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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가정/치료봉사

치료봉사 /Ⅰ위대하신 의사 (4. 믿음의 접촉)

by 동심초(남양주) 2023. 12. 17.

 

  Ⅰ위대하신 의사 (4. 믿음의 접촉)  

 

 

  4. 믿음의 접촉  

 59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곗다 함이라"(마 9:21). 이는 한 불쌍한 여자, 곧 12년 동안 그의 생애를 괴롭힌 질병으로 고생한 한 여자의 말이었다. 그 여자는 모든 재산을 치료하는 데 써 버렸지만 고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위대한 치료자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희망은 되살아났다. 그 여자는 "만일 내가 그분께 이야기할 수 있으리만큼 가까이 갈 수만 있다면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한 유대의 랍비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 중이었다. "내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막 5:23). 이 간절한 탄원은 부드럽고 동정 깊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그분은 그 회당장과 함께 그의 집을 향하여 즉시 출발하였다.

 

 60  그리스도 주변으로 무리들이 밀려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천천히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군중을 뚫고 나가시는 중에 구주께서는 앓는 여자가 서 있는 곳 가까이 이르셨다. 그 여자는 주님께 접근하고자 거듭거듭 애를 써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드디어 그 여자에게 기회가 왔다 여자는 그분에게 이야기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전히 천천히 걸어가시는 주님의 진로를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그분의 겉옷을 만져서 나았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병 고칠 기회를 놓칠까 염려한 나머지,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여자의 마음을 다 아시고 그 여자가 서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그분은 그 여자의 큰 필요를 깨닫고, 그녀가 믿음을 행사하도록 도와주신 것이다.

 

 61  그분이 지나가시자 그 여자는 앞으로 나아가 그분의 겉옷자락을 간신히 만지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여자는 나을 것을 깨달았다. 바로 그 한 번의 만짐에 그 여자의 일생의 믿음이 집중되었다. 즉시 고통과 질병은 사라졌다. 그 순간 온몸을 통하여 흐르는 전류와 같은 충격을 느꼈다. 여자에게 완전한 건강이 주어졌다는 느낌이 왔다. "병이 나은 줄을 뭄에 깨달으니라"(막 5:29). 감사의 마음이 충만한 여인을 12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의사들이 한 것보다 더 큰 일을 단 한 번의 접촉으로 이루어 주신 위대하신 치료자 예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군중 속에서 빠져나가고자 노력하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고 주위를 들러보시며,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라고 물으셨다. 베드로는 놀란 표정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주여 무리가 웅위해 미나이다"(눅 8:45)라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46절)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주의성 없는 무리들의 우연한 접촉과 믿음의 접촉을 분별할 수 있으셨다. 어떤 사람이 은밀한 목적을 가지고 그분을 만졌고 응답을 받았단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이 그 진상을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제자들과 그 여자에게 주실 교훈이 있었다.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희망으로 격려하시고자 하셨다. 치료의 능력을 가져온 것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를 원하셨다. 그 여자의 믿음에 대해 아무 말도 않고 지나쳐서는 안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여자의 감사의 간증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셔야 만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자의 믿음의 행위를 당신이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그녀가 깨닫기를 바라셨다. 그분의 다만 절반쯤 축복한 채 그 여자를 보내기 원치 않으셨다.

 

 62  그 여자는 자기의 고통을 주님께서 알고 계셨다는 것과, 그분께 나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과 능력을 믿는 그의 믿음을 그분께서 인정하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버려두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 여자를 바라보시면서, 그리스도께서는 누군가가 만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것을 깨닫고, 그 여자는 떨면서 앞으로 나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 여자는 감사의 눈물을 머금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겉옷을 만진 이유와 만진 즉시 고침을 받은 자초지종을 그분께 말씀드렸다. 그 여자는 그분의 겉옷을 만진 것이 일종의 참람된 행위가 아니었는지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입에서는 한 마디의 책망도 나오지 않았다. 그분은 다만 칭찬하는 말씀만 하셨다. 그 말씀들은 인류의 불행에 대한 동정으로 충만해진 사랑의 마음에서 나왔다. 그분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 8:48)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을까? 이제 그녀의 기쁨은 한층 더 비참하게 만들었던 공포감은 사라졌다. 예수님 주위로 몰려드는 호기심에 천 군중들에게는 생명의 능력이 나누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분을 만진 병든 그 여자는 고침을 받았다. 그러므로 영적 일에는 우연한 접촉과 믿음의 접촉이 구별된다. 그리스도를 단순히 세상의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는 영혼에게 치료를 결코 가져다줄 수 없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단순히 복음의 진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므로 내가 그분을 믿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요 3:16) 된다. 내가 그분의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께 나올 때, 나는 그분의 구원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내가 이제 사는 생애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갈 2:20)이 되어야 한다.

 

 63  많은 사람은 믿음을 일종의 견해라고 주장한다. 구원하는 믿음은 일종의 거래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언약 관계로 연결하게 된다. 산 믿음은 활력과 신뢰심의 증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산 믿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사람에게 승리하는 능력이 된다. 믿음은 죽음보다 더 강한 정복자이다. 만일 병자들에게 믿음의 눈으로 강력한 치료자 예수님을 바라보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놀라운 결과를 목격할 것이다. 그로 인하여 육체와 심령에 이르러 올 것이다. 악습의 희생자들을 위해 일할 때, 그들이 신속히 달려가고 있는 절망과 파멸을 지적해 주기보다는 그들의 눈을 예수님께 돌리게 하라. 그들에게 하늘의 영광을 주목하게 하라. 이렇게 하는 것이 속절없고 절망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앞에 펼쳐져 있는 무덤의 온갖 공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을 육신과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 오직 그의 긍휼 하심을 좇아  

 64  한 백 부장의 종이 중풍병으로 누워 있었다. 로마인들에게 종은 시장에서 사고파는 노예였으므로 학대받고 잔혹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 백 부장을 조에게 부드러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종이 회복되기를 매우 소원하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께서 종을 고쳐 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구주를 보지도 못했지만 소문을 듣고 믿음이 불끈 솟구쳤다. 이 로마인은 유대인들의 형식주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종교가 자기의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정복자와 피정복민을 분리시키는 만족적 편견과 증오와 장벽을 이미 헐어 버렸다. 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존중하였으므로 그분께 예배드리는 유대인들에게 친절을 나타냈다. 소문을 듣자 그는 그리스도의 교훈에서 영혼의 필요를 채워 주는 진리를 발견하였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영적인 것을 구주의 말씀에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자 그는 자기 자신이 예수께 접근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대의 장로들에게 호소하여 그의 종을 고쳐달라고 요구를 하게 되었다. 장로들은 사정을 예수께 아뢰면서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나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 우리를 위해 회당을 지었나이다"(눅 7:4, 5)라고 말했다. 그러나 백 부장의 가는 도중에 예수께서는 "주여 수고하시니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6절)라는 백 부장이 보낸 전갈을 받으신다. 여전히 구주께서는 갈 길을 가신다. 그러자 백 부장이 직접 나와서 자신의 전갈의 결말을 짓는다.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눅 7:7)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 9).

 

 65  "저는 로마의 권세를 대표하며, 저의 군사들은 저의 권위를 최고의 것으로 인정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대표하며, 모든 피조물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 주님께서 질병을 떠나가도록 명령하시면, 그 질병은 당신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시로 하인이 나"(마 8:13) 앗다. 유대의 장로들을 백 부장이 자기들의 민족에게 보여 준 호의 때문에 그를 그리스도께 추천하였다. 그들은 백 부장이 "회당을 지었"기 때문에 그가 합당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백 부장은 자기 자신이 합당치 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럴지라도 그는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시 자신의 선행을 신뢰하지 않고 구주의 자비를 신뢰하였다. 그는 자신의 큰 필요성만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 나올 수 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 하심을 좇아"(딛 3:5) 하신다. 그대는 그대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는 하나님께 내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지금이나 미래나 호소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전혀 속절없는 우리의 상태, 곧 그분의 구원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상태이다. 자아를 의존하는 모든 생각을 버리고, 우리의 갈보리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말할 것이다.

 

 66  "내 손에는 가지고 갈 아무런 대가도 없고, 다만 당신의 십자가에만 매달립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우리를 하늘과 연결해 주고 암흑의 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주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믿음이 부족하므로 그리스도께로부터 떠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속절없이 무가치한 그대로 자비하신 구주의 긍휼 앞에 자신을 내어 놓으라, 자아를 보지말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사람들 사이에 다니시면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신 분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강한 구속주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약속을 생명나무의 잎사귀처럼 붙잡으라.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너를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그대가 그분께 나아갈 때 그분께서 받아주신다는 것을 믿으라. 왜냐하면 그분이 그 사실을 이미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렇게 하는 동한 그대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롬 8:31, 32).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정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고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 39). "주는 선하사 사유하시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하심이 후하심이니이다 … 나의 환난 날에 내가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시 86:5~7).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주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시 130:3~7).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67  동양에 알려진 모든 질병 가운데 문둥병이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 그 병의 불치성과 전염성 그리스도 그 병이 희생자에게 끼치는 끔찍스러운 결과 등은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두렵게 만들었다. 유대인들에게 이 질병은 죄로 말미암아 받는 심판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그것을 "재앙" 혹은 "하나님의 손가락"이라고 불렀다. 그 병은 뿌리가 깊어 근절할 수 없고 치명적이었으므로 죄의 상징으로 생각하였다. 의문의 율법에 의하여 문둥병자는 부정하다고 선고를 받았다. 그가 만진 것은 무엇이나 부정하였다. 공기는 그의 호흡으로 불결해졌다. 문ㄷ우병자는 이미 죽은 사람처럼 사람들이 사는 거주지에서 격리되었다. 그 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을 받은 사람은 자신을 제사장에게 보여야 했고, 제사장은 자세히 사려본 후 그의 상황을 결정해 주어야 했다. 만일 문둥병자라고 선고를 받으면, 그는 가족과 격리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고, 다만 같은 환자들과만 접촉하는 운 명이 되었다. 심지어 왕들과 통치자들에게도 예의가 없었다, 이 무서운 질병에 걸린 군주는 홀을 포기하고 사회에서 사라져야 했다. 문둥병자는 친구와 친적들을 떠나서 그의 질병의 저주를 견뎌야 한다 그는 자신의 재난을 공표하고, 옷을 찢고, 경고의 음성을 높이므로 전염성이 있는 병자에게서 피해 가도록 모든 사람에게 알려 주어야 했다. 외롭게 추방된 자가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치는 슬픔 음조는 공포와 중오를 알려 주는 신호였다. 

 

 68  그리스도께서 봉사하시던 지역에 그 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분의 사역이 대한 소식이 그들에게 전해지자, 마음속에 믿음이 솟아나기 시작한 한 사람이 있었다. 만일 예수께 나아갈 수만 있다면 그는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을까? 영원히 격리될 수밖에 없도록 운명 지어진 그가 치료자 되시는 예수께 자신의 몸을 내보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를 고쳐 주실까? 주님께서도 바리새인들이나 심지어 자기에게 저주를 선언하고 살마들이 다니는 곳에서 피해 가라고 경고한 의사처럼 하지 않으실까? 그는 예수께 대하여 들은 바를 모두 생각해 본다. 그분께 도움을 구한 사람 중에 한 살마도 그냥 돌아간 살마이 없었다. 그 가련한 사람은 구주를 찾고자 결심한다. 비록 마을로부터 격리되어 있을지라도, 산길을 따라  난 샛길을 걷다가 그분이 가시는 길과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마음 밖에서 가르치고 계시는 그분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어려움은 많을지라도 그것이 그의 유일의 소망이다.

 

 69  그 문둥병자는 멀찌감치 떨어져 구주의 입에서 나오는 몇 마디의 말씀을 듣는다. 그는 예수께서 병자들 위에 손을 얹으시는 것을 본다. 절름발이, 소경. 중풍병자 등 여러 가지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나서 구원받은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본다. 그의 믿음을 강해진다. 그는 청중들이 있는 곳으로 점점 가까이 접근해 간다. 그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속박, 사람들의 안전, 모든 사람이 자기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공포감 등을 모두 잊어버린다. 그는 다만 치료를 받는다는 복스러운 소망만을 생각한다. 그는 몸서리쳐질 만큼 보기 흉하다. 그 질병이 무섭게 잠식해 있었으므로 썩어가는 그의 육체는 보기에 끔찍하다. 그를 보자 사람들은 뒤로 물러선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한데 몰린다. 어떤 사람들을 그를 예수님께 접근하지 못하도록 애를 쓰나 소용이 없었다. 그는 그들은 보지도 않고 그들의 말을 듣지도 않는다. 아연실색하는 그들의 표정에도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만을 보고,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음성만을 듣는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 14:4).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그는 예수께로 달려가서 자기 몸을 그분의 발 앞에 던진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부르짖는다. 예수께서는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마 8:2, 3)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손을 그 사람 위에 얹으신다. 즉시로 그 문둥병자에게 변화가 생긴다. 그의 피는 정결해지고, 신경은 감각을 얻고, 근육은 튼튼해진다. 문둥병자의 특징인 부자연스러운 흰 비늘 모양의 피부는 사라진다. 그의 살은 어린아이 살처럼 된다. 

 

 70  만일 제사장들이 문둥병자가 치유된 내력을 알게 될 경우 그리스도께 대한 증오심 때문에 부정직한 판결을 내렸을지도 몰랐다. 예수께서는 공정한 판결을 얻기를 바라셨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고침 받은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 이적에 관한 소문이 퍼지기 전에 지체 말고 예물을 가지고 성전에 가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명령하신다. 제사장들은 그와 같은 예물을 받기 전에, 예물을 바친 자를 살펴보고 그가 완전히 회복된 사실을 확인해야 하였다. 검사가 이루어졌다. 그 문둥병자에 추방을 선고했던 제사장들은 병이 완치된 것을 입증하였다. 고침을 받은 그 사람은 가정과 사회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는 건강의 은혜가 매우 귀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원기 발랄한 남성으로서 가정에 돌아가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 예수께서 주의를 시켰음에고 자신이 치유된 사실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기뻐 돌아다니면서 자기를 완전하게 고쳐주신 분의 능력을 전하였다. 그 사람이 예수께 왔을 때, 그는 "온옴에 문둥병"이 들어 있었다. 문둥병의 치명적 독소가 그의 온몸에 퍼져 있었다. 제자들은 주님을 그 사람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왜냐하면 문둥병자를 만진 사람 자신도 불경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손을 문둥병자 위에 얹으셨어도 더럽힘을 받지 않으셨다. 문둥병은 깨끗해졌다. 죄의 문둥병, 곧 뿌리가 깊고, 치명적이며, 인간의 능력으로 깨끗함을 받을 수 없는 죄의 문둥병도 마찬가지다. "온몸은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맞은 흔적뿐이"(사 1:5, 6) 었다. 그러나 인성을 쓰고 오신 예수님은 더럽힘을 받지 않으신다. 그분의 임재는 죄인에게 치료의 힘이 되셨다. 누구든지 그분의 발아래 엎드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믿음으로 말을 하면,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는 대답을 들을 것이다.

 

 71  어떤 경우에는 예수께서 치유의 축복을 즉시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문둥병의 경우에는 호소하자마자 즉시 응답을 받았다. 우리가 세속적 축복을 위해 기도할 때는 기도에 응답이 지체될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기 위해 기도할 때는 그렇지 않다.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사 당신의 자녀 삼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해 자기 몸을 드리셨"(갈 1:4)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하는 것을 얻을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 15). 예수께서는 근심되고 마음이 괴로운 자들, 희망이 꺾인 자들, 세속적 기쁨으로 심령의 갈급을 진정시키고자 애쓰고 있는 자들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사람을 부르사 당신 안에서 쉼을 얻으라고 하셨다. 

 

  "너희는 마음이 쉼를 얻으리니"  

예수께서는 수고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마 11:29)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계셨다. 알든 모르든 모든 사람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벗겨 주실 수 있는 무거운 짐을 모든 이가 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고 있는 가장 무거운 짐은 죄의 짐이다. 우리가 그 짐을 짊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우리는 그 죄짐으로 짓이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께서 우리 대신 그 짐을 지셨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72  주님이 우리의 죄짐을 지셨다. 그분은 우리의 피곤한 어깨에서 짐을 벗겨 주실 것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실 것이다. 근심과 슬픔의 짐 역시 그분께서 지실 것이다. 우리의 모든 근심을 당신께 맡기라고 주님은 우리를 구르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당신의 마음에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인류의 맏형 되신 주님께서 영원한 보좌 곁에 계신다. 그분은 당신을 구주로 바라보는 모든 살마을 바라보신다. 인간의 약점이 무엇이며, 우리의 소원이 무엇이며, 우리를 시험하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그분은 경험적으로 아신다. 왜냐하면 그분이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히 4:15)기 때문이다. 그분은 떨고 있는 연약한 하나님의 자녀에 불과한 그대를 살펴보신다. 그대는 시험을 받고 있는가? 그분이 건져 주실 것이다. 그대는 연약한가? 그분이 강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대는 상처를 받고 있는가? 그분이 고쳐 주실 것이다 주님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며,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 147:4, 3) 신다. 그대의 염려와 시련이 무엇이든지, 그대의 사정을 주님 앞에 내놓으라. 그리하면 그대의 정신은 넉넉히 인내하게 될 것이다. 난처하고 어려운 일을 해결할 길이 그대에게 열릴 것이다. 그대 자신이 연약하고 속절없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그분의 능력 안에서 그대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대의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대의 짐을 져 주시는 분에게 그 짐들을 맡김으로써 얻는 안식은 더욱 복될 것이다. 환경이 친구들을 헤어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넓은 바다의 출렁거리는 물결이 우리와 그들 사이에 가로놓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환경도, 어떤 거리도, 우리를 구주와 분리할 수는 없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분은 우리 우편에 계셔서 우리로 쓰러지지 않게 해 주시고, 옹호해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위로해 주신다. 그리스도께 구속받은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욱 크다. 우리가 그분의 사랑 안에서 안식하면서 "그분께서 나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주셨으므로 내가 그분을 의지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인간의 사랑은 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변할 줄을 모른다. 우리가 도움을 얻으려고 그분에 부르짖으면,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당신의 손을 펴신다.

 

"산들은 떠나며

적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10).

 

지은이   : 엘 G. 화잇

출판사   : 시조사

대표전화 : (02) 329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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