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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G. 화잇의 자서전61

엘렌 G. 화잇의 자서전 / 22장 난관을 무릅쓰고 전진함 엘렌 G. 화잇의 자서전 / 22장 난관을 무릅쓰고 전진함 22장 난관을 무릅쓰고 전진함 148 1853년 5월에 나다니엘이 죽은 다음, 나의 나면은 큰 괴로움을 당하였다. 정신적인 걱정과 고민이 그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는 열이 올라 침대에 앓아눕게 되었다. 우리는 그를 위하여 합심하여 기도하였다. 통증은 가셨지만 그는 계속 허약한 상태 그대로였다. 그는 뉴욕 주 밀그로브와 미시간 주에 각 약속이 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을까 염려되었다. 우리는 우선 밀그로브까지 모험적으로 가 보아서 그때까지 호전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오기로 작정하였다. 밀그로브의 R. F. 코트렐 목사의 집에 있는 동안 그는 극도로 쇠약해져서 더 이상 갈 수 없겠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체적 결함 때문.. 2024. 3. 10.
엘렌 G. 화잇의 자서전 / 21장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엘렌 G. 화잇의 자서전 / 21장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21장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142 우리는 1852년 4월, 가장 절망적인 상황하에서 뉴욕 주 레체스터로 이주하였다. 매 걸음마다 우리는 믿음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가난에 쪼들려서 최대한도로 절약하고 극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1852년 4월 16일이 하우랜드 씨 가족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우리는 이제 겨우 로체스터에 정착하였습니다. 우리는 일 년에 175불 하는 낡은 집에 세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집에 인쇄소를 차렸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무실 세를 일 년에 50 달러를 더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이곳에 오셔서 우리의 가구들을 불러보신 다면 웃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75.. 2024. 3. 10.
엘렌 G. 화잇의 자서전 / 20장 다시 출판 사업을 함 엘렌 G. 화잇의 자서전 / 20장 다시 출판 사업을 함 20장 다시 출판 사업을 함 136 오스위고에서 우리는 에드슨 씨 부부와 함께 센터포트에 가서 해리스 씨 집에 거처를 정하고, 거기서 어드벤트 리뷰라고 부르는 월간지를 출판하였다.* 사단의 방해 공작 우리 아이의 용태가 더 악화되었으므로 우리는 그를 위해 매일 세 번씩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때때로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병세가 호전될 때도 있었지만, 그의 증세가 악화될 때에는 우리의 믿음이 혹심하게 시련을 당하였다. 나의 심령은 크게 상심되었다. 이런 의문이 자꾸만 자를 괴롭혔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사 그를 건강하게 일으켜 주지 아니하시는가? 유혹하기 위하여 항상 준비되어 있는 사단은 우리가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속.. 2024. 3. 9.
엘렌 G. 화잇의 자서전 / 19장 흩어진 무리를 방문함 엘렌 G. 화잇의 자서전 / 19장 흩어진 무리를 방문함 19장 흩어진 무리를 방문함 129 1850년 초 뉴욕 주 오스위고에 있는 우리는 그곳에서 약 40마일 동쪽에 위치한 캠든이라는 소도시를 방문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곳에 가기 전에 나는 그곳에 있는 적은 무리의 신자들을 보았는데, 그중에 나는 경건을 주장하는 한 여인을 보았다. 실상 그녀는 외식하는 사람이었으며 백성을 속이고 있었다. 뉴욕 주 캠든에서 안식일 아침에 쾌 많은 사람들이 예배드리며 모였는데 그 기만적인 여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한 자매에게, 여기에 참석한 살마들이 전부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내가 이상 중에 본 여인은 그곳에서 약 40 마일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는데 그 자매는 그 여인을 생각지 못하였다. .. 2024.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