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네로 앞에 선 바울
제주도에서
네로 앞에 선 바울
바울이 심문을 받기 위해 네로 황제 앞에 소환되었을 때, 이미 죽음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그에게 씌워진 범죄의 중대성과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널리 퍼진 증오 때문에 유리한 선고가 내릴 희망은 거의 없었다. 헬라인들과 로마인들 가운데는 피고가 재판정 앞에서 자신을 위하여 변호할 변호인을 고용할 특권이 허락되는 관습이 있다. 이런 변호인은 강력한 논증을 열렬한 웅변 혹은 간청과 기도와 눈물로써 흔히 죄수에게 유리한 결정을 얻게 하거나 또는 이 일에 실패한다 할지라도 형벌은 덜 혹독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감히 그의 변호인이나 대변인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에게 가해진 비난이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하여 청원한 논증은 기록을 보관할 친구도 없었다.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이 시련의 때에 그의 편을 들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경우에 대한 믿을 만한 유일한 기록은 바울 자신이 디모데에게 보낸 두 편지뿐이다. 사도는 이렇게 기록했다."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6~17). 네로 앞에 선 바울, 이 얼마나 현저한 대조인가! 그의 신앙을 위하여 답변해야 할 하나님의 사람 앞에 있는 거만한 군주는 세상의 권세와 권위와 부의 절정에 도달했으며, 동시에 죄와 불의의 사장 깊은 곳에 있었다. 권세와 위대함에 있어서 그를 필적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의 권위를 의심하거나 그의 뜻을 거스를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왕들은 그의 발 곁에 그들의 면류관을 벗어 두었다. 강력한 육군은 그의 명령에 따라 행진했고, 해군의 깃발은 승리로 펄럭였다. 그의 조상(彫像)은 재판정에 세워졌고, 원로원 의원들의 포고나 재판관들의 판결은 그의 뜻의 반향에 불과했다. 수백만이 그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다. 네로의 명성은 세계를 진동시켰다. 그를 불쾌하게 하는 것은 재산과 자유와 생명의 손실을 의미했고, 그가 얼굴을 찌푸리는 것은 전염병보다 더 무서웠다. 겉으로 보기에 지성의 이 모든 화려하고 위대한 것들에 둘러싸여 인간의 모습을 한 신으로 존경과 찬양을 받았으나 그의 마음에는 악마가 깃들어 있었다. 바울은 돈도 없고, 친구도 없고, 변호인도 없는 노령의 죄수로 음습한 지하 감옥으로부터 끌려 나와 목숨을 두고 재판을 받기 위해 네로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가난과 자기 부정과 고난의 일생을 보냈다.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사랑과 동정을 갈구하며, 끊임없는 오전(誤傳)과 비난과 학대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위험에 대한 두려운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그 모든 것을 끝까지 견뎌 냈다. 십자가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그의 주님처럼 그는 집 없는 나그네였지만, 진리를 위해 살고 고난을 당했으며, 인류의 짐을 덜어 주고, 인류를 복 되게 하기 위하여 그의 주님을 본받아 살았다. 변덕스럽고 성질 잘 내는 음탕한 폭군 네로가 자기 부정과 덕스러움과 고상한 삶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의 품성과 삶의 동기를 이해하거나 평가할 수 있었겠는가? 바울과 네로가 대면하고 섰다.
젊은 황제의 얼굴에는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격노한 감정의 수치스러운 기록이 나타나 있었고, 나이 많은 피고인의 평온하고 온화한 얼굴에는 하나님과 화목한 마음이 나타나 있었다. 그날 끝을 모르는 자기도취의 생활과 극도의 자기희생의 생활이라는 정반대의 훈련과 교육 제도의 결과가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두 가지 대조, 즉 기독교와 이교라는 두 종교를 대표하고, 다른 사람의 복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자기부정의 단순한 삶과 그에 반해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서 흡수하는 사치스러운 생활, 순간적인 만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가치도 희생할 수 있는 삶, 극명한 그리스도의 대사와 사탄의 노예라는 두 가지 세력이 마주 대하고 서 있었다. 그들의 상대적인 지위는 이 세상이 어둠의 왕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근친상간과 모친까지 살해한 야비한 인간은 홍포를 입고 보좌에 앉아 있었고, 가장 순결하고 가장 고상한 사람은 경멸과 증오를 당하며 족쇄를 찬 채, 재판을 받는 자리에 서 있었다. 넓은 법정에는 열기가 넘쳤고 침착하지 못한 군중들이 운집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어 앞으로 몰려들었다. 높은 사람들과 낮은 사람들이 거의 다 있었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학식 있는 사람과 무식한 사람, 거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이 모두 다 같이 생명과 구원의 길에 대한 참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소요와 이단이라는 해묵은 비난을 다시 퍼부었고, 유대인과 로마인은 모두 그를 로마 도성에 불을 지르도록 선동했다고 고소했다. 그에게 이런 비난이 퍼부어지는 동안에도 바울의 얼굴에는 침착함이 흐르고 있었다. 어떤 두려움이나 분노의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지 않았다. 백성들과 심지어 재판관들까지도 놀라움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수없이 많은 심문에 참석하여 많은 죄수를 봐 왔으나, 저희 앞에 있는 이 죄수처럼 거룩하고 침착한 모습을 가진 사람은 본 적이 결코 없었다.
재판관들의 예리한 눈은 죄수들의 얼굴 표정을 보고 그들의 죄상을 알아내는 데 익숙했으나, 바울의 얼굴에서는 범죄의 어떤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바울이 자신을 위해 변호하도록 허락받았을 때 모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였다. 다시 한번 바울은 의아해하는 군중 앞에서 십자가의 깃발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어떤 인간의 웅변이나 권력 보다도 앞서는 복음의 진리로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 그분의 종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났다. 바울 이 세상의 황제 앞에 섰을 때, 그 말들은 가장 완고한 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분명하고 확신을 주는 진리는 오류를 무너뜨렸다. 이 사람들은 전에 이와 같은 말을 들어 본 적이 결코 없었다. 후에 즐거운 마음으로 이 빛을 따르게 된 많은 사람의 마음에 빛이 흘러들었다. 그날에 선포된 진리는 세상을 흔들고 모든 시대를 통해 살아남을 것이며. 그들에게 말한 입술이 순교자의 무덤에서 잠잠하게 될 때에 사람들의 마음에 오히려 더 큰 감화를 끼칠 것이었다. 네로는 이때 들은 진리를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생애에 있었던 중대한 죄악이 그에게 그처럼 절실하게 나타난 적이 결코 없었다. 그날 전해진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비록 허약하고 노쇠한 죄수의 입에서 나왔을지라도, 진리의 말씀이 나라들을 흔들기 위해 메아리쳐 가고 있었다. 능력이 실린 그 말씀들이 언제나 살아서 그것을 말한 입술이 순교자의 무덤에서 잠잠해질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바울이 그의 앞에 모여 있는 유대인들과 헬라인, 로마인들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을 바라볼 때, 그의 영혼은 그들을 구원하려는 간절한 열망으로 가득 찼다.
그는 지금 그를 둘러싸고 있는 위험들과 매우 비슷해 보이는 무서운 운명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탄원하시는 중보자 예수님만을 바라본다. 청중들에게 타락한 인류를 위해 마련된 희생 제물을 열렬하게 가리킨다. 인간의 구속으로 위해 무한한 대가가 지불되었다고 선언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높은 보좌에 동참하도록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다. 천사라는 사자(使者)들에 의해서 땅은 하늘에 연결되고, 사람들의 행위는 선악 간에 무한하신 재판장의 목전에 드러난다. 진리의 옹호자는 이와 같이 호소한다. 충실하지 못한 자들 가운데서 충실하고, 불충 성하는 자들 가운데서 충성하는 바울은 하나님의 대표자로 선다. 그의 음성은 하늘의 음성과 같다. 바울은 하나님의 대표자로 선다. 그의 불충 성하는 자들 가운데서 충성하는 바울은 하나님의 대표자로 선다. 그의 음성은 하늘의 음성과 같다. 말에나 외모로 두려움도 슬픔도 낙담도 없다. 무죄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굳건하고, 진리의 갑옷을 입은 그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기뻐한다. 그의 말은 전쟁의 함성 위로 들리는 승리의 함성과 같다. 그가 일생을 바친 사업이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유일한 사업이었다고 선언한다. 비록 그는 죽을지라고 복음은 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그분의 진리는 승리할 것이다. 그의 얼굴이 마치 태양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하늘의 빛으로 환하게 빛났다. 그날 바울을 바라본 많은 사람이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행 6:15) 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전에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바울의 투옥장 말고는 다른 어디에서도 들어 보지 못한 복음 기별이 많은 사람의 마음과 심장에 파고들었다.
네로는 이때 들었던 진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생애를 얼룩지게 했던 더러운 죄악이 그처럼 생생하게 나타난 적이 전에 결코 없었다. 하늘의 빛이 죄로 더럽혀진 그의 심령을 꿰뚫었으며, 세계의 지도자인 그가 마침내 고소를 당해, 그의 행위가 공의로운 보응의 심판을 생각하고 두려워 떨었다. 네로는 사도의 하나님이 두려워 아무런 증거도 없이 고소당한 바울에게 감히 형을 내릴 수 없었다. 두려운 느낌은 한동안 그의 피에 굶주린 정신을 얼어붙게 했다. 바울이 전한 말씀을 통해 한동안 네로에게 하늘이 열렸다. 하늘의 평화와 순결이 그리워졌다. 그 순간 은혜의 초청은 죄 많고 마음이 굳어진 네로에게 까지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순간에 불과했다. 그는 바울을 다시 그의 토굴로 데려가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하나님의 사자에게 토굴의 문이 닫혔을 때에 로마 황제에 대한 회개의 문도 영원히 닫혔다. 하늘에서 온 빛이 다시는 그를 둘러싼 흑암을 꿰뚫지 못했다. 거룩한 은혜를 거절한 것보다 더할 나위 없는 일이 없어서 그에게 하나님의 정부의 보응이 내리는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 일 후에 오래지 않아 네로는 그 오명을 남겼던 헬라 원정을 의해 떠났고, 거기서 매우 천하고 비열한 언동으로 자신과 그의 나라를 망신시켰다. 그리고 대단히 화려한 행렬을 갖추고 로마로 돌아오면서 그의 궁신들과 어울려 몸서리나는 주색에 몰두했다. 이와 같이 흥청거리고 있는 도중에 거리에서 폭동 소리가 들렸다. 원인을 알아 오라고 파견된 사신은 육군 대장 갈바가 신속히 로마로 행진하고 있으며, 성안에서는 이미 반란이 일어났고, 거리에는 황제와 그의 모든 지지자를 죽이려는 분노에 찬 폭도들로 가득 찼으며, 그들이 신속히 왕궁에 접근하고 있다는 무서운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의 잔인함 만큼이나 우유부단한 이 비참한 폭군은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다. 그는 앉아서 먹고 마시던 식탁으로부터 벌떡 일어나 공포에 질려 눈이 먼 상태로 그것을 뒤집어 버렸다. 값비싼 그릇들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는 옆에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머리를 짓 찧으면서 "나는 끝났다 나는 끝났다."라고외쳐 댔다. 이 위기의 순간에 네로는 충성스러운 바울처럼, 의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시고 동정심이 많으신 하나님을 모시지 않았다. 네로가 투옥된다면 그는 모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할 것이 뻔했다. 어떻게 해야 그 가련한 목숨을 가능한 한 고통을 당하지 않고 빨리 끊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독약을 가지 오라고 명령했지만 막상 가져오자 마시지 못했다. 검을 가져오도록 명령했지만 정작 가져왔을 때, 그 예리함을 시험해 보고는 그냥 내려놓았다. 밤중에 여인의 옷으로 가장하고 왕궁을 떠나 티베르강으로 가는 좁은 길로 달려갔지만, 시퍼렇게 소용돌이치는 강물을 바라보자 다시 용기가 꺾이고 말았다. 그를 따라온 몇 명의 전사들이 그에게 몇 킬로미터 떨어진 시골집으로 피신토록 권했다. 그곳이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굴을 가린 채 서둘러 말을 달려 안전하게 도망했다. 황제가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수치스럽게 도망치자, 로마 원로원은 갈바 장군의 발란과 진군을 보고 용기를 내어 국가의 원수인 네로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조서를 반포하게 된다. 네로는 그의 동료를 통해 이 결정에 대한 기별을 듣고, 자기가 어떤 방식으로 처형될지를 물었다. 그러자 벌거벗긴 채 채찍질을 당하고, 칼로 목을 쳐서 죽게 될 것이라고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비 인간적인 고문을 자행하는 것을 쾌락으로 삼았던 이 괴물은 그가 당해야 할 고문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공포로 오그라들었다. 그가 다시 단검을 들어 그의 심장을 찌르려고 했지만, 그 찌르는 도구를 잡아 본 게 전부였다. 신음 소리를 내며 그것을 던져 버렸을 때 곧바로 기마병이 접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은신처가 발각되어 잠시 후면 적의 손에 들어갈 처지였다. 자살이건 고문이건 간에 둘 다 너무 두려운 생각이 들어 그는 아직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드디어 어쩔 수 없이 그의 노예 한 사람을 시켜 그의 떨리는 손을 붙들고는 자신의 목을 단검으로 찌르도록 했다. 이렇게 폭군 네로는 32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쳤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자비로 그의 율법을 범하는 자들을 참아 주셨다. 아브라함 때 우상 숭배자들인 아모리인들이 사대까지 목숨을 유지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왜냐하면 아직 그들의 죄가 가득 차지 않아서 파멸시키라는 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백 년이 넘도록 그들을 용서하셨지만, 회개하고 돌이키는 대신 죄악으로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면서 그분의 백성들을 향해 전쟁을 벌려 그들의 유예 기간은 끝나고, 그들을 완전히 멸절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무한하신 분께서는 사악한 국가와 개인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계신다. 오랫동안 자비로 회개하라는 은혜의 호소를 보내시지만, 그가 정하신 한계에 도달하면 이제는 자비의 호소는 끝나고 진노의 역사가 시작된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구입처 : (02) 329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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