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사랑
예수님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극도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셨고, 뉘우치고 회개하는 영혼을 무한한 은혜로 격려하셨습니다.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갈보리에서 나타난 참 사랑의 광경을 목격한 많은 사람이 후에 그 일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배반
사탄은 유다를 속였습니다.
자기야말로 그리스도의 참제자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항상 물질적인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와 늘 함께하였고, 그분의 권능을 경험했으며, 그분이 메시아이신 명확한 증거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인색하고 욕심이 많으며 돈을 사랑하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에게 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에게 화를 내며 불평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지요.
마리아는 주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주님은 그의 죄를 모두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드리지 못할 만큼 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향유가 귀한 것일수록 그것을 주님께 드려 그의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그의 탐욕을 숨기고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의 이기심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쓰라고 자기에게 맡겨진 것을 이따금 자신을 위해 몰래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탐욕을 숨기기 위하여 종종 가난한 사람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보여 준 그 너그러움은 유다의 탐욕적 성품을 지적으로 날카로운 책망이 되었던 것이지요.
유다의 마음에는 사탄이 들어올 길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행여나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지는 않을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하여 반드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들이 누리는 특권과 지위를 잃지 않으려면 그리스도를 제거하는 길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죽인다 하더라고 여전히 그분의 권능을 생생히 증거 할 증인들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일으키신 나사로가 그분의 큰 능력을 증거할 것이 두려웠습니다.
권원들은 나사로도 죽여 무리의 흥분을 진압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잡기 위하여 혈안이 된 것을 안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은전 얼마를 받고 주님을 넘겨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돈에 대한 애착과 탐욕으로 유다는 그의 주님을 가장 악한 원수에게 잡아 넘겨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직접 유다를 통하여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감동적인 최후의 만찬에서 주님을 넘겨줄 계획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에 대하여 비통한 마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다들 주님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자기만은 부인하지 않겠노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 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누가복음 22장 31~32절).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깊은 고뇌 속에서도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시련을 당할 것과 희망이 좌절될 것을 아셨기에 그들이 열심히 기도함으로 필요한 힘을 얻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물로써 애절하게 부르짖으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누가복음 22장 42절).
하나님의 아들이 고통 중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굵은 피땀이 맺혔고 땅 위로 떨어졌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두렵고 불안한 시간에 제자들로부터 이무런 동정도 받지 못하셨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열성적이던 베드로마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유다가 평상시와 같이 주님께 인사하려고 다가왔습니다.
함께 따라온 무리가 예수님을 포위하였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내가 그니라"라는 말씀에 그들은 뒤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이 몽둥이와 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쉽사리 넘어지는 것을 보고 갑자기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일어나서 다시 하나님의 아들을 포위하자 베드로는 킬을 빼어 대제사장이 보낸 종의 귀를 베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명하시고는 그분의 신적 권위와 능력이 어떠하신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내 어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을 아느냐"(마태복음 26장 53절).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천사들의 얼굴에는 희색이 돌았고 즉시 분노한 폭도를 해산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마태복음 26장 54절).
결국 원수들이 예수님을 끌고 가자 제자들은 깊은 실망과 낙담에 빠졌습니다.
그들의 생명도 위태롭게 되자 모두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은 살기등등한 폭도들의 손에 붙잡혀 홀로 남으셨습니다.
아, 정말로 사탄이 승리를 거둔 것일까요?
제자의 저주와 부인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견디기 힘든 정도로 예수님을 모욕하고 학대하였습니다.
사탄은 이러한 조롱과 폭행을 당한 하나님의 아들이 불평과 원망을 하기를 바랐습니다.
아니면 그분의 신성한 능력을 사용하여 무리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심으로써 구원의 계획이 실패하기를 은근히 기대했습니다.
베드로는 먼발치에서 주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이 걱정되기도 하였고 어떻게 일이 되는지 보로 싶었지요.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발각되지 자기의 안전이 걱정되어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공손하고 예의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로 알려졌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그리스도으 제자가 아니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였습니다.
좀 떨어진 것에 계셨던 예수님은 슬픈 기색으로 베드로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때 그는 다락방에서 작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어떤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그런 주님을 모른다고 한 것입니다.
저주와 맹세까지 하였으니 엄청난 죄책감이 그를 엄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베드로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그는 심히 통곡하면서 그 큰 죄를 뉘우치고 회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형제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다시 일어났습니다.
법정에서
법정에서 군중은 예수님의 피를 요구하며 날뛰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잔인하게 때리고 헌 자줏빛 왕복을 입힌 후 그 거룩한 머리에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그 손에 갈대를 쥐어 주고 엎디어 절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요한복음 19장 3절)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런 후에는 예수님의 손에서 갈대를 빼앗아 그것으로 머리를 쳤습니다.
가시가 이마를 찔러 얼굴과 수염으로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굴욕적을 재판받는 광경을 하늘의 천사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가장 연약한 천사일지라도 예수님을 조롱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을 물리쳐 그분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기만 하면 천사들이 즉시 자기를 구해 줄 것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 악한 자들의 학대를 견디셨습니다.
야비한 방법으로 능욕을 일삼을지라도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 범죄자들을 조금도 노한 얼굴로 보지 아니하셨습니다.
제자들 중 몇 명은 용기를 내어 예수님이 잡히신 곳으로 가서 고난당하시는 모습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신성한 능력으로 그 원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그들을 벌하시리라 기대하였습니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혹시나 속은 것이 아닌지 의심과 염려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변화산에서 들은 음성과 직접 목격한 영광을 떠올릴 때마다 그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베푸신 이적들을 회상하며 그런 능력을 가진 분이 이렇게 붙잡혀 죽으신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신 주님이 지금이라도 피에 주린 악한 무리들을 크신 권세로 꾸짖어 쫓아 버리시기를 바랐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 앞에서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을 알리시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유다의 후회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은 삼십에 판 자신의 행위를 심히 후회하고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주님이 능욕을 당하실 때에 마음이 깊이 찔렸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는 예수님이 자기가 이끌고 간 폭도들에게 붙잡히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을 행하여 자신을 구원하리라 믿었던 것이죠.
하지만 생각대로 일이 되지 않고 예수님이 재판정에 끌려가셔서 격분한 무리들에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폭행으로 당하자 자신의 과오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심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자기가 무죄한 자를 팔아서 죄를 범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제사장들에게 받았던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일 때문에 제사장들은 혼란에 빠져 잠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를 돈을 주고 포섭하여 주님을 그들에게 넘기도록 한 사실이 백성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도둑을 잡듯 예수님을 비밀리에 체포한 행위도 숨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백하였을 때 제사장들의 당황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유다는 큰소리로 예수님의 무죄를 주장할 때에 제사장들은 책임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리라 하거늘"(마태복음 27장 3~5절).
그들은 예수를 붙잡은 이상 그분의 처치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유다는 깊은 고민에 빠졌고 그 부끄러운 돈을 그들 앞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고민과 공포 속에 그 자리를 뛰쳐나와 스스로 목을 매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많은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분의 얼굴에는 노기나 괴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분의 눈은 온화하고 맑았으며 무서워하는 기색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분의 참을성과 침착성은 공포에 떠는 많은 사람과 크게 대조되었습니다.
구경꾼들은 그분의 흠 없는 모습과 침착한 태도를 보며 법관들보다 예수님이 더 왕과 같다고 석로 수군거렸습니다.
헤롯과 빌라도까지 그의 ㅅ=고상하고 신성한 태도에 큭 ㅔ당황하고 있었습니다.
빌라도와 헤롯 앞에서
빌라도는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했습니다.
탁월한 성품을 가지신 그분에서는 전혀 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빌라도의 아내는 즉시 남편에게 전갈을 보내어 자기가 꿈속에서 예수님 때문에 애를 많이 썼으니 그 거룩한 사람을 상관하지 말라고 부탁의 글을 보냈습니다.
전령이 무리를 헤치고 급히 그 편지를 빌라도의 손에 전하자 그는 부들부들 떨며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즉시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빌라도가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내자 이는 자기의 권력과 권위와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전에 원수 같았던 두 통치자가 친구가 되었습니다.
헤롯은 대단한 기적을 베푸는 예수님을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신성한 이적의 능력을 사용하셨을 뿐 결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헤롯이 여러 질문을 하였지만 일체 대답을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광기로 고소하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이 자기의 권세에 대하여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시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그처럼 치욕적인 능멸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고상하고 하나님과 같은 태도를 유지하셨습니다.
헤롯은 이런 모습에 놀라 그분을 정죄하기가 두려워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사탄과 그의 악한 천사들은 빌라도를 유혹하여 그분을 자멸시키려고 사였습니다.
그들은 빌라도를 부추겼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정죄하는 데 찬성하지 않으면 그분을 믿는다는 증거가 되고 그도 고발을 당하여 권세와 세상의 명예를 잃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도록 허락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세상의 권력자들로부터 받을 명예 때문에 무죄한 분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피를 흘리게 한 죄에 가담한 것입니다.
만일 빌라도가 자기의 확신을 따랐더라면 예수님을 정죄하는 데 관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탄은 유대인을 충동하여 잔인하게 예수님을 대하였는데도 그분은 조금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분통이 터졌습니다.
주님이 비록 사람의 성정을 가지셨으나 사랑으로 오래 참으시며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던 것입니다.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
하나님의 귀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니!
제자들과 여러 지방에서 모여든 신도들은 갈보리로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무리들과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사랑하는 제자 요한의 부축을 바다 함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근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자들처럼 그도 예수님이 원수들 앞에서 권능을 베풀어 그 비참한 고아경을 면하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시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의 집에서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바라바를 위하여 준비하였던 십자가를 상하고 피 흐르는 그분의 어깨 위에 지웠습니다.
그분과 함께 처형될 바라바의 동료들에게도 십자가를 지웠습니다.
십자가를 자신 우리의 구주께서는 매를 몇 대 맞으시고는 심한 출혈과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기절하여 땅에 쓰러지셨습니다.
예수님이 깨어나시자 다시 십자가를 어깨에 지운 다음 강제로 걷게 하였습니다.
주님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나아가시다가 그만 의식을 잃고 땅에 넘어지셨습니다.
제사장과 관원들은 고통당하는 죄수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마침 반대쪽에서 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들어 억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시몬의 아들들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그때까지 그는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습니다.
큰 무리가 구주를 따라 갈보리를 향하여 걷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가 예수님을 욕하고 조롱하였지만 어떤 이들은 울며 그분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에 관하여 소리쳤습니다.
질병에서 치유된 사람들과 심지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주님이 행하신 기이한 일을 열렬히 선포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분이 죄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셔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호산나를 부르며 종려가지를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을 찬양하고 환호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지를 수 있는지!
극심한 고통 중에도
사형을 집행하는 장소에 이르자 죄수들을 형틀에 결박하였습니다.
두 강도는 발버둥 치며 난동을 부렸으나 예수님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아들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기적을 빌었습니다.
마리아는 늘 축복을 나누어 주던 사랑에 넘치는 손, 고통 중에 있는 자를 고쳐 주기 위하여 내밀던 손에 못이 박히는 장면을 보고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홀로 그 포도즙 틀을 밟으실 때 만민 중에 그분과 함께 한 자가 없었습니다.
군인들이 그 무서운 일을 자행하였으나 예수님은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원수를 위하여 드리신 그리스도의 이 기도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 곧 마지막 날까지 살아 있을 모든 죄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힘센 사람 몇 명이 그 십자가를 일으켜 세워 미리 파 두었던 곳에 난폭하게 던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극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제사장과 관원들 그리고 서기관들은 무지한 하류층과 더불어 죽어 가는 하나님의 아들을 조롱하고 희롱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마가복음 15장 31절).
모두가 주님을 비웃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마치매 강도 하나는 상처를 입고 조롱당하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는 겸비한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간구하였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3장 42~4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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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이 구절을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고 번역하지만 '오늘'이라는 단어를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날과 연결시키면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요한복음 20장 17절에 의하면 에수님은 부활하신 일요일 아침에 아직 하나님 아버지께 가지 못하셨다고 하셨다. 따라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날(오늘) 낙원에 즉시 가신 것이 아니라면 오늘은 이 약속의 말씀으로 하신 그날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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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극도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셨고, 뉘우치고 회개하는 영혼을 무한한 은혜로 격려하셨습니다.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갈보리에서 나타난 참 사랑의 광경을 목격한 많은 사람이 후에 그 일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보려고 모여든 군중들 속에서 마리아를 보셨습니다.
잠깐 기절하였으나 잠시라도 아들에게서 떨어져 있을 수 없는 모정으로 다시 갈보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하시며 육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요한은 갈보리의 참혹한 장면을 보지 못하게 즉시 마리아를 딴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때부터 요한은 마리아를 친어머니처럼 봉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마리아를 잊지 않으시고 그 장래까지 부탁하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는 거의 끝나 가고 있었습니다.
혀가 바싹 마르고 타 들어갈 때에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예수님께 드렸으나 받지 않으셨습니다.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는 이제 진노의 쓴잔을 마침내 마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것을 바로 죄였습니다.
인류의 대리자요 조증인이 되신 그리스도는 사람의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하시기 위하여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이지요.
아다의 후손들이 죄악을 하나님의 아들의 마음을 짓눌렀고 범죄로 인한 여호와의 진노와 불쾌하심은 그 심령을 두려워 떨게 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실 때 아버지 하나님은 그 얼굴을 구주에게로 돌리셨습니다.
이것이 구주의 마음을 마구 찔러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슬픔에 잠기도록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모든 수치와 고민과 고통을 참으신 까닭은 그분이 인류를 사랑하셔서 극히 잔악한 죄를 몸소 지겠다고 동의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방법 외에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낙원과 영생으로 인도할 문을 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사나운 바다 물결을 잠잠하게 하시며, 거품이 이는 흉용 한 파도 위를 걸으신 예수님!
손을 내밀어 질병을 고쳐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눈먼 자를 보게 하신 예수님!
이제는 사랑을 대신하여 자신을 내주어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죄악의 법적 형벌을 직접 받으셨을 뿐 아니라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사탄은 더욱 맹렬한 시험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심히 가증한 죄악들이 그분 위에 쌓이고 쌓여 죄악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신음하셨습니다.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육신의 고통은 별로 느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천사들도 고뇌에 찬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다 그 무서운 광경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얼굴을 가렸습니다.
무생물계도 모욕을 당하시고 죽어 가시는 창조주를 동정하였습니다.
태양은 그 두려운 광경을 목도할 수 없어 갑자기 그 빛을 가두어 버렸습니다.
정오임에도 불구하고 흑암이 십자가와 그 주위를 전부 뒤덮었습니다.
이 흑암은 오후 세 시가 되어서야 걷혔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분노한 번개가 치는 듯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가복음 15장 34절)라고 절규하셨습니다.
군중들은 침묵 속에서 이 무서운 고아경의 종말을 지켜보았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온 우주를 울리는 듯 똑똑한 나팔 소리 같은 음성으로 "다 이루었도다"(요한복음 19장 30절)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때에 한 줄기 빛이 십자가를 둘러쌌습니다.
구주의 얼굴은 햇빛처럼 영광으로 빛났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머리를 숙이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명을 성취하시기 전까지 생명이 보존되었습니다.
마지막 숨이 끊어지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습니다.
천사들은 그 말씀을 듣고서 드디어 기뻐했습니다.
마침내 구속의 위대한 계획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아담의 자손들이 순종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사탄은 자기가 패배를 당한 것과 그의 왕국이 끝장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던 그 순간에 제사장들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은 휘장 앞에서 제사 예식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들은 땅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벨사살의 궁전 벽에 멸망의 선고를 기록했던 손이 나타나 새로 만든 튼튼하고 아름다운 성전 휘장을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 휘장이 두 조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분의 장례식
요한은 사랑하는 주님의 시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했습니다.
거칠고 무지한 군인들이 함부로 예수님의 시체를 거두어 아무 데나 매장될까 봐 매우 근심하였습니다.
이런 난처한 상황에서 아리마데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나타나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둘 다 신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고 또한 빌라도와 친분이 깊었습니다.
세력과 재산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예수님을 정중하게 장사해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요셉은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요청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시체를 요셉에게 내어 주라는 공식적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두가 장례식을 걱정하고 있을 때에 요셉이 총독의 위임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니고데모는 빌라도와 요셉의 회견 결과를 예측하고 값진 몰약과 침향을 백 근 가량이나 마련해 가지고 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이 죽었을 때에도 예수님만큼 극진한 대우를 받은 일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공손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렸습니다.
찔리고 상하신 그분의 몸을 조심스럽게 닦고 피 묻은 흔적을 씻을 때에 동정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위하여 준비해 두었던 돌무덤을 기꺼이 예수님을 위해 제공하였습니다.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료를 예수님의 시체에 넣고 가는 베로 싼 후에 세 제자가 아직 사람을 장사하지 아니한 새 무덤으로 가져갔습니다.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은 사랑하는 그들의 선생님이 어떻게 되었나 보려고 무덤을 찾았습니다.
무덤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은 것을 보고는 하나님의 아들이 그 속에 누워 계신 줄을 알고 돌아갔습니다.
이 여인들은 최후까지 십자가 앞에 있었고 또한 최후까지 그리스도의 무덤에 있었습니다.
유대의 고나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제거하려는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복수했다는 쾌감마저 느꼈습니다.
하지만 무덤에 누워 있는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는 않을까 심히 우려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에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마태복음 27장 62~64절).
빌라도 역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권능으로 무덤 가운데 나오셔서 잣니을 죽인 사람들을 벌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요구에 따라 무덤을 지킬 군사를 보냈습니다.
무덤 문을 막은 돌에 인봉하여 아무도 몰래 그 무덤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시체를 가져가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펴낸곳 : 시조사
발행인 : 황춘광
펴낸이 : 엄길수
편집인 : 박재만
편 역 : 최창현
원저자 : 엘렌 G, 화잇
전 화 : (02) 329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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