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최후의 투옥
여름배추밭
밀밭
선운사에서
최후의 투옥
바울의 사업이 주로 교회들에서 이루어졌지만, 그렇다고 그의 원수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는 없었다. 네로의 박해가 시작된 이래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서나 증오와 의혹의 대상 되었다. 그들에 대해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금지된 종파에 속한 사람을 체포하거나 투옥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제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로마의 화재를 선동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 중 아무도, 바울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그럴듯하게 조작한다면 이러한 비난이 그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었다. 머지않아 그들의 계획을 실행할 기회가 왔다. 드로아의 한 제자의 집에서 바울은 다시 체포되었고, 여기서부터 그의 최후의 감금이 서둘러 진행되었다. 체포는 구리 장색 알렉산더의 노력으로 신속히 이루어졌는데, 이 사람은 한때 에베소에서 바울의 사업을 방해했으나 그리 크게 성공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전에 패배시키지 못했던 사람에게 이제야말로 제대로 복수할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바울이 후에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이 믿음의 원수의 음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구리 장색 알랙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딤후 4:14)라.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 하였"(딤전 1:19) 던 후메네오와 알렉산더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을 "내가 사탄에게 내어 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딤전 1:20)고 언급했다. 이 사람들은 복음의 신앙에서 떠났고, 나아가서는 바울이 받았던 놀라운 계시를 사탄의 권세에서 온 것이라 주장해서 은혜의 성령을 거역했다. 진리를 거절하면서 마음에 진리에 대한 증오를 가득 채웠고, 충실한 옹호자를 없애려고 했다.
개혁적인 행동은 언제나 손해와 희생 그리고 고통을 수반한다. 그것은 언제나 안일에 대한 사랑과 이기적인 이익 그리고 육욕적 야망을 꾸짖는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런 행위를 시도하거나 실행하는 사람은 개혁의 조건에 따르려 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반대와 비방, 증오를 당하게 된다. 죄악적인 습관이나 행동을 극복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 일은 오직 거룩한 은혜의 도움을 입어야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인데도, 많은 사람이 이런 도움을 구하는 일을 등한히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표준에 맞추기 위해서 표준을 낮추려고 애를 쓴다. 이런 사람들이 저지른 죄를 이렇게 엄하게 다룬 것은 그들은 신자들의 순결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이런 악에 물들지 않고, 또 그것을 교회로부터 물리치기 위해 단호하고도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당시에 편만했던 방탕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책망했으며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라 진행했지만, 그들은 회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결국 교회에서 출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믿음으로부터 교회에서 배교하고, 가장 지독한 반대자들과 연합했다. 그들이 바울의 말을 거역하고 자기들을 사업의 반대자 편에 둘 때, 그들은 그리스도를 향해 전쟁을 벌이는 것이었으며, 바울이 그들을 엄히 꾸짖었던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한 것이지 개인적인 감정의 표출이 아니었다. 그의 두 번째 로마로 가는 항해에서 바울은 그의 이전 동료들 가운데 여러 사람과 함께 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을 간절히 바랐으나, 이렇게 함으로 그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앞에 있는 전망을 이전 투옥 때보다 훨씬 어두웠다. 네로의 박해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수효는 격감되었다. 무수한 사람이 그들의 신앙을 위하여 순교를 당했고, 많은 사람이 도시를 떠났으며,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의기는 크게 저상 되어 있었다.
바울이 처음 도착했을 때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은 그의 논증을 기꺼이 듣고 싶어 했으나 예루살렘으로부터 파견된 밀사(密使)의 영향과 또 그리스도인들이 고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바울을 공격하는 신랄한 원수가 되었다. 이전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용기를 갖게 되었을 때처럼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한 제자들은 없었다. 이전의 율리오처럼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그에게 호의적인 말을 해 줄 사람도, 베스도나 아그립바처럼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편지를 써 준 사람도 없었다. 그 도시와 주민들에게 일어난 끔찍한 화재 그리고 그의 인한 검게 그을린 자국들과 수천수만 명의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한 상태에 있는 백성들이 마치 바울의 처지를 대변하는 듯했다. 바울과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거리에 여전히 붐비고 있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군중 속을 통과하면서 이 모든 비참한 처지의 장본인이 마치 자신들인 것처럼 보였고, 바울은 이제 자신의 셋집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밤낮 차꼬에 채워져 지내게 될 침울한 지하 감옥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바울이 지금 이곳에 온 것은 첫 번째 왔을 때처럼 아무런 혐의를 찾을 수 없었던 사람으로 왕들과 통치자들로부터 호의적인 견해를 가졌던 사람으로서 온 것이 아니었다. 그 도시와 국가에 대한 가장 비열하고 가장 무서운 범죄를 선동한 것으로 고소된 바울은 만민의 저주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누구든지 그에게 사소한 관심만 보인다 해도 의심을 받게 되고, 자기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로마에는 지금 작은 혐의점만 있어도 당장 고소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밀정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다른 그리스도인을 방문하는 사람이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도 없었는데,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심지어 지식 층에 있다 하더라고 단순히 경멸받는 정도가 아니라 반역으로 취급되었다. 바울은 한 사람 한 사람씩, 그의 친구들이 떠나는 것을 보았다.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제일 먼저 떠난 사람들이었다.
그다음 점점 어두워 가는 고난과 위험의 짙은 구름에 낙심한 데마가 안일과 세속적 안일을 찾아 핍박받는 사도를 버렸다. 바울은 그레스 게를 갈라디아 교회로, 디도를 달마 디아 교회로, 두기고를 에베소 교횔 보냈다. 사랑받는 의원이요 충실한 친구인 누가는 여전히 그와 함께 있었다. 연로하고, 수고와 병으로 쇠약하고, 로마 감옥의 습하고 어두운 동굴에 갇혀 있는 지금처럼 사도에게 그의 형제들의 도움이 절실한 적이 결코 없었다. 그가 대필자의 수고에 의지하고 있는 터라, 누가의 봉사는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바울이 그의 형제들과 그리고 밖의 세계와 교통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바울이 도착한 직후에 에베소의 그리스도인인 오네시보로가 예상 밖에 방문했던 일이 이런 처지에 있는 바울에게 예기치 않은 큰 위안이 되었다. 그는 이 도시의 어딘가에 바울이 있을 줄 알고 그 죄수를 찾기로 결심했다. 죄수들로 넘쳐나는 이 도시에서, 극악자로 몰린 바울을 찾는다는 것은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끝까지 찾았다. 한번 찾아보는 것으로 만족한 것이 아니라 감금된 사도의 괴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면서 감옥을 여러 번 방문했다. 진실한 마음을 가진 이 에베소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스승은 진리를 위해 구속되어 있는 반면에 모든 면에서 훨씬 무가치한 자신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사람들의 모욕, 비난, 박해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도 그를 더 이상 무서워하게 할 수 없었다. 오네시보로의 방문은 그가 외로운 상태에 있을 때 그의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며, 바울의 감옥 생활을 밝혀 주는 일이었다. 사도가 기록한 최후의 편지 가운데 그는 충실한 제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딤후 1:16~18). 사랑과 동정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심어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겟세마네에서 죄지은 인간의 죄를 짊어지실 때 당신의 제자들의 동정을 갈망하셨다. 그리고 바울고ㄷ도 표면상으로는 고난과 고통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으나 동정과 우정을 받고 싶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과 동정을 베풀기를 바라신다. 훌륭하게 되고, 고상하게 되며, 하나님을 닮은 인간성은 존중되고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운 마음과 동정심, 예의를 갖추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바울은 그의 제자들과 단지 그리스도인 형제로 서보다는 더 강한 연대를 이루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을 바울에게 나타내셔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게 하셨다. 많은 교회가 그를 믿음의 아버지로 대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자신의 모든 세상적인 것을 희생할 사람은 그의 회심자들과 동역자들의 특별한 사랑과 동정을 요구할 권한이 있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구입처 : (02) 3299-5300
www.hanwansoon.com
'●역사 교리 > 바울의 생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울의 생애 // 31. 바울의 마지막 편지 (0) | 2022.04.09 |
---|---|
바울의 생애 // 30. 네로 앞에 선 바울 (0) | 2022.04.09 |
바울의 생애 // 28. 바울의 석방 (0) | 2022.04.09 |
바울의 생애 // 27. 가이사의 집 (0) | 2022.04.09 |
바울의 생애 // 26. 로마에 체류함 (0) | 2022.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