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리/바울의 생애33 바울의 생애 // 23. 아그립바 앞에서의 청원 23, 아그립바 앞에서의 청원 제주도에서 아그립바 앞에서의 청원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했기 때문에, 베스도는 그를 로마로 보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적당한 배를 구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고 그리고 다른 죄수들도 바울과 함께 보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소송에 대한 고려도 역시 지체의 원인이 되었다. 이것은 가이사랴의 유대인과 이방인 양쪽의 요인(要人)들 앞과 또한 유대인의 왕이라는 직분을 가진 헤롯 왕조의 최후의 왕 앞에서 그의 신앙의 이유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바울에게 주었다.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행 25:13) 왔다. 아그립바가 유대의 율법과 관습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베스도는 그의 방문 기간 동안 벨릭스에 의해서 투옥되어 있.. 2022. 4. 8. 바울의 생애 // 22.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함 22,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함 제주도에서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함 벨릭스를 대신해서 총독으로 임명된 사람은 보르기오 베스도로 매우 존경할 만한 통치자였다. 자신의 지위에 대한 책임감이 매우 높은 사람이어서, 뇌물을 거절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 가이사랴에 도착한 지 삼일 후에 베스도는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여기서 유대인들이 재빠르게 그를 압박해 시간을 끌지 않고 바울에 대한 고소를 그의 앞에 제시했다. 그토록 오래 감옥에 있었지만, 바울에 대한 그들의 악의적인 증오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그의 목숨을 없애려는 그들이 결심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아야 하며, 그를 즉각 예루살렘으로 보내기를 간청했다. 이 요청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감추어진 음모.. 2022. 4. 8. 바울의 생애 // 21. 가이사랴에서의 재판 21, 가이사랴에서의 재판 제주도에서 가이사랴에서의 재판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한 지 닷새 후에 그의 고소인들은 변호사로 고용한 더둘로와 함께 예루살렘으로부터 왔다. 그 소송은 신속히 심리(審理)하도록 허락되었다. 바울은 회중 앞으로 끌려 나왔고, 더둘로는 송사하기 시작했다. 로마 총독에게는 사실과 정의에 대한 단순한 진술보다 아첨이 더욱 효과적인 것이라고 판단한 교활한 변사는 벨릭스를 칭찬하는 말로 그의 연설을 시작했다.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행 24:3). 더둘로는 여기서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것은 벨릭스의 성품이 천하고 경멸할 만했기 때문이었.. 2022. 4. 8. 바울의 생애 // 20. 바울의 투옥 20, 바울의 투옥 제주도에서 바울의 투옥 다음 날 바울은 장로들의 권고를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예루살렘의 신자들 중, 네 명이 나실인의 서약(민 6장) 중에 있었는데, 그 기간이 거의 만료되어 가고 있었다. 정결을 위해서 제물을 드려야 했는데, 이것은 매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돈이 많이 들어서 시행하기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경우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돈을 대납해 주는 것이 매우 경건한 일로 여겨졌다. 바울이 이 네 명의 그리스도인 나실인을 위해서 그렇게 하기로 동의했다. 바울 자신도 매우 가난한 사람이어서, 자기 손으로 일을 해야 매일의 필요를 충당하는 사람이었지만, 기꺼이 이 비용을 지불하기로 하고, 그들과 함께 성전에 가서 칠일 동안 정결케 하는 의식에.. 2022. 4. 8. 이전 1 2 3 4 5 6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