 실수가 따랐다. 우리는 베드로가 이중 행동을 했을 때, 바울의 그의 면전에서 그를 책망한 일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형제들과 화합하려고 노력하는 바울의 큰 소망, 신앙이 약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친절, 그리스도와 함께했던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 야고보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원칙을 희생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에게 좋게 대하려는 그의 의도,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그가 지금까지 견지해 온 확고하고 단호한 길에서 부득이 빗나가게 된 것은 놀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바라던 목적을 성취시키는 대신, 화해하려는 그의 노력은 다만 위기를 재촉했으며, 예언된 고통을 초래하여 그를 형제에게서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교회는 제일 강한 기둘 하나를 잃었으며, 각 나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슬픔을 가져왔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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