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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리/바울의 생애

바울의 생애 // 22.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함

by 동심초(남양주) 2022. 4. 8.

 22,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함 

 제주도에서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함 

벨릭스를 대신해서 총독으로 임명된 사람은 보르기오 베스도로 매우 존경할 만한 통치자였다. 자신의 지위에 대한 책임감이 매우 높은 사람이어서, 뇌물을 거절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 가이사랴에 도착한 지 삼일 후에 베스도는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여기서 유대인들이 재빠르게 그를 압박해 시간을 끌지 않고 바울에 대한 고소를 그의 앞에 제시했다. 그토록 오래 감옥에 있었지만, 바울에 대한 그들의 악의적인 증오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그의 목숨을 없애려는 그들이 결심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아야 하며, 그를 즉각 예루살렘으로 보내기를 간청했다. 이 요청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감추어진 음모가 깊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를 산헤드린 공회의 결정에 맡겨 두려는 것이 아니라, 길에서 살해하여 이 문제를 일괄 처리할 계획이었다. 가이사랴에서 베스도는 너무도 잘 알려진 바울에 대한 문제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그의 죽음을 요구하는 것은 그저 단순한 폭도들이 외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도시의 가장 존경받는 대표자들이 대제사장을 대동하고 공식적으로 바울에 대한 요구를 제안해 온 것이다. 그들은 이 신출내기 경험 없는 공직자를 쉽게 주무르면, 틀림없이 그들이 호의를 얻기 위해서 모든 요구 사항을 어렵지 않게 허락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베스도는 인기를 위해서 자신의 정의를 희생할 사람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얼마 있지 않아 자기들이 다루려는 사람이 벨릭스가 아닌 갈리오를 닮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들의 요구애 깔린 동기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을 보내는 것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자기도 곧 가이사랴로 갈 것이며, 거기서 그에 대한 고소 건에 적합한 공정한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저희가 이전에 가이사랴에서 패배한 것을 잊지 않았다. 사도의 침착한 태도와 능력 있는 논증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의 악의에 찬 정신과 근거 없는 비난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이었다. 다시 그들은 바울을 심문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베스도는 그들이 실행하려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단지 고소자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람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이 로마의 관습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했다. 피고와 원고가 대면하여 공평한 증인들 앞에서 피고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베스도의 결정을 지배하셔서 사도의 생명이 연장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들의 목적이 좌절되자, 유대의 지도자들은 곧 총독의 법정에서 바울을 대적하는 증언을 하려고 준비했다.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유한 후, 가이사랴에 돌아오자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사건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다. 유대인들은 변호사도 없는 이런 경우가 되자, 저희 스스로 고소를 제기했다. 심문이 계속될 때에 고소자들은 열을 내서 말도 안 되는 고함만 질러댔으나, 피고의 침착하고 허심탄회한 모습은 그들의 진술이 허위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냈다. 유대인들은 그가 이단이며, 반역자요, 신성 모독을 했다고 반복해서 고소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입증할 증거를 대지 못했다. 그들은 전에 가이사에게 영예를 돌리는 것처럼 가장하여 빌라도를 협박했던 것처럼, 같은 방법으로 베스도를 협박하려고 애를 썼다. 베스도는 논쟁 중에 있는 문제를 전부 유대인들의 교리에 관계되는 것이요, 바로 이해한다면 바울에 대한 비난에는 그를 사형에 처하거나 더 투옥할 만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만일 바울을 정죄하지 않거나 그들의 손에 넘겨주지 않을 때 일어나게 될 분노의 폭풍 또한 분명히 알고 있었다.그는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그 앞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유대의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험악한 얼굴과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들의 신분도 위엄도 잊은 채, 열성적으로 그들의 고소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점점 커져서 드디어는 분노의 함성으로 재판정이 떠나갈 듯했다. 이 모든 것을 빨리 끝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는 바울을 향했다. 그 와중에도 바울은 그의 적들 앞에 잠잠히 그리고 냉정을 유지하고 서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베스도는 바울을 향하여 자기의 보호 아래 예루살렘으로 가서 산헤드린의 문을 받을 것인가를 물었다. 이것은 사실상 이 사건을 로마의 법정으로 이송하는 것이었다. 사도는 그들의 범죄로 하나님의 분노를 자청한 백성에게 공의를 바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선지자 엘리야처럼 하늘의 빛을 거절하고,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복음을 거절한 자들에게서보다, 이방인에게 가는 것이 더욱 안전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적들의 분노 때문에 그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던 상황에서, 그를 구해 준 것은 이방의 치안 판사들이었다. 갈리오나 루시아, 심지어는 벨리스까지 그의 무죄를 선언하는 데 머뭇거리지 않았다. 바울은 싸움에 지쳤고, 반복되는 치열한 고소에 지쳐있었다. 논박하고 논박하고 또 새로운 논박을 해야 했다. 고소와 투쟁에 지친 그의 정신은 심문과 투옥에 대한 거듭되는 지체와 오랜 근심을 거의 이겨 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야비하고, 게으르고, 원칙도 없는 훈련, 끊임없이 싸우는 소리,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투쟁과 유혈의 소문들을 얼마나 지겹게 들었던가!


그는 더 이상 유대의 제사장들이나 관원들을로부터 바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로마의 시민으로서 가진 특권을 활용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한다면 한동안이라도 적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총독의 질문에 바울은 가이사의 재판 자리에 서겠다고 대답했다. 산헤드린이 아니라 여기서 재판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직접 총독을 향하여 호소했다. "베스도시여, 당신도 아는 바와 같이 내게 대하여 아무런 혐의도 입증되지 못했습니다.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습니다. 만일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했다면 그것은 이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황제에게 죄를 범한 것이 발견된다면 죽기를 사양치 않을 것입니다. 또 만일 내가 무슨 죄를 범한 것이 발견된다면 죽기를 사양치 않을 것입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습니다. 제가 가이사께 호소합니다"라고 말했다. 베스도는 바울을 살해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으며, 가이사에게 호소한다는 이 말을 듣고 놀랐다. 이것은 총독의 자존심으로서는 썩 기분 좋은 말이 아니었다. 베스도가 처음으로 맞는 사건을 고위층에 이송하는 일이었다. 어쨌든 사도의 말은 진행 중인 재판을 중지시켰다. 베스도는 그의 자문들과 간단하게 상의하고 그의 호소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인정했다. 그러고는 죄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행 25:12)고 했다. 이리하여 고집과 독선에서 나온 증오 때문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종은 이방인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선지자 엘리야가 구조를 받기 위하여 사르밧 과부에게 도망한 것과 복음의 사신들이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러 간 동일한 증오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증오심을 이 시대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당해야 한다. 그들이 조만간 당면하게 될 큰 위기에 있어서 바울이 당한 경험과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많은 사람 가운데 그와 같은 교만, 형식주의, 이기심 그리고 유대인의 마음 가운데 그처럼 크게 자리를 잡고 있던 그와 같은 압박의 정신이 있다. 싸움이 끝나고 승리를 얻기 전에 한 백성으로서 우리도 바울이 겪었던 것과 유사한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똑 같은똑같은 무정함과 똑같은 잔인한 결정과 똑같은 완고한 증오심에 봉착하게 도리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표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취급할 때 취했던 것과 유사한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었다. 그 사악한 날에 양심의 명령을 따라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은 용기와 확고부동한 제사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하나님께 충실한 사람들에 대한 박해가 다시 타오를 것이며, 그들이 동기가 비난을 받을 것이며, 그들의 최선의 노력이 오해를 받고, 그들의 이름이 사악한 것이라고 팽개쳐질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미리 말씀하셨던 것처럼 충실한 자들을 궤멸시키려는 자들은 자기가 마치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 때에 사탄은 그의 모든 기만적인 능력을 가지고, 마음에 영향을 주고, 이해력을 흐리게 하여 악을 선처럼, 선을 악처럼 나타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대리자들을 통해서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마 24:24)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임박한 위기를 위하여 준비하기를 갈망하신다.


준비되었거나 안 되었거나 간에 그들은 모두 위기를 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의 생애를 하나님의 표준에 일치하게 한 자들만이, 그 시험과 시련의 때에 굳게 설 것이다. 원수들이 모든 방향에서 악을 위해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선을 위해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양심의 문제를 강제하기 위하여 세상 통치자들이 종교계의 목사들과 연합할 때, 참으로 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지 나타나게 될 것이다. 흑암이 가장 깊을 때, 경건한 품성의 빛은 가장 밝게 빛날 것이다. 모든 다른 기대가 무너질 때, 누가 여호와를 영원히 의지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이 더 강해지고 순결해질수록, 그분께 순종하려는 결심이 더 굳세어질수록, 사탄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는 자들의 분노를 더욱 촉발시킬 것이다. 다가오는 그 비상 상황에서 더 이상 통치자들이나 치안 판사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해 오지 않았던 사람들 사이에 부패한 연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날에, 모든 시류에 편승하는 사람들, 그들의 마음속에 참된 은혜의 역사가 없는 자들은 부족함이 나타날 것이다. 성도들에게 전해진 진리를 굳게 붙잡기 위해서는 가장 확고한 신뢰와 가장 영웅적인 목표가 필요하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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