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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가정/치료봉사

치료봉사 /Ⅰ위대하신 의사 (2. 사역의 날들)

by 동심초(남양주) 2023. 12. 6.

 Ⅰ위대하신 의사 (2. 사역의 날들)  

 

  (2. 사역의 날들)  

 29  가버나움의 한 어부의 집에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저를 위해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났다." 그러나 베드로의 장모는 일어나서 구주와 그분의 제자들을 섬겼다(눅 4:38, 막 1:30, 마 8:15). 그 소식은 신속히 퍼져 나갔다. 그 이적이 안식일에 일어났고 랍비들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해가 지기 전에는 치료를 받으러 오지 못했다. 그러나 해가 진 후에 집에서, 상점에서, 시장에서, 그 마을의 사람들은 예수께서 거하시는 초라한 오막살이로 몰려왔다. 병자들은 들것에 들려, 지팡이에 의지하여,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 없이 비틀거리면서 구주 앞으로 나아왔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사람들은 몰려가곤 했다. 고쳐 주신 분이 내일 그들과 같이 있어 줄지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가버나움에서 그날의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승리의 음성과 구원의 함성으로 공중은 충만해졌다. 

 

 30  예수께서는 마지막 환자까지 다 고치신 후에야 비로소 일손을 멈추셨다. 무리들은 떠나갔고 밤은 깊어 시몬의 집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지루하고 분주했던 하루는 지나 갔고, 예수께서는 휴식을 찾으셨다. 그러나 마을이 깊이 잠들어 있을 때에 구주께서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셨다.(막 1:35). 아침 일찍 베드로와 친구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버나움 사람들이 벌써부터 예수님을 찾는다고 말씀드렸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내가 다른 동리에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눅 4:43)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31  당시 흥분에 휩싸여 가버나움에서는 그분의 사업의 목적이 상실될 위험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단순히 이적을 행하는 자나 육체적 질병을 고쳐 주는 자로 주목받는 것에 만족하실 분이 아니셨다. 구주로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애쓰셨다. 사람들이 그분은 세속 나라를 통치할 왕으로 오신 분이라고 열렬히 믿고 있을 때 그분은 그들의 마음을 세속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돌이키고자 열망하셨다. 단순한 세속적 성공은 그분의 사업을 방해할 것이었다. 경솔한 무리들의 탄성소리가 그분의 마음에 거슬렸다. 그분의 생애에는  자신을 내세우는 주장이 전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지위와 재물과 재능에 대하여 돌리는 존경은 인자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충성심을 얻거나 존경심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어떤 수단도 예수께서는 사용치 않으셨다. 그분이 출생하시기 여러 세기 전에 그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되었다. 

 

 3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사 42:2, 3). 바리새인들은 까다로운 형식주의와 예배의 허식과 행위로써 자신들을 차별화시키려고 하였다. 그들은 종교를 탁상공론의 주제로 만듦으로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열성을 증거 하였다. 교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논쟁은 요란하고도 지루하였다. 거리에서 율법을 잘 아는 학자들이 내뱉는 분노한 논쟁의 음성을 듣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생애는 그 모든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그 생애에는 시끄러운 논쟁, 허식적인 예배, 칭찬을 받고자 하는 행동들을 볼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품성 가운데 나타나셨다. 예수께서는 의와 같은 계시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기를 열망하셨다. 의의 태양께서는 영광으로 빛나는 화려한 모습을 세상에 나타내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다고 기록되어 있다(호 6:3). 그 새벽빛은 조용하고 부드럽게 이 세상에 나타나 어두움을 몰아내고 세상에 생명을 일깨워 준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3:14, 15).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그와 마찬가지로 의의 태양께서는 "치료하는 광선을"(말 4:2) 가지고 떠오르신다.

 

 33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사 42:1).

"주는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들이 되셨사오니"(사 25:4).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내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니"(사 42:5, 7).

"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사 42:16).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아 그 거민들아

여호와게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광야와 거기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의 거하는 촌락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거민들은 노래하며

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지어다"(사 42:10~12).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나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삼림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아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실 것임이로다"(사 44:2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사랑은 …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전 13:1~6).

 

 34  헤롯의 감옥에서, 침례자 요한은 구주의 사업에 낙심하고 낭패감을 품은 채 사태를 주시하고 기다리고 그의 두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하였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 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구주께서는 그 제자들의 질문에 즉시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그분의 침묵을 이상히 생각하면서 서 있는 동안, 앓는 사람들이 그분께로 나오고 있었다. 전능하신 치료자의 음성이 귀머거리가 귀를 뚫고 들어갔다. 그분의 손으로 한 번 만지시면서 말씀하시자, 소경의 논이 열려 대낮의 빛과 천연계의 모습과 친구들의 얼굴과 구주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분의 음성이 죽어 가는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자 그들은 경건하고 활기 찬 모습으로 일어났다. 중풍 걸리고 사귀 들린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자 그들은 광기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이 경배하였다. 랍비들이 불결한 사람들이라고 피해 버리는 가난한 농부들과 노동자들이 그분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에게 영생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35  이처럼 그날이 지나갔다 요한이 제자들은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며 그들의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가서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6절)라고 덧붙여 말씀하셨다. 요한의 제자들은 그 기별을 가지고 갔으며,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요한은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회상하였다.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사 61:1, 2) 심이라. 나사렛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아였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가 고통당하는 인간의 필요를 섬기는 그분의 사역에 나타났다. 그분의 영광은 우리의 낮은 신분까지 내려오신 그분의 겸손에서 나타났다. 

 

 36  그리스도의 사업은 그분께서 메시아가 되심을 선포했을 뿐 아니라, 그분의 나라가 어떻게 세워져야 할지도 보여 주었다. 요한에게는 광야에 있던 엘리야에게 나타났던 것과 동일한 진리가 계속되었다.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왕상 19:11, 12)라. 그러나 불 후에 하나님께서 세미한 소리로써 선지자에게 말씀하셨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왕위와 나라들을 정복하거나, 화려한 것과 외관상 과시로 당신의 사업을 수행하실 것이 아니고, 긍휼과 자아희생의 생애를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하심으로 수행하실 것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외적 겉치레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부드러운 영감을 통하여, 성령의 내적 역사 곧 생명 되시는 분과의 영혼의 교통을 통하여 오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그리스도의 품성의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성품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빛을 비추기 위한 노력을 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훌륭한 선을 자랑하기 위해 자기만족에 도취된 어떤 노력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들의 심령이 하늘나라의 원칙으로 고취되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세상과 접촉할 때, 그들 속에 있는 빛을 드러나게 될 것이다. 생애의 모든 면에 나타나는 그들의 확고한 성실성은 빛을 비추는 수단이 될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37  재물과 높은 지위, 값비싼 장비, 건물과 설비 등은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람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고 허영심을 조장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보일지라도 세속적인 과시는 하나님 보시기에 무가치하다. 그분은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가치 있게 여기신다. 전자는 후자를 나타내 줄 때에만 가치가 있다. 어떤 뛰어난 예술품도 심령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열매인 품성의 아름다움과 견줄 만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지는 않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주신 것은 불멸의 부요를 인류에게 주신 것이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사람들이 축적해 온 부도 그 불멸의 부요함과 견줄 수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사랑을 품고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 앞에 서셨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과의 연결을 통하여 받고 나타내고, 나누어 주어야 할 보화이다. 하나님의 사업에서 인간의 노력은 헌신적인 일꾼의 헌신에 의해 결실로 나타난다. 이는 생애를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냄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 치셨고, 당신의 사랑의 품성이 우리에게 나타내시므로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의 구속주께서는 당신의 이로써 우리를 덮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에 필요한 남녀들을 택하실 때, 세속적 재산과 학문과 웅변력을 소유하고 있는지 묻지 않으신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질문하신다. "나의 길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겸손하게 그들은 걸어가고 있는가? 나의 말을 그들의 입술에 넣어 줄 수 있는가? 그들이 나를 대표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성전에 당신의 성령을 넣어 주실 수 있는 그만큼만 각 사람을 사용할 수 있으시다. 그분이 가납하실 사업은 당신의 형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의 영원한 원칙에 속한, 지울 수 없는 특성들을 간직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에 제시할 신임장이다.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38  예수께서 도시의 거리에서 사역하실 때 어머니들이 병들고 죽어 가는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고 군중을 헤치며 그분의 시선이 미치는 지점까지 나오고자 애쓰고 있다. 핏기 없이 지쳐 있는 그 어머니들, 거의 절망적이면서도 굳은 결심과 인내력을 잃지 않고 있는 그 모습들을 바라보라. 그들은 고통의 짐을 진 채 구주를 찾고 있다. 밀려드는 군중 때문에 뒤로 물러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겨 마침내 그들 곁으로 접근해 가신다. 희망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솟아난다. 그들이 그분의 시선과 마주치고 긍휼과 사랑이 충만한 그 눈을 바라볼 때 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39  무리 중에 한 사람을 뽑아내어 구주께서는 "내가 네가 무엇을 해 주랴?" 하고 말씀하심으로써 여자의 신뢰심을 불러일으키신다. 그 여자는 흐느끼며 "주님, 나의 아이를 고쳐 주소서"라며 가장 큰 소원을 아뢴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린아이를 여자의 팔에서 받으신다. 그분이 아이를 만지시자 질병은 즉시 물러간다. 창백한 죽음의 흔적은 사라지고, 생명의 물결이 혈관을 통하여 흐르고, 근육은 힘을 얻는다. 위로와 평안의 말씀이 그 어머니에게 주어진다. 그러자 긴급한 또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을 주는 능력을 다시 발휘하신다. 그리하여 모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된다. 

 

 40  우리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생애에 대하여 많이 생각한다. 우리는 그분이 이루신 놀라운 일들에 관하여, 그분이 행하신 이적들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사물들에 그분이 주목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위대하시다는 더 큰 증거이다. 유대인들 중에는 아이들을 랍비에게 데리고 가서 손을 얹어 축복하게 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구주이 사업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일로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복을 달라는 요청을 할 때, 제자들은 그들을 불쾌하게 쳐다보았다. 그들은 아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유익을 얻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분이 그들이 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자녀를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들의 염려와 근심을 이해하셨다. 그분은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셨다. 그들을 당신이 계신 곳으로 오게 하셨다. 

 

 41  한 어머니는 예수님을 찾아 아이를 데리고 집을 떠났다. 도중에 이웃 사람에게 사정 얘기를 했더니 그 이웃사람 역시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가서 복받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몇몇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함께 왔다. 그 어린이들 중 몇은 이미 영아기를 넘어서 유년기와 소년기에 도달해 있었다. 그 어머니들이 소원을 아뢰자, 예수께서는 동정의 마음으로 그들의 수줍고 눈물 어린 요구를 들으셨다. 그런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그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고자 기다리셨다. 제자들이 그 어머니들을 책망하면서 쫓아 버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분을 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보시고는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의 잘못을 알려 주셨다. 그분은 어린아이들을 당신의 팔에 안으시고 손을 그들 위에 얹으시고 그들이 찾아온 목적인 축복을 베푸셨다. 어머니들은 위로를 받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힘을 얻고 축복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새로운 기분으로 그들의 의무를 감당하고 자녀들을 위해 희망찬 마음으로 일할 용기를 얻었다. 만약 그 어린아이들의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면, 우리는 그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그날의 광경을 회상시켜 주고, 사랑스러운 구주의 말씀을 그들에게 되풀이해서 들려 주는 것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42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사람들과 함께 동행하셨던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동정 깊은 구주이시다. 그분은 유대나라에서 어린아이들을 팔에 안으셨고 그 당시와 꼭 마찬가지로 지금도 진실로 어머니들을 도우신다. 우리의 가정에 있는 자녀들은 옛날의 어린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피로 산 영혼들이다. 예수께서는 모든 어머니의 마음속에 있는 부담을 아신다. 궁핍과 가난으로 고생한 어머니를 모셨던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모든 어머니를 동정하신다. 가나안 여인의 근심된 마음을 위로하고자 긴 여행을 하셨던 그분은 오늘날의 어머니들을 위해 같은 일을 해 주실 것이다. 나인성 과부에게 독자를 돌려 주셨고, 십자가의 고통 중에서도 당신의 어머니를 기억하셨던 그분은 오늘날도 어머니들의  슬픔은 동정하신다. 모든 슬픔과 고난을 그분은 위로하시고 도와주실 것이다. 어머니들로 하여금 그들의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게 하라. 그들은 자녀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충분한 은혜를 발견할 것이다. 자신의 짐을 구주의 발 앞에 내려놓고자 하는 모든 어머니들에게 문이 열려 있다.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막 10:14)라고 말씀하신 분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들에게 그들의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당신의 복을 받으라고 초청하신다.

 

 43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예수님을 만난 어린아이들 속에서 예수님의 은혜의 후사와 그분의 나라의 백성이 될 남녀들을 예수님은 보셨다. 그분은 그 어린아이들이 장성한 사람들, 곧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으로 현명하고 마음이 굳어져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쉽게 당신의 말씀을 듣고 당신을 그들의 구속주로 받아들일 것을 아셨다. 그분은 그들을 가르치실 때, 그들의 수준까지 낮추셨다. 하늘의 왕이신 그분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셨고, 그들의 순진한 이해력에 맞도록 당신의 중요한 교훈들을 단순하게 풀이하셨다. 그분은 훗날에 자라나서 영생의 열매를 맺을 진리의 씨를 그들의 마음에 심으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때 각 시대마다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 곧 교회의 직원들과 목사들과 조력자들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당신께 이끌고 계신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그것은 만일 그대들이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면 그들이 올 것이라고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뜻이다.

 

 44  그대들은 비그리스도인의 품성으로 예수님을 그릇되게 나타내지 않아야 한다. 그대들의 냉랭하고 거친 태도로 어린아이들을 그분께로부터 떠나가게 하지 말라. 만일 그대가 하늘에 있다면 하늘이 즐거운 장소가 될 수 없다는 느낌을 그들에게 주지 않도록 하라. 종교란 어린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종교란 우울한 종교라는 것과 구주께 나오면 생애를 즐겁게 해 주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그릇된 인상을 주지 말라. 성령께서 어린아이들의 마음에 역사하고 계실 때 그분의 사역에 협력하라. 구주께서 그들을 부르고 계시다는 것과 그들이 원기왕성한 꽃다운 시절에 자신을 구주께 바치는 것이 그분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라.

 

  부모의 책임  

구주께서는 당신의 피로 산 영혼들을 무한한 자비로 돌보신다. 그들은 그분의 사랑의 대상이다. 그분께서는 말할 수 없는 열망으로 그들을 바라보신다. 그분의 마음은 잘 양육받은 가장 매력적인 어린이들에게뿐만 아니라 유전과 태만으로 좋지 못한 품성의 특성을 가진 어린아이들에게도 이끌린다. 많은 부모는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특성에 대해 자신들의 크나큰 책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녀들의 품성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도 자비와 지혜로 자녀들을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어린이들을 긍휼 한 마음으로 바라보신다. 그분은 원인에서 결과까지 알아보신다. 그리스도인 일꾼은 결함 많고 잘못된 아이들을 구주께 인도할 때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있다. 지혜와 기지로써 그들을 자기 마음에 붙들어 매고,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그들의 품성이 변화된 것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섯 덩이의 적은 보리떡으로 무리를 먹임   

 45  그리스도께서 바닷가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은 하루 종일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을 따라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분의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너무도 단순하고 쉬웠기 때문에 그들의 심령에 마치 길르앗의 유향과 같았다. 그분의 거룩한 손의 치유력은 앓는 자들에게 건강을, 죽어 가는 자들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에게 그날은 마치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식사 후에 오랜 시간이 자났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돌아가지 않고 머뭇거렸다. 마침내 제자들이 그리스도께 와서 군중들을 위해서라도 떠나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많은 사람은 먼 곳에서 왔으며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주변 마을과 촌락에서 그들은 음식물을 구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요 6:5)라고 물어보셨다. 빌립은 눈을 들어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는 그 많은 무리에게 음식물을 제공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200 데나리온에 해당되는 떡을 구하더라도 충분치 못하고 조금밖에 안 돌아가겠다고 대답하였다.

 

 46  예수께서는 무리 가운데서 어느 정도의 음식을 찾을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안드레가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리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요 6:9)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셨다. 그러고 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풀밭에 앉히라고 명령하셨다. 말씀대로 다 되자 그분은 그 음식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마 14:19, 20) 게 되었다.

 

 47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게 기름진 음식을 공급하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단순히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준비된 음식물은 그들에게 유익한 교훈이 되지 못할 것이었다. 이 이적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단순성의 교훈을 가르치고자 하셨다. 만일 오늘날의 사람들이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생활했던 것처럼 천연계의 법칙에 조화되게 생활함으로써 그들의 습관이 단순했다면, 인류의 필요는 풍성하게 채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기심과 식욕의 방종이 죄악과 불행을 초래하여 한편에서는 폭음과 폭식을 하는데, 다른 편에선 굶주리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사치를 추구하는 욕망을 만족시켜 주시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고 하지 않으셨다. 흥분에 들뜬 긴 하루가 지나면서 지치고 허기진 그 큰 무리에게 주어진 그 단순한 식사는 하나의 보증이었다. 일상적인 필요를 능력과 사랑으로 채워 주신다는 보증인 것이다. 구주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호화로운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운명은 빈곤으로 둘러싸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그들의 필요가 채워질 것이라고 보증한다. 그리고 그분은 세상의 물질보다 더 좋은 것, 곧 그분의 임재로 인한 위로를 약속하신다.

 

 48  무리가 먹고 난 후에도 음식이 풍성하게 남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 6:12)라고 명령하셨다. 이 말씀은 음식물을 광주리에 담으라는 말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 교훈은 이중적이었다. 낭비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일시적인 유익이라도 그냥 지나쳐 버려선 안 된다. 인류의 유익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주린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거두어 들이라. 이와 같은 신중한 태도로 영혼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늘에서 온 떡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과 관련된 말씀은 하나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한 말씀도 헛되이 땅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 보리떡의 이적은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5,000명을 먹이실 때 그분 가까이에 음식이 없었다. 그분의 명령대로 음식이 공급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곳 광야에 남자 5천 명, 그 외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분이 무리들에게 그곳까지 오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이 하루 종인 당신의 교훈을 들었으므로 배가 고프고 지쳐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들은 집에서 멀리 떠나 있었고 밤이 가까웠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음식 살 돈이 없었다. 그들을 위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셨던 분께서 그들을 주린 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실 것이었다. 

 

 49  그리스도께서는 이적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고, 제자들은 살마들에게, 사람들은 서로 나누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모든 사람은 그분에게 생명의 떡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그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사람들 사이에 임명된 교통의 수단이다. 제자들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는 구주의 명령을 들었을때, 그들의 마음속에는 온갖 어려움이 생겼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던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갖고 있던 것을 다 가지고 예수께 왔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에게 먹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들에게 사람들을 섬기라고 명령하셨다. 음식이 그분의 손에서 불어났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내민 제자들의 손이 한 번도 채워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조금밖에 되지 않는 그 음식은 모든 사람에게 충분하였다. 무리들이 먹고 나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늘로부터 공급된 귀한 음식을 먹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50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 무지한 사람들,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깨달을 때,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자주 위축되는가?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의문을 품는다. "우리의 연약한 힘과 빈약한 자원이 이 큰 필요를 어떻게 채울까? 그 사업을 지도하기 위해 더욱 큰 재능을 가진 어떤 사람이나 그 일을 맡아 줄 어떤 기관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대가 가진 재산과 시간과 재능을 사용하라. 그대의 보리떡을 예수께 가지고 가라. 비록 그대의 자원이 수천 명을 먹이기에 충분하지 못할지라도 한 사람을 먹이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손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을먹일 수 있을 것이다. 제자들처럼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을 주라. 그리스도께서는 그 선물을 증가시켜 주실 것이다. 그분은 당신을 정직하고 단순하게 의지할 때 갚아 주실것이다. 보잘것없는 공급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 것이 풍성한 잔치가 되었음을 입증될 것이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나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고후 9:6~11) 지리라.

 

지은이   : 엘 G. 화잇

출판사   : 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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