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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리/바울의 생애

바울의 생애 // 2, 사울의 개종

by 동심초(남양주) 2022. 4. 7.

 2, 사울의 개종 

 함백산에서 

 

 

    사울의  개종    

사울은 스데반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는 죽음에 대해서 마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의 편견은 요동을 쳤지만 제사장들과 관리들의 견해와 논쟁을 결과적으로 스데반이 신성 모독 자이며, 그가 전했던 그리스도는 사기꾼이요, 거룩한 직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옳다는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 한 번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옳다는 생각이 들자 결심을 하고 뚜렷한 목적을 가지게 되었고, 그리스도에 대해 가혹한 반대자가 되었다. 그리고 열성에 넘쳐 신자들을 핍박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앞장서게 되었다. 성도들을 끌어다 재판정에 넘기고 아무 범법 한 증거도 없이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투옥도 하고, 심지어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방향은 다르지만 비슷한 성격으로 야고보와 요한의 열성이 그들의 스승이 무시당하고 비난을 받았을 때, 그들을 사르도록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사울이 업무차 다메섹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는 길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색출하는 일도 겸하게 되었다. 이 일을 위해서 그는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회당에서 읽기로 했으며, 예수를 믿는다는 혐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고, 붙잡힌 자들을 예루살렘에 기별자들과 함께 보내 심문하고 처형하도록 할 작정이었다. 그는 사나이로서의 힘과 활기 그리고 잘못된 열성의 불을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그의 길을 재촉하였다. 피곤한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자, 사울의 눈을 비옥한 대지와 아름다운 정원, 열매가 풍성한 과수원, 그리고 푸른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시냇물 위에 시선이 머물렀다. 오랫동안 황량한 들판을 여행한 뒤여서 이와 같은 광경은 참으로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사울이 그의 일행들과 함께 경탄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위로부터 태양처럼 밝은 빛이 그의 주위에 비쳤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행 26:14)고 했다.

 

그 광경은 더할 나위 없는 혼란을 가져왔다. 사울의 동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고, 찬란한 빛 때문에 거의 눈이 멀 지경이었다. 그들이 소리는 들었으나 누구인지 볼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다고 신비로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땅에 넘어져 있으면서, 그가 들은 말의 뜻을 분명하게 깨달았으며, 그 앞에 서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았다. 그 상처받은 유대인의 영혼 위에 영광스러운 한 분의 모습이 영원히 새겨졌다. 그 말씀이 오싹 소름이 돋을 만한 힘으로 그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그의 어두워진 마음의 구석에 홍수처럼 빛이 쏟아져 내려 그의 생에의 무지와 마음의 구석에 홍수처럼 빛이 쏟아져 내려 그의 지난 생애의 무지와 과오를 들춰냈다.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하면서 자신은 열성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사탄의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의 믿음이 제사장들과 관원들에 대한 맹신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들이 가진 거룩한 직분은 사울의 마음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쳤고, 부활의 이야기는 제자들이 교묘히 날조한 것이라고 말했을 때, 사울은 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지금 친히 나타나시자, 스데반의 설교가 그의 마음에 강력하게 되살아났다. 제사장들이 신성 모독이라고 선언했던 그 말이 이제 그에게 진리로 다가왔다. 놀라운 빛이 비치고 있는 그때, 그의 생각은 놀랍도록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예언적 역사를 따라 내려가면서, 예수께서 유대인들로부터 거절당하신 것, 십자가에 달리신 것, 부활과 승천이 모두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이며, 그분이 바로 약속된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스데반의 말을 떠올렸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라고 말할 때, 그가 영광의 왕국을 바라보고 있었자는 것도 알레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신자들을 박해하던 그에게 얼마나 놀라운 계시였던가! 확실하면서도 두려운 빛이 그의 영혼을 파고들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이며, 그분이 구원하러 왔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거절과 폭행을 당하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그가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도 깨달았다. 그 두려운 시간에 사울은 거룩한 스데반이 그의 동의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것과 그의 수단을 통해 수많은 훌륭한 성도가 잔인한 박해로 죽게 되었다는 것도 기억했다. "그리하여 그가 떨고 놀라면서 주여 내가 어떻게 하리이까"하고 물었을 때에 주께서는 그에게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사울의 마음에 지금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나사렛 예수 시라는 것에 대해 털끝만큼도 의심이 들지 않았다. 그분이 바로 그렇게 오래 찾아 헤매던 메사아임이 틀림없었다.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위로자요 구속주이시다. 그리고 이제 이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청중들에게 그 똑같은 방법으로 사울에게 그가 그리스도의 수종자(隨從者) 들을 핌 박하는 것이 마치 가시덩굴을 발로 차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셨다. 그 강력한 말씀들은 누구도 그리스도의 진리의 행진을 막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진리는 끝내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겠지만, 그 행진을 방해하려는 온갖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처만 남게 될 일이었다. 박해자들은 결국은 가서 그들이 박해하던 사람들보다 수천 배 더 가혹한 벌을 받게 될 뿐이다. 조만간 그의 마음은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가 가시덩굴을 발로 걷어차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 분명했다. 구주께서는 스데반을 통해 사울에게 말씀하셨고, 성경으로부터 끌어내는 그의 명석한 노니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 유식한 유대인은 순교자의 얼굴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반사되어 마치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은 것을 보았다.

 

그는 원수들에 대한 그의 관용과 용서를 목격했다. 더 나아가서 그는 또한 그가 고문하고 고통을 준 많은 사람이 꿋꿋하게 그 모든 고통을 기꺼이 참아 내는 것도 목격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 때문에 기쁨으로 생명까지도 버리는 것을 보았다. 이 모든 증거가 사울에게 소리 높여 호소하고 있었으며, 그의 마음속에 확신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가 받은 교육과 편견, 제사장들과 관리들에 대한 존경, 그의 인기에 대한 자만, 이런 것들이 그의 양심의 소리를 거역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게 했다. 그는 밤이 새도록 이 확신과 싸웠지만 끝내는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며 그의 제자들은 사람들을 기만한 광신자들이라는 자기의 신념을 표명하는 일로 문제를 끝냈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의 목소리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주여 뉘시오니이까"라는 질문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대답이 같은 목소리로 들려왔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고통받는 백성과 동일시하셨다. 사울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박해하는 일을 통해 하늘의 주를 직접 공격한 셈이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그의 형제들을 괴롭힌 것은 사울이 그들의 대장이요 하늘의 대표자를 공격한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거짓으로 그들을 고소하고 그들에 대해 거짓 증거를 한 것은 세상의 구주를 대적하여 거짓으로 비난하고 거짓 증거를 한 것과 같은 일이었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를 개개인 속에서 핍박을 받으셨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 찬란하던 광채가 서서히 사라지고,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자 자신의 육신의 눈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렬했기 때문에 그 빛이 사라지자 그의 시야는 캄캄한 밤중이 되고 말았다. 그는 자기의 눈이 이렇게 먼 것은 그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잔인하게 핍박한 데 대한 하나님의 보복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운 암흑 속에서 더듬거리는데 그의 동료들 역시 두려워하고 놀라면서 그의 손을 잡고 다메섹으로 들어갔다. 그가 시내에 들어설 때 기대했던 것과는 얼마나 다른 경험이었던가! 그는 자만으로 만족해하면서 다메섹을 향하여 다가가고 있었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그에게 위임된 대제사장의 영예와 신자들을 색출해 예루살렘으로 압송하고, 거기서 무자비한 심판과 처형하는 일에 그가 보여준 통찰력과 열성 때문에 박수를 보내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꿈꾸고 있었다. 그는 여행에서 반드시 성공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굳게 작정을 했고, 그의 용감하고 지칠 줄 모르는 정신이야말로 그의 목표물을 찾아내는 데 어떤 두려움이나 어려움도 없는 가장 적절한 자격을 갖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떤 그리스도인이라도 그의 경계의 시선을 피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리라고 작정한 터라, 그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들의 신앙 관계를 조사할 것이며, 권력으로 그들을 체포하고 죄수로 예루살렘으로 압송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머릿속으로 그려 보던 상태와는 실제 상황이 얼마나 달랐던가! 권력을 휘두르고 영광을 얻는 대신 실제로는 시력마저 잃고 죄수처럼 그의 동료의 손에 매달려 있었다. 무력하고, 자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 그는 자신이 죽음의 선고를 받은 처지였으며, 주께서 앞으로 자신을 어떻게 처리하실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예수의 제자인 유다의 집으로 옮겨져서 거기 머물면서 외로운 가운데 그의 모든 계획을 무너뜨리고, 그의 생애의 전체 흐름을 뒤바꾸어 놓은 이상한 계시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가 비통한 심정으로 스데반과 또 이 땅의 어떤 세력보다 더 강한 능력에 의해 그에게 나타났던 증거들을 회상했다. 그는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악의와 편견의 지배를 받고 있던 자신의 죄를 두려운 마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가장 뚜렷한 증거들에 대해서도 그저 눈과 귀를 닫았으며 나사렛 예수를 믿는 신자들을 잔인하게 핍박하도록 강요했던 일을 회상했다. 그는 외롭게 고립되어 교회와 아무런 소통 없이 시간을 보냈다. 이것은 사울이 다메섹으로 오는 목적에 대해 이미 예루살렘에 있는 신자들로부터 경고를 받은 터라, 신자들은 그가 그들을 더욱 쉽사리 속이기 위하여 연극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사울은 회개하지 않은 유대인들에게 호소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는 그래 봐야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인간의 동정으로부터 차단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뉘우치며, 온전히 상한 마음과 회개하는 심령으로 기도했다. 그가 앞을 못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 유대인으로 보낸 삼 일이 마치 삼 년이나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는 성경에 대해 초보자가 아니었다. 암흑과 고립 속에서 지내면서 메시아를 나타내는 구절들을 회상해 보았다. 마음을 사로잡았던 확신으로 예리해진 기억력을 가지고 사울은 그 예언들을 살펴 내려갔다. 약속된 메시아이신 예수를 거절한 지난날의 이해력의 무지와 일반 유대인들의 맹목적인 점에 놀랐다. 새로워진 모든 것이 그에게 분명해졌고, 그가 가졌던 편견과 불신이 그의 영적인 이해력을 흐리게 하여 나사렛 예수께서 예언에 나타난 메시아라는 사실을 분별하지 못하게 한 것을 깨달았다. 사울의 놀라운 회심은 놀라운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기적적인 능력이 사람의 마음을 설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 주었다. 사울은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덧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율법과 희생을 드리는 제사 제도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예수가 율법을 무시하며, 제자들에게 이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믿었다. 예수가 생명의 임금이라는 위험스러운 교리를 전력을 다해 끝장내기 위해 싸우며, 양심에 따른 열성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끈질긴 박해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토록 증오하고 멸시했던 예수께서 그에게 직접 나타나 그의 광적인 업무 가운데서 그를 붙잡아 이 가망 없는 사람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삼으시려는 것이었다. 사울은 이 계시에 압도되었고, 나사렛 예수를 거절하면서 세상의 구주를 대항해 싸워 왔다는 것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에 빠져 이렇게 부르짖었다. "주여,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는 그 즉시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 그 대신 그토록 가혹하게 핍박하던 사람에게 보내셨다. 사울의 어두움을 비춰 주신 기이한 빛은 바로 주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할 일이 또 따로 있었다. 바울에게 돌아온 대답은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탐구하는 마음을 가진 유대인을 그의 교회에 보내셔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배우도록 하셨다. 예수께서 그에게 계시를 보여 주시고 그를 설득하는 일을 하셨다. 그러니 이제 이 회개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진리를 가르치도록 기름을 부으신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할 환경을 조성하셨다. 그렇게 해서 예수께서는 그의 조직된 교회의 권위를 거룩하게 구별하셨으며, 사울을 지상에 있는 그분의 대표자들에게 연결시켜 주셨다. 하늘에서 온 빛이 사울에게서 시력을 빼앗아 갔지만, 위대한 치료자이신 예수께서 즉각 치료하지 않으셨다.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지만 지상에서는 그를 대표하도록 교회를 세우셨으며, 회개한 죄인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일을 그 교회에 맡기셨다. 사울이 파멸시키려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그가 경멸하고 핍박하던 그 종교를 그에게 가르치도록 하셨다. 다메섹에 있는 유다의 집에서 사흘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는 동안 사울의 믿음은 극심한 시험을 받았다. 눈은 완전히 멀고, 마음은 어둠 속에 빠진 상태에서 그가 무엇을 해야 할지 듣게 되었다.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그는 하나님께 진지하게 부르짖었다. "그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행 9:10~12). 

 

아나니아는 기별을 전해 주는 천사의 말을 믿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핍박했는지가 원근에 쫙 퍼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염려가 되어 이렇게 간청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행 99:13~14). 그러나 아나니아에 대한 명령은 강경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그 제자는 천사의 지시를 따라서 최근까지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을 핍박해 왔던 그 사람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에게 타일렀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행 9:17~18) 앗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일하시는 당신의 방법을 보여 주셨다. 그분 자신의 모든 일을 사울을 위해 하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계획하신 방법이 아니었다. 그의 축복은 그가 기름을 부은 대리자들을 통해 흘러가도록 하신다. 사울은 그가 파멸시키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고백해야 할 것이 있었고, 하나님은 당신을 대신하여 권위를 행하도록 한 사람들에게 대한 책임을 갖고 계신다. 사울은 제자들에게서 배우는 학생이 되었다. 율법의 빛이 비치어 볼 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울은 그가 알지 못할 때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던 그 예수가 아담의 때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의 종교의 창시자요 기초이신 것과 믿음의 완성자이신 것이 이제 밝아진 눈으로 볼 때 이토록 확실하며, 또한 그가 진리의 옹호자요 예언을 성취시키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를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화시키는 자라고 생각했었으나, 이제 그의 영적 시야가 하나님의 손가락에 접촉한 후로는 그리스도야말로 모든 유대의 희생 제도를 창시하신 분으로서 그의 아버지의 율법을 옹호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으며, 그의 죽음으로 상징적인 법이 원형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토록 열심히 준수했던 도덕적 율법의 빛에서 볼 때, 사울 그 자신은 죄인 중의 죄인으로 보였다. 그가 회개했을 때 그는 죄에 대해 죽은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게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실천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그가 한때 매도했던 예수를 진지하고도 열성적으로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당신이 조직하시고 인정하신 교회와 연관을 맺지 않고 종교적인 문제를 제재(制裁)하거나 행사하지 않으신다.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인정하신 사람들과 상관없이 그들이 받은 빛과 경험에 대하여 단지 그리스도께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울의 회심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 가운데 꼭 지녀야 할 중요한 원칙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는 직접 그리스도의 면전에 이끌려 왔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중요한 사업을 위해 직접 "택한 그릇"이었으면서도 진리의 교훈을 그에게 개별적으로 주지 않으셨다. 그분이 가는 길을 막고 돌이키게 하셨지만 그가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그를 교회에 연결시키셨으며, 교회가 그에게 할 일을 지시하도록 하셨다. 그리스도는 죄인의 친구이시다. 그의 마음은 그들의 슬픔을 동정하신다. 그분은 하늘 위에나 땅 위 양쪽에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 그러나 사람을 깨우치고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임명하신 수단을 존중하신다. 그는 세상에 빛을 전하기 위해서 택하신 통로인 교회로 죄인을 인도하신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학식 있는 교사였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맹목적인 실수와 편견을 사로잡혀 있을 때, 자신을 그에게 나타내 보이셨으며, 그를 세상의 빛인 자신의 교회와 소통하게 하셨다. 이 경우에 아나니아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도록 임명을 받은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대표했고 지상에서의 그의 사역 또한 대표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아나니아는 사울의 눈을 만져 다시 시력을 찾게 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는 사울에게 안수를 했고, 그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의 권위로 행했으나 그 통로는 교회였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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