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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리/바울의 생애

바울의 생애 // 20. 바울의 투옥

by 동심초(남양주) 2022. 4. 8.

 20, 바울의 투옥 

 제주도에서 

 

 

 바울의 투옥 

다음 날 바울은 장로들의 권고를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예루살렘의 신자들 중, 네 명이 나실인의 서약(민 6장) 중에 있었는데, 그 기간이 거의 만료되어 가고 있었다. 정결을 위해서 제물을 드려야 했는데, 이것은 매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돈이 많이 들어서 시행하기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경우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돈을 대납해 주는 것이 매우 경건한 일로 여겨졌다. 바울이 이 네 명의 그리스도인 나실인을 위해서 그렇게 하기로 동의했다. 바울 자신도 매우 가난한 사람이어서, 자기 손으로 일을 해야 매일의 필요를 충당하는 사람이었지만, 기꺼이 이 비용을 지불하기로 하고, 그들과 함께 성전에 가서 칠일 동안 정결케 하는 의식에 참여했다. 이 방법을 취하도록 바울에게 충고한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바울이 어떤 위험을 당하게 될지 생각하지 못했다. 이때 예루살렘 여러 나라에서 온 예배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들은 성전 마당에 모이는 것을 즐겁게 생각했다. 바울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는 그동안 세상의 많은 대도시를 방문했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절기에 참여하려고 예루살렘에 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그가 많은 사람이 있을 때 선전에 들어가는 것은 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었다. 여러 날 동안 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서 예배자들 중에 출입했으나, 그 특정 기간이 끝나기 전, 희생 제물에 관하여 한 제사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아시아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이 그를 알아보았다. 이 사람들은 에베소의 회당에서 그와 논쟁을 벌일 때 패배했기 때문에, 그 도시에 그리스도인의 수가 크게 증가하는 것을 보고 점점 더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이 안심하고 그들이 예상하지도 못한 장소인 성전 안뜰에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가 그들의 세력권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무모한 행동은 응징하려고 작정했다.

 

그들은 악마처럼 격노하여 그에게 달려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행 21:28)고 외쳐 댔다. 그러자 백성들이 몰려들어 반응을 보이자, 그가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행 21:28)고 또다시 비난을 늘어놓았다. 유대의 법에 따라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이 거룩한 성전에 앞마당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당할 만한 범죄였다. 바울은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성내에 나타났었기 때문에, 그가 드로비모를 성전 안으로 데리고 왔으리라고 추측했다. 바울은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고, 자신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성전에 들어간 행위는 범법이 아니었다. 이러한 비난 전부가 거짓이었지만, 백성들이 편견을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가 외쳐 대는 소리가 온 성전에 신속히 들리자, 거기 모인 군중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은 신속히 온 예루살렘에 퍼져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행 21:30) 왔다. 무수한 사람들이 예배하러 세계 각처에서 그곳에 와 있는 바로 그때, 이스라엘 한 배교자가 감히 성전을 모독한다는 사실은 폭도들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했다. 단지 그들이 성전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를 성전 마당에서 찢어 죽이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악의적인 승리의 함성과 과격한 폭력을 행사하면서, 그들은 바울을 성전에서 끌어냈다. 이제 그가 그들의 수중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결심했다. 몇 년 전에 스데반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이제 같은 방법으로 투석형에 처해질 것이었다. 그들이 이미 이방인의 뜰에 이르렀기 때문에 레위인들이 그들 뒤에서 성문을 닫았다. 그곳에서 행하려 했던 살인 계획이 중단된 것은, 거룩한 장소가 피로 물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에게 전달되었다. 루시아는 그가 처리했던 폭동의 요소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급히 장교들과 중무장한 군인들을 데리고 성전 마당으로 달려갔다. 소동의 원인은 몰랐으나, 군중의 분노가 바울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로마 천부장은 그가 체포를 피하여 멀리 도망했던 애굽인 반역자가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바울을 체포하여 두 군인 사이에 두고, 양손을 군인의 손에 쇠사슬로 결박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그가 누구며 무슨 죄를 지었지는 물었다. 분노한 목소리로 고소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한꺼번에 중구난방을 외치는 바람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를 로마군의 막사가 있는 성안으로 이송하라고 명했다. 그들의 먹잇감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하자,  군중의 분노는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그들이 바울 쪽으로 파도처럼 밀려들어 압박하자 군인들은 할 수 없이 그를 들어 올려 성전으로 연결된 계단으로 들고 올라갔다. 제사장이나 백성들이 다 같이 삼십 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부르던 그때와 똑같은 모양으로 사탄의 충동을 받고 있었다. 계단에서 그리고 아래 군중들로부터 "그를 없애라. 그를 없애라"는 고함이 귀가 먹먹하게 들려왔다. 그런 요소 중에서도 사도는 냉정하고도 침착했다. 그 순간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늘의 천사들이 그의 주위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동포들 앞에 진리를 제시하지도 못하고, 할 수 없이 성전을 떠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천부장을 향하여 매우 존경 어린 태도로 헬라어로 요청을 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라고 말했다.


놀란 루시아는 그가 정말로 이전에 난을 일으켰던 강도들과 살인자들의 두목이 아니라 잘못 잡혀왔느냐고 물었다. 바울은 자기는 애굽 사람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라고 대답하고, 자기가 백성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다(행 21:37~38).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행 21:40)했다. 그의 손짓은 그들의 주목을 끌었으며, 그의 태도는 존경심을 일으켰다. 그 광경은 예수께서 성전 마당에서 장사꾼들을 쫓아내실 때처럼 일순간에 바뀌었다. 아래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의 머리 위로 침묵이 서리자, 히브리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귀에 익은 거룩한 언어를 듣자 "그들은 더욱 종용"하였고 모두 조용한 중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 자라"(행 22:3). 그의 충실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사도의 진술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죽이기까지"한 그의 이전 열심에 대하여 말했다. 그리고 그가 회심하게 된 놀라운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또한 어떻게 자기의 교만한 마음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나사렛 그분에게 굽히게 되었는지를 청중들에게 고백했다. 만일 그가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논쟁하려고 했다면, 그들은 완고하게 그의 말을 거절하였을 것이나, 그의 경험에 대한 진술은 수긍하게 하는 능력이 있어서, 한동안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는 이방인들 중에서 행한 그의 사업은 자원하여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애를 썼다. 그는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일하기를 갈망하였으나, 바로 그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거룩한 계시 중에 그에게 말씀하시고, 그의 행로를 "멀리 이방 인에게"로 향하게 하셨던 것이다. 


지금까지 백성들은 주의를 집중하여 듣고 있었으나, 바울이 그의 이야기 중에서 이방인에게 보내져 그리스도의 대사로 임명받았다는 점에 이르자, 그들의 분노는 다시 폭발했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유일한 백성으로 믿는 데 익숙하게 된 그들은 이제까지 자신들에게만 국한되었던 것으로 생각하던 특권을 멸시받는 이방인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허락하려 하지 않았다. 국가적 자존심은 그들의 이성에 영향을 미치거나 그들의 존경심을 자아낼 모든 논쟁을 제압해 버렸다. 폭발한 분노가 그의 음성을 중단시키고, 어떤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라고 부르짖었다. 분노에 북받쳐 자기 옷을 찢었다. 그것은 마치 몇 년 전 스데반의 순교 때 벌어졌던 광경과 같았다. 광란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공중으로 먼지를 날렸다. 처음 보는 광경에 로마의 천부장은 매우 당황했다. 그는 바울이 히브리 말로 연설하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이 죄수가 범상치 않는 범죄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바울을 자기들 손에 넘기라는 소리에 이 천부장은 떨었다. 즉시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고 명하고, 그의 죄가 무엇인지 고백하도록 신문하라고 했다. 악인들에 대해서 늘 하는 것처럼 바울의 몸에 채찍질을 하기 위해서 사지를 펼쳤다. 그를 도와줄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그는 혼자서 잔인한 로마 군인들에 둘러싸여 영문 안에 서 있었다. 그때 그는 전에 빌립보에서처럼 이런 나락에서 자신을 구하고, 복음의 이점을 얻기 위해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는 사신을 신문하는 백 부장에 세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라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라고 조용히 말했다. 백 부장이 이 말을 듣고 즉시 천부장에게 가서 전했다. 이 말을 듣자 루시아는 크게 놀랐다. 로마 시민은 법적으로 죄가 판명되기 전에는 형벌을 받아서는 안 되며, 더구나 이런 식으로 형벌을 당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천부장은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보호하는 법이 얼마나 엄격한지를 잘 알고 있었고, 그가 바울을 취급한 방법이 매우 불법적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즉시 죄수에게 달려가 백 부장의 보고가 사실인지 확인했다. 바울은 진실로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밝혔고, 천부장은 이렇게 외쳤다.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라고 하자 바울은 "나는 나면서부터로라"라고 대답했다. 그를 고문하려던 준비는 중단되었고, 그를 신문하려고 임명된 사람도 그를 더 이상 손댈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구류된 상태였고, 그의 범죄 여부도 판명이 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천부장은 대제사장과 함께 산헤드린 회의를 소집하고, 바울을 성에서 끌어내 그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다. 사도는 이제 그가 전에 자신이 회원이었던 바로 그 법정에 섰다. 바로 이 법정에서 스데반이 선고를 받았었다. 그런 추억의 장면과 그가 그리스도의 종을 처형하기 위해서 애를 썼던 일들이 그의 마음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그를 재판하려는 사람들 중에는 그와 함께 가말리엘의 학교에서 사귀었던 사람들, 함께 예수의 제자들을 핍박했던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이전에 스데반을 처형할 때와 마찬가지로 바울을 사형시키기 위해서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사도의 태도는 침착하고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잠잠히 서 있는 그의 순수한 표정이 고소자들에게는 오히려 불쾌감을 주었다. 그가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라고 말하자 그들의 증오심은 새로이 불붙게 되었고,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그 입을 치라고 명했다. 이 비인간적인 명령을 듣자 바울이 고함을 질렀다.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하느냐"(행 23:3)고 부르짖었다. 이 말은 단지 감정이 복받쳐한 말이 아니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바울이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외식을 책망하셨던 것처럼, 예언적인 책망을 표현한 것이었다. 바울이 선언했던 그 심판은 유대 전쟁 동안 불법적이고 외식적인 대제사장이 암살을 당함으로 끔찍하게 성취되었다. 그러나 곁에 서 있던 사람이 바울의 말을 신성 모독으로 보고 두려움 가운데 외쳤다.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행 23:5). 바울은 이 소동 속에서 공정한 재판이나 정당한 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타고난 분별력과 예민함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는 것이 유리한지를 직감하게 했다. 산헤드린 회의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부활에 대해서 오랫동안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그는 매우 분명하고 결단성 있게 외쳤다. "바울이 그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행 23:6).


이 말이 부활에 대해서 긍정적인 사람들의 동정심에 호소하여 일순간에 의회의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그들 사이에서 이 문제로 논쟁이 벌어졌고, 바울에 대해 반대하던 세력이 꺾이고 말았다. 복음을 대적하는 데는 그토록 한통속이 되었던 그들이 종교적 신앙의 교리 문제에 있어서 넘을 수 없는 장벽 때문에 분열되고 말았다. 바리새인들은 바울이야말로 그들의 강력한 경쟁자에 대한 투사라고 우쭐거렸다. 그들의 사두개인들에 대한 증오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에 대한 증오를 능가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매우 격렬하게 여러 해 전에 가말리엘이 사용했던 것과 거의 유사한 말로 바울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냐"(행 23:9)고 외쳤다. 재판정이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 선고를 내릴 수가 없었다. 사두개인들은 사도를 죽이려고 기를 쓰고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그를 보호하려고 애를 썼다. 상황은 다시 양편의 성난 투사들 사이에서 바울이 찢겨 죽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를 받은 루시아는 군병들에게 즉각 죄수를 영문 안으로 데려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하여 이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저물었다. 바울은 여전히 로마군 막사 안의 옥에 갇혔고, 무례한 군인들만이 그의 동반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저질적인 농담과 반항적인 신성 모독의 소리만이 그의 귀를 울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그의 원수들 때문에 신경 쓸 일도 없거니와 그의 친구들의 동정으로 위안받을 수도 없었다. 그의 장래는 캄캄한 암흑에 싸여 있었다. 그의 방법이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이 잘못이었던가? 그의 동포와 연합하려고 했던 큰 소망이 이처럼 비참한 결말을 가져오고 말았단 말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이 믿지 않는 세상 앞에서 차지한 지위로 인해 바울은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여호와를 섬긴다고 주장하면서 유대인이 거룩한 직무를 받았으나, 맹목적이요, 이성을 잃은 분노에 사로잡혀 종교적 신앙이 다르다고 감히 그들의 동포까지 멸하려고 해서, 그들의 가장 엄숙하고 신중한 공회를 싸움과 거친 혼란의 장소로 변화시킨 그들을 이방 관원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바울은 그의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의 목전에서 치욕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는 옥에 갇혔으며, 그의 원수들이 극도의 원한을 품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를 죽이려 할 것을 알았다. 교회들을 위한 그의 사업은 끝이 나고, 이제 약탈하는 이리들이 물려올 것인가?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사업이 매우 중요하였기 때문에, 그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만났던 바로 그런 사람들의 박해로 흩어져 있는 교회들이 당할 박해를 생각할 때 근심이 깊어졌다. 바울은 고통과 낙담 중에서 울며 기도했다. 이 어두운 시간에 주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셨다. 주께서는 바울을 성전 마당에서 잔인한 군중으로부터 보호하셨고,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그와 함께하셨고, 영문에서도 그와 함께하셨으며, 친히 당신의 충실한 증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기쁘게 하셨다. 전에도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바울은 밤에 주신 환상으로 인해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전에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 있으면 더 안전하고 번창하는 일터로 가기 위해 그 도시를 떠날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도 이런 방문이 있었다. 그날 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1)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오랫동안 로마를 방문하려고 소원하며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증거 하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그의 목적이 유대인들의 증오 때문에 좌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죄수가 되어 가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날 밤 평화로운 시간에 주께서 당신의 종을 격려하시는 동안, 바울의 원수들은 그를 죽이려고 열심히 음모를 짜고 있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멀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행 23:12~13). 여기에 주께서 이사야를 통해 정죄하신 그런 금식, 곧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사 58:4) 금식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런 악마 같은 종교적 제개 계획을 추진하려고 했다. 이런 무서운 서약으로 태도를 굳히고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 의원들 앞에 와서 그들이 하려는 계획을 알렸다. 바울은 다시 법정에 세워 그의 사건을 좀 더 조사하는 것처럼 하면서, 그가 성채에서 나올 때 자객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그를 죽이려는 계획을 제안했다. 이런 잔인한 음모가 종교적 열정이라는 가면 아래 자행되었다. 이와 같은 사탄적인 음모를 견책하는 대신,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오히려 이 일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바울이 아나니아를 회칠한 무덤에 비유했을 때 그의 말이 진실이었던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이 사건에 개입하시지 않았다면, 다음 날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을 것이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고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형제들은 하나님께 밤낮으로 그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을 위험한 교리를 가르치는 선생이요 모세의 법에 따른 배교자로 간주하여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장로들의 권고로 인해 그가 이처럼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니지만 친척의 주의 깊은 동정심으로 인해 바울은 잔인한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사도의 아주 가까운 조카 하나가 이 살인 음모를 들었고 지체 없이 이 사실을 그의 삼촌에게 전했다. 바울도 즉각 백 부장 하나를 불러서 이 청년이 매우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천부장에게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다. 그 청년은 당장에 글라우디오 루시아 앞에 나아갔고, 그를 친절히 맞이해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기별의 내용이 무엇인지 물었다. 청년은 음모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고, 천부장에게 바울을 다시 의회 앞에 세우라고 하는 그들의 요청을 허락하지 말아 달라고 진심으로 간청했다. 루시아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었다. 그는 상황이 어렵게 되어 간다는 것을 알고 즉각 자신의 계획을 추진했다. 그들에게 알리지 않고 청년에게 한 가지 주의를 주어서 보냈다.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행 23:22). 청년이 가고 나자, 천부장은 "백 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행 23:23~24)했다. 루시아는 바울을 그의 손에서 떠나보낼 이 기회를 열성으로 추진했다. 그는 악질적인 사람들의 대단히 흥분이 일어났으며, 언제라도 백성 중에 폭동이 일어라 상황이어서, 그렇게 되면 천부장 자신에게도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유대인들은 흥분하고 짜증 난 상태에 있어서, 폭동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루시아보다 훨씬 지위가 높은 로마의 기사 한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건이 발생해서 예루살렘 성벽 주변에 사는 광기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에게 난폭하게 붙잡혀 끌려가서 결국 참수당한 일이 있었다. 그 비슷한 혐의로 또 다른 고위 장교가 투옥되는 불명예를 당했다.


바울이 살해당한다면, 뇌물을 받고 그의 죽음을 못 본 체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를 비밀리에 멀리 보낼 충분한 이유도 있었고, 그렇게 해서 당황스러운 책임을 면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밤 아홉 시에 일단의 군대가 바울을 가운데 두고 성채 밖으로 행진해 나갔다. 그리고 도시의 어둡고 적막한 거리를 뚫고 바삐 가이사랴를 향해 전진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부터 56킬로미터 떨어진 안드리바에 도착해서 행진이 멈췄다. 이곳에서는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아침에 보병 사백 명은 돌려보내고 기병들이 행진을 계속했다. 안드리바에서 가이사랴까지는 40킬로미터 거리여서, 바울은 대낮에 보병 육십 명과 열 명의 마병과 함께 성에 들어갔다. 불과 며칠 전 가이사랴에서 올 때, 그를 따르던 초라한 그리스도인 무리와 지금의 그를 호위하는 사람들과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그의 주위가 이렇게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빌립과 그 외 다른 사람들이 그를 그리스도인 동료로 받아들였고, 그들의 예언이 이처럼 신속히 실현된 것을 보고 마음에 충격과 슬픔을 금할 수 없었다. 이 무리들을 지휘하는 장교는 죄수를 벨릭스에게 인계하고 천부장이 그에게 맡긴 다음의 편지를 전달하였다.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해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고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행 23:26~30).


편지를 읽은 후 벨릭스는 죄수가 어느 영지에 속하였는지를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것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행 23"35). 바울의 경우가 하나님의 종이 이방인 중에서 여호와의 백성이라 주장하는 자들의 원한으로부터 피난처를 찾은 최초의 경우는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에 대한 그들의 분노로 그 백성들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블랙리스트에 또 하나의 범죄를 첨가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해 마음을 더욱더 강퍅하게 하고 그들의 운명을 더욱 확실하게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자신이 기름 부 음을 받았다고 선언하셨을 때,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충분히 깨닫는 사람은 소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슬퍼하는 사람들과 죄를 범한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라고 선언하신 다음, 당신의 청중들의 마음을 지배한 교만과 불신을 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과거에 당신의 선민을 그들의 불신과 반역 문에 버리시고, 하늘의 빛을 거절하지 않은 이교의 나라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나타내신 것을 상기시켰다. 사르밧 과부와 수리아의 나아만은 모든 일에 저희가 받은 빛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편의주의와 세상 명예를 위해 원칙을 희생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보다 더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 세속적이고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바르게 하고 책망하라고 보내신 사자들의 경고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신실한 종들의 진지함이나 열성에 비해 불성실한 자들의 경박함과 피상적인 정신을 구별해 내지 못하다. 어떤 사람은 칼이 당장 떨어지려고 한다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런 악한 날이 언제 오겠느냐고 주장했다. 하나님을 잃고, 그의 사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쓸데없이 거칠고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편견과 불신을 품고 전적으로 사탄의 편에 선다. 사탄의 제안이 즐겁고 구미가 당겨서 정신과 의견이 거짓말의 괴수가 지배를 받게 되고, 자신들의 생각을 사탄이 좌지우지하도록 맡겨 버린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렛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타락한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의 충실한 사자에게 안전이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나사렛의 유대인들에게 두려운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들은 그분의 가치를 알거나 그분의 수고에 감사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예와 이스라엘의 행복을 위하여 큰 열심을 가졌다고 주장하면서도, 하나님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원수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교훈과 모본으로 백성들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로부터 더욱더 멀리 떠나게 해서 환난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방패가 되실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갔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맡기실 수 없을 때, 그를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셨다. 이 통렬한 책망이 하늘의 주권자로부터 온 것이었지만, 나사렛의 유대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방금 전에 그의 입술로부터 나오는 은혜의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나타난 즉각적인 반응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보다 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교만하고 불신에 빠진 유대인들은 분노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만일 천사가 개입해서 구분을 구출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목숨을 빼앗았을 것이다. 나사렛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엘리야에게 보여 주었던 똑같은 정신을 그리스도에게 보여 주었다. 사탄 때문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아들의 품성을 깨달을 수 없었고, 그의 가르침의 진실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사렛 사람들에게 하신 구주의 견책의 말씀은 바울의 경우에 있어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뿐 아니라 그의 신앙의 형제들에게까지 적용되었다. 만일 교회의 지도자들이 사도에 대한 그들의 악랄한 감정을 완전히 버리고 사도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 받아들였다면, 주께서는 그를 그들 중에 아껴 두셨을 것이다.

 

시작부터 끝을 내다보시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는 바울을 향한 시기와 질투심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을 아셨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수고가 그처럼 곧 끝나도록 정하지는 않으셨으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일으킨 일련의 사건을 좌절시키려고 이적을 행하지도 않으셨다. 그와 같은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동일한 결과를 빚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마련된 것들을 감사하거나, 선용하는 일을 게을리해서, 교회는 많은 축복을 상실했다. 얼마나 자주 주께서는 어떤 충실한 목사의 수고에 대해 냉담한 태도 때문에 큰일을 이룰 수도 있는 그의 사업을 연기하실 수밖에 없으셨던가! 만일 교회가 지각을 그르치게 하여 그리스도의 종의 말과 행동을 오해하고 잘못 나타낸다면, 만일 그들이 목사의 길을 가로막아 그의 유용성을 방해한다면, 주께서는 때때로 당신께서 주신 축복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 사탄은 그의 대리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위대하고 선한 사업을 성취하시기 위해 택하신 사람들을 낙담시키고 멸망시키려고 끊임없이 일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전진시키기 위해 생명 그 자체까지라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대기만 자는 그들에 대하여 형제들의 마음에 의심을 일으키고, 그런 의심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성실성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그들의 유용성은 약하게 될 것이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개입하셔서 박해를 당한 당신의 종들에게 쉼을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대기만 자는 너무도 자주 그들의 형제를 통해 그와 같은 마음의 슬픔을 가져다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들의 손이 박동 없는 가슴 위에 얹힌 후에야, 경고와 격려의 음성이 잠잠해진 후에야, 완고한 자들이 정신을 차려 저희가 저버린 축복에 대해 칭송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 그들의 죽음은 그들이 살았을 때 성취하지 못한 일을 성취시킬 수도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큰일은 다른 사람들의 품성이나 동기를 비난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활을 면밀히 살펴보고 사탄의 제안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간직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된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그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이 우리 마음을 다스린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게 될 것이며, 우리의 매일의 생활에서 자비가 제사보다 낫다는 것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의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서 부지런하고도 끈질긴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의와 겸손, 인내, 순결과 사랑의 교과를 배우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품성의 이런 특성들이 주님의 눈에는 금이나 은보다 더 귀하게 보인다. 그분은 그런 것들을 어떤 값비싼 희생 제물보다 더 기쁘게 받으신다. 구세주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책망과 훈계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향해 기울어지고 조롱하는 풍조를 따라가는 똑같은 경향이 있다. 야망과 이기심, 기회주의에 빠진 교인들이 교회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데, 그들의 최대의 위험은 세상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교인들은 끊임없이 교회를 세상과 연합시키기 위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은 사탄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경고와 권고의 말씀을 가지고 그의 종들을 보내실 때, 이 거룩한 신임에 대한 반역자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기별을 거절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홀히 여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확신을 약화시키고, 받게 된 축복을 잃도록 끌어갈 것이다.


진리에 대해 저항하게 되면 마음은 불순종으로 굳어져 치명적인 완고함에 고착되고 만다. 그들은 자신을 속이고 남들도 속인다. 그들은 말로는 그리스도인이고, 겉으로는 그리스도께 충성을 표하며, 선전에서 봉사하는 일에 참여한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시는 충성에 대해서는 그 마음이 멀어져 있다. 그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어 있다. 그들이 선택한 대로 어두움, 즉 영원한 밤의 암흑 속에 빠져 있다. 교회와 세상을 분리라는 선을 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운 일이다. 이것이 사탄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는 결단과 열성, 끈기로 평범한 죄인들이라면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대적하여 이런 악을 궁리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들이 빛을 소홀이 여김으로 열 배는 더 그들의 어둠을 키우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들에게 보내신 빛을 거절하면 그들은 이제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리게 그들이 빛을 소홀이 여김으로 열 배는 더 그들의 어둠을 키우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들에게 보내신 빛을 거절하면 그들은 이제 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은 한 번에 한 걸음씩 옳은 길에서 떠나게 되지만, 이 걸음이 계속되면 그것은 곧 파멸이 된다. 그들은 자신을 사탄의 땅에 두게 되고, 사탄의 정신이 그들을 지배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큰 변화를 느낄 수가 없다. 단번에 변화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 들어가는 대신 사탄의 학교에 들어가고 대 기만자는 그를 자기의 사업을 위해서 훈련시킨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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