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교도들에게 전도함
함백산에서
이교도들에게 전도함
인구는 로마 사람, 헬라 사람 그리고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도들은 그다음 이고니온을 방문했다. 이곳은 인생의 특별한 목적도 없이 환락만을 찾는 자들에게 매력적인 휴양지였다. 이곳의 인구는 로마 사람, 헬라 사람 그리고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도들은 안디옥에서처럼 이곳에서도 동족인 유대인의 회당에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들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사도들이 이전에 수고했던 곳에서처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상식에 어긋난 말로 참된 믿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반대하고 나섰다. 더구나 그들이 힘을 얻어 이방인들까지 그들을 대항하는 일에 끌어들였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들의 사업에서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충실하게 반대와 시기, 편견을 대항해 나갔다. 매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제자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나아가 이 증거에 마음이 열린 모든 사람은 이런 것들의 설득력 있는 힘에 감동되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증가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들끓게 만들어 새로운 반대를 일으켰다. 그들이 시기와 증오에 가득 차서 사도들의 일을 당장에 중지시키려고 결심했다. 그들이 권력자들에게 가서 그들의 사업을 가장 거짓되고 과장된 말로 전했고, 당국자들에게 전 도시가 다 폭동에 선동될 위험이 있다고 위협을 가했다. 그들은 엄청난 수의 사람이 사도들에게 접촉되면, 그 속에 비밀스럽고 위험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뜻을 은근히 내비쳤다. 이와 같은 비난으로 결국 제자들은 권력자들 앞에 여러 번 소환되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때마다 백성들 앞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훌륭하게 변명했다. 치안 판사들이 그들에 대해 들었던 거짓된 설명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을 감히 정죄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이 사람들을 덕스럽게 하고,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 되게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편견이 없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만일 사도들이 더 오래 사업을 하도록 허락한다면, 이 도시의 도덕과 질서가 오히려 향상되리라는 입장을 취했다. 사도들이 권력자들 앞에 소환될 때마다, 그들의 변명이 매우 분명하고 현명했으며, 그들의 가르침에 대한 설명이 매우 부드럽고 설득력이 있어서 그들의 환심을 사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그들이 전한 가르침은 대단한 인기를 얻게 되었고, 그곳에서 이전보다 훨씬 많은 편견 없는 청중을 얻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사도들의 일을 방해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을 이 새로운 믿음에 더해주는 결과만 낳게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유대인들은 이제 어떤 방법 이라든지 그들을 끝장내야겠다는 결심하게 되었다. 그들은 무식하고 소란스러운 폭도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저급한 감정을 자극해서 소란을 일으켜, 그 일이 사도들이 일으킨 것처럼 꾸며대기로 했다. 그들은 말을 좀 더 힘 있게 하기 의해서 온갖 거짓 고소를 만들어 준비했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치안 판사의 도움을 끌어들였다. 그들은 이제 사도들이 도무지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할 기회가 없도록 하려고 작정했다. 여기다 폭도들의 세력을 끌어 들어 사도들을 돌로 쳐 죽여서라도 그들의 사업을 끝장내려고 했다. 사도들의 친구들은 비록 믿음을 갖지는 않았지만, 악의적인 유대인들의 의도에 대해 쓸데없이 그들의 분노에 노출하지 말고, 목숨을 위해서 피하라고 사도들에게 경고했다. 그에 따라 비밀리에 이고니온을 떠났다. 그래서 충실한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도록 하고, 그리스도의 교훈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을 믿었다. 그러나 결코 이고니온을 영영 떠난 것은 아니었다. 흥분과 분노가 가라앉으면 다시 돌아와 그들이 시작한 사업을 마칠 작정이었다. 하나님의 율법의 구속력 있는 주장을 살펴보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자주 사도들이 이고니온에서 받았던 대우와 비슷한 대접을 받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빛을 끈질기게 거부하는 목사들과 백성들의 극렬한 반대를 심심치 않게 당한다. 허위 진술과 거짓으로 진리의 전달자들이 백성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문을 닫아 버린다. 다음으로 사도들은 루가 오니아의 도시들인 루스드라와 더베로 갔다. 이곳은 이교도들과 미신적인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듣고 받아들일 사람들이 있었다. 사도들이 그곳에서는 유대인들의 편견과 박해를 만나지 않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에 이 도시들에서 일하기로 선택했다. 그들은 이제 전혀 새로운 적은 맞게 되는 데 이교적 미신과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었다. 사도들은 그들의 사업에서 각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모든 종류의 신앙과 종교가 포함되어 있었다. 유대인들의 편협한 신앙과 성급함, 마법과 신성 모독, 자신의 권력을 발휘하기 좋아하는 치안 판사들, 거짓 목자들, 미신과 우상 숭배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게 되었다. 어디에나 핍박과 반대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수고에 승리가 따랐고, 날마다 믿는 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루스드라에는 몇몇의 유대인이 있기는 했지만, 유대인의 회당은 없었다. 주피터의 신전이 그곳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함께 도시에 나타나 대단한 능력과 유창한 웅변으로 그리스도의 교훈을 가르쳤다. 신앙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늘에서 온 신이라고 믿었다. 사도들이 백성들을 주위에 모으고 새로운 믿음을 전하자 주피터를 믿는 사람들이 가능한 대로 이 교훈을 자기들의 미신적인 믿음과 연결시키려고 시도했다. 바울이 그들에게 헬라어로 연설을 했는데, 그들의 찬송의 주제가 될 분에 대한 바른 이해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씀을 전했다. 그들의 주의를 태양과 달, 별들이 있는 창공을 향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는 아름다운 질서, 봉우리가 흰 눈으로 덮인 장엄한 산들, 우뚝 선 나무들 그리고 천연계의 다양한 신비들, 이런 것들은 유한한 인간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는 재주와 정확성을 보여 주는 것들이었다.
사도들이 전능하신 분을 사람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작품들을 통해서 증거 하려 한 것은 이교도들의 마음을 위대한 우주의 지성으로 이끌기 위함이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말하면서, 그가 사람의 자녀들을 사랑해서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분의 생애와 하신 일을 그들 앞에 제시했다. 그가 구원하러 오신 사람들로부터의 반대, 악한 사람들에게서 당한 시련과 십자가에 처형된 일, 또 지상의 사업을 만드신 분 앞에서 사람을 변호하시기 위해 승천하신 일 등을 제시했다.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울과 바나바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했다.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치료하셨던 그리스도의 사업을 바울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한 앉은뱅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그가 전하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게 되었다. 바울이 동정심이 그 고통당하는 사람을 향해 동하기 시작했다. 그가 판단할 때 그 사람이 바로 구세주로부터 치료받고 싶은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그분이 하늘로 승천하셨지만 여전히 사람의 친구요 의사로서, 세상에 계실 때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계시리라고 믿었다. 바로 그 우상 숭배하는 무리들의 면전에서 앉은뱅이에게 자리에서 일어서라고 명했다. 이때까지 그는 자리에 앉아 있는 자세로만 살아왔으나, 이제 바울의 말을 믿음으로 붙잡고, 즉각 그의 명령을 따랐다. 이전에 허약한 앉은뱅이로 지낼 때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이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이 앉은뱅이에게 일어난 일을 그것을 본 모든 사람에게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 사람은 매우 잘 알려진 사람이었고, 치료는 완전했기 때문에 그들 쪽에서 그 일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고니온 사람들은 사도들의 일에 초자연적인 능력이 임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그들을 찾아왔다고 흥분해서 크게 외쳐댔다. 이것은 신들이 세상을 방문한다는 그들의 전통과도 조화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위대한 이교의 신인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바울과 바나바로 그들 중에 강림했다고 믿었다. 그들은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믿었는데, 그것은 바울이 열렬하고 활동적이며, 웅변적으로 경고와 권고의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바나바는 덕망 있는 모습, 품의 있는 태도 그리고 그의 얼굴에 나타난 온화함과 자비스러움 때문에 그를 신들의 아비 "제우스"라고 불렀다. 앉은뱅이가 기적적으로 치료되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온 사방에 퍼졌다. 모든 사람이 흥분했고, 신전의 제사장들까지도 몰려와서 사도들을 하늘의 궁정으로부터 내려온 사람들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했다. 그들에게 짐승의 희생을 드리고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예물과 화환, 각종 보물을 가지고 왔다. 사도들이 조용한 곳으로 몰려가 군중들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열광적으로 외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하나님의 일꾼들이 방문의 동기와 거기에 따른 흥분을 확인하고는 분노와 두려움이 가득 차게 되었다. 그들은 이 일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갔다. 바울은 뱅성들의 소음을 능가하는 높고도 우렁찬 음성으로 그들에게 주의를 집중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갑자기 그 송동이 멎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행 14:15~17). 백성들은 참을성 없는 태도로 바울의 이 말을 들었다. 사도들에 대한 그들의 미신과 흥분은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컸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와 목적은 좌절되었다. 사도들이 이교도들에 의해 자신들에게 붙여진 신성을 적극 부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또한 경배하기에 합당한 유일한 대상이신 참 하나님께 백성들의 마음을 향하게 하려는 바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의도를 돌이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그들은 사도들이 행한 이적의 능력을 눈으로 직접 보았다. 이 이상한 손님들이 가진 신비한 능력 행사를 통해서 전에 결코 것을 수 없었던 앉은뱅이가 온전한 건강과 힘을 얻어 걷고 뛰는 것을 보았다. 바울 편에서 한참을 설득하고, 자신들의 하늘의 하나님과 크신 치료자이신 그분의 아들의 대표자라는 것과 자기와 바나바와 사명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한 후에야 백성들은 겨우 설득되어하려던 일을 포기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세상적인 판단으로 볼 때, 그들의 전통에 따라 거룩한 존재가 땅을 방문해서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들과 그들의 종교를 치켜세워서 힘을 얻게 하는 축복을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실망을 한가운데 희생으로 드릴 동물을 끌고 멀리 나갔다. 이제는 이 흥분하기 쉽고 변덕스러운 사람들에게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는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진리에 닻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안디옥에서 반대하던 유대인들이 그들의 영향력을 통해 사도들을 그 지역에서 쫓아내었는데, 그들이 이고니온의 어떤 유대인들과 연합하여 사도들의 여정을 따라온 것이다. 사도들에 의해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또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일어난 영향도 보게 되자, 그들이 시기심이 다시 발동하게 되었다. 그들이 사도들의 일하는 곳으로 안내를 받자, 사도들의 사업에 거짓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사업의 어느 곳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것과 이루어진 일도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악마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유(類)가 이전에도 마귀의 왕을 힘입어 마귀를 쫓아낸다고 구세주를 비난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그분을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고, 지금도 역시 그분의 사도들을 말도 안 되는 분노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런 거짓으로 루스드라 사람들을 격동시켜 저희 마음에 작용한 악독한 정신을 백성들에게 성공적으로 불어넣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행적과 믿음을 세세히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금 전까지 바나바를 신으로 여기고 경배하려고 했던 그 사람들은 이제 그릇된 설명과 비방을 듣고 사도들이 사실은 살인자들보다 더 악한 자들이며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들을 세상에서 제거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마지막 시대에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믿고 가르치는 사람은 원칙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비슷한 반대를 당할 것인데, 그들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예단(豫斷)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가장 현란한 거짓말을 퍼뜨려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한 경고의 기별을 주어 보내신 사람들의 영향력을 없애고, 그들의 가는 길에 벽을 쌓을 것이다.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거짓말을 지어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전하면 그들은 사탄에 의해 맹목적이 되어 그 거짓말을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원수의 우두머리의 손안에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우쭐거리는 이유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11~12). 사도들로부터 제사드리는 특권을 거절당하게 되자 그들의 실망은 신이라고 만세를 부르고 접근하던 열성으로 이 하나님의 일꾼들을 대적하게 했다. 악의적인 유대인들은 주저하지 않고 이 이교도들의 미신과 허술한 믿음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들의 잔인한 계획을 추진해 나갔다. 그들은 폭력으로 사도들을 공격해서 바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못하게 만들었고, 만일 그들이 이러한 특권을 준다면 그는 백성들을 현혹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악마적인 분노를 가지고 사도들에게 대들었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돌로 쳤다. 바울은 상처와 고통으로 기절하여 자신의 종말이 왔다고 느꼈다. 스데반의 순교의 장면이 그의 마음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는 그때 잔인한 부분을 맡았었다. 땅에 엎드려 거의 죽은 듯했다. 분노한 폭도들은 그를 성문 밖으로 끌어내 성벽 아래로 던져 버렸다. 사도는 진리를 위해 당한 그의 고난을 열거하면서 이 사건을 여러 번 언급했다. "세 번 태장으로 맞고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고후 11:25~26). 제자들은 사도의 시체에 둘러서서 그가 죽은 줄로 알고 애곡 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머리를 움직이더니 자기 발로 일어서서 그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제자들에게는 이 광경이 마치 죽음에서 부활한 것 같아서, 하나님께서 그의 신실한 종의 생명을 보존해 주신 기적이라고 믿었다. 그의 회복에 대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기뻐했다. 사도들이 전했던 가르침을 새롭게 믿으며 하나님을 찬송했다. 이 제자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신앙에 새로 회심한 사람들로서 유대인들의 와전과 악의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굳게 선 사람들이었다. 사실, 그 악한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반대는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 헌신한 형제들의 믿음을 튼튼하게 한 결과가 되었고, 사도 바울이 회생한 것은 그들의 믿음에 하나님이 인을 찍으신 것처럼 보였다. 디모데가 사도 바울의 목회를 통해서 회심했는데, 이때 사도 바울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다. 그는 죽은 듯이 보이는 사도의 곁에 붙어 서서 멍이 들고 피투성이가 된 채 일어섰는데도 그의 입술에는 불평이나 신음 소리가 아니라 그의 이름을 위해 고난당하는 일을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을 보았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서 중 한 곳에서 이 사건에 대해 기록했다. 디모데는 바울과 교회에 가장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바울의 고통과 기쁨에 충실한 동반자였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으나, 그의 모친은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전적으로 유대 종교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저 자 : 엘렌 G. 화잇
출 판 : 시조사
구입처 : (02) 329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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