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위대하신 의사 (5. 심령의 치료)
(5. 심령의 치료)
73 도움받으려고 그리스도께 나아온 많은 사람은 제 스스로 질병을 초래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기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그분으로부터 나온 능력이 그 사람들에게 들어갈 때 그들은 죄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은 그들의 육체적 질병은 물론이요 영적 질병도 고침을 받았다. 그런 이들 중에 가버나움의 중풍병자가 있었다. 문둥병자와 마찬가지로, 그 중풍병자는 회복되리라는 소망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의 질병은 죄 된 생애의 결과였다. 그러므로 양심의 가책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그는 그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바리새인들과 의사들에게 호소하였으나, 모든 일이 허사였다. 그들은 불치의 병이라 선고하고, 그를 죄인이라고 비난하면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을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74 그 중풍병자는 절망 가운데 빠졌다. 그즈음 그는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처럼 죄가 많고 속절없는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으니 자신이 구주께 가까이 갈 수만 있다면 자기도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자신의 질병의 원인을 생각하자 희망은 사라졌다. 그럴지라도 그는 치료에 대한 소망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의 큰 소원은 죄의 짐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뵙고 용서의 보증과 하늘의 화평을 얻고자 갈망하였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든지 죽든지 만족스럽게 여길 것이었다.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의 쇠약해진 육신에는 이미 죽음의 징조가 나타났다. 그는 친구들에게 자기를 침대에 누인 채 예수께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친구들은 기꺼이 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구주께서 계신 집 안과 주위에는 너무 많은 군중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그 병자와 친구들은 예수께 다가가기는커녕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데까지도 들어갈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늘 하던 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분 둘레에 앉아 있었고,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눅 5:17)도 앉아 있었다.
75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예수님을 참소하기 위한 정탐꾼으로 온 자들이었다. 그들 외에 혼잡한 군중, 열성 있는 사람들,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 믿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민족이 다르고 계층이 다른 사람들이 다 망라되어 있었다.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눅 5:17). 생명의 영께서 회중들을 품고 있었으나 바리새인들과 교법사들은 그분의 임재를 식별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으므로 고침을 받는 일이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었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 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눅 1:53). 중풍병자 운반자들은 군중을 뚫고 들어가려고 거듭거듭 시도해 보았으나 헛수고였다. 그 병자는 말할 수 없는 고민으로 자기 주위를 들러 보았다. 그처럼 갈망하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이처럼 가까이 외 있는데, 어떻게 그 희망을 버릴 수 있을까? 그의 제안대로 친구들은 집 꼭대기로 그를 데리고 올라가 지붕을 뚫고 예수님 발아래 그를 내려놓았다. 설교가 중단되었다. 구주께서는 그의 슬픈 표정을 내려다보시고 당신을 주목하고 있는 애원하는 눈을 보셨다. 그분은 무거운 짐에 눌려 있는 그 영혼의 갈망을 잘 아셨다. 그 중풍병자가 아직 집에 있었을 때 그의 양심을 각성시켜 주신 분은 그리스도셨다.
76 그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자기를 완전하게 고쳐 주실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을 때, 구주의 자비는 그의 심령애 복을 주셨다. 처음 희미한 믿음의 빛이 예수께서 죄인을 도우실 유일하신 분이라는 확신을 자라나는 것을 그분은 주시하셨다. 그리고 그 믿음이 당신 앞에 나오고자 하는 온갖 노력과 함께 더욱 강하고 자라나고 있는 것을 보셨다. 고통 중에 있는 그 사람을 당신께로 이끄신 분은 그리스도셨다. 이제 구주께서는 그 병자의 귀에 음악과 같은 음성으로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2)라고 말씀하셨다. 죄의 짐이 그 병자의 심령에서 떠나갔다. 그는 의심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그분의 능력을 보여 준다. 누가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그분의 능령을 부인할 것인가? 희망이 절망을 대신하고, 즐거움이 우울한 심정을 대신한다. 육체적 고통은 사라지고 온몸은 변화된다. 그는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고 평화로운 침묵 속에 누워 있다. 너무나 행복해서 말이 필요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은 숨을 죽이고 이 낯선 교제의 모든 동작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자신들을 초청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죄 때문에 심령의 병이 들어 있지 않았던가? 그들은 그 짐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군중들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버릴 것을 염려한 나머지, 마음속으로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막 2:7)라고 말하였다.
77 예수님의 시선이 그들과 마주치자 그들은 그 시선을 피하여 움츠렸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그분은 중풍병자를 향하여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마 9:4~6)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들것에 실려서 예수께 왔던 그 사람은 젊음의 탄력과 힘을 가지고 자기 발로 일어섰다. 그는 즉시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막 2:12). 쇠약해지는 육체를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데에 필여한 것을 창조의 능력 말고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땅의 티끌로 창조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 바로 그 음성이 죽어가는 중풍병자에게 생명이 회복되도록 말씀하셨다. 그리고 육체에 생명을 주신 바로 그 능력을 마음을 해롭게 하였다. 창조하실 때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시 33:9) 서게 하신 분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에게 생명을 말씀하셨다. 육체의 치료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증거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명령하시고,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78 중풍병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심령과 육체가 모드 치료된 것을 깨달았다. 그는 육체의 건강을 누리기 전에 심령의 건강이 필요했다. 육체의 질병을 고침 받기 전에,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에 해방을 주고, 심령을 죄에서 정결케 하셔야 한다. 이 교훈은 간과하지 말 것이다. 오늘날 육체적 질병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살마들이 무수히 많은데 그들은 이 중풍병자와 같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기별을 듣고자 갈망하고 있다. 불안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의 죄 짐이 빌병의 원인이 된다. 그들은 심령을 고쳐 주시는 분 앞에 나오기 전에는 결코 안식을 얻지 못한다, 오직 그분이 주실 수 있는 화평만이 심령에 활력을 주고 육체에 건강을 줄 것이다.
79 중풍병자의 치료가 사람들에게 끼친 결과는 마치 하늘이 열려 더욱 좋은 세상의 영광을 드러낸 것과 같았다. 고침을 받은 그 사람이 발을 옮길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짐을 마치 새의 깃털인 양 가볍게 지고서 군중을 뚫고 지나갈 때, 사람들은 물러서서 그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그들은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그 사람을 응시하며, 저희들끼리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눅 5:26)라고 가만히 속삭였다.
80 불과 얼마 전에 가족들 앞에서 천천히 운반되어 갔던 그 사람이 침상을 가뿐히 들고 돌아오자 고침을 받은 중풍병자의 집에는 큰 기쁨이 넘쳤다. 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주위에 모였으나 쉽사리 만지지 않았다. 그 사람은 성인의 완전한 활기를 간직하고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팔들이 그의 마음대로 민첩하게 움직였다. 오그라들고 우중충한 색깔을 띠고 있던 살결은 이 제 발랄하고 형색이 좋아졌다. 그는 든든하고 자유롭게 걸었다. 그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에 기쁨과 소망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순결과 화평의 표정이 죄와 고통의 흔적들을 대신하였다. 그 집에서는 기쁨에 넘치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으며, 하나님께서는 소망이 없는 자에게 소망을 주시고 고통받는 자에게 힘을 주신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셨다.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은 생애를 예수님께 바칠 준비가 다 되었다. 어떤 의심도 그들의 믿음을 흐리게 하지 않았고, 어떤 불신도 어두웠던 그들의 가정에 빛을 비추어 주신 예수님께 대한 충성을 깨뜨리지 못하였다.
8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해 판단하시는도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 아니하시며
우리의 조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 1~14).
"네가 낫고자 하느냐?"
81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요 5:2, 3). 어떤 때 이 못의 물이 요동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 물이 움직이는 것은 초자연작 능력의 결과이므로 물이 철썩거리면 제일 먼저 물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병이더라도 고침을 받는다고 대개 믿고 있었다. 병자 수백 명이 그곳을 방문했으나 물이 움직일 때에는 무리가 너무 많아서 남자, 여자, 아이들 할 것 없이 저들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발로 짓밟으면서 서로 앞다퉈 쇄도해 갔다. 많은 사람은 그 못 가까이 접근할 수도 없었다. 못 가까이까지 간 많은 사람은 그 못 둑에서 죽어다. 그곳에는 오두막이 세워져서 환자들의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에는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날마다 병에서 놓여나겠다는 헛된 소망을 안고 연못까지 기어 와서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계셨다. 예수께서는 명상과 기도를 하시면서 홀로 거니기다가 그 못까지 오셨다. 그분은 비참한 환자들이 고침을 받을 수 있는 유일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시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분은 당신의 치유력을 발휘하셔서,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을 건강하게 해 주시고자 열망하셨다. 그러나 그날은 안식이었다. 무리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와 같은 치료 행위는 유대인들의 편견을 격동시켜 당신의 사업을 단축시킬 것을 아셨다.
82 그러나 구주께서는 가장 비참한 한 사람의 형편을 보였다. 그는 38년 동안 속절없는 앉은뱅이로 지내온 사람이었다. 그의 질병은 대개 악습의 결과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으로 여겨졌다. 그는 친구도 없이 홀로, 하나님의 자비에서 끊어졌다고 생각하며 오랫동안 불행한 세월을 지냈다. 물이 움직일 때라고 짐작될 때면 그의 절망적인 형편을 동정한 사람들이 그를 행각까지 운반해 주곤 했다. 그러나 혜택을 입을 절호의 기회가 되면 그를 물속으로 들어가도록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물결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지만 못가에는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 사람보다 더 힘센 사람들이 먼저 뛰어들곤 하였다. 가련하고 속절없는 그 병자는 이기적으로 날뛰는 무리들과 겨루어 성공할 수 없었다. 하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끈덕진 노력과 근심, 거듭되는 실망 때문에 그에게 남이 있는 힘이 빠르게 잦아들고 있었다.
83 그 병자는 자리에 누워 이따금씩 그 못을 바라보려고 머리를 들어보곤 하였다. 바로 그때 친절하고 인자한 얼굴을 한 한 분이 그를 굽어보면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말하므로 그는 주목하게 되었다. 그의 마음속에 희망이 솟았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타오르던 용기는 곧 시들어 버렸다. 자기가 얼마나 자주 그 못에 들어가려고 애를 썼던가를 회상하였다. 그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바라보면서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말한다.
84 예수께서는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6~8)라고 명령하신다. 그 병자는 새로운 희망을 품고 예수님을 바라본다. 그분의 얼굴 표정과 그분의 음성의 선율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았다. 사랑과 능력이 바로 그분으로부터 발산되는 것 같았다. 그 앉은뱅이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든다. 그는 의심 없이 순종하고자 뜻을 정한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자, 몸이 반응을 보인다. 모든 정신과 근육이 새로운 생명으로 약동하고, 불구가 되었던 그의 사지는 건강하게 움직였다. 그 사람은 제 발로 일어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다시 찾은 힘을 기뻐하면서 든든하고 거리낌 없는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예수께서는 그 중풍병자에게 하나님의 도움에 대한 아무런 보증도 주지 않으셨다. 그 사람은 "주님, 만일 당신이 나를 고쳐 주신다면, 나는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세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 사람은 의심을 품음으로써 고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자기가 고침을 받았다는 것을 믿었다. 그는 즉시 노력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힘을 주셨다. 그가 걸으려고 작정하자 걷게 도었다.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움직일 때, 그는 낫게 되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 있다. 우리의 심령은 마비되어 있다. 그 쇠약한 사람이 걸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거룩한 생애를 사 수 없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속절없는 상태를 깨닫고 그들을 하나님과 조화되게 해 줄 영적 생명을 갈급하며 그것을 얻고자 애쓴다.
85 그러나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 그들은 절망을 안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라고 부르짖는다. 그처럼 절망 가운데서 애쓰는 사람은 위를 쳐다보아야 한다. ㄱ주께서는 당신의 피로 산 사람들을 굽어보시며, 말할 수 없는 친절과 긍휼로써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대에게 건전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일어서라고 명령하신다. 그대가 완전히 나았다고 느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구주의 말씀을 믿으라. 그대의 의지를 그리스도 편에 두라. 그분을 섬기고자 뜻을 세우고 그분의 말씀대로 행동할 때 그대는 힘을 얻을 것이다. 오랫동안의 방종으로 영과 육을 속박하고 있는 악습과 정욕의 지배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리스도께서는 거기서 능히 건져 주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해 주시고자 갈망하신다. 그분은 "죄로 죽었던"(엡 2:1) 영혼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실 것이다. 그분은 약점가 불행과 죄의 사슬에 매여 있는 포로들을 해방시켜 주실 것이다. 죄책감은 생명의 샘이 독을 풀어 넣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그대의 죄를 제거래 주겠다. 내가 그대에게 평안을 주겠다. 나는 나의 피로써 그대를 샀다. 그대는 나의 것이다. 나의 은혜가 그대의 약한 의지를 강하게 해 줄 것이다. 나는 그대의 죄책감을 제거해 줄 것이다" 유혹이 그대를 엄습할 때, 근심과 걱정이 그대를 둘러쌀 때, 좌절하고 낙심되어 절망상태에 빠지려 할 때, 예수임을 바라보라. 그리하면 그대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이 그분께서 임재하시는 밝은 빛에 의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죄가 그대의 심령을 지배하려고 하고 양심을 무겁게 할 때, 구주를 바라보라. 그분의 은혜는 죄를 정복하기에 넉넉하다. 불안으로 떨릴 때, 감사의 마음으로 그분께 돌아가라. 그대 앞에 놓인 소망을 굳게 붙잡으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를 당신의 가족으로 맞아들이려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분의 능력은 그대의 연약함을 도와줄 것이다. 그분을 그대를 한 걸음씩 인도하실 것이다. 그분의 손에 그대의 손을 맡기라. 그리하여 그분이 그대를 인도하게 하라. 그리스도께서 멀리 떠나 계신다고 결코 생각하지 말라. 그분은 언제나 가까이 계신다. 사랑스러운 그분은 그대 주위에 계신다. 그대가 찾기를 기다리고 계신, 그분을 찾으라. 그분은 그대가 옷자락을 만지기를 원하실 뿐 아니라, 계속적인 교통을 통하여 당신과 동행하기를 바라신다.
지은이 : 엘 G. 화잇
출판사 : 시조사
대표전화 : (02) 329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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